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꿈 – 1 (제1회 타임리프 소설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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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3분.

민호는 허겁지겁 지하철 입구에서 계단을 뛰어내렸다. 오늘따라 유달리 시간이 짧았다. 아니, 지금껏 시간이 여유로웠던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눈물이 흐릿하게 시야를 가리는 통에 미처 피하지 못한 짧은 미니스커트의 여자가 그와 부딪혀 계단을 굴렀다.

“미안합니다!”

민호는 여자를 돌아보지도 못한 채 무작정 달려 내렸다. 미안하긴 했지만 다른 데 팔 정신이 없었다. 어차피 소용없는 일 아닌가? 사람들이 그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고 또 일부는 놀라 길을 비켰다. 하지만 길은 언제나처럼 부산하게 막혀 있었다. 앞도 보지 않고 저들끼리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혼자 이어폰을 꽂고 주변에 반쯤 관심을 끊어버린 사람들도, 오로지 핸드폰만 보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너무 많았다. 그냥 사람이 너무 많았다. 쓸데없이.

민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채 사람들 사이를 헤쳐갔다. 코너를 돌고, 달리고, 또 달렸다.

선아의 전화기는 여전히 꺼져 있었다. 망할!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민호가 울부짖었다. 4시 6분. 또 몇 명의 사람들과 부딪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달렸다. 결국 대학생 또래의 남자와 부딪히며 다리가 꼬여 넘어졌다. 민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얼굴을 감싸 쥐고 흐느꼈다. 도저히 닿을 수가 없었다.

“안 돼. 제발……, 안 돼…….”

4시 8분.

쾅!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땅이 흔들리는 미세한 진동이 그의 배를 훑고 지나가고

민호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비명을 지르듯 잠에서 깨어났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전기 배선이 녹아내리는 냄새, 철과 플라스틱이 타들어가는 냄새. 그리고 억울하게 갇힌 수많은 사람들의 살타는 냄새와 그를 괴롭히는 선아의 목소리.

익숙한 천장과 잡동사니들에 둘러싸인 민호는 밤마다 그를 집어삼키는 2인용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다시금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오는 지긋지긋한 악몽이었다. 오늘은 그나마 시작이 이르지 않아 비교적 짧았던 편이었다.

선아를 잃은 지 3년이 넘게 지났건만 악몽은 여전히 자리에 남아 밤마다 그를 괴롭혔다. 기다렸다는 듯 찾아오는 불청객이었고, 너무도 생생한 모습으로 매일 한 번씩, 조금 뜸하면 사흘에 한 번 찾아오는 끔찍한 친구였다. 정신과를 찾아가 치료도 받고 약도 먹고 일부러 밤을 새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선아가 죽은 뒤로 꿈은 한결같았다. 빌어먹을 지하철 화재가 터진 날이었다. 민호는 밤마다 원치 않게 그날을 되풀이했다. 열차는 거짓말처럼 숯덩이가 되었고 많은 사람이 죽었다. 열차 속에 있던 사람은 전멸했다고 봐도 무방했고 유독가스를 품은 연기가 사람들을 질식시켜 열차 밖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워낙 사람이 많은 곳이라 피해가 더 심각했다. 갑작스런 화재와 폭발.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많은 사건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날따라 선아가 회사를 일찍 나와 하필 바로 ‘그 열차’에 타고 있었다는 거였다.

민호는 사고 당시 회사에 있었다. 화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그는 그저 조금 안타까워하고 남들의 눈치를 보며 약간의 동정을 표했을 뿐이었다. 뉴스를 보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수많은 이야기를 듣는 동안도 그랬다. 그때까지는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선아 어머님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민호는 넋을 놓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맞다. 선아는 하루 앞둔 엄마의 생신을 맞아 선물을 사러 갈 거라 말했었다. 사고가 난 역은 잠실이었고 그때도 지금도 백화점이 붙어 있었다. 같이 가자고 얘기했었는데……. 민호는 단순히 쇼핑이 싫어서 일 핑계를 대고 제안을 거절했었다. 후회가 밀려왔다. 같이 간다고 했다면, 선아는 살아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이야기를 선아 어머님께 전해드릴 순 없었다. 오열하는 선아의 가족을 보며 그는 가만히 고개를 떨구었다. 이미 어머님은 딸의 죽음으로 잿더미처럼 까만 슬픔에 얼룩져 있었다.

