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 부커

작가

퍼스널 부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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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고미는 다시 벤치에 앉아 은 장신구를 코트 주머니에 넣고 가방을 무릎 위에 놓았다. 이제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은 가서 그 불길한 건축물이 아직 보이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그거 이름이 뭐라고 했지? 그래. 엠바카데로 프리웨이.

 

높은 성의 사나이 – 필립 K. 딕

 

 

 

케이는 탁자 위에 놓인 책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내 얼굴만 살폈다. 볼만한 광경이겠지. 왼쪽 눈은 부어서 제대로 뜨고 있기 힘들었고 코는 주저앉았다. 급한 대로 지혈을 했으나 여전히 콧속에 엉켜버린 피가 막혀있어 숨마다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 세 개는 퉁퉁 부었다. 적어도 한두 개는 부러졌을 것이다. 진통제가 고통은 덜어주었으나 머릿속에 구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구름이 천둥 번개를 만들고 비를 쏟아내기 전에 나는 이야기를 마무리해야 했다. 그리고 이 빌어먹을 비유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구름과 천둥.

 

“우선 병원에 가보는 게 좋지 않아요?”

 

“그럼 당신과는 다시 볼 일이 없을지 모릅니다. 이 집을 벗어나면 바로 공안으로 끌려갈 테니까.”

 

“의사를 집으로 부르는 편이 낫겠군요.”

 

“아니…”

 

나는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했다. 바로 옆에 서있는 휴머노이드 집사는 전화를 걸려다가 멈칫하는 몸짓이었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해주시면 됩니다.”

 

“내가 왜 그래야하죠?”

 

좀 전에 의사를 불러주겠다는 말투와는 다르게 냉랭한 목소리였다.

 

“첫째, 이 책이 주문한 책 맞습니까?”

 

케이의 시선은 다시 탁자 위의 책으로 내려갔다. 책은 아직 가죽과 접착제 냄새가 남아있었다. 가죽 끈을 꿰어 테두리를 마무리한 표지에는 제목만이 음각으로 인두질 되어있었다.

 

선지자.

 

저자의 이름은 없다. 케이는 물끄러미 책을 바라보다가 책을 들고 첫 문장을 소리 내 읽었다.

 

“들어라, 이것이 나의 저주다.”

 

케이는 미간을 살짝 찡그렸지만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그녀는 소설의 첫 장을 읽어 내려갔다. 케이의 목소리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 관객이나 평론가는 없었다. 배우로서 그녀의 목소리는 약점으로 자주 부각되었다. 지나치게 가늘고 높은 톤을 가졌기 때문이다. 취향에 따라서는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들려 좋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만이 더 많았다. 대신 발음이 정확한 편이었기 때문에 감독들이 그녀와의 작업을 선호했다. 반혁 내전 시절, 거의 모든 병사들의 사물함 안에는 그녀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길고 탄탄한 근육질의 다리를 드러내고 짧은 셔츠 하나만을 입은 채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속의 그녀는 지금 운동복 차림으로 자신의 집 거실에 앉아있었다.

 

두 번째 페이지까지 읽던 도중에 책을 내려놓은 케이는 인상을 찡그리고 낭독을 멈췄다. 몇 페이지를 더 들춰본 다음에 책의 무게를 가늠하듯이 그것을 흔들어 보았다. 마치 선물상자를 열기 전에 흔들어 보며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가늠해보려는 동작 같다.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느냐, 본론을 말하라는 의미다.

 

나는 그나마 성한 한 쪽 손으로 가방 안에서 원고 뭉치를 두 묶음 꺼냈다. 하나는 디가 번역한 한글 번역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독일어로 쓰인 ‘선지자’의 원고였다. 독일어 원고는 디가 번역한 한글 번역 원고와 마찬가지로 표지에는 Der Prophet이라는 제목만 쓰여 있다. 만년필로 정성스럽게 쓴 글씨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구분하기 힘든 필체였다.

 

“이 글, 누가 썼습니까?”

 

 

 

2.

 

불태우는 일은 즐겁다.

 

화씨 451 – 레이 브래드버리

 

 

 

열흘 전.

 

큐의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가급적 빨리 면담을 마치고 싶게 만드는 고객과 대화중이었다. 교수는 자신이 갖고 있는 장서들이 지나치게 빈약한 것이 아닌지, 자신의 학식과 유명세에 어울리려면 어느 정도 두께의 책이 몇 권이나 서가를 장식해야 어울릴지를 계속 고민해왔고, 그 고민을 나와 나누고 싶어 했다. 두꺼운 책은 그만큼 비싸다. 가죽으로 표지를 감싸는 장정이라면 가격은 더욱 올라간다. 하지만 교수는 그만한 돈을 낼 여력은 없다. 고민의 출발점이다. 요한 하위징아의 책이 갖고 싶었던 교수는 나와 가격협상을 시도하고 싶어 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책을 이루는 모든 것들-번역, 종이의 재질, 활자의 크기, 잉크의 색상, 장정의 규격 등등-에 대해서는 언제나 협상의 자세가 열려있다. 하지만 가격만큼은 협상하지 않는다. 교수가 헤어진 전 여자 친구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책이라는 지성의 정수를 만드는 장인으로서 그 가치를 올바르게 향유하는 지성인에게는 특별한 가격정책을 적용해달라는 견해를 길고도 지루하게 피력하는 도중에 걸려온 큐의 전화는 매우 반가웠다.

 

“선배에게 먼저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디가 죽었습니다. 아침에 공안 보호관찰관이 집에서 발견했어요. 아직까지는 자살로 파악됩니다.”

 

잠시 머릿속이 불 꺼진 방이 되었다. 충격이나 깊은 슬픔은 아니었다. 가족에 둘러싸여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는 결말이 그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삶의 끝을 맞이했다는 소식도 의외이긴 마찬가지였다.

 

“유서는?”

 

“없습니다. 찾는 중이에요.”

 

디는 지난 십년간 공안의 보호관찰 대상자였다. 가석방 조건으로 보호관찰 명령이 있었고, 매달 공안의 보호관찰관이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십년이 되는 이번 달이 보호관찰관의 마지막 방문이었다. 마지막 방문을 한 보호관찰관은 디와 연락이 되지 않자 아파트 관리인을 불러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디는 보호관찰관의 방문 시 지정된 장소와 시간을 지켜야만했다. 한 달을 남겨 놓고 보호관찰법 위반으로 다시 체포될 수도 있었다. 집 안에 들어간 보호관찰관이 만난 것은 디의 시신이었다.

 

공안은 천리안이라 부르는 양자두뇌 신경망을 통해 주요 정치범과 그의 가족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보호관찰관의 신고는 디의 수사를 담당했던 큐에게 즉시 전달되었다. 적어도 큐에게 반혁연맹은 종료된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디가 숨기고 있는 반혁분자들이 남아 있다고 여겼다. 큐는 나에게 안치소로 와서 디의 시신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 디의 신원을 확인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시신 안치소에서 큐와 나를 맞이한 휴머노이드에게는 얼굴이 없었다. 광소자가 밀집된 유기 디스플레이만이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를 덮고 있었다. 얼굴 없는 휴머노이드는 나를 디의 아버지 쯤 되는 보호자로 여긴 듯했다. 얼굴 없는 그의 안내는 정중했다.

 

디의 시신은 작았다. 작고 얼어붙은 몸, 그리고 복부에서 가슴 쪽을 향해 뻗은 Y자 모양의 봉합 자국을 보니 그녀가 한때 머물렀던 오두막처럼 보였다. Y자 모양을 한 문을 열고 집주인은 집을 나섰고, 다시 돌아올 일이 없다는 듯 그 문에 못질 한 것처럼 보였다.

 

“사인은?”

 

“바르비탈입니다.”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보건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 지금도 근무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의료기록을 조사해 줄 수는 있을 거야. 만일 까다롭게 굴면 내 이름 대고 아직 빚이 남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해.”

 

나는 큐의 링커로 보건국 직원의 연락처를 전송했다.

 

“집을 볼 수 있나? 찾아야 할 물건이 있어.”

 

“부탁하신다면…”

 

“부탁해.”

