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 여자를 믿지 마라

창 – 여자를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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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창은 눈을 떴다. 차 안이었다. 

 

깨어나면서 제일 먼저 깨달은 건 두통이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뒤집히던 속은 그나마 가라앉았지만 지끈거리는 머리는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얼음 한 조각이 뇌 안쪽 어딘가에 박혀있는 것처럼 머리 전체가 얼얼했다. 잔통은 오후나 되어야 가라앉을 것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히드라의 후유증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룻밤의 천국이 무려 48시간 동안이나 지옥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정신을 차려라. 

 

창은 옆머리를 치며 네트에 접속했다. 앞 차창이 네트 모드로 바뀌며 협회 사이트를 띄웠다. 자신의 페이지에 들어가니 메시지가 세 개 있었다. 문의사항 두 개와 의뢰 한 건. 그것들을 확인한 창은 다시 머리를 누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폭력적인 여자 친구 대처법을 알려달라는 문의와 일의 진행에 대한 문의. 폭력을 행사하는 여친이야 다른 대륙으로 달아나거나 쏴 죽이라고 조언하면 되지만 지난달 계약한 건은 이제야 일을 시작한 상태였다. 끝낼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일을 마무리 못하면 돈도 받을 수 없다. 그나마 새로 들어온 의뢰가 미니라이거를 찾아달라는 거였다. 말투로 보아 어린애다. 저금 계좌라도 깰 생각인가? 도움 되는 것이 없었다. 

 

창은 짜증이 일었다. 개설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사이트는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는 시트를 세우며 페이지 상단에 박힌 문구를 노려보았다. 

 

 
명탐정 Justice Chang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드립니다
 

 

하긴, 나라도 너 같은 탐정은 찾지 않겠다.

 

창은 헛웃음을 터뜨렸고 그 때문에 다시 왼 머리가 울려댔다. 세상에 누가 경력도 없이 이름만 거창한 새내기 탐정에게 제대로 된 사건을 맡길까. 자신이라도 값싼 유전자 변이 애완동물이나 찾는 데 활용할 터였다.

 

이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스티스라니. 

 

빌어먹을 탐정협회 때문이다. 그가 남은 돈을 털어 협회에 등록하고 사이트를 개설하려 하자 협회는 그럴듯한 새 이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제안한 것이 저스티스였다. 자기들끼리 고전적이라느니 신뢰가 가는 이름이라느니 떠들면서. 창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지만, 등록한 뒤에 페이지 상단에 박힌 이름을 보자마자 낯이 뜨거웠다. 아이들 만화영화에나 등장할 이름이었다. 

 

차창을 내리니 서늘한 아침 공기 속에 잿빛 안개가 펼쳐져 있었다. 황사였다. 

 

차 시스템 매니저가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곤 차창을 닫으라고 경고했다. 창은 무시하고 뉴스를 켠 다음 차에서 내렸다. 밤 동안 차창을 취침 모드로 돌려놓았던 터라 몰랐는데, 주위가 온통 황사로 뒤덮여 있었다. 짙은 안갯속으로 들어서는 기분이었다. 증명이라도 하듯 뉴스에서는 14년 만에 최악인 황사가 시작됐다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여긴 어디지? 

 

이름만 뉴 제너레이션인 구형 폭스바겐은 안개 속에, 좁은 도로 가드레일 옆에 주차해 있었다. 아래쪽에 펼쳐진 희미한 건물들을 보니 인왕산 정상도로 어디쯤인 것 같았다. 황사에 잠긴 도시는 붉은 아침 햇살에 물들어가는 중이었고, 종로 지구(地區) 쪽 건물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너머로 안갯속에 숨은 해적선 돛대처럼 음산하게 선 남산타워가 보였다. 

 

창은 이 도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불어닥친 황사 때문만은 아니다. 창은 탁한 도시의 어둡고 음습한 실체들을 알았고, 온갖 구린내 나고 노골적으로 악한 것들과 뒤엉키던 시절부터 도시에 대한 환멸이 달라붙어 있었다.

 

뉴스가 끊기며 벨소리가 울렸다. 앞 차창이 통신 모드로 바뀌는 것이 보였다.

 

“저스티스 창 탐정사무소입니다.”

 

시스템 매니저가 전화를 받았다. 제니퍼 틸리던가, 비음이 짜증 나는 옛날 여배우 버전이었다.

 

“저스티스 탐정께선 지금 범인을 쫓는 중이라 통화하실 수 없답니다. 용건을 남겨주시면 저스티스가 곧 연락드릴 거예요.”

 

사서함으로 넘어가자 앞 차창에 상대의 얼굴이 떴다. 유미호가 비웃고 있었다.

 

“저스티스 탐정이라, 멋진걸?” 

 

창은 다시 차에 올라탔다.

 

“범인을 놓치면 전화 주라고, 다른 건수가 있을지 모르니까.”

 

“무슨 일이지?”

 

창 하단에 창의 얼굴이 뜨자 유미호가 놀려댔다.

 

“어이구, 그새 범인을 잡으신 건가 탐정 나으리?” 

 

창은 대꾸하지 않았다. 퇴직 후 연락 한번 없던 녀석이 갑자기 보고 싶어 전화했을 리 없었다.

 

“표정을 보니 딱 일이 필요한 얼굴일세? 잘됐네, 마침 자네를 찾는 의뢰인이 있거든.”

 

“사건인가?”

 

유미호가 씨익 웃었다.

 

“왜 외부에 넘기는 거지?”

 

“피해자 가족의 선택이야. 자네가 퇴직했고 탐정이 됐다니까, 콕 집어서 자넬 지목하더군.”

 

“나를 왜.”

 

“불도저에 대한 소문을 들었나 보지. 끝까지 밀어붙이는 창 형사에 대해.” 