시계를 보니 슬슬 일어날 시간이었다. 때마침 알람이 울렸고 민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온몸이 쑤시고 의욕도 없었으나 살기 위해선 회사에 나가야 했다.

면도를 하고, 옷을 입고. 어제와 똑같이 집을 나서면서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선아의 기억을 마주했다. 곳곳에 그녀의 체취가 남아 있었다. 작은 원룸엔 분홍색 칫솔이 아직도 세면대에 꽂혀 있고, 함께 쓰던 머그컵도, 장롱 속 그녀의 옷가지 몇 벌도, 함께 보던 TV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핸드폰에도 그녀와 나눈 메시지와 추억을 담은 사진들이 지워지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눈여겨보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그리고 언제였던가. 삐걱거리던 민호의 작은 침대를 버리고 둘이 돈을 모아 장만했던 이인용 침대. 여전히 그녀의 온기가 남아 있을 것만 같은 침대도 그대로 남아 밤마다 민호를 옭아맸다.

탁상 위 비스듬히 놓인 액자에선 선아가 민호를 껴안고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유럽에 배낭여행을 갔던 때였다. 저도 모르게 선아의 얼굴을 바라보던 민호는 씁쓸하게 얼굴을 쓸어내리며 시선을 돌렸다.

둘은 7년을 사귀어온 사이었다. 대학교 기타 동아리에서 만난 선후배로, 교제가 시작된 이후 선아는 늘 동아리에 가입하던 날 기타를 치던 그의 모습이 너무 멋졌다고 얘기하곤 했었다. 그러면 민호도 그녀가 새내기로 처음 들어와 수줍게 인사할 때부터, 찰랑거리는 긴 머리와 수줍은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고 대답했다. 둘은 말 그대로 천생연분이었다.

양가 부모님을 만나 인사를 드렸고 결혼도 약속한 사이였다. 그날 선아가 불타지만 않았더라면, 그들은 지금쯤 신혼여행 중이거나 한 자녀의 부모가 되어 있을지도 몰랐다.

민호는 선아가 그리웠다. 선아의 목소리, 머리카락, 아름다운 몸매, 살결, 체취, 그리고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만 같았던 그녀의 혀와 보드라운 젖가슴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악몽을 꾸고 난 날이면 빈자리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꿈 때문에 그녀를 더 잊을 수 없었다. 민호는 선아가 사라진 뒤에야 자신이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깨달았다.

하필 사고 당시의 둘은 유난히 많이 싸웠다. 사소한 일들이 큰 싸움이 되기도 했는데 너무 오래 사귄 탓일 수도 있고, 종종 지나가는 권태기였을 수도 있었다. 선아가 그렇게 떠나버릴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었다. 민호는 선아가 죽기 전 그녀를 소원하게 대했던 자신이, 마지막 기억을 사랑스럽게 남겨주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어쨌건 선아는 이제 옆에 없었다. 아예 세상에 없었다. 그녀와 투닥거리던 일도 좋은 일도 모두 사라졌다. 대신 꿈이 남았다. 민호는 가만히 자신의 집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을 내고 터덜터덜 집을 나섰다.

꿈속의 민호는 대체로 둘 중 하나였다. 울며불며 미친 듯 사고현장으로 달려가거나, 어차피 안 될 것을 미리 알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시체처럼 걸어 다니는 것. 그날 밤의 꿈은 딱 두 번째의 경우였다.

3시 41분. 사고까지는 28분여가 남았지만 거리를 생각하면 턱도 없는 시간이었다. 민호는 아무 의욕도 없이 죽은 좀비처럼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그 외에는 목적도 할 것도 없기에 항상 잠실로 향하기야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음이 확실한 꿈에선 차라리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무작정 급히 달리는 것보단 좀 더 제정신으로 꿈을 꾸는 경우였다. 그는 서울역에 있었다.

