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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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누군가 똥을 쌌다.

그러니까 차라리 고스톱의 똥이라도 싼 것이면 다행일 것 같은데 이건 제대로 된 똥이었다.

레알 똥이라구! 전화를 걸어 온 302동 경비원 박 씨가 언성을 높였다. 요즘 들어 애들이 쓰는 말에 부쩍 심취해 있다. 어린애가 어른 말을 쓰면 신기해도, 나이 지긋한 분이 애들 말을 쓰면 인상이 찌푸려진다는 것을 모르는 분이었다. ‘똥’이라는 격하면서도 원초적이며 흉물스러운 단어에 강주영은 잠깐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었다.

“알았어요. 일단 청소 아주머니 보낼게요.”

전화를 끊고 강주영은 바로 302동을 담당하는 미화원 김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얘기하자 대뜸 성질부터 냈다. 전화를 끊으면서 김 반장은 더러워서 그만두기라도 해야지 수가 안 난다고 말했다. 벌써 올해 들어 세 번째 미화원이 그만두었다. 미화원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 이미 소문이 나서 인력이 구해지지도 않을 텐데 큰일이었다.

에이씨. 강주영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경비원 박 씨가 지른 소리가 아직 귓가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미화반장에게 싫은 소리를 듣고 나니 억울했다. 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똘똘 뭉쳐서 드러나지 않은 미지의 범인에게 욕이나 퍼부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상황은 일방적으로 그들의 화를 자신에게 퍼붓는 것처럼 느껴졌다. 강주영은 항의하고 싶었다.

내가 싼 똥이 아니거든요?

경기도의 봉영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근무한 지 8년째, 요즘 들어 강주영은 남들이 3년차에 느낀다는 직장인 사춘기를 뒤늦게 겪고 있었다. 드디어 그만둘 때가 된 건가 싶기도 하면서도 월급날이 지나면 또 한 달, 또 1년,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 그녀의 사춘기를 더 심화시키는 것은 단연코 302동 엘리베이터의 오물 테러다.

대략 7개월 전부터 사건이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변이었다. 그것은 항상 아침에 발견되었다. 새벽녘에는 누군가 소변을 싸더라도 입주민의 통행이 잦은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소변은 승강기 바닥에 찌들어 엄청난 냄새로 302동 입주민들의 아침을 연다.

덕분에 아침마다 쏟아지는 민원은 모두 강주영의 몫이었다. 아무리 닦고 닦아도 냄새는 사그라지지 않고, 아무리 ‘죄송하다’를 입에 달고 살아도 민원은 줄지 않았다. 근본적인 방법은 그 미친놈을 잡는 것인데, 이 아파트는 CCTV도 없었다.

봉영아파트는 1998년도에 준공한 임대 아파트였다. 요즘 짓는 아파트들은 엘리베이터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이 의무화되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지하 주차장에 설치해야 하는 CCTV뿐이었다. 최대한 적은 비용을 투자해 고수익을 얻어야 하는 임대 아파트 사업자로서는 당연히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아파트를 지었다.

근래 사람들의 불안이 극대화되어 CCTV 설치를 해달라는 민원이 많긴 해도, 1998년에 지은 이 아파트는 신설된 법에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봉영아파트의 주인 (주)봉영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있다. 입주민과 회사 사이에서 지치는 것은 관리소 직원이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도 이 아파트는 종종 별의별 일이 다 터지곤 했다. 가끔 다른 아파트도 이러나 싶을 만큼 황당한 일도 많았다. 강주영이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이 부산으로 출장을 간 사이 마누라가 집에 편지를 써놓았으니 자신의 심정이 어떤지 읽어 보라는 말만 남겨 놓고 집을 나갔다는 남자가 전화를 걸어와 강주영을 기겁하게 했다.

