선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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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고

터널 안을 달린다. 하얀 소실점을 향해 속도를 높인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녀가 따라 부른다. 무슨 노래였지? 오래 전에 해체된 혼성그룹이 부른 댄스곡. 제목에 바다가 들어간 것 말고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용케 따라 부르며 어깨를 들썩인다. 나는 묻는다.

“바다에 가는 게 그렇게 좋아?”

여전히 어깨를 들썩이며 그녀가 말한다.

“그럼! 봄 바다를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나는 마음속으로 ‘봄 바다’라고 중얼거려 본다. 어딘가 이상하다.

“봄 바다는 뭔가 어중간하지 않아? 여름의 열기도, 그렇다고 가을이나 겨울의 운치도 없는데.”

“어중간해서 좋아. 너처럼.”

그녀의 말에 나는 설핏 미소를 짓는다. 그러고는 헛기침을 하며 짐짓 화난 투로 말한다.

“뭐라고? 내가 어중간하다고? 어딜 봐서!”

그녀의 웃음이 팝콘처럼 터지며 차 안을 가득 메운다. 박수까지 곁들이는 그녀는 정말로 즐거운 표정이다.

“농담이야! 농담. 운전이나 똑바로 해.”

잘 익은 포도 알갱이처럼 싱그러운 목소리로 그녀가 말한다. 나도 따라 웃으며 슬쩍 그녀를 돌아본다. 부드럽게 처진 눈초리에 행복이 가득하다. 그녀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 순간, 거대한 빛이 덮치며 눈앞이 하얘진다.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경적이 귀를 파고든다. 그리고 그녀가 내지른 한 줄기 비명…….

*

페이드아웃을 하듯 서서히 장면이 바뀐다. 눈부신 빛이 잦아들면 다시 터널 안이다. 차는 멈춰 있고 주위에는 연기가 자욱하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벌 떼의 날갯짓 같다. 플레이어가 고장 났는지 CD가 계속 같은 구간을 반복하며 절규처럼 “바다” “바다” “바다”를 외친다.

그리고 앞 유리를 뚫고 남자 하나가 들어와 있다. 남자의 함몰된 머리에서 붉은 액체가 쏟아진다. 뇌의 어딘가가 터졌는지 좁쌀처럼 작고 하얀 알갱이가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오른쪽 눈썹 위부터 입까지 일자로 죽 찢어져 너덜거리는 피부가 마치 축제의 끝을 알리는 박수처럼 짝짝짝 소리를 내며 세차게 펄럭인다. 갑자기 안구가 툭하고 빠진다. 깊고 어두운 공백이 나를 응시한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남자가 선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잡았다. 낄낄낄.”

*

눈을 떴다.

꿈이다. 소름끼치도록 생생한 꿈. 다시 눈을 감았지만 눈꺼풀 안쪽에 달라붙은 꿈의 잔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처참했던 사고 현장의 모습, 귀청을 찢을 듯이 울려대던 사이렌, 구조요원들의 악다구니, 그리고 남자의 입에서 풍기던 단내 같은 것들이 불과 몇 분전의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할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둠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재빠르게 내 몸을 감쌌다.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침대 옆에 놓인 알람시계를 봤다. 새벽 2시 30분. 오늘도 어김없이 잠은 채 10분을 머물지 않고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알람시계의 초록빛 디지털 숫자가 2시 22분으로 변하는 순간까지 기억하고 있으니 결국 18분 정도도 못 잔 셈이다. 사고 이후로 지금까지 불면의 밤이 계속되고 있다. 잠은 예민한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와 이내 폴짝 사라진다.

물이라도 마실 요량으로 주방으로 향했다. 붉은 달빛이 거실 창문으로 들어와 냉장고 앞에서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사고 당시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창문을 뚫고 들어온 남자, 덤프트럭 운전사는 마지막 발작처럼 “잡았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굵고 빨간 혀를 쭉 빼놓고는. 하지만 남자의 몸에서 피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그 혀는 살아있기라도 하듯 꿈틀거렸고, 그것은 마치 저 불길해 보이는 달빛처럼 내 귓불을 자꾸만 핥았다.

