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즈데이 레포트

  • 장르: SF, 추리/스릴러 | 태그: #안전예방국
  • 분량: 300매
  • 소개: 수풀 속에서 한 무더기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 시체들은 바로 북한 난민들로 구성된 테러 조직의 일원들. 안전예방국 요원 김평원은 살인 사건을 조사하던 도중 핵폭탄과 테러 조직와 관... 더보기

둠즈데이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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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산책 중에 수풀 속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시체를 발견한 남자는 기겁하고 바로 경찰에 연락했다.

 

곧바로 지역 경찰이 출동해서 시체를 확보했다.

 

현장은 폐쇄되었고 도로가 통제되었다. 도로에 출입 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테이프가 붙었다.

 

경찰은 주변을 수색했다. 그 결과 근처에서 보란 듯이 놓여있는 시체 몇 구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시체들은 수풀에 버려져 있었다.

 

조금 늦게 과학수사대가 도착했다.

 

과학수사대 대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시체들의 사진을 찍었다.

 

곧 과학수사대는 시체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 시체들은 하나 같이 머리 뒤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일부러 안면을 훼손한 흔적은 없었다.

 

둘째, 그들이 입은 낡은 옷자락은 분명히 북한의 구식 군용 코트였다.

 

셋째, 총알이 관통하며 피와 살점이 구멍 주변에 흩어졌고 이미 부화한 구더기와 날벌레들이 우글거렸다. 죽은지 시간이 한참 지났다는 뜻이다. 하루나 이틀.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주변에 시체가 부패하는 냄새가 흘러갔다. 피가 주변 현장에 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시체는 다른 장소에서 살해된 다음에 옮겨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누구라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북한은 국가 붕괴 이전부터 범죄자를 총살 처형하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강철의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해체되고 중국이 개방될 때도 북한은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한참 걸렸다.

 

그런 관습적인 면모가 <북한 독립 운동>으로 이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경찰에서는 이것을 단순한 살인 사건으로 취급할 수 없었다. 그건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경찰 상층부는 고심 끝에 사건을 안전예방국으로 이관하기로 결정했다. 일부에서 반발이 있었지만 묵살되었다.

 

안전예방국과 경찰의 관계는 미묘했다. 같은 정부기관인데 관할 업무가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경찰 쪽에선 자기네 업무인데 안전예방국이 거들먹거리면서 가져간다고 싫어했고 안전예방국 측에선 그게 우리 일인데 어쩌라는 거냐는 태도를 유지했다. 두 기관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했다.

 

한 시간 후에 현장에 안전예방국 요원들이 나타났다.

 

평원은 자동차에서 내렸다. 그에게 경찰들이 노려보는 시선이 쏟아졌다. 평원은 시선을 받아내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관계는 한쪽이 없어질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듯 했다.

 

평원은 경찰 쪽에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김 경위님. 오늘은 어쩐 일로 현장까지 나오셨어요?”

 

“연락 받았잖아요. 뭘 다 알면서 물어요.”

 

김 경위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헛기침을 했다. 친한 척하지 말라는 뜻이다. 평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예에, 협조 잘 부탁드립니다. 과수대 분들은 어디 계시나.”

 

뒤이어 차에서 내린 요원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현장을 지키던 경찰들이 투덜대며 옆으로 물러났다.

 

평원은 과학수사대 대원들과 인사를 나눴다. 사실 과학수사대도 경찰이라 안전예방국을 그닥 내켜하진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업무상 협력은 해야 하니까 할 수 없이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과학수사대는 안전예방국 요원들과 현장에서 얻은 자료를 공유했다.

 

평원은 부하들과 함께 현장을 둘러보았다. 야산에 수풀. 딱 각이 나온다.

 

북한 붕괴 이후에 여러 조직이 북한 재건을 주장했지만 그중에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무력 투쟁을 주장하는 곳은 하나 뿐이었다. <북한 독립 운동>이었다.

 

<북한 독립 운동>은 전투적 독립 운동을 주장하며 흡사 군대와 같은 조직 체계를 구성, 정부에 대항해왔다. 실제로 그 구성원 일부는 군대 출신이었다. <북한 독립 운동>의 구성원들은 항상 요주의 인물로 취급되어 방첩기관으로부터 엄격하게 감시되고 있었다. 방첩기관에는 그 구성원의 데이터베이스가 구성되어 있었다.

 

과학수사대는 바디백을 열어 시체를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뜻밖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총알이 뒤통수를 통해 머리를 뚫고 나가면서 얼굴이 박살났다. 그걸 보면서 얼굴 맞추기를 하는건 고역이었다. 요원들은 시신의 얼굴과 개인 단말기의 사진을 대조 비교하면서 투덜거렸다.

 

 

그때 뒤늦게 사건 현장에 자동차 한 대가 도착했다. 운전석에서 한 중년 남자가 내렸다. 남자는 선글라스를 꼈고 목에 공무원 ID카드를 달았다. 그는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입에 담배를 물었다.

 

평원은 뒤늦게 그를 발견하고 하던 일을 중단했다.

 

“과장님 오셨습니까?”

 

정 과장은 자동차 문에 기댔다.

 

“어떻게 됐냐?”

 

“80프로 정도 봤습니다.”

 

“어때?”

 

평원은 경찰 쪽을 슬며시 살폈다.

 

“죽은 사람들은 전부 온건파 인사들입니다. <북한 독립 운동> 내에서 숙청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경찰 쪽에서도 이미 대충 확인했을 겁니다. 거진 다 우리 자료랑 일치합니다. 이 자식들 알면서 우리 부른 거에요.”

 

평원은 정 과장에게 처형자 명단을 넘겼다.

 

관계자거나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알아볼 수 있는 이름들이었다.

 

정 과장은 명단을 읽더니 얼굴을 쓸어내렸다.

 

“염병.”

 

사망자들은 <북한 독립 운동> 내에서 온건파 인사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물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매우 노골적으로.

 

“어떻게 죽은 거 같냐?”

 

“일단 시체를 옮겨놓긴 했지만 흔적으로 보면 군대식 처형을 한 겁니다. 일렬로 세워놓고, 뒤에서 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간격이 균일한 거죠.”

 

“씨발 새끼들. 아직도 지네 세상인줄 아나.”

 

정 과장의 언사가 과격해졌다.

 

“다른건?”

 

평원은 뒤를 흘깃 돌아보았다. 과학수사대가 철수 중이었다.

 

“과학수사대에서 현장을 다 뒤져놓긴 했는데 그걸론 충분하지 않아요. 대가리에 박힌 총알 밖에 없습니다. 그거는 국과수에서 가져갈 거고요. 지문이라도 찾으면 알려주겠죠.”

 

“젠장. 이거 눈치 깐거 아니냐?”

 

“설마요.”

 

“설마가 맞을 수도 있어. 왜 하필 보란 듯이 시체를 갖다놨겠냐? 조용히 처리해도 되는데. 그러면 우리는 왜 이 새끼들이 안 보이나 당황하고 있다가 한참 후에 상황 파악했을 거다. 이거 우리한테 경고하는걸 수도 있어. 깝치지 말라고.”

 

평원은 입을 다물었다. 정 과장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참 요원이었다. 현장에서 단련된 그의 감이 무언가를 예견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안전예방국은 비밀리에 <북한 독립 운동>이 온건파 성향을 띄도록 통제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래야 협상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정부는 북한 독립 운동이 과격해져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죽은 이들은 불행히도 전부 온건파 성향의 인물들이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들을 제거했음이 분명했다. 그것은 여태까지 안전예방국이 공들인 작전이 무산되었음을 의미했다.

 

어쩌면 강경파에서 안전예방국의 개입을 확신하고 처형을 계획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말단부에선 변화를 사전에 감지하지 못했을까?

 

“최근 내부에 변화 조짐이 없었나?”

 

“별다른 보고는 없었습니다.”

 

“별 일이 없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

 

정 과장이 화를 냈다.

 

“대체 어떤 새끼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렸는지 알아봐. 알아내는거 있으면 바로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정 과장은 차를 타고 돌아갔다.

 

평원은 혼자 생각에 잠겼다.

 

시체들.

 

이건 전쟁을 알리는 시작인가?

 

아니면 한 사건의 종결인가?

 

조짐이 좋지 않았다.

 

—————

 

안전예방국은 처형을 일련의 사전 경고로 받아들였다. 경고를 감지한 이상 말단의 촉수들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원은 본부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정보원과 연락을 잡았다.

