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잔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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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근하자. 퇴근하고 해결하자. 늦었다. 마을버스로 역까지 가서 전철 타고 내려서 또 십 분 넘게 걸어서 출근하려면 두 시간. 서울 살면 돈 버리고 몸 편하게 택시라도 타겠지만 경기도민은 그런 선택지도 없다.

회사는 지옥이고 출퇴근길 전철은 정글이다. 노동도 힘든데 인간적으로 출퇴근길은 앉아서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여자 150cm이면 180cm짜리 남자 가슴에 얼굴 파묻기 좋은 로맨틱한 키라고 누가 그랬나. 전철에서 승객들이 우르르 타면 떠밀려서 앞에 서 있던 떡대 등짝에 본의 아니게 얼굴을 묻고 립스틱 자국 남기기 좋은 키겠지. 떠민 사람, 수요 예측 잘못한 지하철, 이 시간에 출근시키는 회사 잘못이지 내 잘못도 아닌데 세탁비를 물어 줘야 하나 고민하는데 사람이 더 많이 탄다. 어깨로 밀쳐지고 백팩으로 얻어 맞는다. 세상이 나한테만 왜 이렇게 무례하고 위험하고 적대적이야. 내가 만만해? 욕이라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숨이 마음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손으로 입을 막고 후욱후욱 과호흡을 하니까 토하려는 줄 알고 지옥철에서 승객들이 꿈틀거리며 길을 내 준다. 간신히 역 벤치에 주저 앉는다. 핸드백 안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입에 대고 숨쉰다. 생각, 생각을 해야 된다. 진정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정상적으로 숨 쉬는 척 나를 속여야 괜찮아 진다. 이건 그냥 과호흡이야. 공황장애 같은 게 아니야.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래. 좁고 밀폐된 공간에 과밀하게 승객이 모여 있으니까 산소가 부족해서 그런 것뿐이야. 그런데 왜 저 많은 승객들은 다 말짱하고 나만 이러지? 뭐가 문제야? 얼마 전까지는 한 번만 내렸는데 요즘은 두 번씩 내려서 쉬었다 가야 겨우 전철 타고 출근할 수 있잖아. 사람 냄새가 역겨워서 토할 까 봐 매일 빈속으로 타는데도 목구멍이 아프다. 앞으로 더 심각해지면 어쩌지? 아냐. 이런 생각 하지 말자. 다른 생각을 하자.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내가 본 거, 그거 인어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