 

창은 예상했지만 태연히 말했다.

 

“경찰을 못 믿는 거겠지.”

 

“어쩌면. 사실 우리가 언제 신뢰를 준 적이나 있었나? 이미 썩어 문드러진 시민의 발인걸.”

 

유미호는 스스로 깐죽대는 걸 서슴지 않는 형사였다.

 

“무슨 사건인데.”

 

“돈 좀 될걸? 살인사건.”

 

창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을 해야만 했다. 

 

“좋아, 당장 가지.”

 

“아니, 열 시까지만 오면 돼. 그때 의뢰인이 변호사와 함께 올 거야. 그 전에 집에 가서 좀 씻지 그래? 꼴이 말이 아니야. 약이라도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좀 감춰보고.” 

 

제길, 눈치 하나는 타고난 놈이다. 

 

“옛 동료로서 충고하는데, 제대로 준비하고 와. 반장은 자네가 끼어드는 걸 탐탁지 않아 해.” 

 

공태구 반장. 창이 욕지거리를 내뱉자 유미호가 낄낄대며 이죽거렸다.

 

“그러니까, 반장 앞에서 웃는 연습이라도 하라고.” 

 

 

 

 

인왕산 둘레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스크와 황사차폐코트를 둘러쓰고 모래 안개에 짓눌린 듯 걷는 사람들. 세계가 지구연방으로 통합된 후 도시들은 저마다 자구책을 찾고 돌파구를 만들어 갔지만, 이놈의 도시는 오히려 생기를 잃고 버려지고 있었다.

 

도심으로 내려온 창은 자동운행 모드로 전환하고 시트에 몸을 눕혔다. 맥없이 앞을 주시하자니 황사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가시거리가 3미터도 되지 않는 듯했다. 창은 관자놀이를 누르며 심연 속에서 위협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차들을 지켜보았다. 모든 것이 정렬된 채 움직였고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 안에 인간미 따위는 없었다. 창의 내면처럼 막막했다. 

 

창 역시 가늠할 수 없는 현실을 헤매는 중이었다. 빈털터리였다. 실직 후 아무도 전직 불도저 형사를 쓰려 하지 않았고 실직수당은 끊긴 지 6개월이 지났다. 마지막 희망으로 개설한 탐정 사이트마저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는 내동댕이쳐진 뒤에야 자신이 얼마나 환영받지 못하는 인간인지를 깨달았다. 그 뒤에 따라붙는 자괴와 패배감. 창은 무력감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허우적대는 중이었다.

 

집은 3일 전 그대로였다. 집을 나서기 전 몇 주 동안이나 방치한 상태. 

 

창은 혼돈을 무시한 채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의 차가운 물줄기가 몸을 긴장시켰지만, 아직은 단수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쓴웃음이 새어 나왔다. 뒤늦게 온수 시스템이 가동하며 뜨거운 물줄기가 뭉친 근육을 이완시켰다. 편린들이 뒤따랐다. 이름도 모를 고급 향수 향, 가늘고 긴 목선, 하얗고 탐스러운 가슴…… 그러나 얼굴은 기억나지 않았다. 

 

히드라의 후유증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긴장이 풀리자 충동적인 하룻밤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히드라에 취한 그녀는 이제껏 창이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그를 리드했다. 이틀 전 밤의 기억에 창은 다시 발기했고 자위를 할까 했지만, 긴장을 유지하기로 했다. 

 

쏟아지는 뜨거운 물의 열기 속에서 창은 되뇌었다. 이제 정말, 일을 해야만 한다.

 

 

 

 

 

계약

 

 

도시경찰청은 아직 내자 구역에 있었다. 마천루 사이에 여전한 옛 콘크리트 구조물로 살아남은 경찰청은 전통적이기보다는 차라리 구태의연했다.

 

지구연방 정부 아래에서 도시들이 수평적으로 재편되면서,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된 시장은 네오시장 체제의 신봉자였다. 죽어가는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며 시장 자리에 오른 그가 가장 먼저 단행한 것이 옛 체제의 변형인 구조조정이었고, 시범사례는 하급 관료와 공무원들이었다. 시장의 바람에 부응하려는 도시경찰청장의 발 빠른 움직임으로 허물이 있거나 혐의만 발견돼도 최우선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선진 도시들처럼 사설수사인력을 양성해 관료적 공무경찰과 경쟁시킨다는 것이 취지였지만, 언제나 그렇듯 공권력에 자본의 물결을 끌어들이는 결과만 낳았다. 능력 있는 수사관들은 스스로 독립해 막대한 수임료를 챙겼고 남은 경찰들은 자리보전에만 급급했다. 그마저도 보전 못하고 쫓겨난 창과 같은 일선 형사들은 언저리만 맴돌 뿐이었다. 경찰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창은 수사과로 가 유미호를 만났다. 그를 따라 외부인접견실로 들어서자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유미호가 창을 소개하자 공반장은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의뢰인인 40대 여자는 노골적으로 호기심을 드러내며 창을 살폈다. 미모보다는 지적 분위기와 자신감이 묻어나는 유럽 혈통의 여자였다. 다소 창백한 낯빛으로 보아 북유럽계인 듯했다. 

 

그녀는 자신을 정 엘리자베스 선화라고 소개했다. 

 

“그냥 엘리로 불러주세요.”

 

“저스티스 창이오.”

 

엘리 곁에 선 변호사가 나서며 말했다.

 

“탐정님을 기다리면서 공반장님과 논의 중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수사를 맡길 것인지에 대해서.” 

 

창은 자신을 두고 오갔을 대화를 예상할 수 있었다. 역시나 공반장이 자신을 변호하듯 말했다. 