 

바르비탈을 치사량까지 구하려면 세심하고 귀찮은 일들을 반복해야 한다. 까다롭게 처방전을 받아 소량의 약을 산 다음, 다시 다른 병원으로 옮겨 처방전을 받고… 그런 일들의 반복이다. 그래야만 치사량에 가까운 양을 겨우 얻을 수 있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했다는 말은 아니라는 소리다. 그녀답게 오랜 시간을 들여 천천히,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며 약을 모았을 것이고, 그것들이 모인 순간 결행 한 것이다. 내가 알던 그녀다운 행동이다. 저금통에 동전을 쌓아가듯, 한 알 한 알 죽음을 모아가며 결심을 굳히고 죽음을 계획하는 그녀의 모습이 그려졌다.

 

약을 모으는 동안 결심이 흔들릴 만한 일은 없었을까, 미처 깨닫지 못한, 삶에 대한 작은 실낱같은 희망조차도 그녀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녀가 오랜 기간에 걸쳐 죽음을 준비한 이유가 궁금했지만 우선은 내 일부터 해결해야 했다.

 

“생활이라는 게 없는 집이네요.”

 

디의 집을 둘러본 큐는 그렇게 감상을 요약했다. 그녀의 집에는 전화도 텔레비전도 없고 자료검색을 위한 데이터 터미널도 없었다. 이빨 빠진 사기 그릇 두 개와 수저 한 벌, 낡은 옷 몇 벌이 나왔다. 책도 없고 사전도 없었다.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설명할 만한 물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찾는 원고도 보이지 않았다.

 

디는 고집스럽게 원고지를 사용해서 작업해왔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기에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용지들을 사용했다. 집안에 그간의 작업 원고가 없다면 가능성은 둘 중 하나다. 평소에 남겨놓지 않았거나 아니면 자살 전에 없애버린 것이다. 내가 찾는 것은 이곳에 있어야 하지만 지금 이 곳에 없는 원고다.

 

 

 

디는 지난 십 년 동안 나와 함께 책을 만들어온 번역자였다. 엄밀히 따지자면 책을 만드는 것은 나만의 일이었고 디는 케이에게 납품할 작품을 고르고 원고를 번역했다. 혁명 이전의 세계에서라면 둘을 같은 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책이 사라진 혁명 이후의 세계에서 둘 사이에는 깊은 강이 흐른다. 오해 마시라. 레이 브래드버리의 세계에서 벌어진 것 같은 일은 없었다. 로봇 사냥견도, 숫자 451이 새겨진 헬멧을 쓴 방화수들도 없었다.

 

책은 자연스럽게 멸종되었을 뿐이다. 혁명정부의 모바일 기기 보급 정책은 거의 모든 국민들에게 한 개 이상의 링커를 소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전까지 종이 위가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던 언어들은 신대륙을 만났다. 언어는 무한히 펼쳐진 지평선을 향해 질주했고 인쇄시장은 사멸에 가까울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제 종이에 인쇄된 책은 수집가들을 통해서만 거래되는 상품이 되었고, 새로운 책은 더 이상 인쇄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해 말라.

 

책은 죽은 것이 아니다. 점토판에서 두루마리, 코덱스로 그 육체를 바꿔왔듯이 이전 세대가 책이라 부르던 것의 육체가 멸종된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미 멸종된 형태를 재현할 뿐이다. 거물급 고객 대여섯이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 고객들 중에서도 케이는 특별했다. 그녀는 절판되어 데이터 형태로만 남아있는 작품들을 주로 주문했고 자신만을 위한 새로운 번역을 의뢰했다. 그렇게 디와 나는 케이만을 위한 책을 만들어 왔다.

 

디는 영어와 일어, 독일어에 능통했고, 그것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일은 더욱 잘했다. 양자두뇌로 구현된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 번역가는 제일 먼저 멸종할 직업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다른 직종-가령 의사라던가-에 비해 좀 더 수명이 연장 된 것은 엄밀한 단어 선택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는 아직도 인간의 번역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화자와 청자의 상하관계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화법이 중요한 언어에서는 번역가의 역할이 더 중요했다. 주로 외교적 이슈나 기업의 민감한 문서, 계약 등을 번역하는데 인간 번역가의 위상이 높아진 반면 그 이외의 분야에서는 모두 양자두뇌에게 대체당했다. 소설번역도 마찬가지였다. 혹자는 기계가 인간의 감성을 따라갈 수 없다며 양자두뇌 번역기의 가치에 대해 의구심을 표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감성도 모르고 양자두뇌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이들의 말이었다. 인간의 감성이란 대부분 학습된 반응이기에 패턴화가 가능하다. 대량의 단어, 구문, 표현들을 패턴화 시키고 그것을 조합하여 적절한 강도의 배합을 다양하게 만들어 내는 것. 창작능력이 인간 고유의 정신 활동이라는 환상은 구체제 시절에 이미 깨졌다.

 

 

 

집사는 십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케이의 시중을 들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이 십년 전이었고 그는 이전부터 케이의 집사였으니 최소 십여 년은 맞을 것이다. 그는 ‘회사’의 휴머노이드로 출시되었을 때부터 노인의 모습이었고 지금도 노인의 모습이다. 모시고 있는 고용주의 은밀한 사생활을 적당히 알아서 잘 처리하고 보안유지는 완벽에 가까웠다. 집사는 하루 한 시간 정도, 이른바 데이터 최적화라고 불리는 인간으로 치면 수면시간과 같은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을 케이의 일정과 집을 관리하는데 시간을 바쳤다. 그렇기에, 케이와 연락을 취하려면 반드시 집사를 거쳐야 했다. 집사는 가능한 빨리 케이를 만나고 싶다는 나의 부탁을 거절했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집사가 겨우 시간을 잡아주었다.

 

“10분입니다.”

 

입구에서 나를 맞이한 집사가 정중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에 초시계를 들고 시간을 잴 것 같은 말투였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미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을 테니.

 

케이의 집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단어의 쓰임이 적절하지 못했다. 저택이라는 단어도 비슷하다. 저택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집을 부르기에는 너무나 소박한 단어였다. 지하통로로 연결된 세 개의 대형 건물은 각각의 쓰임이 달랐다. 완벽한 사생활의 보장을 위해 항공 촬영이나 위성 촬영으로도 정원이나 건물 사이를 이동하는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로 외부 손님을 맞이하거나 파티 용도로 쓰이는 본관의 뒤로는 두 개의 건물이 더 있었다. 한 개의 건물은 케이의 생활을 위한 공간이었고 맞은편 다른 건물은 수영장과 영화관이 있었다. 그 외의 자체 발전 시설과 경호시설들은 부속건물에 나뉘어 있었다. 이 넓은 케이의 집에서 인간은 케이 한 명 뿐이었다. 한때 수많은 고용인들에게 둘러싸여 살았지만 케이는 어느 날 그들을 모조리 해고하고 전부 휴머노이드로 교체했다. 고용인들을 통해 외부로 그녀의 사생활이 담긴 영상이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집사는 나를 접견실이 있는 본관으로 안내하던 중 케이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듯했다. 그는 말없이 케이의 지시를 듣고 난 다음 나를 바라보았다. 못마땅하다는 표정이었다. 휴머노이드들이 감정을 얼굴로 표현할 때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다. 자신이 표현하는 감정이 상대방인 인간에게 그대로 전달되기를 원할 때이다.

 

“복도를 걷는 시간도 10분 안에 포함되나?”

 

내가 묻자 집사는 고개를 저은 다음 오른쪽 갈림길로 손짓했다. 늘 가던 본관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이 복도를 걷는 인간은 지난 10년 동안 선생님이 처음입니다.”

 

과시하는 말투, 하지만 동시에 경고의 의미와 많은 정보들을 담고 있었다. 오직 그녀만을 위한 장소라는 의미. 그리고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녀가 지난 10년 동안 침실로 들인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찌되었건 지금 내 상황에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케이의 드레스 룸으로 안내 받은 나는 집사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닐까 의심했다. 케이는 벌거벗은 채로 뒷모습을 나에게 보이고 있었다. 얼른 문 밖으로 물러선 나는 등을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메이드 복장을 한 두 대의 휴머노이드가 그녀에게 귀고리가 놓은 쟁반과 드레스를 들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바로 나가봐야 해서 시간이 없네요.”

 

귀고리를 귀에 대고 거울을 보던 케이가 말하자 집사가 재촉했다.