남자는 강주영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가 편지를 읽어 달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했다. 하도 답답해 가끔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그녀의 남자친구는 “에이, 말도 안 돼.”라고 말하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람 많은 동네,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주식으로 치면 상한가였다. 오물 테러와 함께 최악은 바로 302동 1207호 여자였다. 어느 날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온 여자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누가 절 지켜보고 있어요.”

“네?”

잠깐, 머리가 멍했다.

“누가 절 지켜보고 있다고요. 누군가 절 감시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움직일 때마다 누군가 빽빽 호루라기를 분다고요.”

‘호루라기’에 정신이 돌아왔다. 이 여자가 302동 1207호 여자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인식했다. 여자는 직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했다. 똥 싸는 놈, 집 나간 아내 편지를 읽어 달라는 놈들을 두고 강주영은 혼잣말로 미친놈이라고 욕을 했지만 이 여자는 진짜 ‘미친’ 여자였다. 우울증이 심각해져 어느 날 갑자기 이 상태에 이르렀다고 했다.

가끔 여자의 남편이 나이 지긋한 경비원 박 씨에게 신세 한탄을 한 모양이었다. 경비원 박 씨가 박씨 물어 나르는 제비처럼 직원들에게 그 한탄을 퍼 나를지는 예상 못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그 박 씨 덕분에, 미리 사정을 알고 있던 강주영이 당황하지 않고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호루라기요.”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돌아오는 여자의 말은 열띤 것이었다.

“네. 호루라기요. 저놈들은 그렇게 하면 제가 신경쇠약에 걸려 죽기라도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거예요. 두고 보세요. 전 절대 그렇게 되지 않을 거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대답해 주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금세 실수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보세요.”라는 말에 “네, 알겠습니다.”라니. 두고 보기로 한 건가. 약속을 한 것 같아 찜찜했다. 두고 보기로 하지 않았냐며 여자가 찾아오는 상상을 잠깐 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여자는 우울증과 정신착란에 더해 심각한 대인기피증도 있다고 들었다. 집 밖에 나오지 않은 지 1년도 넘었다고 했다. 집 안에서 쓰는 모든 생필품은 배달을 시키고, 나머지 일들은 남편이 챙기고 있다고 들었다.

강주영은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오전 10시 반. 출근한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아직도 한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강주영을 슬프게 했다.

시체가 발견된 것은 강주영이 쏟아지는 민원 해결에 직장인 사춘기를 겪던 날로부터 며칠 뒤였다.
여자는 누가 봐도 추락사한 게 자명했다. 시신은 302동 뒤편의 쪽문 방향을 향해 하늘을 보고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새벽 예배를 보고 오던 302동의 중년 여성 입주민이었다. 처음에는 술 취한 사람이 드러누워 있는 줄 알았다고, 경찰 조사에서 그녀는 말했다.

302동 뒤편에는 입주민들을 위한 파고라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평소 입주민이 아닌 외부 사람이 들어와 술을 마시거나 중고등학생들이 들어와 담배를 피우며 소란을 피우는 탓에 입주민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파고라 옆쪽으로 바깥 도로로 바로 나갈 수 있도록 쪽문까지 나 있었으니 외부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더 쉬웠다.

그래서 이날 새벽, 하늘을 보고 벌러덩 누워 있던 그 사람 역시 평소의 주취자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발견자는 그 사람을 지나치다 문득 얼굴을 보고 말았고, 그 얼굴에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것이 느껴졌다고 했다. 주취자라고 하기에는 움직임도 너무 없었다.

어스름이 내린 시신의 얼굴 위로 커다란 벌레가 지나갔다. 기겁을 한 여자는 곧장 경비실로 뛰어갔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황급히 302동 경비실 문을 두드렸을 때는 새벽 6시경이었다.

경비원 박 씨는 여자가 이끄는 대로 아무 정보 없이 따라갔다가 시신을 본 두 번째 목격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말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곧 우리 집 큰딸 결혼식이 있단 말이오. 알죠? 집안에 큰일 있을 때는 친한 사람 장례식도 안 가는 거. 하필 시신까지 봐서……. 에이!”