 

“도시경찰청은 본연의 공적 임무를 다합니다. 저희는 사건 해결을 위해 법으로 보장된 외부 수사인력 투입을 권장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피해자 가족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하지만 사건 해결을 위해 탐정으로서 전력이 없는 창 형사, 그러니까 저스티스 탐정보다는, 저희와 지속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저명한 탐정기관과의 공조를 권했던 겁니다.” 

 

그는 창을 의식하고는 강조했다.

 

“신속하고 확실한 사건 해결을 위해서 말이죠.” 

 

창은 공반장의 의도를 알았다. 자신이 직접 잘라낸 창에게 사건을 맡기는 게 껄끄러운 것이다.

 

“반장님께선 이분 전력은 고려하시지 않는군요?”

 

엘리가 말했다. 감정이 실리진 않았지만 단호했다. 공 반장이 머뭇거리자 변호사가 대신 말했다.

 

“제 의뢰인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하루빨리 사건이 해결되고 범인이 체포되길 원하지요. 저희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어디에 수사를 의뢰할지 검토했고, 물론 예상하셨겠지만, 도시경찰청보다는 외부 수사기관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11년 경찰경력 동안 가장 우수한 경찰인력 중 한 명이었던 저스티스 창 전직 형사를 선택한 겁니다. 그런데도 반장님의 권유를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이 친구는 부정 혐의가, 범죄세력의 범죄를 조작해준 전력이 있단 말입니다. 그 때문에 경찰에서도 불명예 퇴출당했고.” 

 

공반장이 항변했다. 2년 전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창은 두통을 참으며 말했다. 

 

“그건 혐의일 뿐이었죠, 그런데도 반장님은 그걸 빌미로 날 해고했고.” 

 

공반장은 기분 나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자네가 분명해, 증거가 없을 뿐이지. 네 녀석이 분명하다고!” 

 

엘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요즘 같은 시절엔, 부정한 것이 무능한 것보단 낫지요.”

 

그녀는 온화하지만 여전히 단호했다.

 

“창 탐정의 옛 문제는 거론하고 싶지 않군요. 저는 사건을 해결할 능력 있는 수사관을 원할 뿐예요.”

 

공반장은 의뢰인의 태도에 한발 물러섰다. 대신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스티스 탐정에게 수사를 맡기도록 하죠. 단, 공기칩 삽입을 조건으로! 다 레벨, 24시간 동안 말입니다.”

 

“내가 거부합니다.”

 

창이 말했다. 공기칩을 쓰겠다는 것은 공반장이 창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겠다는 뜻이었다.

 

“내 수사에 공기칩 따위는 필요 없고, 그런 걸 박아 넣지도 않을 겁니다.” 

 

“자네가 수사를 맡는다는 건 공적 업무를 수행한다는 뜻이야. 이 도시 법률상 모든 공직자는 공기칩을 켜게 되어 있어. 그걸 거부한다고? 수사를 맡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공반장이 위엄을 떨었다. 창은 지지 않고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따위 걸 24시간 동안 작동시키진 않겠단 뜻이지. 그럴 이유도 없고 말입니다.” 

 

“이유는 충분해. 첫째, 아직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이 사건은 도시경제협력부 동아시아담당 차관이 죽은 중대 사건이야.” 

 

창은 대놓고 휘파람을 불었다.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공반장을 이해했다. 피해자가 동아시아담당 차관이라면 지구연방 정부의 실세 중 하나다. 그런 인물의 사건을 맡는다는 것은 흥행카드를 쥐는 것이고, 공반장은 도시경찰청이 직접 해결하고 싶었을 터다. 하지만 의뢰인은 외부 수사인력에 맡기려고 한다. 그것도 자기 손으로 해고한 창에게. 그쯤은 창도 이미 예측한 바였다. 

 

“둘째, 사건의 중대성을 아는 도시경찰청은 전력을 다해 협조할 것이고, 경찰청 내 수사인력 역시 같은 레벨의 공기칩을 작동시킬 계획이야. 그렇다면 자네 역시 그 조치에 따라야 하지 않겠나? 아니면 빠지던가.”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자신이 놓는 덫을 차고 움직이던가, 아니면 알아서 꺼져라. 

 

창은 사건을 차버릴 생각이 없었다.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24시간 자신을 개방한다는 것은 사건과는 별개로 다른 문제에 봉착할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심상찮은 기류가 돌자, 엘리가 창을 돌아보았다.

 

“창 탐정님, 공기칩은 모든 공무자들의 업보이기도 해요. 저 역시 공기칩이 작동 중이죠. 그것에 대한 거부감은 이해하지만, 그렇지만 저는 당신이 꼭 사건을 맡아주길 바래요.” 

 

창은 그녀를 살피며 말했다.

 

“왜 나를 선택한 거요.”

 

“전 소모적인 공무경찰이나 특권의식으로 가득한 거대 탐정사무소는 탐탁지가 않아요. 제 변호사가 도시경찰청 데이터에서 당신을 추천했죠. 당신이 11년 동안 참여한 사건들 중 64퍼센트가 해결됐더군요.”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던가? 창은 엘리의 의도를 파악하며 말했다. 

 

“그 정도로 나를 찾았단 말이오?”

 

“내가 주목하는 건, 당신이 주도적으로 담당한 사건들이에요. 수사원으로 참여한 사건들과 달리 직접 담당한 강력범죄들에선 대단한 집중력을 보였더군요. 23건 중 22건을 해결했었죠? 그것이 제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예요.”

 

엘리는 창의 생각을 파악하려는 듯 물었다.

 

“혹시 사건을 맡지 못할,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창은 선택의 순간임을 알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공기칩이라는 족쇄를 차고 움직일 것인가. 거절하면 사건도, 일도 사라진다. 창은 돈이 필요했다.

 

창은 표정을 감추고 말했다.