그때를 떠올리자 뒤꿈치가 팽팽하게 당겨 왔다. 나는 의식적으로 큰 소리를 내며 냉장고 문을 열었다. 얼음을 몇 개 넣고 찬물을 붓는 손이 가볍게 떨렸다. ‘쩡’하는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 새벽 공기가, 서늘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앗아갔다. 한 달 전 그날, “마지막 가는 길에 길동무라도 만들겠다.”는 유언을 남긴 덤프트럭 운전사가 고속도로에서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와 나는 까맣게 몰랐다. 그 운전사가 바람난 부인과 내연남을 잔인하게 살해한 직후였다는 사실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덤프트럭은 미친 짐승처럼 라이트를 깜박거리며 먹이를 찾아 터널로 진입했다. 그리고 우리 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덤프트럭의 헤드라이트가 우리를 할퀴었다. 조심하라는 그녀의 외침, 정면으로 달려오는 덤프트럭, 그리고 미친 듯이 웃어대는 운전사…….

엄청난 충격이 몸을 흔드는 순간 그 모든 장면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굉음과 함께 에어백이 터졌다. 덤프트럭에서 튕겨 나온 운전사가 앞 유리를 뚫고 들어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운전사는 피부가 너덜거리고 머리가 터져나간 상태에서도 살아서 낄낄거렸다.

나는 에어백과 좌석 사이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을 때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얕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나는 내 몸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부분, 오른 팔을 뻗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그렇게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서서히 식어가는 그녀의 손을.

컵을 내려놓고 아직도 그때의 감촉이 생생한 오른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러면서 지난 한 달 동안 나를 괴롭혔던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졌다.

‘왜 나만 살아남았지?’

그 순간 왼쪽 귀 위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섬뜩한 고통이 찾아왔다. 저절로 숨을 몰아쉴 만큼 급작스럽고 강렬한 두통이었다. 동시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둔탁하면서도 예리하게 떨리는, 정체불명의 소리였다. 머리를 움켜쥐고 귀를 막아 봐도 소용없었다.

극심한 고통에 나도 모르게 다리가 꺾였다. 자동차 바퀴에 깔려 납작해진 개구리처럼 사지를 뻗고 바닥에 엎드렸다. 몇 분 정도 지났을까. 고통과 환청은 시작이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천천히 숨을 고른 후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다. 순간, 어둠의 농도가 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전보다 더 짙어진 어둠이 끈적끈적 달라붙었다.

특히 달빛이 닿지 않는 거실 구석은 유달리 더 어두웠다. 마치 어둠보다도 훨씬 검은 무언가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벽을 더듬었다. 스위치는 쉽게 잡히지 않았다. 한 뼘. 두 뼘. 이윽고 튀어나온 무언가가 손에 걸렸다.

내리치듯 스위치를 눌렀다. 번쩍하며 불이 켜졌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순식간이었다. 화들짝 놀라 재빨리 몸을 돌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한 달 동안의 은둔 생활을 말해 주는 헝클어진 옷가지와 쓰레기만이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허탈감에 다리가 풀리며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불면, 때문일 것이다. 두통이나 환청, 그리고 헛것이 보이는 것도 죄다 이 지긋지긋한 불면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잠을 자야 한다. 잠을 자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혼자만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욱 끔찍해졌다.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서 수면제를 받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고 이후로는 그때의 아픈 기억들, 예를 들면 코를 찌를 듯 풍기는 소독약 냄새와 피투성이가 된 그녀의 몸, 그리고 영안실의 서늘함 등이 떠올라서 의식적으로 병원을 피했다. 하지만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불면이 계속된다면 나는 미쳐버릴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거실을 휘둘러본 후 불을 끄기 위해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시야의 삼분의 일, 그러니까 양쪽 눈의 끝부분이 마치 검은 막이라도 들이운 듯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눈을 비벼 봐도 마찬가지였다. 검은 ‘공백’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둠이 진해진 것이 아니라 내 눈이 이상해진 것이다.

*

뜬 눈으로 밤을 새고 병원을 찾았다. 사고가 났을 때 입원했던 병원이었다. 한 달 만에 맛보는 바깥 공기는 제법 상쾌했다. 봄에서 여름으로 기울기 시작한 햇살은 따뜻했다. 하지만 시야를 가로막는 검은 공백은 여전했다. 아니, 오히려 새벽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양옆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90도 이상 돌려야 할 정도였다.

외관상 눈에는 아무 이상도 없었다. 아프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화선지에 떨어진 먹물이 서서히 번져나가듯이 그 검은 부분, 실명의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꺼림칙했다.

집을 나서기 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비슷한 증상이 많았다. 사고 후 악몽과 불안에 시달리며 불면증이나 과민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심하면 일시적으로 신체적 장애도 겪을 수 있다는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신경정신과를 택했다.