 

정보 수집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평원은 가장 고전적인 인간 관계를 애용했다.

 

평원의 정보원은 북한 독립 운동의 말단 조직원이었다. 몇 년 전에 안전예방국에 체포된 뒤로 극적인 전향 과정을 거쳐서 바퀴벌레처럼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정보원은 평원과 흔쾌히 약속을 잡았다. 문제가 있다면 약속 장소였다. 정보원은 슬럼에서 만나길 희망했다.

 

북한 붕괴 이전에나 이후에나 한국은 난민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게다가 사회적 분위기도 적대적이었다.

 

적대적 분위기에서 만들어진 불가능한 정책은 난민을 수용하는데 실패했고 그 결과 도시 여기저기에 불법 건축물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런 곳이 바로 슬럼이었다.

 

슬럼에 들어가는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그곳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위험한 장소였다.

 

하지만 슬프게도 평원은 그러라고 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평원은 불만을 내색하지 않고 슬럼으로 들어갔다.

 

슬럼의 허름한 건물들은 관리를 받지 못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곳을 드나든다.

 

골목 바닥에는 이상한 냄새가 올라왔고 담벼락에는 수상해보이는 사람들이 늘어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도 평원에게 대놓고 수상하다는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평원은 그들에게 신경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들 중에 정말 불법 폭력 조직이나 테러리스트 가담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은 먹고 살 길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젠장, 막말로 뒤에 다가와서 머리에 총을 쏴대지만 않으면 충분했다. 어느 누가 언제 강도로 돌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평원은 약속 장소로 잡은 술집 앞으로 갔다.

 

술집 바깥에는 담배를 피우러 나온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입구부터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평원은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 주변은 어둑했다.

 

술집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어두운 느낌이 도는 공간이었다. 불빛들 속에서 탁자며 의자가 이상하게 왜곡되어 보였다. 인테리어 배치와 조명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이 공간은 정말 내키지 않았다. 아무도 멍하니 있다가 뒤통수에 총을 맞고 싶지 않은 법이다.

 

평원은 바에 가서 앉았다. 바 천장의 스피커에서 주위 소음만큼이나 시끄러운 음악이 나왔다. 바텐더가 다가왔다.

 

“혼자입니까?”

 

“아뇨. 일행이 올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텐더는 담배 재떨이를 내놓았다.

 

“담배 안 피웁니다.”

 

“아, 그래요?”

 

바텐더가 재떨이를 치웠다.

 

“뭘 드릴까요?”

 

“맥주 줘요.”

 

“맥주?”

 

바텐더는 곧바로 맥주 병따개를 따서 내놓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맥주를 따라마실 잔도 주지 않았다. 아주 불친절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이런 일이 일상이었다. 오히려 친절했다면 평원은 바텐더를 의심했을 것이다.

 

평원은 맥주에 손도 대지 않고 기다렸다.  맥주 거품이 보글거리다가 가라앉았다.

 

한참 후에 한 남자가 술집에 들어왔다.

 

남자는 입구에서부터 주위를 둘러보더니 평원의 옆에 다가와서 앉았다. 남자의 옷차림은 막노동자처럼 허름했고 쉰내를 풍겼다. 키는 아주 작달막했고 얼굴은 컸다. 누가 보면 그냥 거렁뱅이나 부랑자로 착각할만한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 <북한 독립 운동>의 일원이며 평원의 정보원 황상훈이었다. 그 모습은 그 자체로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위장인 셈이었다. 경찰들도 의심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오랜만이야.”

 

옆을 돌아보지 않은 채로 평원이 말했다. 남자가 옆에 앉았다. 의자가 마루를 밀며 드르륵 긁는 소리가 났다.

 

“맥주인가? 사치스럽기도 하군.”

 

“맥주 한 병에 무슨 사치야?”

 

“그만큼 내 주머니 사정이 안 좋다는 뜻이지. 이봐. 나도 한 병 줘.”

 

“누가 사는데?”

 

“네가 사야지.”

 

바텐더가 남자에게 맥주를 갖다 주었다. 남자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더럽게 맛없군. 남조선 맥주는 왜 항상 이 모양인가?”

 

“불평할 거면 그만 마셔.”

 

“그럴 순 없지.”

 

황상훈은 병나발을 불었다. 어느새 병 안에 들어있던 맥주가 절반이나 사라지고 없었다.

 

평원이 물었다.

 

“요즘 어때?”

 

“별로 좋지 않아.”

 

“분위기가 안 좋아?”

 

“많이 안 좋지.”

 

“자리를 옮길까?”

 

평원은 맥주병을 들었다.

 

그들은 사람이 없는 구석진 자리로 옮겼다.

 

“요즘 통 못 봤지.”

 

“일이 잘 되야 말이지.”

 

황상훈의 더러운 얼굴 속에서 눈이 빛났다.

 

“그래서, 무슨 일로 부른 거야? 맥주나 한 잔 사주겠다고 부른건 아닐 테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겠어.”

 

평원은 품에서 사진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 사진은 최근에 시체로 발견된 온건파 인사들을 촬영한 사진이었다. 황상훈은 사진을 돌려보며 표정을 찌푸렸다.

 

“입맛 떨어지게 하는군.”

 

한 남자가 머리 절반이 사라진 채로 쓰러져 있는건 보기 좋은 꼴이 아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한 화질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황상훈은 개의치않고 다시 맥주를 꼴깍꼴깍 마셨다.

 

평원은 탁자를 두드려서 주의를 환기시켰다.

 

“딴소리하지 말고, 젠장. 지금 네가 마시고 있는 맥주 누구 돈으로 마시고 있는데?”

 

“왜 그렇게 초조해? 위에서 쪼아대나 보지?”

 

황상훈은 씩 웃자 누런 이가 드러났다.

 

이번에 일어난 사건은 당연히 비상이 걸리고도 남을 일이었다. 무장 투쟁을 주도하는 강경파가 득세하는건 정권에 위험이 간다. 단순 폭력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 파장이 일어나는 문제였다.

 

평원이 알기로는 한국이라는 연못에는 정치라는 이름이 붙은 작은 돛단배가 하나 있는데 하루라도 안정적인 날이 없었다. 언론에 따르면 한국은 항상 정치적 위기 상태였다.

 

정치인들이 보기에는 이번 일은 심상치 않은 징조의 시작이었고, 징조는 나쁜 일이기에 징조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일이다. 평원은 누군가 책임감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평원이 노려보자 황상훈은 손사래치며 사진을 가져갔다.

 

“알았어, 알았다구. 어디 사진 좀 볼까…. 이건 이임성, 이건 최인혁, 이건 좀 알아보기 힘든데. 김태욱 대좌 아닌가?”

 

“알아보겠어?”

 

“죄다 머리에 빵구가 났는데 알아보겠나.”

 

이 새끼가 장난하나.

 

평원은 순간 울컥했지만 화를 가라앉혔다.

 

“이 사람들에게 무슨 용무인데?”

 

“정보가 필요해.”

 

“엥? 고위 인물들에 대해선 나 같은 말단보다 그쪽 보안부가 더 잘 알지 않나?”

 

“우리가 감지 못한 움직임이 있다.”

 

“그것 참 기가 막히는 소리군.”

 

평원은 사진을 들어올렸다.

 

“이 사람들이 언제 사라졌지?”

 

“그건 나도 몰라.”

 

“아닐 텐데. 알잖아.”

 

“정말 몰라.”

 

“아직도 세상을 당이 지배하는 줄 알아? 눈치 볼 것 없어.”

 

그러자 황상훈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네 사회에서는 숙청이든 실종이든 무슨 일이 일어나도 모르는 거라네, 이 사람아. 이건 아주 비밀리에 진행된 거야. 정말로 나는 아는게 없어. 솔직히 이 사람들은 나 같은건 얼굴 보기도 까마득한 고위급 간부들이라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나같은게 알겠나?”

 

“그럼 이 사람들이 왜 죽은 거야? 운동 조직 내부에서 주도권을 두고 계파 투쟁 중인 건가, 아니면 이 모든 일이 다른 데로 불똥이 튀려고 하는 걸까?”

 

“그건 확신하기 힘든걸. 원래 정치 싸움이라는게 그런거잖나.”

 

평원은 기가 막혔다.

 

“정치에서 졌다고 해서 사람을 마구 죽이진 않아.”