 

“내 능력을 온전히 활용하려 한다면, 날 자유롭게 놔둬야 합니다.”

 

“하지만 공기칩은 제 능력 밖의 문제예요.”

 

“그건 내가 위험을, 개인적 리스크를 안고 움직여야 한다는 뜻인데.”

 

“거기에 대해선 충분한 보상이 있을 겁니다.”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제 의뢰인은 신속한 사건 해결을 위해 법적으로 보장된 가 등급 수임료를 지급할 용의가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는 지구연방 정부 내 고위 관료로, 불의의 사고 시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기금이 책정되어 있지요. 그 기금의 일부가 저스티스 탐정에게 지급될 겁니다. 세금과 세부항목은 무시하고 금액이 대략…….” 

 

창은 손을 들어 변호사를 막았다. 세 사람이 그를 주시했고, 대화에 끼지 않은 유미호는 표정을 보니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창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정을 조율했다. 어차피 족쇄를 차야 한다면 다른 모험을 시도해도 밑질 것 없다. 창은 자신을 주시하는 엘리에게 말했다.

 

“금액이 얼마이든, 그 두 배를 원합니다.” 

 

 

 

 

공직자에게 이미 일상이 된 공기칩 이식은 대단한 수술이 아니다. 더욱이 형사 시절 데이터가 남아있는 창은 칩을 삽입하고 계정을 다시 열어 서버와 동기화시키기만 하면 됐다. 나노칩 삽입은 그 옛날 보톡스 투약만큼이나 간단했지만, 창은 그 행위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그렇다고 너무 언짢게 생각하진 마세요.” 

 

오노가 창의 뒷덜미에 칩을 넣을 준비를 하며 말했다. 기술부 연구원인 그는 창을 꽤 따르던 일본계 젊은이다.

 

“그냥 짜증 나는 것뿐이야.”

 

창은 의료침대에 엎드리며 정정했다.

 

“뭐, 그 말이 그 말이지만.”

 

“그냥 법이잖아요, 당연히 따라야죠.” 

 

“그 엿 같은 법이 왜 이 도시에만 있느냔 말이야.”

 

“그런가요? 몰랐네요.” 

 

투입기를 쥔 오노의 손이 동요하는 게 느껴졌고, 이어 통증과 함께 짜릿한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뻗어 나갔다.

 

“어이, 조심하라고.”

 

“아, 죄송해요.”

 

오노가 투입기를 바로 잡았다. 부웅 소리와 함께 이물질이 뒤통수 어딘가로 찾아 들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명 공기칩으로 불리는 공직자공공기록칩은 신체기능 변화를 기록하는 일종의 블랙박스였다. 그것이 이식된 공직자는 맥박과 호흡 같은 신체 변화뿐 아니라 뇌파까지 모두 도시정부 서버에 기록된다. 창은 지금 스스로는 풀 수 없는 개목걸이를 차는 중이었고, 비로소 다시 공무를 맡게 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다 됐습니다.”

 

오노가 투입기를 제거하고 모니터를 조작했다.

 

“제대로 자리 잡은 것 같네요. 형사님, 아니 이젠 창 탐정님인가? 어쨌든 제가 받은 공문대로 수사기간은 30일로 설정했어요. 물론 그전에 사건이 해결되면 언제든 다시 제거할 수 있고요. 이제 네트에 접속해 동기화시키면, 이 시간부터 탐정님의 모든 신체 데이터가 정부 서버로 전송됩니다. 그럼 시작할까요?” 

 

“기다려.”

 

오노가 돌아보았다. 

 

창은 그를 외면하고 호흡을 가누었다. 그리고 집중했다. 이제부터 24시간 내내 몸 안의 블랙박스를 켜둬야 한다. 감정 변화에 따른 모든 생체 변화와 생각의 파형들이 속속들이 기록될 것이다. 그것은 뇌관의 스위치를 켜는 짓이고, 뇌관은 작은 자극만으로도 터질 수 있다. 공반장이 노리는 2년 전 사건과 자신이 맡는 사건 어느 쪽이든. 

 

이것은 게임이다. 창은 그렇게 자신을 세뇌했다. 자신을 제어하고 평형을 유지해야만 한다.

 

돌아보니, 젊은 연구원은 핵미사일 발사 버튼 앞에 선 부관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창은 얼굴에서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좋아, 시작하자고.” 

 

 

 

 

기술부에서 나오니 유미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창은 그와 함께 피해자의 집으로 향했다. 

 

“다시 수사를 맡게 된 걸 축하해.” 

 

유미호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그는 앞으로 창과 도시경찰청과의 공조를 연결할 것이다. 그러나 창은 그의 임무가 그뿐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분명 공반장으로부터 자신을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터다.

 

창은 먼저 현장재연모듈을 확인했다.

 

“당연히 설치되어 있지. 이제 공식적인 수사가 시작됐는데.” 

 

창은 끄덕였다. 피해자 발견 당시를 살펴보면 사건의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여자는 어떤 여자지?”

 

“누구, 엘리? 도시검찰청 고위직에 있는 여자야. 앞으로 자네가 수사를 주관하니 그 여자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을 거야.”

 

“남편은 도시경제협력부 차관에, 아내는 검찰 간부라.”

 

“로열패밀리란 소리지.”

 

창이 끄덕이며 덧붙였다.

 

“관료적 인간들이란 뜻이기도 하고.”

 

사건 현장은 청담 지구였다. 도시의 거주지역 대부분이 닭장 아파트로 들어찼지만 이 지역만은 고풍스러운 저택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대부분 지난 세기 졸부들에 의해 지어진 도시문화재 지정건축물이어서 저마다 개성들을 뽐내고 있었다. 

