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의 꿈을 꾸나요?

  • 장르: SF
  • 분량: 81매
  • 소개: 대리 수면은 어디까지나 의뢰자의 수면을 대리하는 것이므로, 대리자 본인의 수면은 필히 별도로 확보해야 합니다. 더보기

당신은 누구의 꿈을 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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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깜빡 졸았다. 퍼뜩 깨어보니 버스는 이미 내릴 곳을 한참 지나 종점을 향하고 있었다. 얼른 일어나 하차벨을 누르고 허겁지겁 내렸다. 낯선 곳이었다. 결국 사무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약속시간을 삼십 분 이상 넘긴 뒤였다.

사무실은 역 앞의 오래된 상가건물 3층이었다. 개미 인력. 간판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젊은 여자가 구석의 낡은 접객용 소파로 안내했다. 퀴퀴한 냄새에 코가 익숙해질 때쯤 머리를 짧게 깎은 오십 대 중반의 남자가 나타났다. 소장이었다. 그는 한 손에 찻잔, 다른 손에 서류 뭉치를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김영국 씨. 맞죠? 많이 늦었네요. 다른 분들은 벌써 전에 다 돌아갔어요. 어쨌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소장이 차를 홀짝 들이키고 서류뭉치를 뒤적거렸다. 꾸깃꾸깃한 이력서들 사이에서 내 이력서와 건강검진 결과표가 나왔다.

“서른아홉. 음,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젊은 편이네요. 어디 보자, 가족은 열 살 딸하고 두 살 딸. 어이구, 딸부자시네. 딸랑 셋? 애엄마는?”

“작년에 병으로…….”

“쯧쯧, 어쩌다.”

소장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흠, 건강은 양호하시네. 그럼 하루에 몇 시간이나 할 수 있죠?”

“두 시간 정돈 가능합니다.”

“두 시간? 애매하네.”

“네, 다른 일도 하고 있어서…….”

“이거 하는 사람 중에 본업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다들 시간 쪼개서 하는 거지. 무슨 일 하는데요?”

“건물 청소 대행하고 대리운전을 좀…….”

“두 개나 하고 있어요? 근데 거기다 대리 수면을 또 한다고? 엄청 피곤할 텐데. 어지간히 급하신가 보다. 어디 대출이라도 받았어요?”

아내는 작년에 먼저 떠났지만, 병원비의 대출금 이자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내의 죽음은 매우 슬펐지만, 매달 대출 상환이라는 현실은 그 슬픔을 되새길 겨를조차 주지 않았다.

소장이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 뭐 내가 그쪽 가정사까지 묻는 건 좀 실례지. 알겠어요. 우린 일단 중개비로 육 대 사. 그쪽이 육, 우리가 사. 매일 밤 아홉 시부터 다음날 아침 일곱 시까지 매시간 역에서 센터까지 셔틀버스 운행되고요. 오케이?”

“네.”

“고객은 주로 돈은 많은데 시간은 없는 사람들. 잠자는 시간도 아까운 사람들 있잖아요. 밤새 놀고 싶은 한량이나, 시험 앞둔 자식 둔 부자들. 그런 사람들이에요.”

고개를 끄덕이자 소장이 서류뭉치 맨 뒤에서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읽어보시고 밑에 서명하세요.”

대리 수면 동의서와 대리 수면 안내 및 주의사항이었다. 대리수면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주의해야 할 점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천천히 읽어 내려가려는데 소장이 볼펜을 주며 말했다.

“그렇게 자세히 볼 거 없어. 이미 다 알고 있는 거 써놓은 거니까. 그, 주의사항에 맨 위에 있는 거 두 개만 잘 알고 있으면 돼요. 자, 여기 사인하시고.”

주의사항 1번. 대리 수면은 어디까지나 의뢰자의 수면을 대리하는 것이므로, 대리자 본인의 수면은 필히 별도로 확보해야 한다. 즉, 대리 수면을 통해 잠을 자더라도 내 잠은 따로 자야 한다는 말이다. 대리 수면의 가장 기본이다.