 

“그건 자네 기준이고 우리 기준은 조금 다르지. 뭐, 나 같은 말단은 이야기가 다르지만서도.”

 

“아는 거나 말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황상훈은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더니 금방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거렸다. 주점에서 틀어놓은 음악 덕분에 다행히도 목소리는 충분히 묻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건파들의 협상론이 힘을 얻으면서 강경파는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네. 내부 과격파들이 외치는 혁명적 투쟁은 한물간 소리 같았지. 하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구.”

 

“왜? 온건파들이 힘을 잃을 이유가 뭐가 있는데? 저번 협상은 잘 되어가고 있다고 했잖아?”

 

“가만히 있을 인간들이 아니잖아. 반격하기 시작한 거지. 하필이면 조직의 자금 유통을 맡고 있던 상층부의 온건파 인사가 말썽을 일으켰어. 혁명 자금 일부가 행방을 알 수 없다네. 아무도 돈을 얼마나 훔쳐썼는지 알 수 없다고 하더군. 그게 빌미가 되어서 강경파 주도로 숙청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내가 보기엔 여기 얽힌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그거 큰일이군.”

 

“조직 내의 보안대 기세가 아주 흉흉해. 잘못 트집 잡히기라도 했다간 어디로 끌려가서 돌아오질 못한다네.”

 

“누가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데?”

 

“말할 수 없어.”

 

평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지금까지 강경 투쟁을 외치고 있는 놈이면 얼마나 대가리가 굳었는지 알만하지 않나? 무슨 짓이든 저지를 거야. 난 생각도 하기 싫어.”

 

“만약 강경파가 득세하면, 무슨 일이든 네 생각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거야. 흔들리는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강경파가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어. 관심과 흐름을 바깥으로 돌리는 거겠지. 안 그래? 됐으니까. 알려줘.”

 

“끄응.”

 

황상훈은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정보원은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는 속삭였다.

 

“지금 숙청을 이끌고 있는 놈은 강용국이라는 놈이야.”

 

“처음 듣는 이름인데.”

 

평원은 그 이름을 외웠다. 황상훈은 맞장구쳤다.

 

“그렇겠지. 최근에 아래에서 끌어올린 녀석이니까.”

 

“왜?”

 

“왜겠어? 녀석은 상부의 비호를 받아서 조직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 상부는 총알받이를 내세워서 온건파의 원망을 대신 받겠다는 거지. 여차하면 잘라내고. 마음에 안 들던 온건파를 제거하는데 손 안 대고 코푸는 격이지.”

 

“최근 등장한 신인이라면 아직 조직 내에서 입지가 부족하겠군.”

 

“바로 그거야. 하지만 상부의 의향이 없다면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돌아갈 수 있겠나? 하지만 그렇다고 쳐도 그 놈도 아주 야심이 넘치는 놈이야.”

 

“어디 출신이지?”

 

“듣기로는 김일성 종합 대학 출신이라던데. 그런데 뜬금없이 군 경력이 있어. 함흥에서 근무했다더군. 원래 대학생은 군대 잘 안 가잖나. 군대는 하층 계급이나 가는 거라고.”

 

“간부 자식이면 잃어버린게 많겠군. 되찾고 싶을 테고.”

 

“부적응자지. 한물간.”

 

반대 노선 인물이라 그런지 정보원의 평가는 신랄했다.

 

“초보자는 언제나 자기 분수를 몰라서 정도가 지나친 일을 벌이기 마련이지. 거기에 정치적 신념까지 더하면 더 무섭고.”

 

“맞아.”

 

“그 강용국이라는 인간, 사진은 있나?”

 

“그쪽 보안부에 물어봐. 목록에 있을 지도 모르잖아. 누가 아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고.”

 

“그건 그래. 알아봐야겠군. 고마워.”

 

황상훈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앉아있었다.

 

평원은 어리둥절하다가 황상훈은 뭘 원하는지 알아챘다. 돈 달라고 하는 거지. 그들은 그런 관계였다. 신념이 있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이 없으면 굶어죽기 십상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뜻이 맞아 떨어졌다.

 

평원은 미리 준비해둔 봉투를 꺼내서 내밀었다. 봉투의 두께를 보고 황상훈은 실망한 듯 보였다. 하지만 평원으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황상훈은 불평했다.

 

“좀 더 신경써주면 안 되나?”

 

“불황이잖아. 양해해줘.”

 

“염병. 이거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엔 더 많이 준비해.”

 

“이제 자본주의자가 다 됐군. 상부에 건의는 해볼게.”

 

황상훈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봉투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먼저 나갈 테니 10분이나 20분 뒤에 나와. 그리고 말인데 당분간은 연락하지 말구. 너무 위험하니까.”

 

“마음대로 하셔.”

 

평원은 비로소 맥주를 입에 갖다댔다.

 

황상훈은 그 모습을 흘겨보더니 자리를 떠났다.

 

—————

 

평원은 사무실로 돌아가서 프로그램을 켰다.

 

그것은 여러 정보기관이 함께 공유하는 거대한 인명록이었다. 반정부 인사, 요주의 인물들, 외국인 용의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평원은 강용국을 찾으면서 뭔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기대를 배신했다.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동명이인도 없었다.

 

처음엔 프로그램 오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엔 거대한 공백 뿐이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 인물이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없을 만큼 가치가 없거나, 아니면 누군가 정보 수집 활동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약 자료가 없는게 게으름 때문이라면 평원은 그게 누구든 간에 찾아내서 엉덩이를 걷어차줄 용의가 있었다.

 

어쩌면 다른 정보 부서에서 강용국에 대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을 뿐이다. 평원은 제발 그러기를 바라면서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연락을 돌렸다.

 

한참 기다림의 시간 끝에 답장이 왔다.

 

하지만 바닥까지 긁어모은 듯한 자료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강용국. 남성. 나이 불명.

 

김일성 종합 대학 출신. 정치학과 졸업.

 

조선 노동당 간부의 자제.

 

함흥에서 하급 군관으로 근무.

 

현재 <북한 독립 운동>에서 활동중.

 

 

 

 

프로필이랍시고 적어놓은게 사진도 없고 달랑 텍스트 몇 줄이었다. 그나마도 정보끼리 겹치는 것도 많았다. 정말 있으나 마나한 정보 뿐이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북한 붕괴 당시에 북한의 인적 자원 목록은 혼란에 휘말려서 소실되었고 남은건 쓰레기 뿐이었다. 각국의 정보 기관들은 잿더미 속에서 제대로 된 것을 건져내지 못했다. 그리고는 금방 거기에 관심을 잃어버리고는 그곳을 떠났다.

 

이렇게 자료가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최근까지 강용국이라는 인물이 남한 정보 기관에게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국정원이고 경찰이고 다들 업무에서 손을 놨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젠장. 누가 검열이라도 한 거 아냐? 누가 전부 없애 버린 것 같잖아.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평원은 생각에 잠겼다.

 

서면으로만 마주한 강용국이라는 사람은 희미한 그림자 같은 사람이었다. 실체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조직 내에서 지도부로 끌어올려지기 전에는 강용국은 이름이 없었다. 남한에 내려와서 정착한 것도 아니었다. 이름을 날릴 만한 일을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무명 인사가 어느날 갑자기 조직의 주요 인사가 되는 것 정도는 가끔씩 일어나는 일이다.

 

그가 진짜로 하찮은 인물이었다면 아래에서 위로 끌어올렸을 리가 없다. 최소한 어디선가 두각을 나타내는 일을 했다는 건데,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을 시계열에 따라 맞춰보아도 딱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아마 누가 죽은 거겠지. 위에 자리가 비면 아래에서 사람을 끌어올려서 채우는게 순리니까.

 

무기 공급책이거나 보안 담당자였을지도 모른다. 자금 세탁 담당자였을까? 분명 어떤 재능이나 자질이 있으니까 두각을 드러낸 걸 텐데.

 

당의 엘리트라면 해커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너무 어려서 무언가 하기 전에 북한이 붕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거다.

 

이름 검색으로 정보를 찾을 수 없다면 간접적으로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이럴 때는 키워드로 찾아야 한다. 키워드는 언제나 그 안에 압축된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평원은 강용국이 군관 생활을 했던 함흥부터 찾았다.

 

함흥에 뭐가 있더라? 평원은 함흥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요원들이 그랬다. 아무리 안전예방국이 한반도 북부를 관할로 한다고 해도 들어가는건 대부분 작전 요원들이다. 일반 수사 요원은 출입 불가 구역이었다.