어쨌든 발견한 그 순간, 경비원 박 씨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찾아들고 119에 곧장 신고를 했다. 잠시 02-119를 눌러야 할지 그냥 119를 눌러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는 그냥 119를 눌렀고 다행히 곧장 연결되었다. 119에 신고한 뒤에는, 평소 관리소에서 누누이 받아 왔던 교육 지침에 따라 관리사무소에 연락을 했다. 당직자였던 설비반장 양 씨가 전화를 받았다.

양 반장 역시 곧장 관리소장에게 긴급으로 전화를 하고 나서 현장으로 출동했다. 아직 119는 도착하지 않았다. 양 반장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신과 맞닥트려야 했던 경비원 박 씨보다 마음의 준비 면에서 나았기 때문에,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냉정해져 있었다.

목격한 입주민의 동호수와 연락처를 받아 적고, 떨고 있는 그녀를 다정히 위로하며 집으로 들여보냈다. 다행히 새벽 시간이라 입주민의 통행은 거의 없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건물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119가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구급대원이 빠르게 뛰어왔다. 경비원 박 씨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어떻게 이 시신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두 명의 남자 대원 중 키가 크고 골격이 우람한 대원이 나서서 시신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두 손으로 시신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금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 말이 들리시나요? 들리세요?”

그러고는 별 반응이 없자, 여자의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가, 다른 대원에게로 시선을 들었다. 눈짓을 하자 여자 대원이 다가와 시신의 심장 박동을 확인했다. 대원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우람한 남자 쪽이 먼저 일어나 양 반장에게 말했다.

“경찰에 신고하세요. 이미 사망하셨습니다. 저희는 환자만 이송할 수 있습니다. 변사한 시신은 거둬 갈 수 없어요. 경찰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양 반장은 다시 경찰에 신고해야 했다. 경찰이 출동해 도착한 뒤에야, 여자의 시신은 비로소 흰 천으로나마 덮일 수 있었다.

먼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출근 즉시, 강주영은 아파트에 뭔가 일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책상 위에 입주자 카드 파일이 아홉 개나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입주자 카드를 꺼내 놔서 책상 위가 지저분해지는 것은 강주영을 귀찮게 할 일이 벌어졌음을 암시하는 일이었다. 대략 이런 일들이다.

골치 아픈 민원거리를 메모지에 잔뜩 적어 놓고 네가 해결하라는 의미든가, 뭔가 시설적인 문제로 입주민들에게 연락을 해야 할 때라든가. 그중에서도 입주자 카드를 잔뜩 꺼내 놓을 때 일어나는 문제 중 가장 많은 것은 이사 문제였다. 이삿짐 차를 댈 수 있도록 주차장에 주차된 몇 대의 차를 빼야 할 때 연락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날과는 약간 다르긴 했다. 302동 12층 아홉 세대의 카드가 모두 꺼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때마침 들어오는 양 반장에게 물었다. 어쩐지 피곤해 보이는 눈으로 양 반장이 강주영을 쳐다보았다. ‘이거 뭔데요?’ 하고 묻듯 눈짓으로 책상 위에 쏟아져 있는 입주자 카드를 가리켰다. 양 반장이 피곤을 떨쳐 보려는 듯 뒷목을 문지르며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

강주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생각지도 못한 사고다.

“왜요? 누가? 어디서?”

“자살인가 봐. 302동 12층 복도에서 뛰어 내렸어. 신분 밝힌다고 경찰들은 왔다 갔다 하지, 목격자 아줌마가 주변에 떠벌리는 바람에 문의 전화는 계속 오지. 환장하는 줄 알았다, 야. 이따가 경찰에서 또 올 거야.”

“12층에서 떨어진 건 어떻게 알았는데요?”

“복도 창문. 거기만 열려 있더라고. 12층 딱 한 곳만.”