주의사항 2번. 대리 수면은 최대 5시간 이내로 제한한다. 5시간이 넘어갈 경우, 수면발작과 수면마비 등을 유발하여 대리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으니 필히 주의해야 한다.

“그 기본을 까먹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자기가 잠을 잤다고 생각하고 그 돈으로 밤새 놀려는 젊은 애들 꽤 봤다니까. 남의 잠 대신 자준 거란 걸 금방들 까먹는단 말이야. 그런 애들은 몇 번 하다가 금방 그만두지.”

뒷장에는 대리 수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첨부되었다. 동그란 기계장치의 설계도 같은 그림이 있고, 그 밑으로 비렘수면, 렘수면, 세로토닌 작동성 뉴런, 노르아드레날린 작동성 뉴런 등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들이 난무했다.

“그거 읽어봤자 소용없을 걸. 나도 아직 뭔 소린지 모르겠다니까. 그냥 간단해. 그 장치를 통해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의뢰자와 대리자가 링크되면 대리자는 의뢰자 대신에 잠을 자주고, 그동안에 의뢰자는 잠을 안 자도 생체소모가 안 된다, 이런 거야. 대신 의뢰자가 누구인지는 굳이 밝히지 않아. 알 필요도 없고. 그냥 어딘가에 내가 꽂고 있는 장치와 링크된 장치를 꽂은 누군가 있다는 것만 알면 돼요.”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동의서에 서명하자 소장이 서류를 낚아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부터 일 할 수 있는 거죠?”

“당장 오늘 밤부터 시작하지.”

 

사무실에서 나오니 손목시계가 오후 7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늦었다. 저 멀리 버스가 오는 게 보여 뛰었다. 겨우 버스에 올라타 숨을 고르며 맨 뒷자리에 앉았다. 은서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영어 학원 끝나고 어린이집에서 은지 데리고 올 시간이었다. 전화를 끊고 문자메시지를 남겼다. <미안. 아빠가 많이 늦었네. 지금 가는 중이야. 은지는 잘 데려 왔지?> 버스에서 내려 집에 도착할 때쯤 답장이 왔다. <응. 은지 챙기느라 전화 못 받았어. 지금 집에 왔어. 얼른 와.>

 

집에 가니 부엌에서 은서가 밥을 푸고 있었다. 은지는 바닥에 앉아 떨어진 밥알을 주워 먹고 있었다.

“딸, 밥 아직 안 먹고 있었어?”

“응, 아빠랑 먹으려고 기다렸어. 지금 다 됐어.”

“자리에 앉아. 아빠가 차릴게.”

“아냐. 다 했어.”

은서의 머리를 쓰다듬고 은지를 안아 볼에 뽀뽀하며 밥상 앞에 앉혔다. 밥, 김, 김치, 콩자반. 언제나 조촐한 식탁이다. 은지에게 밥을 떠먹이며 은서에게 말했다.

“오늘 아빠가 너무 늦었지. 미안. 어디 좀 들렀다 오느라고. 글쎄, 버스에서 깜빡 졸았지 뭐야.”

은서가 웃었다.

“뭐야, 그게.”

“내리니까 생전 처음 보는 데더라고. 조금만 더 갔으면 종점에서 내릴 뻔했어.”

“웃겨.”

은서가 쿡쿡하며 웃자 은지도 언니를 따라 웃었다.

“아빠 오늘 일자리 새로 구했다.”

“일자리? 지금 하는 일은 어쩌고? 지금도 두 개나 하고 있잖아.”

“그것도 계속해야지. 새로 구한 건 새벽에 잠깐씩 하는 거야.”

“그럼 잠은 언제 자? 오늘도 버스에서 졸았다며.”

“괜찮아. 잠이야 조금씩 줄이면 되는 거고. 그리고 아빠 하는 일이 잠자는 거야.”

“응? 그게 뭔데?”

“대리 수면. 은서도 알지?”

“그거 한다고?”

“그래. 그거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모르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대신 푹 자주면 돼. 시급도 꽤 쏠쏠하고. 이렇게 편한 직업이 어디 있어.”