 

알고 있는건 함흥 차사라는 일화 뿐인데, 하지만 그 이야기는 수백 년 전 일이고 지금 함흥은 완전히 달라졌다.

 

평원은 함흥에서 근무했던 사람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강용국과 함께 군 생활을 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사람을 어디서 찾느냐는 건데.

 

평원은 다시 자료의 바다 속에 파묻혔다. 가는 모래를 체에 걸러내는 기분이 들었다. 체에 모래가 남긴 하겠지만 그게 얼마나 쓸만한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수십 만 명이 등록된 인명록에서 강용국을 아는 사람 몇 명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왜 통일부에서는 생체 정보를 수집할 생각을 못했던 걸까?

 

당연하다. 그럴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당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보 기관의 눈 앞에 물방울을 약간 적신 다음에, 관심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등록된 자료도 뒤죽박죽이거나 잘못 기입된 경우도 많았다. 그래도 정보 기관은 무관심했다.

 

한참 후에 평원은 머리를 쥐어 뜯으며 강용국을 알고 있는 몇 사람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찾는다고 일이 끝나는게 아니었다. 상당수가 거주지 불명에 연락 가능한 전화도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망하기 전에도 국민 대다수가 가난했고, 망한 후에는 국민 대다수가 난민이 되어 버린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난민이 개인 단말기를 갖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있었을까?

 

이제는 강용국을 알고 있는 사람의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야 했다.

 

그런 뒤에도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험난함에 시달린 사람들은 평원을 물건 팔려고 접근하는 잡상인 취급했다.

 

평원은 자신이 그렇게 말재간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했다. 하지만 국가 기관원 신분을 내세우는게 사기꾼처럼 보인다는 사실은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몇 차례 전화 통화와 설득 시도 끝에 간신히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나마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정보비를 제공하겠다는 조건 덕분이었다. 사람들은 정보비를 울궈먹을 생각으로 가득해보였다.

 

물론 평원은 사람들이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면 그만한 값어치를 지불할 생각이 있었다. 어쨌든 그 돈이 기관 예산에서 나가는 거지 자기 지갑에서 나가는 것은 아니니까.

 

정 과장이 들었으면 피 같은 국민 세금으로 잘 하는 짓이라고 핀잔을 줬을 생각이었다.

 

평원은 정 과장에게 예산 신청서를 제출했다.

 

 

 

—————

 

 

 

평원은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첫번째 인터뷰 대상은 이름은 혜진이었고 함흥에서 돈주 노릇을 하던 사람이었다. 강용국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직접 만난 혜진은 50대에 촌스러운 차림새였고 세상의 쓴맛을 다 본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평원은 녹음기를 켰다.

 

“지금부터 묻는건 신중하게 답변해야 합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박혜진이요.”

 

“함흥에서 살다가 5년 전에 남조선으로 내려왔습니다.”

 

“강용국과는 어떻게 알고 지내던 사이시죠?”

 

“내가 예전에는 함흥에서 유명한 돈주였는데 많은 사람들 돈을 관리했거든요.”

 

“돈주가 뭡니까?”

 

“은행이요. 은행.”

 

“개인인데 은행이에요?”

 

“그런 일을 했다고 보면 되죠.”

 

옛날 일을 떠올린 듯 혜진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몰락한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평양에서 왔다는건 모르고 그냥 새로 온 군관이거니 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꽤 많은 돈을 갖다쓰더라구. 누가 돈을 많이 보내주는 거지. 뭐. 평양에서 왔다는건 나중에나 알았지.”

 

“강용국이 정체를 숨겼어요?”

 

“말하지는 않았는데 억양이나 생김새가 부드러워서, 출신 성분이 범상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어요. 하는 것도 꼭 부잣집 도련님 같았죠. 함흥에 온게 짜증난다는 투로 말한 적도 있었어요.”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미쳤구나. 하고. 잡혀가면 큰일이니까. 내 손님인데.”

 

“말리진 않았고요?”

 

“사적인 대화여서 주의를 주긴 했는데 대중 경솔히 흘려듣고 말더군요.”

 

“마지막으로 만난게 언제죠?”

 

“그것도 벌써 아주 오래 전 때요. 헤어지기 며칠 전에 갑자기 열띤 목소리로 남한이 쳐들어오고 있다고 하더군요. 이미 경제적으로 남한에 잠식 되었고 다음은 군사 행동으로 보일 때라고요. 그러더니 홀연히 사라졌어요.”

 

평원은 황당했다.

 

“남한이 쳐들어가요?”

 

“그런 소문이 돌았어요. 어수선한 때였으니까.”

 

“지금 강용국이 뭐하는지 알고는 계십니까?”

 

“아뇨, 몰라요. 그 뒤로는 본 적도 없어요.”

 

혜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도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평원은 인터뷰를 마치고 정보 제공비를 건넸다. 혜진은 돈이 들어있는 봉투를 양손으로 꼭 쥐었다. 평원은 안쓰러워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다음 사람은 함흥에서 강용국과 함께 군생활을 한 사람이었다. 이름은 한창수였고 나이는 마흔쯤 되었다. 그는 슬럼에 허름한 오두막 같은 집을 지어놓고 살고 있었다. 마치 장식물처럼 단촐하게 군대 계급장만 벽에 걸어놓았다.

 

평원은 그가 소좌 계급까지 올라갔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정작 그 계급장이 달려있던 군복은 없었다.

 

의아해하는 평원에게 한창수가 웃으면서 설명했다.

 

“군복은 버렸어요. 영 거추장스러워서. 어디 입고 다닐 수도 없고.”

 

아마 요즘 북한 군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랬다간 길거리에서 맞아죽기 딱 좋았다. 요즘에 사람들은 모든 일의 원인을 북한 난민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평원은 창수와 악수를 나눴다.

 

창수는 물을 내오면서 앉으라고 권유했다.

 

의자 하나 갖다놓으니 좁은 방이 꽉 찼다. 앉을 자리가 없어서 창수는 침대에 앉았다. 벽에 달린 작은 창문에 환기를 모두 의존하고 있었다.

 

평원이 물었다.

 

“강용국을 안다고 하셨죠?”

 

“알다마다요. 부하였으니까요.”

 

“어땠습니까?”

 

“유능하기보다는 권위적이었습니다.”

 

창수가 회상했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일만 하려고 했습니다. 상황이 어려워도 열의를 보이지 않았죠. 아버지만 아니었으면 진작에 혼났겠지만 그럴 수가 없었죠.”

 

“강용국의 아버지 때문에요?”

 

“중앙 고위 간부였거든요.”

 

“처음 듣는 얘기인데요.”

 

“당시에 그 사람이 함흥에 좌천되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사실은 돈 관리 때문에 보낸 거죠.”

 

뜻밖의 사실이 드러나자 평원은 의아해했다.

 

평원이 이해를 못한걸 깨닫고 창수가 설명했다.

 

“알지 모르겠는데 강용국네 아버지가 라선의 돈주들하고 친했단 말이오. 평양하고 라선하고 돈 오가는 걸 좀 손을 댔다 이말입니다.”

 

“라선은 왜요?”

 

“모릅니까? 거기서 빙두가 생산됐습니다.”

 

“빙두요?”

 

“마약 말입니다.”

 

“아아.”

 

“그래서 강용국도 잔치 같은게 있으면 곧잘 갖고 와서는 같이 나누고는 했습니다. 군 내부에서 팔아치우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게 꽤 비싼 거라. 그 정도면 함흥에서 누구보다 돈을 아주 많이 갖고 있었던 셈이죠.”

 

평원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최근에 강용국을 만난 적 있으신가요?”

 

“한 3년 전에 나를 찾아왔습니다.”

 

평원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3년 전에? 무슨 용건이었죠?”

 

“남한이 우리 조국을 뺏아갔으니 복수해야 하지 않겠냐고, 제 도움이 필요하다고 도와달랍디다.”

 

“원래 그렇게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나요?”

 

“그랬으면 좋았겠죠. 진작 그랬으면 좋았을까.”

 

과거를 회상하는 창수의 웃음은 허탈해보였다.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늘어놨습니다. 남한에 혁명을 일으킬 거라고, 무장 혁명을 하자고 하더군요. 나는 그게 신기해, 참.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는게 가능한지. 하지만 사실 자기도 그게 무계획적이라는걸 알았을 겁니다.”