민호는 그날 분명 회사에 있었음에도 꿈은 대체로 회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시작되었다. 가끔은 회사를 배경으로, 심지어 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 적도 몇 번이야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때마다 민호는 자기 자신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회사를 빠져나오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왜 그렇게 도망치는 그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거나 꿈은 주로 사고가 나는 잠실역 안이라거나, 지하철 입구, 사고현장과 한두 정거장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지금처럼 거리가 더 벌어질 때도 있었고, 시간도 들쑥날쑥해서 어느 날은 사고가 일어나기 바로 직전이나 10분 전에, 어떤 날은 아예 한 시간 전에 꿈이 시작될 때도 있었다.

문제는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사고현장에 도착하지도 선아를 구해내지도 못한다는 거였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시간이 많이 주어질수록 사고 현장과의 거리도 멀어져서, 그는 꿈속에서조차 선아를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한걸음. 한걸음. 선아와의 추억들, 사소하게 시작했던 말다툼들, 곧 불타 없어질 열차. 수만 가지 생각들이 멍한 민호의 머릿속을 기어 다녔다.

주변에 너무 무심했던 탓일까. 그가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계단 첫머리에서, 전혀 무방비하게 넘어진 민호는 한참을 굴러 바닥에 엎어졌다. 스스로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나왔는데, 무엇보다 무릎이 저릿하고 뜨거운 것이 정신이 아찔했다. 찢어진 오른쪽 바지 사이로 무릎 아랫부분이 바지보다 참혹하게 터져 있는 게 보였다. 계단에 제대로 찍혀버린 것 같았다. 무릎은 그제야 왈칵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재수가 없으려니…….’

민호는 아예 자리에 드러누워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리어 얼굴에도 피가 묻고 손바닥이 찌릿한 것이 큰 화를 입은 게 무릎만은 아닌 것 같았다.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꿈속에서야 늘 온 사방에 치이며 뛰어다니다 보니 넘어지는 것쯤이야 흔한 일이었지만 오늘은 상태가 더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어차피 이번 꿈에선 무슨 짓을 해도 선아의 지옥 열차에 닿을 수가 없었다.

피투성이의 민호를 보곤 사람들이 놀라 몰려들었다. 피에 젖어 든 바지는 점점 뜨겁고 무거워졌다. 온몸이 쑤시고 마음이 아팠다. 모든 게 귀찮고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다 꿈이었다. 그는 맥없이 도움의 손길들을 뿌리치곤 흐느껴 울었다.

그러곤 꿈속의 손목시계가 4시 8분이 되자 꿈이 끝나 버렸다.

꿈은 슬픔과 좌절보다는 막막한 상실감을 남기고 사라졌다. 꿈속에서 그는 언제나 무력했다.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민호는 뭔가 빠져나가 버린 듯 휑한 가슴을 누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고, 구두를 신고, 문을 나섰다. 어제와 같은 하루였다.

‘아마 내일도 이 모양 이 꼴이겠지.’

민호가 막연히 한숨을 쉬었다. 맞는 말이었다. 적어도 그가 담배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들르기 전까지, 지갑을 꺼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갑을 꺼내 든 그의 손바닥에는 여태껏 본 적 없는 커다란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랫부분이 깊고 넓게 패였다가 아문 듯 보기 흉한 상처였다. 그는 세상이 하얗게 변해 버려 멍청이처럼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저기요?”

편의점 계산원이 의심과 불만이 뒤섞인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오 이런. 민호는 황급히 값을 지불하고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이게 뭐지? 대체 왜?’

민호는 자리에 박힌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손바닥을 다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손을 이렇게 크게 다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흉터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본 적이 없었다.

굳이 손을 다친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설마.

민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꿈에서?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 다친 거지?