 

“10분 입니다.”

 

“알았어.”

 

집사는 드레스룸의 물러나며 드레스룸의 문을 닫았다. 표정 없는 두 대의 휴머노이드는 케이의 손짓에 따라 다른 귀고리와 목걸이를 챙기러 물러났다. 알몸에 드레스를 걸친 그녀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멋진 모습이다. 무신론자로 평생 살아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신자로 만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케이라는 여신을 섬기는 종교.

 

“곧 출발해야 해요. 보나마나 따분한 파티일 텐데… 그래도 어쩔 수 없네요. 급한 일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에요?”

 

“번역자에게 사고가 생겨서 주문하신 책의 납품 일정에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사고?”

 

케이는 그 단어를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처럼 반복했다.

 

“네, 그래서… 원고에 문제가 있어서… 작업이 지연될 것 같아서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케이는 다시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거울에 비친 그녀는 아까보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흥미를 잃은 표정이었다.

 

“심각한 사고인가요?”

 

“현재까지 작업한 원고 분량으로 봤을 때…아예 다른 번역자가 작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심각한 사고군요.”

 

그녀는 다시 드레스를 벗고는 검은색 드레스로 갈아입었다. 흡사 장례식에 입고 갈 차림새였지만 기묘한 관능이 흘러넘쳤다.

 

“무슨 일인가요? 말해줄 수 없나요?”

 

“아…”

 

나는 말끝을 흐렸다.

 

불행을 예감하는 표정으로 케이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향수 냄새가 코끝을 어루만졌다.

 

“우린 십년을 거래했잖아요.”

 

“자살…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는 내 손을 잡았다. 나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손의 온기와 부드러움이 나를 옭아매어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손등을 두드리며 케이는 말했다.

 

“마음이 아프시겠어요.”

 

이제껏 보아온 그녀의 어떤 연기와도 닮지 않은 훌륭한 연기였다. 연기가 아닌 진심인 것 같아 더 훌륭한 연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납기일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장례는요?”

 

“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가 튀어나와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장례. 디는 죽었다. 죽은 사람은 장례를 치러야 한다. 삶과 죽음의 당연한 절차를 잊고 있었다. 동시에 그녀의 삶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하는 절차에 내 삶이 얽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손에서 그녀의 온기가 사라졌다. 다른 드레스를 들고 온 휴머노이드에게 다가간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장례일이 정해지면 꼭 알려주세요. 책은… 친구의 생일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좀 늦어져도 어쩔 수 없지요. 생일은 내년에도 돌아올 테니까.”

 

갑자기 그녀가 말하는 친구가 실재하는 존재일까 궁금해졌다.

 

케이의 집을 나온 나는 어느새 어둑해진 길을 걷고 걸었다. 부자들의 저택과 빈민가가 자리잡는 위치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산을 끼고 있다. 케이의 저택이 그랬고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산책로를 통과하면 나오는 빈민가도 그랬다. 하나의 산을 남과 북으로 한 면씩 차지하고 자리 잡은 거리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케이의 냉장고보다도 작을 것 같은 컨테이너 박스가 겹겹이 쌓인 틈바구니는 골목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했다. 가난을 피하기 위해 일터에 나갔다 좁디 좁은 공간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시 가난과 살을 맞댄다.

 

컨테이너 박스 위에 걸터앉은 소년은 진지한 표정으로 스크롤의 화면에 얼굴을 고정하고 있다. 스크롤에서 들리는 소리로 추정해 보면 아마도 개인 방송 크리에이터들이 연예인의 옷차림과 사생활에 대해서 떠드는 이야기 같았다.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컨테이너 박스 안에 사는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진정성이 없는 아이돌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며 어느 걸그룹 멤버가 무대에서 동작을 자주 틀리는지 영상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었다. 세탁한지 며칠이나 됐는지, 아니, 올해 안에 세탁기에 들어갔다 나온 적은 있는지 궁금해지는 셔츠를 입은 소년은 그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 아버지가 그런 것처럼 스크롤 액정 속의 영상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이르자 컨테이너 타운에서 공단 지구로 이어지는 대로의 불빛이 저 멀리 보였다. 그리고 공단지구가 시작되는 고속도로 옆에는 초대형 홀로그램으로 케이가 등장하는 아파트 분양광고가 재생되고 있었다. 꿈과 행복, 자신의 가치를 완성하는 도시. 좀 전에 만나고 온 케이가 떠올랐다. 어쩐지 저 영상의 케이와 내가 만나고 온 케이가 동일인일까 하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았다.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을 보고 난 다음 자연인으로서의 그를 접했을 때생기는 이질감 같은 게 아니었다. 지난 십년간 내가 만들어 케이에게 판 책들은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그것을 읽기나 했을까? 케이의 집안을 들어가 본 곳은 외부에 노출된 본관과 그녀의 드레스룸이 있는 곳뿐이었다. 케이는 서고를 따로 갖고 있을 것이고, 그 서고의 위치는 알지 못했다. 문득 케이의 알몸까지 보고 나서 그녀의 서고가 궁금해졌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왔다. 알몸을 보거나 서고를 보는 일로 그의 본모습을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구체제 시절에는 인터넷이란 것이 있었다. 양자두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지금은 그것의 발전된 형태를 신경망이라고 불렀다. 그 신경망의 말단에는 스크롤이나 링커와 같은 개인 휴대기기들이 있었다. 기존의 퍼스널 컴퓨터 역할은 자연스럽게 터미널이라는 장비로 대체되었다. 개인 휴대기기인 링커는 아예 신체에 직접 접속되는 임플란트 형태의 단말기를 통하여 뇌신경에 직접 시각신호와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임플란트형 링커는 고가임에도 빠르게 확산되어 가고 있다. 혁명정부의 디바이스 보급 지원 사업과 맞물려 일어난 결과이기도 하다. 더 이상 콘텐츠를을 다운 받아 스크롤 같은 디스플레이로 보는 행위는 구세대의 유물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그것은 최하층의 빈민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임플란트형 링커를 몸에 부착한 이들은 다운로드 받은 데이터는 링커에 접속된 뇌 신경을 사용자의 두뇌에 직접 저장되었다. 책을 읽을 시간과 그것을 쌓아둘 공간은 사치품 취급을 받았다. 좁은 방안에 몸을 뉘인 이들은 링커를 통해 눈앞에, 아니 머릿속에 펼쳐지는 연예인들의 화려한 모습과 크리에이터들이 편집한 영상들을 뇌에 욱여넣는다. 사료처럼 우걱우걱.

 

임플란트 링커 시술을 무료로 해준다는 홀로그램 광고판들을 지나 버스가 다니는 큰길가에 들어섰을 때 큐로부터 전화가 왔다. 별 의미 없는 인사 몇 마디를 나눈 다음 그가 말했다.

 

“선배, 디의 유품들이 더 있는지 조사해봤는데요, 없어도 너무 없는데요? 은행 계좌나 개인 금고 모두 정리되어 있습니다. 완전히요. 한마디로 제로에요. 빚도 없고 남은 것도 없습니다. 하다못해 공과금이나 통신료 모두 다 처리했어요. 죽기 전에 싹 다 정리 한 것 같습니다.”

 

나는 다시 디의 집안을 떠올렸다.

 

“그 친구 집은 공공 임대아파트야. 시설관리공단과 환경관리공단 데이터를 뒤져봐. 집집마다 배출되는 쓰레기봉투는 다 ID를 추적 할 수 있기 때문에 내용물은 파악 못해도 배출량이 언제 늘었는지 줄었는지 확인 할 수 있어. 운이 좋으면 소각로에 들어가기 전에 되찾아 올 수도 있고.”

 

혁명정부 수립 이후 정부가 만든 민생 향상 지표관리라는 사업 항목이 있다. 각 개인의 소비 행태, 공공장소에서의 행동, 문화생활 행태를 전방위로 수집하여 양자두뇌들이 이를 분석하는 시스템이었다. 평범하고 쓸모없어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이 분석은 정책결정과 치안유지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물론 쓰레기 배출량도 그 안에 포함되었다. 지표관리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 이들은 공공분야의 취업이나 금융 대출 등에서 가산점이 주어졌다. 물론 이러한 지표 활용은 공공연하게 대중에 공표된 사실이 아니었다. 이미 사법과 행정의 대부분 의사결정이 양자두뇌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기에 인간은 그저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의 역할 만 할 뿐이었다. 아니 결정권자도 아니지. 양자두뇌가 분석하고 결정한 사안에 대하여 확인만 할 뿐이었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이미 공안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나는 공안요원이 사고하는 방식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표를 단순화하라. 확신하라, 그리고 의심하라. 단, 공안의 결정만은 예외다. 내가 찾는 것은 과연 원고 하나뿐일까? 확신과 의심이 동시에 찾아왔다.