 

“강용국이 지금 뭐하는지는 아시고요?”

 

“모릅니다. 그 뒤로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으니까요.”

 

평원은 무심코 물었다.

 

“독립 운동에 가담할 생각은 들지 않으셨습니까?”

 

평원은 말하자마자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수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는 마치 감시를 당하는 듯이 주위를 서둘러 둘러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난 지쳤고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괜한걸 물었군요.”

 

평원은 창수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남한에서 원래 하던 일을 하는 일이 드물었다. 대학 학위를 갖고 있어도 인정 받지 못하고 무시 당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물며 군경력이 받아들여질리가 없었다.

 

난민들이 남한으로 내려와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하기 힘들었다. 난민과 관련된 민생 법안이 다뤄져야 했지만, 지난번 정기 국회에서 여당이 정치적 역풍으로 파행을 맞이하면서 예산안이 미뤄지고 있었다.

 

평원은 창수와 악수를 나누고 자리를 떠났다.

 

의외로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희한한 단서였다.

 

한때 라선이 마약으로 유명했던 것은 사실이고 국가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강용국의 가문이 어쩌면 중앙당의 돈관리를 맡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혜진에겐 그런 걸 알고 있다는 낌새가 없었다.

 

여전히 미수복지로 남아있는 함흥하고 다르게, 라선은 지금은 러시아 땅이 되어서 일반인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하지만 최근에 국경 분쟁과 테러로 인해서 치안이 불안정했다.

 

그런 곳에 직접 들어가는 것도 꺼려지지만 누군가 들어가는 것도 꺼려지는 일이었다. 만약에 사람이 죽기라도 한다면?

 

어쨌든 이건 상부에서 결정할 일이었다.

 

평원은 세번째 사람을 만나러 갔다.

 

세번째 사람은 조용형이라고 해서 강용국의 아버지와 친한 사이였던 사람이었다. 높은 언덕 위에 살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언덕을 따라 양쪽으로 허름한 집들이 계속 이어졌다.

 

오래 전에 전국적으로 재개발 붐이 일었을 때도 그 흐름은 이 동네를 피해간 것 같았다.

 

평원은 그곳을 걷는 동안 시대를 넘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은 이제는 흑백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7, 80년대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현실이었다.

 

어떤 오래된 자국들은 지워진 것처럼 보여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평원이 어두운 골목을 돌아나왔을 때였다.

 

그 앞에 두 남자가 나타났다. 두 남자는 언덕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가죽 점퍼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언뜻 봐서는 잠복 근무 중인 형사라고 착각할 수 있는 외양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띄고 있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직감이 경보를 울렸다.

 

이 자식들은 위험한 놈이다.

 

평원은 슬며시 그들을 관찰했다.

 

걸음 걸이로 보아선 분명히 군사 훈련을 받은 놈들이었다.

 

남자들의 겨드랑이와 허리춤을 살폈다. 보통 권총을 숨기는 장소였다.

 

불행히도 예상이 맞았다. 외투 위가 불룩 솟아있었다.

 

평원의 손이 뒤로 향했다. 권총 손잡이가 잡혔다. 언제든 사용할 수 있도록 안전 장치를 풀었다.

 

두 사람은 평원에게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움직일 경로를 양쪽에서 차단했다. 두 남자의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키는 작았다. 온갖 평지풍파를 겪은 듯 비대칭으로 뭉개진 얼굴이었고 입매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닮아있었다.

 

그들은 평원을 지나쳐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모양이다.

 

평원은 슬쩍 권총에서 손을 뗐다.

 

그때 지나가던 남자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평원에게 버럭 소리를 쳤다.

 

“뭘 그렇게 쳐다 보나?”

 

평원이 받아쳤다. 슬럼에서 시비가 붙는건 자주 있었고 평원은 이런 일에 익숙했다.

 

“그냥 봤는데?”

 

“썅.”

 

한 남자가 욱해서 주먹을 꺼냈다.

 

다른 남자가 말렸다.

 

“이만 가지.”

 

서로 간에 눈짓이 오갔다. 그 남자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돌아섰다.

 

“씁. 눈깔 잘 뜨고 다녀.”

 

평원은 기분이 상해서 그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지금 싸우고 있을 수도 없었다.

 

평원은 언덕을 계속 올라갔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거주지로 찾아갔다. 원래 잠겨있어야 하는 문이 힘없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피냄새가 흘러나왔다.

 

평원은 권총을 꺼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끼익끼익 소리를 냈다.

 

방 안에 한 남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그외에 인기척이 없었다. 평원이 남자의 코와 목에 손을 댔다. 이미 숨이 끊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명백했다.

 

생각나는 것은 하나 밖에 없었다.

 

평원은 반사적으로 방금 언덕을 지나가며 자신과 시비가 붙었던 두 남자를 떠올렸다.

 

밖으로 뛰쳐나가서 두 남자의 행적을 뒤쫓았지만 이미 그 사이에 온데간데 없었다.

 

평원은 다른 정보원들에게도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졌다.

 

아무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어쩌다가 한 두명이 연락이 안되는 상황일 수는 있다. 하지만 정보원 전부 그럴 수는 없는 거였다.

 

머리가 띵했다. 누군가 장난치는 것만 같았다.

 

평원은 과장에 전화를 걸었다. 과장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

 

“뭐야?”

 

“과장님, 큰일입니다. 오늘 만나기로 한 정보원이 사망했습니다. 다른 정보원들은 아예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지금 현장에 와서 알았습니다. 과장님, 지금 이거 제 생각대로라면 다른 정보원들도 위험합니다. 누가 암살조를 보내는 걸 수도 있습니다.”

 

“누가?”

 

“누구겠습니까?”

 

“우리 아직 조사를 시작도 안 했는데?”

 

“그걸 위협으로 느꼈을 수도 있죠. 정보원들, 보호해야 합니다.

 

“일단 진정하고. 오늘 누구 만나는지 누가 알고 있는 사람 있었어?”

 

평원은 잠시 생각해보았다.

 

“아뇨.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습니다.”

 

“젠장.”

 

과장은 욕을 하고 나서 말했다.

 

“위치로 사람을 보내지. GPS 켜놨지? 정보원 명단은 어딨어?”

 

“제 개인 단말기에….”

 

“자료 보내. 사람 보낼 테니까. 너도 너대로 움직이고.”

 

“알겠습니다.”

 

평원은 과장에게 자료를 보내고 바로 움직였다.

 

아직 다른 정보원들이 남아있었다.

 

그들이 죽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사라진다.

 

슬럼의 황폐한 거리를 지나갈 때, 차를 타고 있는 내내, 평원은 심장이 조마조마했다.

 

설마 무슨 일이 있을까?

 

설마?

 

5분 뒤에 평원은 노원의 슬럼 앞에서 자동차를 멈춰섰다. 기동대가SUV 차량 두 대에 나눠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검은 복면을 쓰고 있었고 시가전용 군장을 입었다. 손에는 기관단총을 들고 있었다.

 

평원은 그들의 태연한 모습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왜 슬럼 안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있어요? 정보원은요? 확보했어요?”

 

“과장님께서 요원하고 합류한 뒤에 움직이라고 하셨습니다.”

 

과장이라고 해도 직접 상관이 아닌 이상, 기동대에 직접적인 명령 권한은 없었다.

 

기동대원 하나가 하늘을 가리켰다. 드론이 날고 있었다.

 

“공중 정찰로 위치를 파악 중이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상 없어요?”

 

“예.”

 

“그거 다행이군요. 그럼 움직이죠.”

 

그들은 슬럼으로 들어갔다.

 

정보원은 여전히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정보원의 집을 찾아갔다. 내부에 인기척은 없었다.

 

평원이 무심코 문을 열어보려고 하는 순간 기동대원이 손을 잡아챘다. 평원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왜 그럽니까?”

 

기동대원이 수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기동대의 수신호를 배우지 못한 평원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동대원은 잠시 입을 우물거리더니 말했다.

 

“안에서 피냄새가 납니다.”

 

“피요?”

 

“무슨 사단이 난 것 같습니다.”

 

숨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 기동대원들은 문에 부비트랩이 없는지 확인한 다음에 잠금 장치를 강제로 열었다. 다행히 부비트랩 같은 것은 없었다. 정보원의 현관문은 그냥 평범한 강철문이었다.

 

기동대원들이 총으로 허공을 겨누며 진입했다.

