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Leik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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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Leika
 

 

 

 

 

추적추적 어둠 속에서 비가 내렸다. 묵직하게 쏟아진 비는 파헤쳐진 흙바닥을 적셨다. 깊게 눌러쓴 모자챙을 타고 또르르 빗물이 흘렀다.

 

통곡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조문객들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일도 없었다. 이 날은 로도스로브 가의 가주와 안주인이 땅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영면에 든 날과는 달랐다.

 

사창가를 주름잡던 난봉꾼 구스타브 로도스로브의 최후는 허망했다. 자신의 아들을 보기 위해 배를 탔다가, 아내와 함께 차가운 바다에 수장되어버린 것이다.

 

유해?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인부들이 묻고 있는 것은 텅 빈 관이었다. 가묘였다. 공작이라는 지위에는 어울리지 않는 수치스러운 것이었다.

 

 

 

뎅. 뎅.

 

 

 

젖은 흙이 관을 덮기 시작하자, 망루의 종이 울었다. 그들의 영지를 다스리던 가주와 안주인이 죽었으니, 어서 울라는 재촉이었다. 우는 이를 울라고 재촉할 리는 없었다.

 

전대 가주였던 구스타브는 가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여색을 잡는 일에는 능했지만, 자신의 가문을 잡지는 못했다. 그가 남긴 것은 막대한 빚뿐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었네.’

 

 

 

챙 밑으로 드리워진 검은 레이스가 있음에 나는 감사했다. 지금 내 표정이 분명 꼴불견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약간 일그러진 얼굴일 테지.

 

약간이기는 하지만, 공작가에서 얼굴에 표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이런 자리에서.

 

레이카 로도스로브. 그것이 내 이름이었다. 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타칭 공작가 영애의 이름이었다.

 

사실 이것도 그리 옳은 표현은 아니다. 나는 로도스도브라는 이름만을 물려받았을 뿐, 하등 그들과 관계된 것이 없었으니까. 이건 전부 다 어머니의 창녀 기질 때문이었다.

 

본디 나와 내 어미는 사창가에서 비루한 삶을 살았다. 이건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나를 낳은 그녀는 나름 그 생활에 만족했던 것 같다. 그녀는 색에 취해 살았고, 자신을 타인에게 내어줌으로써 살아있음을 느끼던 사람이었으니.

 

나 또한 그녀가 잘못된 삶을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일은 없지 않은가. 그저 혼자 타락했을 뿐.

 

하지만, 그녀가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을 건드린 것은 문제였다.

 

구스타브는 첫 관계 이후 내 어미에게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교태를 부리고 웃으면서 다가오는 여자를 마다할 수 있는 자제력이 그에겐 없었다.

 

기어코 그는 그녀를 제 집안까지 들여 서로의 욕망을 채워주었고, 그 이후 나는 성을 얻었다. 내가 4살 때의 일이었다.

 

 

 

“레이카.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도 괜찮겠느냐.”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외숙부다. 얼굴이 차게 식었다. 절대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그리 슬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구나.”

“로도스로브의 일원이라면 속으로 울음을 터뜨리는 법을 알아야 하…”

“개소리. 네 년은 그냥 그 창녀 계집애의 핏줄이라 울음이 나오지 않는 것뿐이야.”

 

 

 

볼살이 축 늘어진 외숙부는 터질 것 같이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날 바라보았다. 그의 지론이었다. 창녀 배에서 나온 자식은 창녀라는 것.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눈엔 욕정이 번들거렸다. 이젠 재미도 없을 정도로 익숙해진 기름기 낀 눈빛이었다.

 

 

 

“그래. 그런 네 년도 쓸모라는 것이 있겠지.”

“말을 삼가시지요. 여긴 로도스로브의 전 가주께서 영면에 드신 곳입니다.”

“쳇. 가운뎃다리만 유별나던 녀석이 무슨. 어쨌든, 네게 할 말이 있다.”

 

 

 

이런 쓸데없는 만담으로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재주였다.