“그거 남의 잠 대신 자주는 거라며. 그거 하면 아빤 잠 못 자는 거잖아.”

“대신 자주는 게 아니라, 그 뭐더라, 수면뇌파를 링크하는 거야. 그리고 잠이야 뭐, 오늘처럼 버스에서 자면 되지.”

은서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으이그, 정말.”

은지가 밥을 먹다 나를 따라 하며 웃는 바람에 입안에서 밥알이 흘러나왔다. 은서가 재빨리 싱크대에서 휴지를 가져와 닦아줬다. 은지는 아랑곳 않고 계속 웃었고, 나도 은지를 마주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그날 저녁, 대리운전 콜이 뜸해진 새벽 1시에 역 앞으로 갔다. 전철 운행시간이 한참 지난 역 주변은 캄캄했다. 저 멀리 열댓 명의 사람들이 줄 서있는 게 보였다. 무거운 밤공기 속에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파묻은, 회색빛 얼굴들이었다. 줄 맨 뒤에 서고 잠시 후에 어디선가 관광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태웠다. 사람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눈을 감고 잤다.

센터는 버스로 사십여 분 거리에 있는 도시 외곽의 공장지대에 있었다. 버스는 크고 오래된 공장들 사이에 웅크린 거대한 단층 건물 앞에 멈춰 사람들을 뱉었다. 사람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문과 복도를 지나자 넓은 강당이 나왔다. 강당 안에는 수십 개의 철제침대가 정렬해있고, 그 위에서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강당은 제법 밝았지만 누구도 잠을 뒤척이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 모두 양쪽 귀에 조약돌처럼 하얗고 동그란 장치를 끼고 있었다.

어디선가 흰 가운을 입은 남자가 카트를 끌고 나타났다. 같이 온 사람들이 그 남자 앞에 줄을 서서 이름을 말하고 차례대로 장치를 받아갔다. 나도 그들을 따라 줄을 섰다.

“이름이요?”

흰 가운의 남자가 서류철을 보며 물었다.

“김영국입니다.”

“몇 시간이요?”

“어, 두 시간이요.”

남자가 서류철에 뭔가 적고 내게 내밀었다.

“여기 이름 옆에 서명하세요.”

명단 맨 밑에 내 이름이 있었고 그 옆에는 ‘2’라고 적혀있었다. 그 옆에 이름을 적고 남자에게 건넸다. 카트 위에는 흰색 상자가 다섯 개 있었고, 각각의 상자에는 ‘1’부터 ‘5’까지 숫자가 적혀있었다. 남자가 ‘2’라고 적힌 상자에서 장치를 꺼내 주었다.

장치를 받고 제일 가까운 빈 침대로 가 앉았다. 장치는 생각보다 가볍고 작은 게, 꼭 무선 이어폰처럼 생겼다. 장치 옆면에 알파벳과 숫자로 된 일련번호가 적혀있었다. 누군가 이것과 똑같은 걸 끼고 내가 대신 잠 자 주길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옆 침대에 자리 잡은 어르신이 익숙하게 장치를 귀에 꼽다가 어정쩡하게 앉아있는 날 보며 말을 걸었다.

“처음인가 보네. 신기하지? 이런 게 최첨단 수면과학의 집약체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게. 일단 이걸 이렇게 양쪽 귀에 끼워.”

어르신이 귀에 꽂은 장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를 따라 장치를 귀에 꽂았다.

“그다음에 침대에 누워서 오른쪽 장치의 버튼을 눌러. 그럼 끝이야.”

어르신의 말을 따라 침대에 누운 후, 오른쪽 귀에 꽂은 장치에 손을 댔다. 조그만 버튼이 만져졌다. 버튼을 살며시 눌렀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눈을 떴다. 아까 그 침대 위였다. 고개를 돌리니 옆 침대에 아까 그 어르신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아직 잠자고 있었고, 그중 몇몇 사람들이 우리처럼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귀에서 장치를 빼고 손목시계를 보니 3시 50분이었다. 두 시간이 지났다. 사람들을 따라 아까 그 명단에 다시 서명을 하고 강당을 나와 건물 앞에 정차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캄캄한 역 앞에 섰고, 사람들은 지친 얼굴로 버스에서 내려 새벽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집에 오니 5시가 조금 넘었다. 방에서 은서와 은지가 새근거리며 자고 있었다. 둘의 볼에 뽀뽀하고 옆에 누워 그대로 잠들었다.