 

차 시스템 매니저가 알려준 저택은 묘목들이 담장을 대신하고 있었다. 유전자변이 관상수들이었다.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보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사각지대를 통한 침입이 가능해 보였다. 정문을 통과하니 건물 두 채 가 나타났다. 오른쪽 지상 3층, 지하 2층짜리 건물이 본채였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왼편의 규모가 작은 2층짜리 별채였다. 현대적 강화플라스틱과 유리로 마감된 것을 보니 최근에 지어진 듯했지만 전통적인 본채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창은 현장을 보기 전에 본채로 가 엘리를 만났다. 계약을 위해서였다. 변호사가 단말기 모니터에 계약내용을 띄우며 말했다.

 

“오전에 탐정님은 저희가 제시한 금액의 두 배를 요구했었죠. 법률대리를 맡은 저희 K&C법률회사는 이의를 제기했지만, 의뢰인은 당신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가급 수사비용과 피해자 진상조사기금을 초과하는 비용에 대해선, 제 의뢰인인 정 엘리자베스 선화 씨가 개인적으로 지급할 겁니다.”

 

창이 돌아보자, 엘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여기에 서명하시면 24시간 내에 계약금이 입금될 겁니다. 수사 진행상의 모든 비용은 저희가 집행하며, 사건이 해결되면 사건 종결 24시간 후 나머지가 입금됩니다. 대신 계약시한 30일이 지나도 사건을 해결 못하거나, 해결을 위한 단서를 찾지 못하거나,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제 의뢰인은 계약을 파기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계약금의 절반을 반환해야 합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요, 사건을 해결할 테니.” 

 

창은 모니터에 서명했다. 그것은 창의 진심이고 의지였다. 자신의 동기야 어찌 됐든, 창은 맡은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 

 

창은 엘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현장을 볼까요.” 

 

 

 

 

 

고전범죄

 

 

별채는 주거와 사무 복합공간이었다. 엘리는 도시경제협력부 동아시아담당 차관이란 밤낮 없는 격무에 시달리는 직책이고, 그럴 때마다 파울로가 별채를 이용했다고 했다. 

 

파울로 고 진식. 그것이 피해자의 이름이었다. 

 

2층의 침실 가구들은 피해자의 취향이 유럽풍임을 보여주었다. 본채 쪽을 향해 난 커다란 창은 스크린 모드로 전환되어 ‘이곳은 사건 현장이므로 출입을 금함’ 경고문이 떠 있었다. 

 

“먼저 당시 상황을 볼까?”

 

침실에 설치된 현장재연모듈을 확인하면서 창이 말했다.

 

유미호는 한번 깐죽거리려다, 엘리를 의식하고는 군말 없이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그가 모듈을 켜고 도시경찰청 서버에 접속해 데이터를 불러오는 동안, 창은 엘리에게 물었다. 

 

“현장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누굽니까.”

 

“저예요.”

 

그녀는 초동수사를 경험해서인지 침착했다.

 

“전 어제 아침 06시경에 돌아왔어요. 앞마당에 정원사가 잔디를 가꿀 채비를 하고 있었죠. 그는 이 집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에요.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이가 보이지 않았어요.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정원사가 자기는 05시 조금 지나서 나왔는데 아무도 못 봤다고 하더군요. 전날 밤 남편이 집에 있었던 것은 분명했고요. 일 때문에 새벽에 나갔나 생각하곤 전화를 하려는데, 그때 별채 2층 침실에 불이 켜진 것이 보였어요.” 

 

“부인께선 항상 그 시각에 들어옵니까?” 

 

“아뇨, 어제는 런던 시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런던 도시검찰국 주재로 이번 주까지 세미나가 있거든요. 저는 예정된 다른 일정 때문에, 아침에 출근하려고 일찍 돌아왔어요. 05시 1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죠.” 

 

그때 유미호가 끼어들었다.

 

“다 됐어. 시작할까?”

 

창이 끄덕이자, 유미호가 현장재연모듈을 작동시켰다. 

 

구석마다 설치된 네 개의 모듈이 각자 각도와 범위를 체크하면서 어제 아침의 상황을 홀로 그램으로 재연했다. 침대 위에 피해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바닥에도 두 개의 물건이 나타났다. 현장검증팀이 곳곳에 체크한 숫자들도 표시되었다. 초동수사 후 누군가 건드렸는지 침대가 오차를 보이며 이중으로 겹쳐 보였다. 유미호가 홀로그램 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치를 조정하자, 전체 광경이 제자리를 찾았다. 

 

유미호가 단말기를 흩어보며 보고했다. 

 

“경찰과 함께 출동한 기술부 친구들이 어제 06시 37분경 스캔한 광경이야. 1차 검시결과 사망시각은 03시 20분경. 당시 보안업체 비상벨은 울리지 않았고, 집안 내 감시카메라 역시 깨끗했어. 발견자 최초 증언에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되어 있군.” 

 

엘리가 보충하듯 말했다.

 

“확실해요. 현장을 발견하곤 곧바로 신고부터 했어요.”

 

창은 홀로그램 속 정보들을 살펴보았다. 50대 초반의 파울로는 풀어 헤쳐진 가운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가슴과 하체의 무성한 털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침대 시트와 베개는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바닥에는 장식장에서 떨어진 감사패와 아프리카산 조각품 하나가 뒹굴고 있었다. 투광 모드였던 창문은 어제 아침의 본채 주변을 보여주고 있었다. 

 

창은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보며 말했다.

 

“몸싸움이 있었던 건가?”

 

“사인은 아니지만 피해자의 가슴과 등, 오른쪽 팔꿈치에서 타박흔이 발견됐어. 아마 범인에게 걷어차이면서 장식장에 부딪힌 것 같아. 그 때문에 감사패와 장식품이 바닥에 떨어졌고.” 

 

“범인을 남자로 가정하고 있군.” 