 

문이 열리고서 평원은 비로소 피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들은 피바다를 목격했다. 작은 방 한가운데 온통 피가 튀어 있었다. 두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기동대원들은 주위를 경계했고 한 사람이 사망을 확인했다.

 

“이미 사망했습니다.”

 

“젠장.”

 

“중요한 정보원이었습니까?”

 

“아마도요. 그게 뭐가 됐든 이젠 알 수 없게 됐지만.”

 

“다음은 어쩔까요?”

 

“일단 여긴 다른 요원들에게 맡기고 움직이죠. 다른 정보원들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르니까.”

 

불길한 예감에 평원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불행히도 그 예감이 맞았다. 가는 곳마다 정보원들이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다섯 번째도, 여섯 번째 정보원도 같은 꼴을 겪었다. 전부 총에 맞아 죽어있었다.

 

평원은 엄청난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 모든게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바람이 불어 모래 한 줌이 사라지듯이 손 안에 있던 정보원도 전부 사라졌다. 강용국에게 다가갈 정보가 눈 녹듯이 사라진 셈이다.

 

평원은 도무지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 믿을 수 없었다.

 

이번 조사는 소수만 알고 진행하고 있었다.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안전예방국 상층부 몇 명, 현장의 과장과 자신 정도.

 

평원이 쥐고 있는 명단을 누군가 홀라당 채간게 아닌 이상, 정보원들이 감쪽같이 처리될 수는 없었다.

 

혹시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게 아닐까?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할 만큼 정신이 궁지에 몰렸다.

 

지원 나온 요원들이 현장 정리를 하는 사이에 평원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평원의 목소리가 잔뜩 떨렸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전부 죽었습니다. 미치겠군요.“

 

“그 놈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배경을 갖고 있길래 자길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제거하려고 하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젠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요. 슬럼에서 제가 만난 그 두 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보과에서 추적 중이다. 절대 못 빠져나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데, 잠시만.”

 

과장의 연결이 잠시 끊겼다. 뭔가 덮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서 수화기를 막은 것 같았다. 평원은 기다렸다.

 

잠시 후에 과장의 회선이 복구되었다.

 

과장이 말했다.

 

“음, 평원아. 피곤한건 아는데 지금 가톨릭대병원 영안실로 가줄 수 있냐?”

 

“무슨 일입니까?”

 

“오늘 네가 만난 다른 정보원들.”

 

“박혜진하고 한창수 말입니까?”

 

“어, 그 사람들. 현장에 출동나간 요원들이 그 사람들 죽은걸 발견했다.”

 

평원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절대 그 사람들이 죽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현장 요원들도 타살 같더래. 그런데 우리는 그 사람들 얼굴을 모르고, 너만 그 사람들을 만나봤으니까. 가서 신원 확인 좀 해줘라.”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평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영안실 앞에 양복 차림의 요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에서 바로 온 듯 재킷 안에 방탄복을 입고 있었다.

 

“공공안전과에서 나왔습니다. 김평원입니다.”

 

“정보과 박흥식입니다.”

 

악수를 하고 자료를 건네 받았다. 요원이 설명을 덧붙였다.

 

“한창수랑 박혜진 현장 사진입니다.”

 

평원은 단말기에 자료를 불러왔다.

 

현장은 참혹했다. 범인이 악의를 갖고 저지른 일이 분명했다.

 

“고인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안으로 가시죠.”

 

영안실 내부는 추웠다. 차가운 금속 침대 위에 두 사람이 하얀 천을 덮고 누워있었다. 요원들이 미리 사람을 물려놨다. 그 고요함 속에서 평원은 천을 벗겼다.

 

평원은 그들을 알아보았다. 박혜진과 한창수가 맞았다. 출혈이 멈추고 피를 닦아내서 시체들은 깨끗했지만 소독약 냄새와 피 냄새가 섞여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범인들이 얼굴을 훼손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따.

 

누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최후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맞군요. 그 사람들이 맞아요.”

 

평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신 위에 천을 다시 덮었다. 박흥식이 어딘가로 연락을 취했다. 그렇게 마지막 확인 절차가 끝났다. 두 사람은 무연고자로 취급되어 처리된다. 가족들이 있다고 해도 찾아올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 단계에서부터 시체만 남기고 일이 엉망진창으로 끝나버렸다.

 

평원은 과장과 만났다.

 

“너무 대응이 기민합니다. 이상합니다. 어디서 새는게 아니고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린 아무 것도 못해보고 끝났습니다.”

 

과장이 눈을 흘겼다.

 

“그거 위험한 발언인거 알지?”

 

평원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에 말했다.

 

“아무래도 북한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에?”

 

“직접 가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야, 이거 네 잘못 아냐. 네가 그렇게 신경쓸 필요는 없어.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나 하겠냐? 잘못하면 괜히 개죽음 당할 수도 있어.”

 

정 과장은 회의적이었다.

 

“위험한만큼 얻을 수 있는 것도 있겠죠.”

 

평원은 밀어붙였다.

 

정 과장은 생각에 잠기더니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리고는 짜증을 냈다.

 

“젠장. 알았어. 상신해볼게.”

 

“감사합니다.”

 

 

 

당연하지만 일이 잘 풀리진 않았다.

 

평원은 많은 난관에 부딪쳤다.

 

북한에 들어가고 싶다고 아무나 들어가는건 아니었다. 우선 상부의 허가가 필요했고, 일반 수사관은 그냥 들여보내지 않았다. 보통 허가는 위험한 일을 동반하는 비밀 작전에만 내주는 편이었다.

 

게다가 북한에 들어가는 방법도 문제였다.

 

함흥으로 가려면 공식적인 방법은 첫째, 중국령 신의주에 입국하거나, 둘째, 러시아령 라선으로 입국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두 곳 전부 함흥까지 거리가 멀었다. 온통 산간지방에 도로도 끊겨있는 이상 함흥까지 가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다른 방법은 비밀 루트 뿐이었다.

 

불법 조직들이 그렇듯이 국정원과 국군 정보사에는 이런 저런 끈으로 연결된 비밀 루트가 알음알음 있었다. 작은 어선을 타고 몰래 들어갈 수도 있다.

 

그 외에는 수송기를 통한 공중 강하가 있었다. 하지만 수송기는 공군에나 있는 거였고 그나마도 귀한 몸이었다. 아쉬운 대로 손을 벌리려고 해도 겨우 수사관 하나를 공수로 침투시키기엔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우선 상부에선 수사관 하나 달랑 보내는걸 반대하고 나섰다.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들어가는건 좋다. 그런데 어떻게 들어가서 어떻게 나올 거냐? 수단은 있냐?

 

DMZ 통과할 거냐? 거기 잘못 지뢰라도 밟았다간 아무도 구하러 못 간다. 감당할 수 있냐?

 

들어가면 연락을 취할 방법이 하나도 없는데 우리 보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몇십 일 동안 기다리라는 거냐?

 

만약에 함흥에 들어가더라도 거기가 안전할 거 같냐? 남한 사람이라는거 들키면 목숨이 위험할 거다. 지금 분위기 흉흉한거 모르냐? 사람들이 널 그냥 살려둘 거 같냐?

 

뭘 그렇게 신경 쓰냐. 보아하니 내부 계파 투쟁 때문에 싸우고 있는거 뿐 아니냐.

 

정과장도 도매금으로 같이 박살났다.

 

정과장이, 너는 지금 미쳤다고 이런거 안건으로 올리냐? 부하가 정줄 놨으면 네가 다 잡아야 하는거 아니냐.

 

상황이 난관에 봉착하자 평원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염병할 일이었다. 눈 앞에서 정보원들이 죽어나가는데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공공안전과 사무실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상황이 꼬여도 어떻게 이렇게 꼬일 수가 있나.

 

“대체 어떻게 해서 정보원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었던 걸까요?”

 

그게 미스터리였다. 정보원 명단은 평원만 갖고 있었다. 다른 데에 유출한 적도 없었다. 사무실에 혹시나 백도어나 데이터 해킹이 있었을까? 평원은 조심스럽게 정보과에 의견을 타진해보았지만 해당 없음이라는 답변만 받아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내부자 소행이라고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외부의 움직임이라기엔 너무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렇더라도 입 밖에 꺼낼 수 있는 것은 아니어서 평원은 머리만 쥐어뜯었다. 평원은 정 과장에게 물었다.

 

“암살조 신원은 나왔습니까?”