그는 건물 사이의 구석으로 들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손바닥에 고정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찝찝한 바람이 불어와 담배를 더 빠르게 불태우는 바람에 민호는 절반 이상 남은 담배를 발로 비벼 꺼버리고 도망치듯 차 안으로 돌아왔다. 회사로 가는 내내 핸들에 닿는 손바닥의 감각이 그를 괴롭혔다.

뭔가 섬뜩한 것을 놓쳐버린 느낌이었다. 민호는 빨간불에 걸려 사거리에 멈춰 섰다. 신호가 유난히 긴 탓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복잡하게 늘어졌다. 문뜩 떠오른 생각에 등에 식은땀이 솟아났다.

어젯밤 꿈에서 제일 심하게 다친 곳은 손이 아니었다.

오 젠장.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밟고 있는 오른쪽 다리가 평소 같지 않았다.

‘기분 탓이겠지.’

민호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움직여 보았다. 평소랑 별 다를 바 없었다. 그럼 그렇지. 그는 안도감에 조심스럽게 핸들을 잡아 쥐었다. 하지만 주위를 살피는 눈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뭔가 놓친 게 있었다. 한 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자 확실히 확인치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민호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무릎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더듬어 볼 필요도 없었다.

흉터가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큰,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던 흉터가…….

이게 무얼 의미하는가?

어느새 신호가 바뀌었는지 뒤에서 클랙슨이 요란하게 귀를 때렸다.

그날 밤 민호는 흉터를 만져보고 또 몸을 뒤척이느라 쉽게 잠들지 못했다. 여러 가설들이 그의 머리를 난잡하게 뒤섞었다. 하지만 결국엔 어김없이 잠이 찾아왔다. 아마 이른 새벽쯤이었다.

강변역에 서 있었다. 아니, 달리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무작정 달려가는 꿈이었다.

민호는 허둥지둥 지갑을 꺼내 통째로 개찰구에 들이밀었다.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열차가 그보다 빨리 도착해 있었다. 저 열차만 탈 수 있다면 제시간에 잠실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아무와도 부딪히지 않고 멀리뛰기 선수처럼 몇 단씩 계단을 뛰어내렸다. 열차는 바로 코앞에 있었다.

그러나 문은 단 1초도 기다려주지 않고 약 올리듯 그를 버려둔 채 닫혀버렸다. 부숴버릴 기세로 문을 두들겼지만 열차는 꿈쩍도 않고 떠나갔다. 민호는 광기에 싸여 주저앉아 흐느꼈다.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음 열차가 도착하자마자 민호는 제일 먼저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그날 꿈에도 선아를 구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깨어났다. 빌어먹을 침대가 그를 끌어안고 있었다. 매일 보는 천장이 그를 조롱하듯 머물러 있고, 침대 옆 탁상에 놓인 선아의 얼굴은 그를 슬프게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라?

흉터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것조차 꿈인가 싶어 세차게 자기 볼을 때려도 보고 핸드폰을 열어 날짜도 확인했다. 하루 종일 흉터에 시달리는 꿈을 꾼 것은 분명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꿈은 단 한 종류이지 않은가?

민호는 벌떡 일어나 홀린 듯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러곤 자신의 카드 사용 내역을 조회하기 시작했다. 이젠 흉터 대신, 선아가 죽은 그날 카드에서 교통비가 빠져나간 기록이 남아 있었다.

“그러면 과거로 돌아갔을 때의 느낌은 어떤가요? 좋은 쪽인가요?”

민호에게 수많은 우울증약과 수면제를 처방해 준 의사였다. 여태 민호의 얘기를 군소리 없이 들어주던 그였지만 오늘은 꿈이 아닌 ‘과거’이야기를 꺼내서인지 눈빛이 조금 달라 보였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차분하고 평온한 목소리지만, 나날이 증세가 심각해지는 환자를 보는 그런 걱정스러운 눈빛이었다.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어요.” 민호가 대답했다. “아주 생생해요. 지난 꿈들보다 요즘이 꿈속에서의 정신도 더 또렷하고요.”