 

유미호가 으쓱했다. 창은 카펫을 발로 문질러 보았다. 범인의 흔적이 남아있을 법했다. 

 

“바닥에서는?” 

 

“아무것도. 집안 전체가 깨끗해. 범인이 날아오지 않았다면 울타리를 넘고 감시카메라 사각지대를 통해 20미터 정원을 가로질러 왔을 텐데, 정원의 흙 하나 남아있지 않아. 흙 부스러기가 발견됐지만 그건 피해자에게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고.” 

 

“경화실리콘이로군.” 

 

“아마도. 아래층 카펫에서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발 크기가 3백50밀리였어.” 

 

경화실리콘은 오래전부터 범죄자들이 유용하는 수법이다. 범인들은 5초 안에 굳는 실리콘을 신발에 뿌려 자신들의 흔적을 감춘다. 그것은 계획범죄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아니면 용의주도한 자던가.

 

창은 엘리를 돌아보았다.

 

“남편께선 매일 밤 이곳에 머물렀나요?”

 

“일이 있을 때는요. 대개는 낮에 업무를 봤고, 밤늦게까지 일할 때면 보좌관들도 함께 머물렀어요.”

 

“그럼 남편께선 왜 새벽에 이곳에 있었던 걸까요. 그것도 저런 차림으로?” 

 

엘리는 가운이 풀어 헤쳐진 남편의 홀로그램을 보다, 말없이 창을 주시했다.

 

창은 그녀의 표정을 눈치챘다. 그러나 내색 않고 유미호를 돌아보았다. 

 

“사인은?”

 

“전기 충격에 의한 쇼크사.”

 

“스턴건?” 

 

“스틱형 전기충격기.” 

 

유미호가 단말기를 조작하자, 파울로의 홀로그램이 확대, 회전되었다. 풀어진 가운 속 심장 부위가 동그란 형태로, 새카맣게 탄 것이 보였다. 주변의 가슴털 역시 그을려 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스틱형 전기충격기는 보급형이 아니야, 시위 진압용이지. 제너럴넥슨사와 보라매사에서 시 정부에 보급하는데, 두 회사 제품이 전체 판매량의 76퍼센트를 차지해.” 

 

유미호는 참지 못하고 이죽거렸다. 

 

“그건 2만 명의 시위진압대를 1차 용의선상에 올려놓을 수 있단 뜻이지.” 

 

창은 그의 말에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러나 청계 지구에 가면 그런 것쯤은, 스틱형이든 총포형이든 손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창은 확대된 피해자를 살펴보았다. 통상적으로 허가받은 전기충격기로는 사람을 죽일 수 없다. 그러나 창은 형사 시절, 아직도 무기 소지가 불법인 이 도시에서 스턴건을 고전류로 개조해 살상하는 범죄자를 여럿 보았다. 파울로를 죽인 자 역시 같은 식으로 개조했을 것이다. 문제는 목적이다. 범인은 그저 개조된 스턴건을 소지한 악의적 강도인가, 아니면 살해 의도를 가지고 개조 스턴건을 들고 피해자의 침실로 들어온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입구 잠금장치는 깨끗했고 브라운 사의 보안센서가 달려 있었다. 유미호가 지문이 몇 개 나왔지만 모두 출입이 허가된 사람들 것이라고 했다.

 

“입구와 거실 창문, 뒤쪽에 다른 출입구가 있지만 침입의 흔적은 없었어. 사건 당시 이곳은 말 그대로 밀실이었던 셈이야.” 

 

“최근에 교체한 것 같군요.”

 

창이 보안센서를 살피자 엘리가 설명했다.

 

“10개월 전 그이가 차관으로 임명된 뒤 신형으로 바꿨어요. 업무 보안 때문에.”

 

“그럼, 평소에도 잠겨있는 겁니까?”

 

“항상요. 보안센서에 입력되고 허가된 사람들만 코드를 지정받아 출입할 수 있어요.”

 

엘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그이는 의심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도시경제협력부 차관이 된 뒤 자기 직책의 중요성을 먼저 생각했어요. 그래서 별채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죠. 낮에는 정보가 입력된 도시경제협력부 직원들만 출입했고, 집안 메이드들 중에서도 신임하는 몇 명만 출입코드를 받았어요. 그들 모두 출입가능 시간이 제한되어 있죠. 만약 출입코드가 없는 사람이 강제로, 또는 출입코드가 있더라도 자신의 출입가능 시간 외에 들어왔다면 경보가 울리고 몇 분 안에 사설 경비업체가 출동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돌아올 때까지는 조용했어요.” 

 

“남편께서 문을 열어줬을 수도 있겠죠.”

 

엘리는 그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럴 이유가 없어요. 출입코드가 없는 중요한 손님이 오지 않았다면 말이에요. 그렇지만 메이드 말로는 전날 밤에 손님은 없었다고 했어요.” 

 

“낮과 밤 모두 출입이 가능한 사람들은 누가 있습니까.”

 

“그이와 저뿐이에요.”

 

창은 자신을 쳐다보는 엘리의 시선을 눈치챘다. 그녀는 말할 때나 이야기를 들을 때,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항상 창을 직시했다.

 

창은 그것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귀족적 습관이라고 생각했다. 당당함과 자부심. 창은 엘리의 태도에서 그녀가 남편을 애도하려고 범인을 잡으려는 게 아님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창을 고용한 것이었다. 이 여자는, 남편을 사랑하기는 했을까?

 

역시나 엘리가 창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러면, 저도 용의 선상에 오르는 건가요?”

 

창은 그저 으쓱했다. 그녀는 동요하는 듯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말했다.

 

“그것이 당신의 임무이니 나를 어떻게 보아도 상관은 않겠어요. 그러나 의미 없는 일에 힘쓰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군요.”