그제야 납득됐다는 듯 아아, 하고 강주영이 머리를 끄덕였다. 동계철에는 복도에 있는 수도 계량기의 동파 사고 때문에 복도 창 관리가 평소보다 철저했다. 특히나 기온이 급강하하는 심야 시간과 새벽에는 각 한 차례, 경비원이 순찰을 돌면서 창문을 닫고 있었다.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도착한 양 반장이 건물을 올려다보았을 때 12층의 딱 한 군데, 1206호와 1207호 사이의 복도 쪽 창이 열려 있었다.

물론 그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양 반장의 설명을 듣고 경찰이 즉시 12층으로 올라가 확인하니 열린 창 아래에 어린이용 세발자전거가 놓여 있었다고 했다. 그것을 밟고 뛰어내린 것이라고 추측되었다. 그것은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었다.

그나마, 사망자가 뛰어내리는 상황을 목격자가 직접 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강주영은 생각했다. 그런 장면은 쉽게 잊히지 않은 채,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난 그만 들어간다. 오늘은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뿐이네.”

“네, 들어가세요.”

야간 당직 근무를 섰던 양 반장이 퇴근한 뒤, 교대하듯 관리소장 홍 씨가 들어왔다. 그 역시 새벽같이 불려 나와 지금까지 시달린 듯했다. 강주영은 평소처럼 아침 인사를 하며 홍 소장을 맞았다. 홍 소장은 오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며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손님맞이를 위한 테이블에 별로 앉는 일이 없던 홍 소장이다.

“돌아가신 분은 누구시래요?”

“그게, 아직 몰라.”

“그래요?”

“응. 입주민들한테 혹시 세대에 연락 안 되는 가족분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방송했는데도 안 나오고. 그래서 곧 경찰이 올 거야. 죽은 여자 사진 들고. 경비원들이랑 기사들, 그리고 나도 봤어. 근데 다들 잘 모르겠대. 그래도 혹시 강주영 씨는 알 수도 있으니까.”

이 아파트에 입주해 있는 주민들은 모두 입주 신고와 시설물 확인 문제로 관리소를 찾아온다. 설명은 강주영의 몫이었다. 강주영이 이 아파트에서 8년을 일해 온 만큼 그 사이에 입주한 사람들은 적어도 한 번씩은 강주영과 얼굴을 마주한다. 그렇다면 자세히는 몰라도 낯이 익을 수 있다. 8년 이전에, 그러니까 훨씬 더 오래전부터 거주해 온 사람이라면 경비원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알겠어요.”

“응. 근데…….”

조심스러워하는 듯, 혹은 미안해하는 듯 홍 소장이 목소리를 조금 낮춰서 말했다.

“시신 사진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생전 사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하고 말하려는 순간 노크 소리가 들렸다. 홍 소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누구인지 예감하는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홍 소장의 예상대로 경찰서 강력계 소속 형사였다. 180센티미터는 훨씬 넘어 보이는 키에 어깨가 넓었다. 검은색 싱글코트를 입어 정장 차림인 듯 보였지만 신발은 운동화를 신었다. 어색하기보다는 더 패셔너블해 보이기도 했다. 자기 소개만 없다면 형사라는 직업을 떠올리기는 어려울 만한 외양의 남자였다.

“아, 이쪽은 저희 사무소 경리 직원 강주영 씨입니다.”

“야!”

홍 소장의 소개가 채 끝나기도 전에 목소리를 높이며 일어선 것은 강주영이었다. 놀란 눈을 한 강주영은 손가락으로 지신우 형사를 가리키며 눈만 껌뻑거렸다.

“지신우, 니가 여기 담당이야?”

“너는 내가 어느 구역 담당인지도 모르고 있었냐?”

“그랬나? 전혀 몰랐다, 야. 내가 너한테 관심이 없기는 한가 보다.”

“또 까분다.”