 

7시 20분에 일어나 아침을 차리면 은서가 일어나 거든다. 아직 자고 있는 은지를 깨워 다 같이 아침을 먹고 부랴부랴 준비를 한다. 8시 20분에 집에서 나와 학교 가는 은서를 배웅하고 은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 8시 40분. 청소대행업체 사무실까지 서둘러 뛰어도 항상 9시가 조금 넘는다. 반장과 조그만 승합차에 청소용품을 싣고 출발한다. 몇 개의 상가건물과 오피스텔을 청소하고 나면 오후 1시. 승합차에서 미리 싸간 도시락을 10분 만에 먹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오후 6시 30분까지 건물을 돌며 청소를 마치고 뒷정리 한 다음 어린이집에 가면 7시가 조금 넘는다. 항상 제일 마지막까지 남아 혼자 블록 쌓기 하고 있던 은지가 날 보고 뛰어와 안긴다. 집에 가서 저녁밥을 차리고 있으면 은서가 영어학원에서 돌아온다. 셋이 저녁을 먹고 은지가 잠이 들 시간인 밤 8시 30분쯤 집을 나간다. 시내 편의점 앞 간이의자에 앉아 대리운전 콜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쪽잠을 잔다. 그렇게 밤 12시 30분까지 대리운전을 한 다음엔 역에서 새벽 1시에 출발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센터에 간다. 가는 버스 안에서 쪽잠. 거기서 약 2시부터 4시까지 대리 수면을 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시 쪽잠. 그렇게 집에 오면 새벽 5시. 7시 20분까지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아빠, 나 빨간색 티셔츠 어디 있어?”

아침을 차리고 있는데 은서가 방에서 옷장을 뒤지며 말했다.

“빨간색? 그거 어제 빨아서 널어놨는데.”

“정말? 나 오늘 그거 입고 가야 되는데.”

“딴 거 입으면 되잖아.”

“안 돼. 오늘 운동회 응원 연습 때 우리 반 다 같이 빨강으로 맞춰 입기로 했단 말이야.”

“빨간색 옷 다른 거 없어?”

“없어. 그거 밖에.”

결국 은서는 방구석 건조대에서 아직 마르지도 않은 빨간 티셔츠를 기어코 입었다. 어차피 연습이니까 다른 옷 입고 가도 되지 않느냐고 말해도 고집부렸다. 이럴 땐 꼭 제 엄마를 쏙 빼닮았다.

“아빠, 나 영어 학원 그만 다니면 안 돼?”

은서가 밥상 앞에 앉자마자 말했다.

“무슨 소리야. 얼마 다니지도 않았는데 왜 그만둬.”

“영어 해봤자 앞으로 쓸 일도 없을 거 같고. 그리고 내가 학교 끝나고 곧바로 은지 데리고 오면 좋잖아. 은지도 늦게까지 혼자 안 남아도 되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데. 크면 다 쓸 데 있어. 네 친구들도 다 학원 다닌다면서.”

“그래도……. 아빠 지금 얼굴이 말이 아니야.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왔어. 나 학원비 때문에 대리 수면인가 뭔가 시작한 거잖아. 그럴 필요 없다니까?”

“김은서 그만. 거기까지. 너 친구들은 다 영어학원이다 뭐다 다니면서 공부 열심히 하는데 너만 꼴찌 할 거야?”

“학원 안 다녀도 할 수 있어! 그리고, 꼴찌 좀 하면 어때? 공부가 밥 먹여줘?”

“그럼! 공부가 밥 먹여주지! 아빠 봐. 공부 안 하니까 지금 이 모양 이 꼴인 거 몰라? 아빠처럼 살래? 이게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

“뭐가 날 위해서야! 난 이런 거 해달라고 한 적 없다고!”

