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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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의 정신, 무한한 몸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누군가가 되어 있었다. 갑작스레 내 삶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기억상실처럼. 그리고 첫 번째 이주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깨달았다. 나는 몸이 없는 감정일 뿐이라는 걸.

지난여름엔 변비에 걸려 고생한 택견 사범이었고, 가을엔 돈 많은 자식들의 삶을 하루 종일 걱정하는 노인이었고, 겨울엔 담배를 사지 못해 금단증상으로 고통 받는 여고생이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겠지만 나는 항상 이렇게 살아 왔다. 길면 반년, 짧으면 하루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2. 행복할 수가 없어

내가 옮겨 다니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인생의 우울한 시기를 겪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행복을 되찾을 때쯤이면, 나는 다른 몸으로 들어가 또 다시 우울하고 축축한 인생을 살게 된다.

나는 신의 눈물 같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우울함이라는 감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변비 같은 것. 빼도 빼도 자꾸만 끼는 팬티 같은 것. ‘닫기’를 누르려는 순간 펼쳐지는 인터넷 광고 같은 것. 불편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 같은 것! 신이 있다면 나를 만든 이유가 있겠지. 세상에 무의미한 존재는 없다.

3. 신은 있는데

“아 귀찮다.”

신이 발로 반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네. 사람 같지가 않잖아. 아 몰라. 대충하자 대충.”

그가 우릴 만들며 말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택배요.”

“왔다! 왔어!”

그는 호들갑을 떨며 현관을 향해 뛰쳐나갔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의 발은 인간의 감정이 들어 있는 통을 발로 차 버렸다.

“이히히. 드디어 왔구나. 스타워즈 신작 디비디! 내가 이 맛에 인간 만든다!”

그는 바닥에 앉아 택배를 뜯으며 말했다. DVD 구경이 한창인데 감정 액체가 그의 엉덩이를 적셨다. 그는 축축한 것을 깨닫고는 일어서서 엉덩이를 털었다. 바로 그때, 그만 인간 한 명 분량의 ‘우울함’ 감정 액체가 작업대에 튀고 말았다.

“조금 튀었네…… 스타워즈 보고 고치지 뭐.”

4. 꿈이 아니야

지금은 취업을 준비하는 20대 중반 여자로 살고 있다. 이 여자는 취업 준비는 안 하면서 취업 걱정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 아무튼 여자의 우울증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이 몸으로 이주하게 됐다.

무슨 저주에 걸린 건가? 아니면 혹시 기생충인가? 나의 진짜 몸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는 한 걸까? 도대체 무슨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다른 사람의 우울한 인생만 살아가는 처지가 되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야 소용이 없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니까. 최초의 기억 따위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주할 때마다 꾸는 꿈은 있는데…… 어떤 엉덩이로부터 멀어지는 꿈이다……. 이건 그냥 개꿈일 것이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