투덕거리는 두 사람을 홍 소장이 번갈아 보며 눈을 반짝였다. 뭔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이었다. 곤란한 듯 강주영이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아, 소장님. 이 친구는…….”

머뭇거리는 강주영의 말을 지신우가 가로챘다.

“강주영 씨 남자친구입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대접할 거라고는 믹스커피뿐이라서.”라며 건넨 찻잔이 지신우의 앞에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겠다며 느물느물 웃던 홍 소장은 이미 소장실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

“뭐 하러 그런 소릴 하냐?”

남자친구라고 밝힌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지신우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설마 솔로 행색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여기 솔로 행색해서 덕 볼 게 뭐가 있다고 그러겠냐?”

관리사무소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들 중, 가장 어린 사람이 50대 홍 소장이다. 강주영의 수비 범위에 들지 않는다.

“그럼 쑥스러워서 그러는구나.”

“시답잖은 소리 말고, 빨리 보이려던 거나 보여 봐.”

얘기가 나오자, 지신우가 잠시 머뭇거렸다.

“시신 사진이야. 괜찮겠어?”

“괜찮지 않으면 뭐? 내가 그런 걸 한두 장 본 것 같아?”

강주영의 꿈은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였다. 지신우는 그녀의 자취방 책장에 한가득 꽂혀 있는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 『인체의 해부학』 등등의 책들을 떠올리며 더 할 말 없이 사진을 꺼내 놓았다.

사진 속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40∼50대 정도로 보이고, 눈썹은 짙은 편, 입술 윤곽이 도드라지는 정도만 빼면 평범한 인상이었다. 적어도 머릿속에 그녀를 본 기억은 없었다.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으면 가물가물할 텐데, 아예 생경한 얼굴인걸. 신원 확인 안 됐어?”

“쉽지 않네. 처음엔 12층 입주민 중 적어도 관련된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세대마다 방문했는데 아는 사람이 없었어. 가족 중 집 안에 안 보이는 사람도 없다고 하고. 괜히 욕까지 들어 먹었다고. 1206호 남자는 밤새 일하고 지금 막 들어왔는데 깨운다고 성질을 내지 않나, 1207호 여자는 문도 안 열어 줘서 한참이나 애먹었다고. 뭐라더라? 경찰이라고 속여서 문 열게 한 다음 자기를 못살게 굴려고 하는 걸 모를 줄 아느냐고 막 그러더라.”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며 움직일 때마다 호루라기를 분다고 잔뜩 흥분해서 전화를 걸어오던 1207호 여자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강주영은 몸을 떨었다.

“그 여자는 원래 그래. 지문 떴을 거 아냐?”

“떴지.”

지신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뜸을 들였다.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도 좋을지 가늠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지신우를 강주영은 계속 말똥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확실히 여기저기 말을 옮기거나 퍼트리는 타입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사에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예전 처음 강주영을 알게 되었던 부녀회장 살해 사건 때처럼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이 정도는 말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지문은 나왔는데, 조회가 안 돼.”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른 접수가 안 되었는지 강주영이 큰 눈을 깜박거렸다.

“조회가 안 된다고. 우리나라 DB에 없는 지문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인은 모두 정해진 나이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다. 지문만 채취된다면, 그래서 백이면 백, 누구의 것인지 조회가 가능하다. 지문이 제대로 채취가 되었는데도 조회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몇 가지 가능성 말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미성년자다. 하지만 시신은 분명 40∼5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노로증 같은 특이한 질환자가 아니라면 첫 번째 가능성은 제쳐 두어도 무방할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외국인이다. 그것도…….

“불법 밀입국자?”

주영의 말에 ‘역시.’라는 듯 지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지.”

“이국적인 느낌은 전혀 없었는데.”

“조선족이나, 중국, 일본 쪽일까 하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

“베트남도 부족마다 다르지만 호치민 시 쪽은 한국 사람과 거의 가깝지.”