은서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쾅하고 닫히는 소리에 은지가 놀라 울었다.

 

승합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은서 담임선생님이었다. 반장에게 욕을 잔뜩 들으며 양해를 구하고 급하게 학교로 갔다.

상담실에는 선생님과 은서가 있었고 탁자 위엔 부서진 휴대전화가 있었다. 은서 거였다.

“은서가 휴대전화로 친구를 때렸어요.”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은서의 잘못만은 아니었다. 어제저녁에 반 아이들이 스마트폰 단톡방에서 단체복 색깔을 갑자기 빨간색에서 하얀색으로 바꿨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아닌 구형 휴대전화를 갖고 있는 은서는 당연히 단톡방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반에서 혼자만 색깔이 바뀐 걸 몰랐던 것이다. 결국 은서 혼자 빨간색 옷을 입고 갔고, 아이들은 그런 은서를 보며 놀려댔다. 그중엔 은서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놀린 아이가 있었고, 은서가 그만 화가 나서 그 아이를 휴대전화로 때렸다는 것이다.

“아마 아이들이 은서를 놀리기 위해 일부러 입을 맞추고 그런 거 같아요. 은서 잘못은 아니니까 너무 혼내진 마세요, 아버님.”

은서는 내가 온 뒤로 계속 고개 떨군 채 앉아있었다.

 

시내에서 대리운전 콜을 기다리며 휴대전화 대리점을 찾았다. 가장 최신 스마트폰 가격을 물어보니 한 달 방세를 웃도는 가격이 되돌아왔다. 어차피 매달 전화요금과 같이 청구되니 그리 큰 부담은 아니라는 직원의 말에 덜컥 구입했다. 인력사무실에 대리 수면 시간을 세 시간으로 늘려달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으니 대리운전 콜이 떴다.

 

뒷자리에 앉은 30대 남성은 이미 거하게 취한 상태였다. 차 안이 그가 내쉬는 술 냄새로 진동했다. 운전석 창문을 살짝 열자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다.

“아저씨, 거 히터 좀 틀어주세요. 춥네.”

남성의 말에 얼른 창문을 닫고 히터를 틀었다. 후끈한 기운이 금세 차안을 메웠다. 남자는 어느새 낮게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밝은 전조등이 어두운 밤길을 비추고 있었다. 외제차라 그런지 차는 부드럽게 흔들리며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갔다. 늦은 밤, 도로 위를 달리는 다른 차는 없었다. 어둠과 하얀 전조등 불빛이 영원히 이어질 듯이 눈앞에 펼쳐졌다. 사방은 고요했고, 어둠은 짙었다. 후끈한 공기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자꾸 눈꺼풀이 내려앉았다.

환한 불빛과 경적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바로 앞에서 마주 오는 차가 보였다. 급하게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에서 오던 차가 운전석 문을 들이받았고 그 충격으로 차가 옆으로 튕겨나가며 가드레일에 부딪혔다. 왼쪽 다리에 날카로운 충격이 전해졌다. 뒷자리의 손님이 앞으로 쏠리며 앞좌석에 머리를 부딪쳤다.

 

다행히 차량 파손과 차주의 병원 치료비는 대리운전 회사 보험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나도 다리에 철심을 박고 깁스를 해야 했다. 의사는 일주일은 입원해야 하고, 그 뒤로도 최소 3개월은 깁스를 해야 뼈가 붙을 거라고 했다. 회사는 당분간 쉬고 있으면 나중에 연락 주겠다는 말로 퇴사 통보를 했다. 걸을 수 없으니 낮에 하는 청소대행 일에도 차질이 생겼다. 병상에 누워 지낸 지 나흘 째, 반장이 사람 새로 구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2층의 주인아주머니께 사정해서 입원해 있는 동안 집에 자주 들러 아이들 밥을 챙겨달라고 부탁했다. 퇴원하고 보증금을 빼서 수술비와 치료비를 충당했다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