“그렇다면 상처를 입었을 때 고통도 굉장히 사실적이었겠군요?”

“그렇죠.”

“민호 씨.” 의사가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꿈속에서의 상징들은 많은 걸 의미해요. 민호 씨는 아직도 그날 때문에 스스로를 자학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요. 이쯤에서 놓아주세요. 민호 씨는 할 만큼 하셨어요. 사실 민호 씨가 잘못 한 일이 아니었고요. 아시잖아요? 선아라는 분도 민호 씨가 본인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길 원하시진 않을 거예요.”

민호가 원하는 대답은 이런 게 아니었다.

“믿기 힘드시다는 건 알지만 제가 말하는 건 꿈이 아니라, 꿈 이후의 일이에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손과 무릎에 흉터가 있었습니다. 정말이에요.”

민호가 재차 강조했다. 사실 거의 똑같은 문답이 조금씩 틀어져서 몇 차례 반복 되고 있었다.

“정말 확실한가요?”

“예. 정말, 맹세코 확실해요.”

“음, 그건…….” 의사가 고민 끝에 말을 골랐다. “여러 의미로 좋지 않군요. 민호 씨가 제게 찾아온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죠.”

민호가 눈치껏 얼른 대답했다.

“맞아요. 사실, 제가 보기엔 그 문제가 조금 더 심각해지고 있어요. 민호 씨도 무의식중엔 그걸 알고 있기에 절 찾아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시는 걸 테고요. 이런 경우엔.” 의사가 민호의 표정을 살피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가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조금이라도 빠른 치료와 안정이 중요합니다. 조금 더 집중적인 치료를 받아보는 건 어떨까요? 민호 씨는 강한 사람이니까 분명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의사는 그가 점점 더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민호가 원했던 말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럼 어떤 대답을 원하는 거지?’

민호는 그제야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눈을 껌뻑였다. 원하는 대답은 이런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확신을, 자신이 정말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원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그런 대답을 구하겠다고? 아니야. 민호는 자신의 머리가 혼란스러운 건 분명하지만 그 정도로 미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건…… 고민을 좀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호는 딱 그렇게만 말하곤 일어나 상담실을 빠져나왔다.

의사가 그를 불렀지만 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은 채 빠르게 병원을 빠져나왔다. 약을 받아 갈 필요도 없었다. 그는 미치지 않았고, 더 이상 꿈이 두렵지 않았다. 꿈은 이제 피하고 싶은 악몽이 아니라 선아를 되돌릴 수 있는 기회의 문이었다.

만약 상처가 있는 채로 병원을 찾았다면 의사의 반응이 조금은 달랐을까? 글쎄. 아마 민호의 생각이 맞다면 의사는 그 상처들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건 애초에 남에게 도움을 구할 수도, 확인을 받을 수도 없는 문제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증거는 여전히 필요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또 다른 의사를 찾아가는 대신 사고에 관한 뉴스기사들을 조사했고, 원하는 정보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제 확인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꿈을 꾸었다. 화재 장소와 그리 멀지 않은 장소였고 시간은 13분이 주어졌다. 조금만 서두르면 가능성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민호는 어쩐 일인지 정신이 또렷했고 헐레벌떡 뛰고 있지도 않았다. 머릿속에 당장 선아를 구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는 호기심과 또 다른 절박함에 이끌려 편의점으로 걸어갔다. 그러곤 하루 종일 눈이 빠져라 들여다보던 번호를 찍어 복권을 구매했다. 3. 7. 13. 19. 29. 31. 민호는 복권을 반듯하게 반으로 접어 재킷 안쪽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절대로, 아무 곳에서나 우연히 구할 수는 없는 것.
정말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과연 내일 아침 무언가가 달라져 있을까?

날이 밝자 민호는 튕겨나는 용수철처럼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아예 재킷 안에서 3년 전의 1등 복권을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한달음에 옷장으로 달려가려다가, 비명을 지르다시피 침대에 다시 주저앉았다.