 

그러한 지침에 따르듯 큐 역시 이제는 내가 명령권자가 아님에도 내 말을 충실히 따랐다. 죄책감은 없었다. 큐와 내가 가진 공통점 때문이었다. 우린 둘 다 반혁분자들에게 가족을 잃었다. 나는 딸을 잃었고, 큐는 아내와 두 아들을 잃었다. 내 딸은 내 어깨를 관통한 7.62mm탄환에 맞았고 큐의 가족은 RDX폭약이라는 차이 뿐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큐가 나와 디의 동업을 방조하고 내가 금편을 거래하는 수법으로 얻는 소득들에 대해서 눈감아주는 이유도 그 사건에 뿌리를 두는 것이다. 큐에게는 아직 종결된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디를 감시하며 그 사건의 진범을 찾아내기 위해 디를 가까이에 두고 있다고 여겼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큐가 그렇게 여기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다음날 아침에 큐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소각장의 풍경은 어젯밤의 컨테이너 타운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큐는 내게 마스크를 건냈다.

 

“쓰든 안 쓰든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규정이랍니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는 편이 더 나았다. 코를 도려낼 것 같은 악취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코를 잡아 뜯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는 않았다. 소각장과 재활용 분리장으로 나뉘는 콘베이어 벨트의 분기점 옆에 마련된 작업대 위에는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재활용 작업장의 끄트머리에는 거대한 야적장이 내려다보이고 그 곳에도 어김없이 콘테이너 타운이 펼쳐져 있었다. 노인들이 야적장 주변을 맴돌며 감시용 휴머노이드들을 피해 야금야금 빈 깡통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작업장의 반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내 시선이 향한 곳을 보더니 투덜거렸다.

 

“아예 내쫓으려 해도 바퀴벌레처럼 계속 기어 들어와요. 여기 깡통(반장은 휴머노이드들을 그렇게 불렀다.)들도 이상하게 학습이 되었는지 뭘…좀…강경하게 못해요. 아예 용역 애들 불러다 싹 쓸어버리던지 해야 하는데 시에서도 암말 안하고… 공단에서는 쪼이기만 하고…내 참…”

 

마스크를 통과한 반장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듣기 싫어 나는 손을 들어 쓰레기봉투를 가리켰다.

 

“이것뿐입니까?”

 

“깡통들이 찾아낸 건 이것뿐입니다. 며칠 전 소각로 운송장치에 문제가 있어서 야적되어 있었거든요. 일정대로라면 그저께 소각되어야 했는데 어젯밤에 연락 받고 급하게 가동 멈추고 깡통들이랑 이거 찾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플라즈마형 소각장의 구조는 내가 공안시절일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시에 증거물을 찾아 소각장 수색을 자주 했던 나로서는 전문가 급은 아니더라도 반장이 하는 말이 허풍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는 수준의 경험이 있었다. 동시에 이런 곳에서 반장같은 인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그에게 금편 하나를 건네주었다. 반장이 굽신거리며 그것을 받아드는 모습을 일부러 모른 채 하며 큐는 장갑을 끼고 쓰레기봉투를 열었다. 100리터의 봉투에 들어있는 물건을 작업대 위에 늘어놓으면서 나는 당장이라도 손을 멈추고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 갑자기 붉은무공훈장에서 구멍난 양말을 신은 병사의 사체를 바라보던 주인공이 떠올랐다. 생리대와 속옷, 잡동사니들, 자질구레한 생활의 흔적들을 늘어놓는 동안 디를 모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찾았습니다.”

 

큐가 손을 들어보였다. 디가 사용하던 링커였다.

 

“근데, 심SIM이 없어요, 인증정보는 없어도 메모리에 남은 정보들은 복원이 가능 할 겁니다. 근데, 선배가 찾는 원고는 안보이네요? 원고지를 썼다고 그랬죠?”

 

나는 큐가 디의 링커를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작업대 구석에서 위태롭게 놓여 있다가 떨어질 뻔한 물건 하나를 주머니 속에 넣었다.

 

“길어도 내일 저녁이면 분석을 마칠 겁니다.”

 

큐는 최근에 본 얼굴 중에서 가장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소각장을 나와 큐와 나는 점심 식사를 같이 했다. 둘 다 입맛이 도는 상황은 아니었기에 간단하게 요기 할 겸 베트남인들의 식당에서 쌀국수를 시켜놓고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내가 현역으로 있던 시절의 이야기였는데 부풀려진 무용담이나 고생담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적당히 부정하고 수정하며 큐의 이야기를 바로잡아 주려했지만 어느 순간엔가 그럴 필요가 없다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큐에게 과거는 중요했다. 아내와 두 아들이 있던 시절,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혈기 넘치던 시절, 혁명을 부정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거대한 악과 맞서 싸우던 시절이 그의 과거여야 했다. 과거의 무용담은 마치 술처럼 그의 뇌를 취하게 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선배. 선배도 그 놈이 진짜 대가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하시죠?”

 

“그럼 우리가 잡아넣었던 놈은 뭔가? 사형까지 시킨 그 놈.”

 

내 말에 큐는 표정을 바꿨다.

 

“그때, 그건!”

 

순간적으로 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식당안의 인부 몇의 시선이 우릴 향했다. 큐도 알아차렸는지 힘겹게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았다. 공안은 남의 시선을 끄는 행동을 피하도록 훈련 받기 때문이다.

 

“그거야 위에서 수사 마무리 하자고 해서…”

 

큐는 문장을 마무리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3.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저들이 이룩한 업적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저 아름다운 기계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존재 이유를 잃고 도시의 틈 사이로 사라진다고 해도 후회할 이유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식의 앞길을 막는 부모보다 추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생 – 듀나

 

 

중국인의 시선은 두꺼운 안경알에 굴절되어 날아왔다.

 

“오백 칠십. 요즘 금값이 예전 같지 않아. 차라리 은으로 받아와.”

 

“요즘은 왜 떨어지기만 해?”

 

나의 질문에 중국인은 시금석 위에 올려놓은 금편에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세탁소들 때문이지. 다들 금을 안 받으려고 해, 요즘은 산업자재용으로 세탁하는데 은이 더 수월하거든. 정부 단속 덕분에 금 세탁비용이 더 올랐어. 그러니 은으로 거래하는 게 제 값 받기 좋아.”

 

혁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제일 처음 한 일은 실물화폐를 없애는 일이었다. 모든 유통 흐름을 중앙에서 관찰 할 수 있는 전자 화폐로의 강제 전환. 그것이 혁명의 시작이었다. 공안과 국세청은 번거롭긴 하더라도 감수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몇 가지 복잡한절차를 밟고 개인의 전자화폐 거래내역 조회가 가능했다. 이것은 내가 상대하는 고객과 같은 부류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었다. 필연적으로 잘게 조각을 나눈 금편이 지하경제의 통화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전자 화폐를 이용해야 했기에 금편은 중국인과 같은 매입업자의 손을 거쳐 세탁소라는 곳으로 넘어갔다. 세탁소는 주로 투자신탁이나 신용기금과 같은 이름을 지닌 해외의 회사들을 통해 금편을 맡긴 이 들의 계정으로 세탁된 전자화폐를 전송해 주었다. 나 역시 공식적으로는 퇴직금과 연금을 싱가포르에 있는 영국계 투자신탁사에 위탁하고 매달 수익금을 배당 받는 것으로 국세청에 신고 되고 있었다. 나와 거래 하는 세탁소는 친절하게도 몇가지 절세 혜택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입금된 내역을 확인 한 뒤 중국인에게 인사를 하고 환전소를 나서려는데 그가 나를 다시 불러 세웠다.

 

“깜빡 할 뻔 했네. 이걸 전해달라고 했는데.”

