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과 나와 죽음과

  • 장르: 로맨스, 일반 | 태그: #사별 #목련 #백목련 #청약 #시아버지 #며느리 #분양
  • 평점×54 | 분량: 65매
  • 소개: 남편이 삼 년 전에 죽고 난 이후로 나는 시아버지와 동거 중이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분양 받았던 새 아파트의 입주가 시작되고 나는 분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더보기

아버님과 나와 죽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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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 집에 못 살겠어요. 팔아 버릴래요.”

분양 받은 새 아파트에 입주하기 전에, 하자가 있는지 점검하던 날이었어. 기껏 아버님이랑 집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꼼꼼하게 벽에 간 실금까지 체크해 놓고서는 주저앉아 울어 버렸어.

“아버님이 새 집에서 냄새 나는 거 잡는 데에 양파가 좋다고 가져오셔서 눈물이 나잖아요!”

너와 모델하우스에 가고 청약을 하고 당첨되고 우리는 운이 좋다고 웃었지. 떴다방에서 프리미엄 붙여서 팔라고 해도 앞으로 이 집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며 평생 살 거라고, 안 팔 거라고 했어. 감정적이고 하루하루 되는대로 사는 나는 분양 같은 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계획적인 너는 학군이랑 학원가, 근처에 병원이랑 공원이 있는지, 역세권인지 다 따져가며 아이 키우기 좋은 이 동네 아파트를 분양 받았어. 꼼꼼한 너는 우리 자금사정이랑 아이가 뛰어 놀 것까지 생각해서 필로티 구조 아파트의 2층 같은 1층을 샀지. 그랬더니 창 밖으로 목련꽃이 너무 가깝게 보이잖아. 이 놈의 아파트는 왜 하필 많고 많은 조경수 중에 목련을 심어서…

나는 목련을 좋아했어. 나뭇가지에 흰 새가 앉아있는 것 같아서 예쁘잖아. 이 나쁜 놈아, 너도 내가 목련 좋아하는 거 잘 알면서 왜 목련꽃 피는 계절에 새처럼 날아가 버렸니. 네 장례식장 앞에도 백목련이 유령처럼 나뭇가지에 붙어 있었는데. 난 이제 목련이 싫어. 떨어진 목련꽃잎은 진흙 묻은 발자국처럼 질척거리잖아. 왜 이 좋은 계절에 죽었니. 가족끼리 커플끼리 손잡고 꽃놀이 나오는 이 좋은 봄날에. 왜 다들 즐거운데 나만 외롭고 우울한 거니. 차라리 춥고 우중충한 겨울에 죽지 그랬어. 아버님은 조문객들이랑 유족들 고생하지 말라고 따뜻한 봄날에 너와 어머님이 하늘로 갔다고 했지만 조문객은 한번 왔다가는 거고 나는 매년 봄마다 이럴 텐데 왜 너는 남들만 배려하고 난 괴롭혀? 왜 너는 그 날 그렇게 죽어서 나랑 아버님이 서로의 배우자 때문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게 해. 아버님은 어머님이 모임에 갔다가 너한테 데리러 오라고 하지 않았으면, 그냥 지하철 타고 집에 왔으면 아무도 안 죽었을 거라고 하시고 나는 네가 운전하지 않았으면 네가 좀더 일찍 출발했으면 늦게 출발했으면 다른 길로 왔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그러다가 아니라고, 이게 다 그 사고 낸 운전자 잘못이지 너와 어머님의 잘못은 없다고. 아니라고, 그냥 운명이라고 그러는데 사실 나,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 한 게 있어.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