 

“경찰에서 조사 중인데, 이게 공조가 잘 안 되는 모양이야. 아직까지 찾지 못한 걸 보면.”

 

사실 무능함을 돌려서 비난하는 거나 다름 없었다. 왜 그걸 못 찾아? 대한민국 도로에 깔린 감시 카메라가 몇 개인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거라.

 

경찰이 마음만 먹으면 누가 무슨 자동차 탔는지, 어디서 갈아탔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아내는 것 정도는 금방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상황이 개판 오분 전이라고 해도 국가 안보가 걸린 대형 연쇄 살인 사건이다. 상황이 심각하다는걸 알면서도 반응이 미적지근하다는건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거였다.

 

평원은 머리를 한참 쥐어뜯다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해보죠.”

 

“뭐?”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정보원이 하나 남은 것처럼 꾸미는 겁니다. 만약 내부자 소행이라면 함정인걸 아니까 안 찾아오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암살조가 찾아오겠죠. 그 때 놈들을 잡으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정 과장은 근심어린 표정이었다.

 

“아, 이거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진짜 그럴까? 걸려들까?”

 

“해봐야 알죠. 강용국 숨기려고 강용국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전부 죽인 놈들입니다. 분명 정보원이 있다고 하면 신경 쓰일 테니 하고도 남을 겁니다.”

 

“그것보단 내부자 소행이 아니라는걸 증명해야 하는게 더 중요해.”

 

“과장님?”

 

“만약에 이게 내부에서 유출되는 거라면 우린 조지는 거야. 뒤통수에 총 맞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아니길 바라야겠죠. 이 건은 우리만 알아야 합니다.”

 

“알겠다. 국장님한테 다녀올게.”

 

정 과장은 한숨을 푹 쉬면서 즉석에서 보고서를 만들어서 국장실로 올라갔다.

 

잠시 후에 국장실에서 내려온 과장은 표정이 미묘했다. 좋아하는건지 아닌건지 알 수 없는 모습이었다.

 

“국장님이 진행하라고 하신다.”

 

“알았습니다.”

 

 

 

평원은 김 경위와 마주했다. 김 경위는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자신이 왜 여기 왔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듯, 의자 등받이에 팔을 딱 걸쳐놓고는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하이고 높으신 공무원께서 턱짓으로 경찰을 부려먹으시네.”

 

평원은 팔짝 뛰었다.

 

“아니, 왜 오해 살만한 소리를 하고 그러십니까?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 듣고 오해합니다. 저희가 언제 경찰을 부려먹었습니까? 공조를 요청한 거지.”

 

“아니, 우리가 무슨 거부권이나 있던가? 위에서 하라고 하니까 하는 거지.”

 

아, 그게 불만이었구만. 평원은 납득했다. 뭐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들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고 있으니 경찰 측에서 좋게 볼리 만무했다.

 

“대체 뭘 꾸미는지는 몰라도, 지금 이거 하나 때문에 몇 백명이 동원되는줄은 알아? 그런데 뭐 설명도 없이 가타부타 하라고 하니까 다들 불만이 많아.”

 

“상황 설명해드렸잖아요.”

 

“그래도 그렇지.”

 

“아, 너무 그러지 마십쇼. 저도 파견으로 나온 건데.”

 

“하이고, 저 배신자 입 놀리는거 봐라. 중앙에서 꿀 빨면서 자기는 파견직이란다.”

 

김 경위 뒤에 있던 경찰들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다들 즐겁지, 아주? 사람 놀려먹으니까 이 상황이 즐거워? 괜히 스트레스를 받아서 평원은 얼굴을 손으로 짚었다.

 

김 경위가 투덜거렸다.

 

“아니 솔직히 영역 정리는 하고 넘어가야지. 왜 자꾸 대공 업무를 그쪽에서 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북한 관련 전담 기관으로 만들어졌으니까 그렇죠.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데 어찌합니까?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데요?”

 

“그러면서 은근슬쩍 십 년이 넘었잖아. 비상조치도 벌써 해제됐는데.”

 

“아니, 뭐 그것도 VIP 뜻이고. 우리라고 별 수 있나요.”

 

VIP가 언급되자 김 경위는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궁시렁거렸다. 아무래도 국가 수반에 대한 불평을 대놓고 하기는 어렵다.

 

처음 비상조치가 실행됐을 때 누가 상황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데 말이야, 거기 요즘에 인원 충원 안 한대?”

 

평원은 눈을 치켜떴다. 아니, 이 사람이?

 

“없어요. 없어. 뭘 그런걸 물어봐요. 왜요? 자리 옮기시려고?”

 

“흠흠. 알 것 없어. 내 나이에 무슨. 경감으로 승진도 못한 마당에 옮겨봐야 뭐하겠어. 그런데 앞으로 신규 충원은 경찰에서만 뽑는다고 하던데, 아니야?”

 

“엥, 저는 국정원 쪽으로 들어온다고 들었는데?”

 

“엥?”

 

“뭐가 됐든 간에 파견 업무로 돌리던걸 슬슬 끝낼 때가 됐긴 하죠. 점점 업무도 늘어나는데. 아마 다음 차부턴 그러지 않을까 싶네요.”

 

“그거 경찰에 맡기면 될걸 갖고 쓸데없이 돈 쓰네.”

 

“그거야 경찰 쪽에서 워낙 해먹은게 많으니까 못 미더워서 그런 거고.”

 

“씁.”

 

언쟁을 벌이던 그 때 평원의 귀에 꽂은 리시버에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컨트롤, 손님이 방문 예정이시다.”

 

“벌써? 얼마나 오는데?”

 

“손님은 둘. 무장은 권총 정도인 것 같다.”

 

“알았다. 손님 접근 중이랍니다. 준비합시다.”

 

방 안에 포진한 경찰들이 권총을 꺼내들었다. 안전 장치를 풀면서 소리가 났다.

 

평원은 방 가운데 들어온 전구에서 불을 껐다. 어둠이 순식간에 들이닥쳤다. 조용한 가운데 누군가 흘리는 작은 숨소리가 요동쳤다.

 

“손님 50m 접근.”

 

“저격수 준비됐어?”

 

“기동대도 준비됐어.”

 

“올라잇, 올라잇.”

 

김 경위가 투덜거렸다.

 

“뭔 할리우드 영화 흉내내고 있냐.”

 

평원은 괜히 머쓱해서 핀잔을 주었다.

 

“좀 조용히 하십시오. 밖에까지 목소리 다 들리겠네.”

 

“큼큼.”

 

잠시 후에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소리는 문 앞에서 멈췄다. 문고리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평원은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폭탄을 설치하는건 아니겠지? 그냥 폭탄으로 날려버리고 화재인척 꾸미려는 건가?

 

“야, 컨트롤 저거 뭐하는 거냐?”

 

달그락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만약 폭탄이면 문을 날려버리는 걸로 끝날까? 아닐거 같은데.

 

그때 컨트롤이 말했다.

 

“장비로 문을 열려고 하고 있다.”

 

딸깍.

 

현관문이 열렸다. 사람 그림자가 문가에 드리워졌다. 그의 등뒤로 바깥의 야경이 들어왔다.

 

“뭐가 이렇게 어두워?”

 

“지지리도 못 사는 가본데.”

 

두 사람이 말을 주고 받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한 사람이 어두운 곳을 더듬었다. 간신히 스위치를 눌렀다.

 

방 가운데 있던 알전구의 필라멘트가 번쩍였다. 전력 공급이 부족한지 전구의 불이 몇 번 깜빡였다. 순간 방 안을 덮고 있던 그림자가 늘어났다가 줄어들다가 사라진다.

 

불이 완전히 켜지는 순간 침입자들은 몸이 굳었다.

 

경찰 십수명이 문가를 향해 일제히 총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머리를 겨누고 있는 총부리를 보면 누구라도 몸이 굳을 수 밖에 없다.

 

침입자들은 도망치려는 듯 뒤돌았지만 바로 그때 신호를 받은 경찰 기동대가 들이닥치면서 도망칠 곳도 없어졌다. 경찰 기동대는 기관단총을 겨누며 길을 봉쇄했다.

 

이제 언제라도 총격전이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누군가 숨 쉬는 소리까지 귓가에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침입자들은 저항을 해보려는 듯이 손을 달싹였지만 곧 양 손을 들어올리며 항복 표시를 했다.