 

중국인이 내민 손에는 금화 한 닢이 놓여 있었다.

 

“누가?”

 

“자네랑 같이 일하는 여자.”

 

“키가 작고 깡마르고, 이정도 단발머리에 도수 높은 안경을 낀?”

 

“맞아. 그 여자. 자네가 처음 데려왔잖아. 받아.”

 

디 역시 나에게 금편으로 번역료를 받았기에 중국인의 거래소를 이용하긴 했지만 이곳에 나와 같이 온 적은 단 한번 뿐이었다. 처음 이 거래소를 소개시켜주던 날이었다.

 

나는 중국인이 건넨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그 여자, 언제 왔다 갔었지?”

 

“일주일….전이었나? 늘 초하루에 왔다가니까 그때였을 거야. 그런데 이젠 그 아가씨랑 같이 일 안해?”

 

나는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동전의 무게를 느껴 보려 했다.

 

“무슨 소리지?”

 

“아니, 같이 일을 안 하니까 물건을 여기다 맡겨놓는 거 아닌가? 단골이니까 따로 보관료는 안 받을게, 대신 앞으로도 이러면 곤란해.”

 

 

 

항구를 내려다보는 조계지 공원 계단에 앉아 만두와 미지근한 맥주를 마셨다. 여름으로 들어서는 문은 둔탁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불안한 대기를 가로지르며 먼 바다로 우주궤도 수송선이 내려앉고 있었다. 흡사 고래와 같은 거대한 동체가 중력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가볍게 수면 위에 내려앉자 크고 작은 예인선들이 그 주위로 달라붙었다. 예인선에 이끌려 항구로 이동 중인 왕복선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위화감이 들었다. 중국인은 어째서 디가 준 동전을 ‘물건’이라고 지칭했을까? 그 위화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는 디의 동전을 주머니에서 꺼내어 찬찬히 살펴보았다. 동전은 혁명 정부의 수립 당시 제작된 기념금화였다. 금의 함량은 중국인이 거래하는 금편 보다 낮지만 소량 생산 된데다 수집가들의 수요도 있어 액면가보다도 70배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수집가들에게 팔 때의 얘기다. 금편을 세탁소로 보내고 수수료를 받는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거래할 가치가 없어서 그렇게 지칭했을지 모른다. 아니면 금화에서 금을 뽑아냈다고 거짓말 하고 (약 1~2 그램 정도 나올 것이다.) 그 값어치만큼을 나에게 주는 방법도 있다. 물론 진짜 금화는 수집가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버리면 꽤 짭짤한 수입을 거둘 수 있겠지. 중국인이라면 충분히 내게 그런 사기를 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 간단하다. 금화가 가짜이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애초에 디가 나에게 준 진짜 금화를 중국인이 바꿔치기 했을 수 있다. 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디가 나에게 가짜 금화를 남겼고 중국인이 그것을 손쉽게 감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금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동안 내 입안에 낚시 바늘이 걸린 듯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단단히 살점 안쪽으로 파고든 미늘은 바늘 끝에 묶인 줄의 의지를 내 머리에 전달하고 있었다. 낚싯줄이 이끄는 방향으로 따라갈까. 아니. 잠시 입안의 바늘은 잊어버리기로 했다.

 

 

 

제지사는 장엄한 동작으로 종이를 펼쳤다. 잠시, 잔물결을 일으키며 중력에 저항하던 종이는 다소곳이 책상위에 내려앉았다. 연한 크림색이 들어간 종이의 표면을 손가락으로 쓸어보는 나를 보는 제지사의 시선은 흡사 결혼식장에 딸의 손을 잡고 들어선 아버지의 그것이다. 표면은 매끄럽지만 손끝으로 넘길 때 적절한 저항감이 따라온다.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가까이 대는 나를 보고 그도 덩달아 허리를 숙였다. 찰각찰각. 다른 종이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소리다.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심을 숨긴 재질만이 낼 수 있는 소리다.

 

제지사는 거의 필사적으로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종이에 바친 시간과 자부심 때문이다. 그는 종이를 살펴보는 내 모습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종이를 창가쪽으로 들어 햇빛에 비춰 보았다. 얇지만 빛을 투과하는 정도가 적당했다. 다른 인쇄물을 가져와 종이 밑에 놔둔 다음 밑의 글씨가 어느 정도 보이는 지도 확인 해 보았다.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주문서를 작성하죠.”

 

나의 말에 제지사는 마침내 미소를 지었다. 근사한 미소였다.

 

이번 책은 케이에게 납품한 것들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 중인 책이었다. 케이는 옥타비아 버틀러의 강렬한 소설 ‘야생종’이 특별한 몸을 부여 받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특별함에 걸맞은 계약금을 지불했기에 특별해야 했다. 나는 장정을 할 가죽부터 종이, 제본용 풀까지, 즉 책의 살점과 뼈, 혈관의 재료들을 새롭게 만들어내기로 했다. 거래하던 제지사는 케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종이의 두께와 색을 맞추기 위해 조성 단계에서부터 새롭게 장비를 들여야 했다. 몇몇 자동화 단계에서 나타나는 문제 때문에 제지사는 갖고 있던 압착기와 건조기를 쓰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장비들을 고안 해내야 했다. 그것은 제지기계라기보다는 건설 장비에 더 가까웠다. 대형 압착롤러와 입방미터당 마이크로그램 단위로 습기를 제어 할 수 있는 장비를 도입했다. 활자 역시 새롭게 조각 했다. 나는 오직 야생종만을 위해 서체를 다듬고 활자들도 새로 팠다. 레이저 절삭기나 3D프린터가 아니었다. 과연 눈이 보일는지 의심스러운 주조공은 태양에 비추면 숲도 불태울 수 있을 것 같은 돋보기를 끼고 활자들을 새롭게 깎아냈다. 케이는 책이 특별해서 돈을 들이는 게 아니라 그 책이 특별하길 원하기에 돈을 들인다고 말했다. 왜 특별해야 하는지 이유는 묻지 않았다. 케이가 특별한 책을 원한다면 책은 특별해야 한다..

 

책의 살과 뼈를 만드는 동안 혈관에 흐를 피를 만들고 있던 디의 고충은 나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야생종’은 이미 세 종류의 한글 번역본이 나와 있었으나 케이에게는 셋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케이는 완전히 새로운 번역을 원했다. 그녀는 이미 원서를 갖고 있음에도 집요하게 새로운 야생종을 원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해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몇 차례 되풀이하여 읽은 책을 왜 그렇게 고집스럽게 다시 번역하여 새 책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그녀는 대답했다.

 

“오직 단 한 권뿐인 야생종이 될테니까요.”

 

야생종의 계약조건에는 한 가지 특별 조항이 붙어있었다. ‘책이 완성되면 번역고와 교정본, 대지 등 모든 편집 원고를 소각 처리 할 것, 그리고 제책에 사용 된 활자 역시 모두 폐기 처리 후 납품 할 것.’이라는 조항이었다. 처음 그 계약 조항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실소를 내비칠 뻔 했다. 하지만 다행이 그러진 않았다. 부자의 사치스럽고 변덕스러운 취미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케이는 언제나 단 한권의 책을 구매하는 고객이었다. 말하지 않았나? 나의 직업을.

 

나는 퍼스널 부커(Personal Booker)다. 탄생한지 이십년도 안 된 이 괴상한 신조어는 나의 직업을 표현하는데 달리 적합한 단어가 없어서 그냥 쓰이고 있다. 퍼블리셔나 북바인더가 더 구체적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충분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못하다. 퍼스널 부커가 만드는 책은 한 번에 한 권이다. 출판인을 의미하는 퍼블리셔(Publisher)는 최소 두 권이상의 책을 찍어 낼 때 어울리는 단어다. Publish는 대중에게 공표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퍼스널 부커는 오직 한 사람을 위해 의뢰 받은 한 권의 책을 만든다. 그렇다면 북바인더가 더 적합할지 모른다. 하지만 바인더Binder 역시 제본이라는 제한적인 범위에 갇힌다. 누가 처음 그렇게 불렀는지는 정확하게 알져있지 않지만 퍼스널 부커는 주문받은 단 한권의 책을 제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4.