 

“그건 내가 결정할 바요.”

 

“저는 당신에게 수사를 맡긴 의뢰인이에요. 그런 제가 범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나에겐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그것은 사실이었고, 창은 아날로그적 인간이었다.

 

“그 첫 번째가, 시체를 발견한 사람부터 의심하자는 거요.” 

 

엘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나 시선을 피하지는 않았다. 꼿꼿함을 유지했다.

 

창은 그런 그녀를 직시하며 말했다.

 

“만약 당신이 범인이라도, 수사료는 지급해야 합니다.” 

 

 

 

 

온갖 정보 데이터가 창의 서버로 쏟아져 들어왔다. 창은 그것들을 분류하고 검토했다. 

 

피해자 파울로 고 진식은 남유럽계 서울 사람으로 기록상으로는 평판이 좋았다. 강직하고 청렴한 공직자였다. 지구연방 출범 이후 서울 시티즌으로는 최초로, 상해 시티 후보와의 경합에서 이기고 고위관료로 발탁됐기에 임명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였다. 

 

현장을 보고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탐문한 창은 단순강도의 범행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본채에는 침입의 흔적이 아예 없었던 것으로 보아 범인은 처음부터 별채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별채에도 고가의 물건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래층 사무공간의 주요 문서와 데이터는 개인 금고에서 안전했고 도시경제협력부와 연결된 컴퓨터는 해킹의 흔적이 없었다. 

 

죽기 전에 파울로는 동아시아-유럽횡단 자기부상열차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지구연방 정부 차원의 장기적 국책사업이었고, 동아시아 도시마다 기점 도시로 유치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차관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 때문에 언론은 피해자의 죽음을 도시 간의 정치적 음모로 몰아갔다.

 

창은 애초 음모 따위는 무시했지만, 언론과 도시경찰청의 압력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해서 유미호에게 그쪽 부분을 할당했다. 피해자가 도시경제협력부 차관이 된 이후의 행보를 파보도록 지시했다.

 

그것을 유미호에게 맡긴 것은, 그쪽에서는 얻을 게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파울로의 죽음이 직책과 관련됐다면, 범인이 이런 식으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피해자가 지구연방 정부의 ‘도시경제협력부 동아시아담당 차관’이라서 죽었다면, 그는 대놓고 암살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또는 호텔 식당에서 디저트를 먹는 중에 심장마비를 일으켰을 것이다. 

 

창이 보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인 살인이었다. 

 

기술과 네트가 도시를 점령한 시절에도 창은 옛 방식을 고수하는 형사였고, 이번에도 창은 피해자의 아내를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최초 발견자를 의심하라, 가장 의심할 수 없는 사람부터 의심하라. 그것이 창의 방식이었다. 

 

유미호는 그런 창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보기에 엘리는 알리바이가 확실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말이 안 되잖아. 그 여자가 범인이라면 거금을 들여 외부 수사인력을 끌어들이진 않았을 거라고. 어영부영 시간만 때우는 도시경찰청에 맡기는 것이 더 안전하지.”

 

그의 논리는 맞았다. 엘리가 범인이라면, 그녀가 자신의 범행을 감추려 했다면, 도시경찰청에 공적 수사를 맡기는 것이 더 안전했을 것이다. 그러면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궁으로 빠져들었을 테니까. 

 

창은 그런 논리에 갇히지 않았다. 사건 현장에서 본 엘리의 태도를 의심의 근거로 삼았다. 그녀는 내내 침착함을 유지했고, 남편의 죽음 앞에서도 도도하리만치 고요했다. 그렇다고 범인을 잡으려는 의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창의 수사에 협조적이었다. 

 

그러나 창이 별채에서 풀어 헤쳐진 가운을 입고 죽은 남편에 관해 물었을 때, 그녀는 동요하며 대답을 피했다. 거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분명 의심스러운 부분이었다.

 

창은 직접 엘리의 행적을 조사했다. 런던에서 도시검찰 세미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매년 열리는 세미나는 1년 전에 일정이 잡혀있었다. 그녀는 사흘 동안 세미나에 참석했다. 사건이 벌어진 시각에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알리바이가 확실했고, 오히려 그 때문에 의심이 갔다. 너무나 명확한 그림. 창은 요즘 같은 시절에 알리바이를 사거나 조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의도다. 엘리가 범인이라면, 그녀는 왜 남편을 죽였는가? 

 

그녀는 온화한 가운데 격식이 몸에 밴 전형적인 상류층 여성이었다. 지구연방 시대 이전 북유럽 귀족 집안 출신인 그녀는 자존감 강한 여인이었다. 엘리트 교육을 받고 일선 검찰의 요직을 두루 거친 그녀는 현재 도시검찰청 대외홍보부를 총괄하고 있었다. 그 직위는 그녀가 정치적 미래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도시경제협력부 차관인 남편은 그녀의 앞날에 여러모로 지원군이 될 것이다. 그런 그녀가 남편의 죽음으로 얻는 것은 무엇일까? 그 부분에서 막혀버렸다.

 

대외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평판이 좋았고, 집안 메이드들 역시 그들이 모범적인 부부였음을 증언했다. 그러나 창은 경험으로 그런 소문과 증언들을 믿지 않았다.

 

창은 엘리의 공직자공공기록칩 열람을 신청했다. 검찰 간부로서 그녀 역시 공기칩을 삽입하고 있었기에, 남편의 주검을 발견할 당시 그녀의 심리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제한과 조건이 붙긴 했지만, 창은 자신의 역할을 밀어붙여 그녀의 공기칩 열람권을 얻어냈다. 그러나 엘리는 가 등급이었다. 현장을 발견할 당시 그녀의 공기칩은 꺼져있었다. 