너무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확인할 것도 없이 집이 아예 달라져 있었다. 선아와의 사진이 담긴 액자와 늘 그를 집어삼키는 침대를 제외하면, 집 안의 거의 모든 것이 비싸고 생소한 물건들로 바뀌어 있었다.

세상에.

민호는 재빨리 핸드폰으로 해당 회차의 로또 당첨 정보를 찾아보았다. 번호 아래 뉴스 페이지에선 ‘고액의 단독 당첨자’에 관한 기사가 보였다. 그 당첨자는 보나마나 자신이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당첨자가 없어 당첨금을 이월했다던 회차였다.

감당키 힘든 희열에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돈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과거를 바꿀 수 있었다.

비록 ‘그날’부터 어제까지, 뒤바뀐 과거 속에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하나도 알 수 없다 할지라도…….

민호는 올림픽대교 위에 서 있었다. 도시 냄새를 품은 강바람이 그를 빗겨갔다. 3시 59분. 주어진 시간은 9분 정도였다. 촉박한 시간이었지만 민호의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안다고 생각했고, 망설임 없이 전화기를 들었다.

“예, 송파경찰서…….”

“급합니다. 열차를 멈춰주세요.” 민호가 대답을 끊고 급하게 말했다. “곧 잠실역에서 지하철 화재가 발생할 겁니다.”

“예?”

다리 위에 부는 바람 소리가 목소리를 떠밀어 갈라지게 만들었다. 아마 전화기 너머에서는 알아듣기 쉽지 않을지도 몰랐다.

“곧 잠실역에! 화재가 발생한다고요!”

민호가 소리쳤다.

“잠실역에 화재요?”

“예! 4시 8분에! 2052번 열차입니다! 빨리 막아야 합니다!”

“지금 화재가 났다고 신고를 하시는 게 아니라, 6분 뒤에 잠실역에 불이 날 거라고 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니까요! 2052번 열차에서 불이 시작될 거예요! 얼른 열차를 멈춰요!”

“실례지만 어디 사시는 누구시죠?”

경찰이 의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6분여조차 남지 않았다. 젠장할. 경찰이 당장 대응한다고 해도 열차가 멈추기는 할 수 있을까? 민호가 대답을 하지 않자 경찰이 다시 물었다.

“여보세요? 어떻게 불이 난다는 거죠? 화재 사실은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섣불렀다. 오늘은 막지 못한다.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자 경찰이 으름장을 놓았다

“장난치지 마세요. 번호 추적부터 위치 추적까지 다 됩니다.”

민호는 전화를 끊고 이마를 매만졌다. 빌어먹게도 시간이 부족했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는 흥분에 너무 쉽게 생각한 건지도 몰랐다. 시계와 잠실방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올림픽 대로까지는 폭발도, 불길과 연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꿈속 4시 8분에 늘 그렇듯 선아의 죽음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민호를 맞이한 것은 늘 보던 천장도 매일 밤 그를 붙잡던 침대도 아니었다. 등에서 딱딱한 돌바닥이 느껴졌다. 천장은 아무것도 칠해지지 않은 콘크리트 덩어리였고, 그는 죄수복을 입고 있었다.

발치 아래에 육중한 철문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 높이엔 창살이 달린 작은 구멍이 있고 아래쪽에는 식판 정도만 들어올 만한 더 작은 구멍이 달린 문이었다.

방은 아주 좁았다. 사람 둘이 누우면 여유 공간이 없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 머리 위쪽엔 작은 TV가 있는 곳이었다. TV 뒤에는 변기가 있는지 좋지 못한 냄새가 풍겼다. 상황 판단이 잘 되지 않았다. 민호는 온몸에 가려움을 느끼며 문으로 걸어갔다. 밖에 보이는 것은 마주한 밋밋한 콘크리트 복도뿐이었다.

“이봐요! 거기 누구 없어요? 이봐요! 이봐요!”

민호가 문밖으로 소리쳤다.