 

평원으로서도 다행인 일이었다. 총격전으로 사람 죽어나가서 사후처리하는 것보다야 살아있는 사람 잡아다가 정보를 캐는게 훨씬 이득이었다.

 

“눈치가 빠른 녀석들이라 다행이네요.”

 

평원이 말하자 김 경위가 네가 왜 나대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하긴 일을 처리한건 경찰이었다.

 

“이놈들 우리가 데려갈게.”

 

“그렇게 하십시오. 정보만 잘 주시면 됩니다.”

 

경찰들이 수갑을 꺼내서 침입자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항복한 침입자들이 손을 저었다. 경찰들이 멈칫했다. 혹시 속에 폭탄을 숨기고 있나? 가끔 악에 받혀서 최후의 수단으로 자폭하는 인간들도 있었다. 그러면 이 방 안에 있던 사람들 전부 폭사다.

 

“아니, 잠깐만. 말할게 있습니다.”

 

“야 이 새끼들아 니네 지금 총 안 맞은걸 다행으로 알아. 어디서 개수작질이야?”

 

“잠시만요. 저희 앞주머니 뒤져보십시오. 우리 신분증 있습니다.”

 

“가만, 이제보니 이 새끼 말투가 한국 사람이네?”

 

다들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리 북한 출신 사람이 동화되어도 억양은 오래 남아서 출신을 방증한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야 했다.

 

김 경위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튼 짓하면 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걱정마십시오.”

 

삼엄한 경계 가운데 경찰들이 침입자들의 겉옷 앞주머니를 뒤졌다.

 

그러더니 당황해하며 김 경위에게 돌아왔다.

 

어딘지 익숙한 신분증이었다.

 

“김 경위님, 이거 육군 신분증입니다?”

 

당황해서 목소리 끝이 위로 올라갔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신분증이 돌고 돌았다. 평원은 어이가 없었다. 무슨 개소리냐고 화를 내던 김 경위도 신분증을 보고 나서는 할 말을 잃었다. 어떤 멍청한 놈이 사람을 죽이러 가는데 신분증을 들고 가는가?

 

그러니까 이 자식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상황에서 빠져나갈 자신이 있었던 거다.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거나 조용히 처리할 자신이 있거나.

 

아니면, 뒤를 봐줄 사람이 있거나.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평원의 귓가에 무전이 들어왔다.

 

“여기는 컨트롤.”

 

“뭐야?”

 

“어, 김평원 선배님? 여기 무슨 일이 생겨서요.”

 

“알아. 여기도 문제가 생겼거든.”

 

“지금 그쪽으로 사람이 하나 가고 있습니다. 쏘지 말라고 하십시오.”

 

“무슨 소리야?”

 

바깥에 포진한 병력 사이를 헤치고 한 남자가 나타났다. 목에 헤드셋을 걸고 있었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급하게 달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남자가 머리 위로 양손을 휘저었다.

 

“멈춰, 멈춰. 작전 중지. 작전 중지. 쏘지마요.”

 

평원은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 자신한테 명령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현장에 와있거나 신분을 밝혔을 것이다.

 

“누구야?”

 

“광산실업 박우연 과장입니다.”

 

“광산, 뭐?”

 

김 경위가 평원의 팔을 툭 쳤다.

 

“정보사야.”

 

정보사의 몇몇 비밀 부대는 민간에서 회사처럼 위장하고 활동했다. 보안 업무를 하고 있는 김 경위라면 가끔 공조도 했을 테니 그쪽과 알고 지낼 법도 했다. 평원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엿됐구나. 그런데 왜 민간 업무에 정보사가 여길 나타나?

 

“과장이면 어느 급이죠?”

 

“대위? 소령? 그쯤 할걸.”

 

“아.”

 

박우연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원은 일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건지 알 수 없었다.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자세한건 말할 수 없습니다. 하여튼 작전 중지하고 우리 애들 풀어주십시오.”

 

“아니 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

 

“자세한건 저희 회사에 문의하십시오.”

 

“이거 그쪽에서 승인한 작전이에요?”

 

“말 못합니다.”

 

“잠깐만 기다려요. 본부에 문의하고 올 테니까. 그냥 안 보내줍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알아야 하니까. 김 경위님. 이 사람들 못 움직이게 하십시오.”

 

평원은 개인 단말기를 꺼내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순간 박우연이 짜증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적당히 하시죠. 뭔가 오해가 있었던거 아닙니까?”

 

평원은 돌아나가다가 멈춰섰다. 박우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박우연이 멈칫했다.

 

평원은 원래 자리로 돌아와서 박우연의 얼굴에 대고 쏘아붙였다.

 

“오해? 무슨 오해? 지금 장난쳐? 여기 지금 경찰만 있는줄 알아? 이거 안전예방국 관할 작전이야.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그 요원에게 총 들이대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거라고. 국내 정부 요인에 대한 암살 미수인거 몰라? 정신 못차리고 어따대고 큰 소리야?”

 

박우연이 얼어붙었다. 뿐만 아니라 주위 분위기까지 차갑게 식었다. 다들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고 충격을 받았다.

 

상황이 어떻게 꼬였든 간에 같은 정부 기관원들끼리 총을 겨눴던 상황이다. 미수라고는 해도 발포 직전까지 갔으니 쉽게 넘어가기 힘들었다.

 

평원이 엄포를 놓았다.

 

“여기 가만히 있어.”

 

박우연은 평원을 붙잡았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이리 저리 눈을 굴려대는게 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만, 이거 현장 책임자는 납니다. 내 선에서 해결합시다. 진정하시고. 예?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되었나.”

 

평원은 팔짱을 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들 평원의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주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평원은 속으로는 조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상황 수습이 중요했다.

 

“그래서 권한이 충분히 있습니까?”

 

“있고 말고. 지금 조졌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거 아닙니까? 오해는 풀고 넘어가야지.”

 

“상부에서 허가 받고 나온 거죠?”

 

“전무님이….”

 

“이 아저씨 군인 아닌 거 같아. 김 경위님 그냥 체포하시죠. 내일 뉴스 헤드라인에 뭐가 나올지 참 궁금하다. 그쵸?”

 

김 경위는 입을 딱 벌렸다.

 

“음, 김평원 요원님? 아무래도 불필요한 마찰은 관두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같은 목표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평원은 황당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해서 인상을 찡그렸다. 아니, 아까 일 시킨다고 실컷 갈굴 때는 언제고. 이 아저씨가 언제부터 존대를 썼다고 갑자기 이러나. 저쪽 눈치 보는 거야? 왜 저쪽에 맞장구치고 있어?

 

평원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대놓고 할 얘기는 아닌 거죠?”

 

박우연이 절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일단 주위 좀 물리고 시작합시다.”

 

김 경위가 주위에 눈짓을 보냈다. 주변에 있던 경관들이 방을 빠져나갔다. 다들 눈치껏 들어선 안 될 거라는 예감을 느꼈던 것이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평원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이제 설명해보시죠. 하지만 충분히 설명이 되어야 할 거에요.”

 

박우연이 입을 열었다.

 

“최근에 <북한 독립 운동>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던 도중에 우연히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되었습니다. 상부에서 판단한 결과, 너무 위험하고 선제적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중요한 정보?”

 

“국가 안보에 치명적 해를 끼치는….”

 

이쯤되자 평원은 박우연이 일을 무마하려고 상황을 허황되고 거대하게 부풀리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밀이 뭔데요? 말할 수 없는 거에요?”

 

“네,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 사실 나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합니다.”

 

“알았어요. 그래서 그 선제적 대응이라는게 암살입니까?”

 

“그렇죠.”

 

그렇다면 아마도 평원은 최고 기밀 취득 인가라도 얻지 않는 이상 평생 그에 관해 들을 권한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냥 체포할 수도 있었잖아요. 왜 경찰에 맡기지 않았죠?”

 

“상부에선 가능한 소수만 알길 바랐습니다. 만약에 정보가 잘못 흘러나가서 일을 그르칠까봐 그런 거죠.”

 

박우연이 눈치를 보자 경찰인 김 경위의 얼굴은 불그락푸르락 해졌다.

 

“아니, 뭐 죄다 우리가 구멍인 것처럼 말하네. 당신들도 다들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잖아.”

 

“사실은 사실이잖아. 당신들한테 정보가 넘어가면 꼭 찌라시로 돌더만.”

 

“그만. 싸우지 말아요.”

 

평원이 중재했다.

 

박우연과 김 경위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평원은 박우연을 바라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