진료실은 한 달 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하늘색 블라인드, 부드러운 분위기를 더하는 푹신한 소파, 그리고 은은한 음악. 곡명은 생각나지 않지만 한 달 전에 들었던 바로 그 연주곡이었다. 나이 지긋한 의사도 그대로였다. 묵묵히 차트를 들여다보던 의사가 나를 알아보고는 웃으며 물었다.

“어서 오세요. 잠이 안 온다고요? 얼마나 됐습니까? 불면을 앓은 게.”

“사고 난 후부터니까, 한 달 정도 됐어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끔찍한 사고였지요. 좀 어떻습니까? 사고 후유증 같은 건…….”

“두통이 좀 있어요.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그리고 눈도 침침한 것 같고…….”

“한 달 전 MRI 검사 땐 아무 이상 없었죠?”

“네.”

“그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일 겁니다. 불면증도 그래서일 가능성이 높고요. 일단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해 보죠.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나요? 본인이 생각하는 잠 못 자는 이유.”

“저…… 그게.”

“네. 말씀하세요.”

나는 한참을 주저하다가 말을 이었다.

“잠을 못 자는 가장 큰 이유가 있어요. 꿈…… 꿈 때문인데요, 죽은 여자 친구가 계속 꿈에 나타나서…….”

‘죽은 여자 친구’라는 말이 생각보다 쉽게 나와 스스로도 놀랐다. 한 달 전, 나는 ‘죽은 여자 친구’의 영정 앞에서 미친 듯이 울부짖다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보니 바로 이곳 신경정신과 진료실이었다.

내 말이 끝나자 의사는 작은 한숨을 쉬며 “쯧쯧쯧.” 혀를 찼다. 그러고는 말했다.

“저런! 최근에 여자 친구가 돌아가셨나 보군요? 사고도 당하고 여자 친구도 잃고 나쁜 일이 겹쳤네요.”

“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의사는 마치 내가 당한 교통사고와 여자 친구의 죽음이 별개의 사건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를 잊었거나 아니면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 달 전에 진료한 환자, 그것도 뉴스에 대서특필 됐던 사고의 생존자를 잊는다는 건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신경정신과에서 눈을 떴을 때, 의사가 연민에 가득 찬 표정으로 해 줬던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여자 친구 일은 안타깝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던 그 말. 마치 친아버지처럼 자상하던 그 목소리. 그런데 의사는 지금 전혀 다른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인의 죽음은 굉장한 스트레스가 되기 때문에 불면증을 야기할 수도……”

“잠깐만요!”

나는 의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혹시 차트가 바뀐 거 아닙니까?”

의사가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차트를 내려다봤다.

“선우, 이선우 씨 맞으시죠? 기억합니다. 한 달 전에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진료를 받으셨지 않습니까? 그 왜 미친 덤프트럭 운전사라고 신문에 실렸던…….”

의사는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네 맞아요. 한 달 전에도 이 병원에 왔었죠. 교통사고로. 저는 의사 선생님들도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멀쩡했지만 제 여자 친구가 죽었잖아요! 기억나시죠?”

의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간을 찌푸리며 한참 나를 바라보던 의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이선우 씨는 기억하는데 여자 친구 얘기는 금시초문입니다만…….”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순간, 날선 고통이 왼쪽 머리를 스쳤다.

“헉!”

갑자기 찾아온 두통에 숨이 멈출 것만 같았다. 의사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뭉텅. 낙지발이 잘려나가듯 정신이 아득했다. 하지만 예리한 두통도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화를 잘라내지는 못했다.

“제가 여자 친구 장례식장에서 기절해서 이곳으로 왔잖아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과도한 스트레스다 뭐다 했고!”

의사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앞뒤로 빠르게 차트를 넘기더니 한 곳을 펴서 내 눈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몇 줄을 짚어 보였다.

“이선우 씨! 진정하시고 이 차트를 좀 보세요. 그날 이선우 씨는 사고를 당한 후에 저희 병원으로 후송돼 왔고, 외과에서 여러 검사를 했는데 이상 없음이었죠? 그래서 외과에서 우리 신경정신과로 올려 보냈잖습니까. 사고 후에 횡설수설하고 있어서 혹시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건 아닌 가 살펴보라고.”

“뭐라고요? 지금 무슨 말씀을……. 여자 친구 장례식까지 치렀다니까요, 이 병원에서!”

“여자 친구는 없었어요! 적어도 이선우 씨가 당했던 그 교통사고에서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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