대답은 없었다. 민호가 몇 번 더 소리치자 누군가가 한껏 성질을 내며 고함을 질렀다. 아마도 다른 감방의 수감자인 것 같았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조용히 좀 해!”

민호는 잠깐 움찔했으나 개의치 않고 다시 사람을 찾았다. 곧 간수 하나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그를 찾아왔다.

“이런 씨발. 뭐야? 뭐 때문에 또 지랄인데?”

“제가,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민호가 물었다.

간수는 별 미친놈을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너 이 새끼야. 어디서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대가리 병신인 척해서 형량 줄일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라.”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제가 왜 여기 있는지만 알려주세요.”

“들어가.”

“제 죄명. 그것만 알려주십시오.”

“들어가서 앉아!”

간수가 곤봉으로 철창을 내려치며 냅다 소리 질렀다.

민호는 깜짝 놀라 간수를 빤히 보다가 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간수를 더 화나게 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간수는 그를 한참 노려보다가 민호가 초조한 눈빛으로 양손을 들어 보이자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병신 방화범 새끼!”

다른 감방의 누군가가 소리치고, 또 다른 감방의 사람들이 킬킬거렸다.

복도의 불이 꺼지자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방에 덜렁 있는 TV라곤 켜지지도 않아서 빛이라곤 복도를 흐릿하게 비추는 달빛만이 전부였다. 빛은 차갑게 뚫린 아래쪽 문구멍을 타고 딱 개미새끼만큼만 기어들었다.

민호는 차갑고 지저분한 바닥에 누워 보이지도 않는 천장을 응시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전화가 충분히 오해를 일으켰을 만하기는 했다. 그래도 방화범이라니. 정부는 그의 전화기를 추적해 누구의 핸드폰인지 알아냈을 테고……. 그리고…… 그리고……

아마도 오늘의 내가 아닌, 꿈속의 그날엔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던 또 하나의 내가, 어제까지 이곳에서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후회와 죄책감이 밀려드는 밤이었다.

잠이 들었나? 소란스러운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철역 안이었다.

그는 시계를 보고, 두리번거리며 이정표와 안내판을 찾았다.

4시 정각. 아니, 이제 1분. 삼성역.

그리고 계단 아래쪽에는 잠실로 향하는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민호는 등을 타고 흐르는 아찔한 예감에 무작정 계단 아래로 뛰어갔다. 내릴 사람은 이미 다 내렸는지 사람들이 열차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가득했다. 그는 거의 핀볼 구슬처럼 사람들과 부딪히며 떨어지듯 계단을 뛰어내렸다. 거의 마지막 계단에선 발이 접질려 정말로 굴러 떨어졌다.

이마에서 피가 나고 모서리에 팔을 찧었는지 짙은 통증이 전해졌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문이 닫히고 있었다. 그는 기다시피 일어나 발을 절뚝거리며 열차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문이 닫히다 그의 몸을 살짝 압박하고는 다시 열렸다.

민호는 열차 안으로 무너지듯 쓰러져 숨을 헐떡였다. 사람들이 슬금슬금 그를 피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이럴 수도 있었다니! 지난 수백 번의 경험을 통해 거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논리적으로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삼성역을 출발하는 열차라면 4시 8분에 잠실역에 도착할 것이다. 그가 탄 열차가 불길에 휩싸일 바로 그 열차였다.

민호는 절뚝거리며 일어나 열차를 가로질렀다. 선아를 찾아야 했다. 그는 사람들을 비집고 헤쳐 다음 칸으로, 다음 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문이 없었다. 마지막 칸에 다다를 때까지 선아를 찾을 수 없었다. 단순히 놓쳤을 수도 있었고 그가 온 반대 방향에 있는지도 몰랐다.

“선아야! 선아야!”

그는 이제 울상이 되어 사람들을 헤치며 반대쪽으로 내달렸다. 어떻게 찾아온 기회인데 이렇게 놓칠 수는 없었다.

“선아야!”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기다리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저 앞에서 경악스럽게 그를 바라보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오빠?”

선아였다. 3년 만에야 만나 보는 그녀였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