 

나는 30년 가까이 앤디와 사귀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데, 그렇게 태연자약한 놈은 본 적이 없었다. 기쁜 일이 있어도 또박또박 말을 했으며, 고통스러운 것은 가슴 깊은 곳에 묻었다. 그에게 작가들이 흔히 말하는 ‘칠흑 같은 어둠의 영혼’이라는 것이 있다하더라도 절대로 드러내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살을 한다고 해도 유서를 남기지 않을뿐더러 자기 주변은 분명하게 정돈해 놓은 다음 자살할 그런 타입의 인간이었다.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스티븐 킹

 

 

디와 이 일을 처음 시작 한 것은 우연이었다. 당시 나는 공안 생활을 정리하려고 마음먹던 차였다. 반혁연맹에 대한 수사도 정부의 지시로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가던 때쯤에 나는 반혁선전물을 인쇄하는 인쇄소를 적발했다. 반혁연맹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핵심조직의 윤곽이 어느 정도 잡혔고 주요 인물들은 이미 체포 된 상태였다. 인쇄물 제작을 의뢰한 이들은 거의 신경 안써도 될 정도로 가루가 나버린 연맹의 찌꺼기 조직이었다. 당시 나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그들이 천리안을 피하기 위해 활판 인쇄라는 고풍스런 방법을 채택했다는 점이었다. 천리안의 등장 이후 공안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종류의 디바이스에 저장된 데이터를 검열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갖춘 상태였다. 옵셋인쇄는 디지털 데이터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인쇄기가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떤 형태의 디지털 정보도 남기지 않고, 종이 위에 직접 쓴 글씨를 활판으로 옮겨 인쇄하는 활판 인쇄가 선택 가능한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활판인쇄가 잠시나마 유행을 타던 시기가 있었다. 책이 일종의 공예품으로서 팔리는 유행은 퍼스널 부커라는 단어의 탄생과 맞물렸다. 100권 내외로 작은 시집들을 만들고 그것을 모으는 사람들이 존재하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찾아낸 인쇄소는 그런 짧은 전성기가 끝나던 시기에 천리안에 걸리지 않는 출판물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수요를 충족 시켜주고 있었다. 인쇄소의 사장은 이틀정도 공안에서 조사를 받았다. 어차피 의뢰자만 잡으면 되는 일이라 인쇄소 사장까지 기소할 일은 없었기에 증거물로 수집했던 책들을 되돌려주고 작업장에 대한 폐쇄를 해제 하려 할 때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어차피 인쇄소는 더 이상 장사가 안 되어 접으려던 참이었다고 했다. 증거물로 압수된 책 들 역시 짐만 될 터이니 소각해달라고 했다. 나는 소각장으로 향하는 책 더미 속에서 몇 권을 뽑아내 집으로 가져갔다. 인쇄소 수사 이후에 나는 몇 년 만에 휴가를 쓸 수 있었고, 그 기간 동안 가져온 책들을 읽었다. 두서없이 뽑아온 책들이었기에 어떤 것은 몇 페이지 읽다가 던져두었고 어떤 것은 끝까지 읽었다.

 

소파에 누워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을 읽는 동안, 책표지를 감싼 직물이 손 끝에 부드러운 온기를 주는 듯 하다가도, 페이지를 만질 때 마다 흡사 칼날을 다루는 것 같은 자극이 찾아왔다.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공안에서도 대부분의 행정서류가 전자문서화 되긴 했지만 구체제 시절에 남겨진 자료들은 아직도 서류철에 꽁꽁 묶여 있었다. 그 안에는 범죄와 의심, 모략이 담겨있었지만 그 페이지들을 넘길 때도 이런 종류의 긴장감은 들지 않았다. 한 장, 한 장 잘 벼른 칼날이 되어 손끝을 유혹하고 있었다. 너무 깊게 다가가면 손을 베이고, 머뭇거리면 영원히 닿지 않을 유혹이었다. ‘마노로 깎은 메피스토’를 다 읽고 난 다음에는 ‘필경사 바틀비’를 손에 집어 들었고 그 책을 다 읽을 즈음에 나는 휴가 시작 후 처음 집밖으로 나섰다. 인쇄소는 지금도 그렇듯 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차를 놔두고 걸어서 갔다. 걸어가는 동안 읽기에 적당한 두께의 책을 골랐는데 하필이면 ‘나사의 회전’이었다. 가정교사가 호숫가에 당도하여 어린 소녀를 만나는 부분까지 읽었을 때 (중간 중간 공원 벤치에 않아 읽기도 했다.) 내 앞에 갑자기 땅 밑에서 솟아 오른 듯, 인쇄소의 전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장엄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았고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지도, 떠내려가지도 않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반중력 수레 몇 대가 드나들며 잡동사니들을 인쇄소 밖의 트럭으로 실어 나르고 있었다. 내 모습을 본 인쇄소 사장은 잠시 흠칫하더니 얼어붙어 버렸다. 섭섭할 것 없다. 공안을 만나면 대부분 그러니까. 달리 적당한 인삿말이 떠오르지 않아 쭈뼛거리며 서있는 사이에 사장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는 내 코트 주머니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나사의 회전’을 가리켰다.

 

“헨리 제임스, 좋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설의 내용이 아니라 제책 상태가 좋았다는 의미였지만 사장에게는 둘 다 같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인쇄가 남아서 일단 공장을 정리 중이었습니다. 이제 한 권 남았네요.”

 

나는 사장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정리할 책이 한권 남았다는 의미라고 여기기에는 좀 이상했다. 내가 별 다른 대꾸 없이 서있자 사장은 부언했다.

 

“납품하기로 한 책이 아직 한권 남았습니다. 교정고가 늦어져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지요.”

 

지금이나 그때나 출판에 관해서 아는 것은 거의 없었기에 그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나에게 책이란 개념은 한번 인쇄 할 때 최소 1000부 정도는 만들어 내는 대량생산품이었다. 책은 기본적으로 복제물이기에 한권만 찍어내는 행위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잠시 멀뚱 서있는 사이에 사장이 손짓했다.

 

“혹시 다른 볼 일이 있어서 오신 게 아니라면… ”

 

“아, 휴가 중입니다. 주신 책 잘 읽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아, 그러시군요…”

 

여전히 사장의 목소리에 깔려있는 경계심은 내 발걸음을 뒤로 물리게 했다. 솔직히 나조차도 내 말을 믿기 힘들었다. 증거물로 압수한 책을 잘 읽었다고 일부러 인사하러 오는 공안이라니, 나조차도 못 믿을 소리다.

 

“한번 구경해 보시겠습니까?”

 

사장은 전혀 생각도 못했던 제안을 했다. 표정으로 봐서는 제안을 받은 나보다 제안을 한 그 자신이 더 놀란 눈치였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세요. 이곳의 마지막 한 권입니다.”

 

사장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건물의 입구에서부터 오일스테인과 잉크의 냄새가 코를 후려쳤다. 인쇄소는 그리 넓다고 말할 수 없었지만 천정이 높은 탓에 실제보다 넓게 보였고 2층에는 문선대가 벽면을 따라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다. 문선공이 활자들을 아래로 내려 보내는 작은 수동식 승강기가 보였고 활자들이 이동하는 경로의 마지막에는 활판을 올려놓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다. 그곳을 둘러싸고 몇 명의 남녀가 보였는데 그들 중 서너 명은 지금까지도 나와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디를 다시 만난 것은 그때였다.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일 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이라 처음에는 그녀라고 확신하기 어려웠다. 공안은 자신이 잡아들였던 사람들에 대해 수사실을 떠나는 마지막 모습만 기억한다. 당당하게, 혹은 초연하게 끌려왔던 이들이라도 나갈 때의 모습은 모두 똑같아진다. 재판에서 실형이 선고되어 감옥이나 교화소로 가더라도, 혹은 무혐의로 풀려나더라도 우리는 그들을 똑같은 얼굴로 만들어주었다.

 

영혼과 존엄이 파괴된 얼굴.

 

나를 안내한 사장과 같은 얼굴 말이다. 만일 디가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면 나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작고 마른 몸집에 귀밑으로 짧게 자른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교정지를 들추며 페이지들을 비교하던 그녀는 내가 들어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교정지들을 확인하던 이들이 동작을 멈추고 사장을 바라보자 그는 신경쓰지 말라는 손짓을 했다.

 

“잠깐 구경 오신 손님이야.”