 

공작가의 안주인이 되었던 내 어미를 창녀라 욕하기는 하지만, 그의 인생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매일같이 술이나 퍼마시면서 여자를 탐했지만, 돈도 없고, 성격 더러운 추남을 받아줄 여자는 사창가에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제 누이의 소식을 듣고 공작가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리기에 녀석도 성을 받을 수 있었다. 고작해야 내 것처럼 이곳의 모두가 무시하는 성이었다.

 

 

 

“그 창녀 년과 난봉꾼이 죽었으니, 이제 다음 가주 문제로 시끄럽겠구나.”

“다음 가주님은 아이작으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만.”

“하! 그 녀석은 이제 천애 고아나 다름없어. 게다가 아직 15살 밖에 안 되었지. 그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가주자리에 오른다니, 로도스로브 가문의 역대 가주들이 울겠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입니까.”

 

 

 

더는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외숙부가 이런 짓을 할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는데, 이번이라고 다르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그가 배를 출렁거리면서 살찐 손을 휘휘 저으며 침을 튀겨댔다.

 

 

 

“네 년이 공작가의 주인이 되어줘야겠다.”

“불가능합니다만. 방법은 있으신지요.”

“하. 어차피 이 공작가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야. 멍청한 가신들과 핏덩이 아이작은 돈으로 치워버리면 그만이지.”

 

 

 

멍청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멍청할 수 있는 것인지, 매번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아무리 쇠약했어도 공작가는 공작가다. 물론 구스타브가 엉망으로 내정을 했기에(내정을 했다고도 할 수 없지만), 모든 영지는 저당 잡혀있고, 쓸 만한 물건도 남아있지 않은 몰락 직전의 공작가이긴 하다.

 

하지만 공작가는 망해도 3년은 간다. 매일 같이 술에 취해 배에 기름기만 불리는 이 외숙부 정도는 흔적도 없이 지워버릴 수 있다.

 

 

 

“그러시군요.”

“그래! 이제 멍청한 네 년도 내 계획을 알아준 모양이구나! 그럼 조금 뒤에 내가 다음 가주를 뽑아야한다는 발언을 할 때 내 손을 들어줘야 할게야.”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보겠습니다.”

 

 

 

외숙부가 등을 돌리고는 자신이 이겼다는 듯이 의기양양하게 볼을 씰룩거렸다. 당장에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참아야했다.

 

지금의 나는 정당성이 없었다. 공작가의 자식이지만 그래봐야 창녀의 자식에 불과할 뿐이었다.

 

속이고 싶은 핏줄이었다. 사창가에서의 기억은 내게 전혀 없었다. 눈을 뜨고 이곳에서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그들은 나를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인정할 수 없었을 거다. 나라도 그리 했을 테니까.

 

다만, 흐르는 피 때문에 인정할 수 없었을 거란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귀족을 너무 쉽게 본 탓이었으리라.

 

오늘만 해도 외숙부와 같은 언사를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다. 물론 저 돼지가 인간으로 화한 것 같은 저 자가 지껄인 망발은 없었지만, 그 내용은 다를 게 없었다.

 

네 년이 공작가를 이어라. 잇는 척해라. 난 그 뒤를 봐주마.

 

썩을. 공작가를 이을 생각 따위 없었다. 이곳에서 나가는 것만이 내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인 마당에 굳이 왜 지위라는 목줄까지 채워지면서 여기에 남아야하겠는가.

 

결국 그들은 공작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내 배다른 동생, 아이작은 처리해버리고 대신 공작가를 이은 내게 자신의 아이를 접붙이려는 속셈이겠지. 더럽다.

 

 

 

“누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 황량한 저택에서 내게 누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었으니.

 

 

 

“아이작. 오셨나요?”

“네. 아까 도착했어요. 그보다 존댓말은 하지 않아주셨으면 하는데…….”

“아…. 응. 그래. 아이작.”

 

 

 

잘 정돈된 갈색의 머리카락과 비교되는 황망한 얼굴이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