“조사해 보면 알겠지.”

“그렇구나.” 하며 강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이미 초점 없는 눈이 허공을 향해 있었다. 뭔가의 생각에 깊이 빠진 것이다. 지신우는 강주영의 이마를 톡 건드렸다.

“범죄 아니니까 괜한 소설 쓰지 마.”

“어떻게 알아?”

시신 발견 당시 열려 있었다는 12층 복도 창에 관해 이야기를 들은 즉시 직접 올라간 것은 지신우였다. 열려 있는 12층 복도 창 아래에 어린이용 세발자전거가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밟고 올라간 사망자의 족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고 지신우는 설명했다. 그리고 창틀에서 검출된 사망자의 지문은, 위치 및 방향이 창틀을 잡고 올라간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딱 들어맞는다고 했다.

물론 사망자를 강제적으로 추락시켰거나, 혼절 혹은 이미 사망한 사람을 내던지고 흔적을 남겨 자살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자살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추락시키기 위해 몸싸움이 일어났다거나, 축 늘어진 사람을 끌고 가 창밖으로 내던지기에는 소음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인적 없는 새벽 시간대의, 그것도 복도식 아파트는 작은 소음이라도 나면 복도 전체가 울린다. 그런 소리를 아무도 못 들을 리가 없다.

그 점에서는 강주영도 동의했다.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민원 전화가 올 때, 각 층을 아무리 돌아다녀도 어느 세대에서 나는지 특정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복도식 아파트의 특성상 소리가 여기저기 부딪혀 울리기 때문이었다.

그런 큰 소리가 났다면, 같은 층이나 혹은 아래층, 위층에서도 누군가 소음을 들었을 것이다.

“자살은 확실하겠지만 ‘왜’ 자살했는지가 중요하겠네. 더군다나 불법 밀입국자라면.”

“그렇지. 범죄나 범죄 조직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사망자가 학대나 노동력 착취를 당했을 수도 있고.”

말을 잇던 지신우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아서였다. 씨익, 강주영이 웃었다. 또 넘어가 버렸다.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지신우가 시선을 피했다.

“여기 있다가는 수사상 기밀까지 다 털어놓겠다.”

“눈치 빨라졌는데?”

“강주영이라는 여자와 사귀면서도 형사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웃음기 어린 그의 핀잔에 강주영도 싫지 않은 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지신우가 뭉친 어깨를 펴는 듯 팔을 한 번 크게 돌렸다.

“사망자 신원 확인이 우선인데 말이야. 다른 아파트까지 와서 자살한 걸 보면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일 거란 말이야. 투신 자살을 하기 위해 아파트로 들어왔겠지. 물론 이 근방부터 시작하겠지만 그 많은 CCTV를 다 조사하려면 골치 좀 썩겠어.”

“뭐? 진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다른 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강주영이 놀란 눈을 했다. 그 반응이 오히려 의아해 지신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당연하지. 내가 오기 전에 소장님께 못 들었어? 아침에 방송까지 했었다고. 집에서 혹시 외출 후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연락을 달라. 그런데 연락 온 것도 없었어. 독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입주자 카드에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 수사 범위가 엄청 넓어질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지.”

“그럴 리가 없잖아.”

“뭐?”

강주영은 지신우의 말이 오히려 더 납득이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지신우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너 같으면, 네가 살지 않는 곳에 가서 자살하는데 12층에서 뛰어내리겠어?”

“그게 무슨…….”

“15층 아파트야. 그런데 왜 굳이 12층에서 뛰어내리겠냐고.”

“그 정도에서 뛰어내려도 죽을 것 같았나 보지. 실제로 성공하기도 했고.”

그 말에 강주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여기면 죽을까, 살까를 계산하는 게 자살하는 사람의 심리가 아니지. 기본적으로 자살하는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대부분 가장 최고층 버튼을 눌러. 계산하는 게 아니라 본능이라고, 그건.”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