 

나는 ‘잠깐 구경 온 손님’처럼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하고 테이블을 둘러싼 이들을 살펴보았다. 딱히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직업병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가 정말 디가 맞는지 확신하기 애매한 느낌이었다. 사람의 얼굴을 한 번에 못 알아차리는 수사관은 없다. 미간을 찌푸린채 교정지를 번갈아가며 비교하는 저 얼굴은 내가 영혼과 존엄을 파괴한 이들과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의 눈빛에서 나는 확신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맞았다. 찰나의 순간, 나와 마주친 그녀의 눈빛에 두려움과 혐오가 스쳤다. 눈빛이 소리를 가진다면, 아마도 산사태의 굉음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그녀는 시선을 교정지로 돌렸다.

 

“아, 여기네요. 11,22,63 페이지요.”

 

디가 가리킨 교정지를 본 조판공이 분주하게 활판들의 위치를 옮겨가며 활자들을 교체하는 동안 그녀는 작업대에서 멀찌감치 물러섰다. 그리 넓은 공간이 아니다 보니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와 가까운 곳에 서있었다. 먼저 인사를 할 까 했지만 아까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반응으로 보건데 반가워할 만한 상황은 아닐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디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그것은 인쇄가 실패할까봐 걱정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녀는 나의 존재만으로 공포에 질려 있었다. 자리를 피해줄까 생각을 안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에 마음을 빼앗겨 디의 생각을 하지 못했다.

 

활판들이 다시 자리를 잡는 모습은 마치 무용수들이 군무를 위한 대형을 갖추듯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었다. 조판공과 조수로 보이는 필리핀 여자 둘이 활판 중 하나를 조심스럽게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나중에야 그들의 신중한 손놀림과 섬세한 몸짓이 어떤 목적인지, 어떤 쓰임을 갖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그저 신기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서 찍는 마지막 책입니다. 중요한 고객께서 부탁하신 작품이라 교정에 시간을 많이 들였지요.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출 수 있겠네요.”

 

어느새 디와 나 사이에 사장이 서있었다. 사장이 흡사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디의 표정은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보였다. 겁에 질린, 포식자를 눈앞에 둔 초식동물의 표정이 아니었다. 아마도 지금 여기가 아닌 다른 곳, 더 넓고 자유로운 곳을 비행하는 눈이었다. 그렇다고 자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디의 기분을 나도 느꼈기 때문이다.

 

활판이 놓이면 고무망치와 나무쐐기로 활판의 위치를 조정하고 그 다음에는 필리핀 여공 두 명이 그 위에 종이를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잘 세탁한 린넨을 침대 위에 펼치는 동작이었다. 잠시 후 그 위로 롤러가 지나갔다. 롤러는 종이위로 한 번 지나갈 뿐이지만 롤러의 양쪽 끝을 잡고 있는 두 명의 조판공은 서로의 속도를 맞추기 위해 발걸음과 호흡까지 정확하게 일치시키며 그것을 앞으로 밀고 나갔다. 여공들이 활판위에 압착되어있던 종이를 들어 올릴 때 잉크가 뭍은 종이의 표면에서는 자잘한 소리가 났다. 마른 흙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소리를 닮았다. 한쪽 면이 인쇄된 종이들은 여공들의 손에 들려 건조대로 이동했다. 건조대 옆에는 선풍기가 돌고 있었고 그 바람이 잉크를 굳히는 동안 공장안에 오일과 잉크의 냄새를 퍼트렸다. 뒷면의 인쇄까지 모두 마치자 조판공과 디는 건조대에 걸린 인쇄된 대지를 하나씩 들춰보며 앞뒤의 페이지가 맞는지 확인했다. 확인이 다 끝났다는 디의 말에 사장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업대 앞에 섰다. 조판공과 디가 정리한 대지들은 몇장씩 분류되어 작업대 위에 쌓였다. 사장은 분류된 대지들을 다시 들춰보며 눈으로 확인 한 다음 그것들을 접기 시작했다. 뭔가 거들일이 없을까 작업대 주변을 서성거렸지만 분주하게 작업대를 돌며 종이를 접는 사람들과 몸이 부딪힐까 발걸음 이 쉽게 그리로 옮겨지지 않았다.

 

시간이 꽤 늦은 터라 나는 잠시 공장을 빠져나와 근처에서 24시간 영업하는 이슬람 샌드위치 가게를 찾아 치킨샌드위치와 주스를 사서 공장으로 되돌아 왔다. 빈 작업대 위에 걸터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사장은 이런저런 물건들이 빠져나간 빈 선반들을 돌아보았다. 그는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한 번에 천 권씩 찍어내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죠. 디지털 인쇄기가 아니라 활판 인쇄만 고집하던 수집가들이 유행처럼 번졌을 때는 제법 할 만했습니다. 이제 종이로 만든 책은 사치품이에요. 종이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과 책을 놔둘 공간을 소유한다는 의미잖아요? 이런 식으로 한권만 만드는 일도 돈만 따라가면 괜찮기는 한데…”

 

“고객이 대단한 부자인가 봅니다.”

 

내 말에 사장은 비밀을 폭로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유명한 영화배우입니다. 수집가라고 하기엔… 옛날 책을 모으기 보다는 자기만을 위한 책으로 새롭게 만드는 걸 좋아해요. 확실히 괴짜같지요? 번역부터 새롭게 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판형으로 딱 한권만 주문해요. 표지를 감싸는 가죽의 재질부터 제책 할 때…그러니까, 양장은 몇 장 단위로 종이들을 실로 묶은 다음에 그것들을 모아서 표지에 접착제로 붙이거든요. 그때 사용하는 실의 종류까지 일일이 지정된 것만 사용해야합니다. 여간 까다롭지 않아요. 근데,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거든요.”

 

사장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앙금처럼 남아 있었다.

 

“이제 일하러 가야겠네요.”

 

사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작업대 앞으로 나아갔다. 특별히 감회에 젖거나 마지막 책을 대하는 엄숙한 분위기는 없었다. 반복되는 노동으로 단련된 규칙적이고 효율적인 손놀림만이 자리했다. 때로는 저래도 되나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종이묶음을 다루었다. 종이묶음들은 제단기로 옮겨져 분리되었다. 흡사 숙련된 도축업자처럼 페이지들을 분리해낸 사장은 필리핀 여공들에게 꿰매어야 할 페이지들을 배분했다. 여공들 또한 외과의사가 연상될 정도로 빠른 손놀림으로 묶음들을 바느질 했다. 바느질이 다 끝난 페이지 묶음들은 사장에게 다시 넘겨졌다. 페이지 순서가 맞는지만 빠르게 눈으로 확인한 사장은 고무망치로 접힌 면을 두들겼다. 그렇게 순식간에 한권의 책이 모였다. 그 작업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는 사이에 할 일이 없어진 디는 나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에 자리를 잡고앉아 있었다. 여전히 얼굴에 빛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낯설어보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일은 사람의 얼굴에서 빛을 빼앗는 일이었다. 내 앞에 끌려온 이들의 얼굴에서 희망을 부수고 의심을 심었다. 좌절을 문신처럼 새겨 영원히 그들의 얼굴에서 빛을 빼앗는 일, 그것이 내 일이었다.

 

이제 다 모인 종이묶음들은 바이스로 단단히 고정된 다음 사장의 대패질로 책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날이 예리하게 벼려진 대패는 표지에 접착되는 면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을 갉아냈다. 실밥 같은 종이가루가 불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흩어졌다. 그 사이 필리핀 여공 한명이 조심스럽게 표지를 가져왔다. 대패질을 마친 사장은 표지로 쓰일 재료들을 살펴 본 다음 망설이거나 주저하는 몸짓 없이 하드보드지에 가죽을 씌우고 테두리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자로 재거나 간격을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톡톡, 다음 구멍, 톡톡… 이런식으로 표지 테두리에 구멍을 낸 다음 가죽끈으로 테두리를 꿰매기 시작했다. 외과 수술 현장처럼 일사불란한 도움을 받아가며 표지를 꿰맨 사장은 그것을 디를 향해 들어보였다. 디는 서두르지도, 그렇다고 느긋하지도 않은 걸음으로 다가와 표지를 들어 인두로 누른 제목을 쓰다듬었다. 그녀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지만 무슨 소리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제목을 읽었으리라. 사장은 최종적으로 페이지를 씌우기 전에 디의 허락을 구하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섰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는 일도 없이, 원래 사장의 일이기에 자신은 아무런 의견을 내보일 자격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사장은 손마디를 풀고는 책장이 물린 바이스를 살짝 풀었다. 그 살짝 푼다는 감각은 그때로부터 십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배우지 못한 감각이다. 바이스에 물린 책장을 둥근 막대로 두들겨 책등의 곡면에 맞게 맞추는 작업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서 그것이 과정의 일부라고 느낄 틈도 없었다. 허리를 숙여 표지의 책등과 맞닿을 부분의 곡면을 눈으로 한번 흘깃 본 사장은 곧바로 접착제를 발랐다. 적당히 마를 시간을 기다린 그는 표지를 들었다. 과정 중에서 그가 유일하게 신중한 얼굴을 보이는 순간이었다.