 

창은 공기칩이 무용지물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공직자공공기록칩이 최초로 도입된 것은 세기가 바뀌어도 여전한 공직자들의 부정부패 근절이 목적이었다. 도입 초기에 공기칩은 운전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여성 정치인을 잡아내기도 했다. 그녀가 오후 시간 취침 모드로 가려진 공무용 차 안에 머물던 시간에, 흔히 오르가슴이라 부르는, 그것과 동일한 심박과 뇌파를 보였던 것이다. 

 

공기칩 도입을 발의한 정치인들은 그 사례를 들어 공직자 기강을 잡기 위한 합법적 조치임을 강조했지만, 창과 같은 말단 공무자들은 그것이 허울일 뿐임을 일찌감치 알았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공직자 등급에 따라 공기칩의 작동 시간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가 레벨 고위공직자의 경우 그 시간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여전한 커넥션은 공기칩 작동 시간을 피해 이루어졌고, 당연히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감소 효과는 미미했다. 언제나 그렇듯 그것에 의해 강제로 기록되는 것은 로비를 받을 위치도 아니고 의지도 없는 다 등급의 말단 공무자들이었다. 

 

창은 이제까지 나온 데이터만으로 엘리를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는 오류는 범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서 개인적인 냄새가 난다면 그녀가 연관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피해자가 밀실 같은 별채에서 죽었고 그의 아내에게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음을 확인한 창은, 이것이 아주 고전적인 범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수사가 진행될수록 부담감이 창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공기칩 때문이었다. 

 

자신이 느끼고 동요하고 긴장하는 감정들이 공식적으로 기록되고 있는 상황이 그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공반장은 아직 2년 전 사건에 미련을 갖는 것 같던데?”

 

유미호가 귀띔해주었다. 창 역시 공반장이 자신의 공기칩 데이터를 모니터하리라는 것쯤은 예상했다. 그는 창의 블랙박스에 기록된 뇌파와 감정들을 체크 중일 터였고, 파울로 사건과는 다른 것을 찾아내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창이 매 순간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창은 자신의 심리상태를 공허하게 부유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직감과 본능에만 의지했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만 몰두했고,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 때 몇 가지 단서가 나타났다. 

 

먼저 파울로의 체내에서 디에틸 프탈레이트(DEP)가 검출되었다. 카드뮴과 같은 독성 화학물질이었지만, 극히 미량이기에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는 않았다. 반면 통신과 보안센서 기록은 달랐다. 파울로의 전화에서 삭제된 메시지가 하나 있었는데, 그 시각이 03시 24분이었다. 사망시각이 03시 20분이니 범인이 메시지를 지웠다는 뜻이다. 보안업체에서 제출받은 기록에는 그날 새벽 별채의 보안센서가 해제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안코드를 입력한 사람은 파울로 본인이었고, 02시 37분에 보안코드 입력 후 별채로 들어가면서 센서를 해제해 놓은 것이었다. 

 

창은 메시지 삭제와 보안센서 기록이 관계가 있다고 보았다. 만약 파울로가 누군가의 메시지를 받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별채로 들어간 거라면? 그러면서 보안센서를 해제해 놓은 것이라면? 그러나 가설에는 의문이 따른다. 그날 새벽에 손님이 있었다면 파울로는 왜 보안 센서를 해제까지 해놓은 것일까, 그저 자신이 문을 열어주면 될 터인데.

 

또 다른 가설. 파울로가 심야의 손님을 집안 메이드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면? 그는 02시 37분경 보안을 해제해 범인일지 모르는(그리고 사적인 관계임이 분명한) 손님이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다.

 

심야의 손님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지만, 창에게 다른 문제를 안겨주었다. 엘리 외에 제3의 인물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직 의심스러운 인물은 나타나지 않았고, 바로 그 시점에 유미호가 용의자를 가져왔다. 

 

 

 

 

“이 정도면 용의 선상에 올려도 될 것 같은데?” 

 

그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단서를 물었다는 사실에 사뭇 상기되어 있었다.

 

“지앙 사사코 세연이라는 로비스트야.”

 

“로비스트?”

 

“그래, 그 바닥에선 제법 유명하더라고. 다국적기업들과 연방정부 사이에 다리를 놓는 미모의 여성 로비스트.”

 

유미호가 여자의 데이터를 모니터에 띄웠다. 창은 그것들을 살펴보았다. 

 

“이 여자가 의심스러운 이유는?”

 

“옛날식으로 발품을 좀 팔았지. 도시경제협력부 동아시아담당 부서를 탐문했더니, 파울로 차관이 부임한 뒤 그 동네에 이 여자 이름이 오르내리더라고. 당연히 신임 차관과의 염문설이 돌았고.” 

 

“근거는?” 

 

“두 사람 관계를 여기저기 찔러봤는데, 정황은 있지만 소문만 무성하고 나온 게 없었어. 공식적으로는 파울로가 부임 초기에, 공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인사를 나눈 게 다였어.” 

 

“표정을 보니 다른 만남을 포착했군.”

 

“그렇지, 딱 한 번의 만남이 이 유미호의 레이더에 걸렸지.”

 

유미호가 자랑스럽게 이죽거렸다.

 

“작년 10월 13일 오후에, 두 사람이 스타더스트 호텔에 체크인했어. 물론 각자의 용무로 9층과 11층에.” 

 

“사람들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였군.” 

 

“그렇지. 그날 이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났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연방정부 정책사업 하나가 뉴앤테크 쪽에 수주됐어. 입찰 당시 수주를 딸 것으로 예상됐던 거대 다국적기업을 제치고서 말이야.”

 

“당연히 이 여자는 뉴앤테크 쪽 로비스트였을 것이고?”

 

“빙고.” 

 

창은 유미호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 시간을 준 뒤에 물었다. 

 

“이 여자가 파울로를 죽일 이유는?” <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