 

표지가 덮인 책이 다시 바이스에 물렸다. 접착제가 마를 동안 조판공과 여공들은 작업대 주변을 정리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다시 내일의 책을 만들 것 같은 손놀림이었다. 디가 청소와 정리를 돕는 동안 나는 아직 한쪽 선반에서 다 못 빼낸 지난 책들을 훑어보았다. 출판이라는 단어, 판을 내보낸다는 의미는 책의 어디에 숨어 있을까, 활자가 파고드는 종이의 표면에 있을까 그것들을 묶어 하나로 연결한 책등의 접착제 안에 있을까. 활자들을 골라내어 활판 위에 옮겨놓는 조판공의 손 끝에 있을까. 아니, 그것의 배열을 지휘하는 글쓴이에게 있을까. 글자가 모여 단어를 이루고 단어가 모여 강줄기를 만들어 사람의 마음에 흘러들어가는 과정 어디에 책이 자리잡고 있을까. 이제 책장을 넘기는 행위는 관념으로만 남아버렸을 텐데, 이 모든 단어들은 이미 바이트 형태로, 전자의 존재와 부재로 나뉘어 잘게 쪼개진 채로 광대한 신경망을 흘러 다니고 있을텐데, 종이를 찢어 그 위에 새긴 것을 묶는다고 다른 단어가 되지는 않을텐데, 종이 위에 새긴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다오.’와 디스플레이 패널 위에 빛의 깜빡임으로 새겨진 그것, 뇌신경망 인터페이스에 직접 접속된 디바이스를 통해 뿌려지는 전자신호가 만들어낸 문장은 다르지 않을텐데.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나서야 사장은 바이스를 풀어 책을 들어보였다. 그는 그것을 디에게 건네주었다. 디는 표지와 속지를 조심스럽게 살펴 본 다음 책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것이 마치 칼이라도 되는 양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가죽 표지에는 인두로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이라고 새겨져있었다. 나는 디가 했던 것처럼 음각된 글자들을 손끝으로 어루만져보았다.

 

“멋지군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디를 택시에 태워 보낸 후 사장과 나는 항구 근처의 선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아마도 술 때문에 내린 결정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때 결정을 내렸다. 아침이 되어 나는 사직서를 공안에 제출했고 받을 수 있는 연금과 가능한 대출금액을 알아보았다.

 

 

5.

 

그 집이 사라져가는 것을 보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가 시를 하나 썼고 그 시는 아주 훌륭했지만 나는 그것을 잃어버렸고 다시는 기억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하이윈도 – 레이몬드 챈들러

 

 

 

잠시 벤치에 앉아 멍하니 옛 생각에 빠진 동안 나도 모르게 주머니속의 금화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동전과 함께 소각장에서 주운 물건을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하나는 디가 나에게 남겨준 물건, 다른 하나는 디가 내손에 들어가지 못하게 버린 물건이었다. 새끼손가락보다 짧았고 끝에는 깍지를 끼워 쓴 흔적이 있었다. 그녀의 버릇이었다. 깍지에 뭉개진 연필의 끄트머리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로고의 흔적이 있었다. 나는 링커의 카메라로 로고를 확대해 보았다. 사진을 찍어 그것을 확대한 다음 비슷한 패턴의 이미지를 찾아주는 검색엔진을 돌린 끝에 로고의 원래 모양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일치확률 89퍼센트로 그것은 서구 도서관의 로고였다. 집안에 디가 일했던 흔적이 안 남아있다면 갈 만한 곳은 그 곳 뿐이었다.

 

이제 도서관은 더 이상 책을 모아두는 곳이 아니었다. 신경망이 제공하는 자동 번역시스템을 통해 중학생들조차 미 의회 도서관의 문서들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다. 도서관은 단방향으로 흐르는 정보의 저수지 역할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역설적으로, 도서관은 생존을 위해 책을 버렸다. 가라앉는 난파선에서 조금이라도 침몰속도를 늦추기 위하여 화물을 버리듯이 책을 버렸다. 그리고 그 빈공간은 가상현실 체험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디의 자료열람기록을 찾아보기 위하여 도서관 직원에게 이미 유효기간이 10년 전에 끝난 공안 신분증을 들이대었을 때 직원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손쉽게 디의 자료 열람기록을 보여주었다. 디의 열람기록은 지난 수년 동안 그녀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헤르타 뮐러의 소설을 번역하기 위해 내려 받은 독일어 출간본의 데이터와 20세기 동유럽사에 대한 참고자료들, 그리고 온갖 잡다한 신문 기사들과 뉴스들 목록 사이에서 이질적인 기사 몇 개를 찾아 냈다. 당장 눈에 띈 기사들은 모두 케이에 관한 것이었다. 케이가 언급되는 기사의 제목을 클릭하기 위하여 스크린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을 때 손끝에 살짝 짜르르한 느낌이 들었다. 간혹 홀로 스크린이 오동작을 일으킬 때 정전기에 닿은 것 같은 느낌을 주긴 하는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도 몰랐다. 디가 찾아본 케이에 관한 기사들은 그녀의 고향인 하이난을 폭격한 연방군에 대해 비난 발언을 했다가 팬들에게 엄청난 양의 위협과 분노를 받았던 12년 전의 기사, 그리고 췌장암 치료를 위해 촬영을 중단하고 요양에 들어갔던 10년 전 기사들이었다. 케이는 췌장암이 발견되자 약물치료와 수술을 시도하였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거의 마지막 시도로 상하이-텔렉 메디컬이 개발한 나노로봇 주사술이 그녀에게 다시 생명을 되찾아 주었다. 지금은 미용시술로 흔하게 이용되는 기술이지만 당시로는 모험에 가까운 시도였다.

 

만약 날개 달린 모든 생물을 조류로 칭하는 식으로 즉, 파리를 새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사교성이라는 개념을 억지로 확장하여도 디는 그 범주와 겹칠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같이 일해 온 지난 세월 동안 그녀와 명절인사를 나누거나 식사를 한 적도 없었다. 부모나 가족, 친구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경우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고객의 기사를 검색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다.

 

열람실을 빠져나와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기로 했다. 디가 작업을 하기 위해 자리 잡았을 만한 장소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가상현실 체험장을 지나 복도에 붙어 있는 손글씨 강좌반의 작품들에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문득 디의 필체가 떠올랐다. 그녀의 필체는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특별히 멋부린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휘갈겨 쓴 글씨도 아니었다. 문선공들은 그녀의 글씨가 아침에 내린 눈으로 뒤덮인 들판을 걸어 나가는 발걸음을 닮아있다고 평했다. 멋부림 없이 똑바로 들판을 걸어가는 필체. 종이에 귀를 기울이면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날 것 만 같다고 했다. 바보 같은 소리다. 나는 그런 비유나 은유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조활자만큼이나 늙어버린 이들이나 좋아할 만한 표현이다. 내가 그들만큼이나 늙어버린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늙을 때 까지 말과 글에 신비함이나 어떤 대상을 이입시키는 일을 멀리하기로 했다.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문장들로 삶을 찬양하던 이들은 내 앞에 오직 생존을 위한, 절박한 문장을 내놓아야만 했다. 누구에게든,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 한주전자를 들이 부으면 비유나 은유 따위는 완벽하게 사라진 문장을 쓰게 만들 수 있다. 믿어도 좋다. 난 그 방면의 전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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