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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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오래된 창고가 하나 있다.

그 누구도 그곳에 들어간 적 없었고, 그 누구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으며, 그 누구도 앞으로 들어갈 계획이 전혀 없는 그런 창고였다. 누군가 그것을 가리켜 ‘저건 뭐예요?’ 라고 물으면 ‘어. 창고야.’ 라고 대답해서 창고였을 뿐, 그게 정말 그 구실을 하기는 하는 것인지 아는 사람도 단 하나 없었다.

그 창고는 사업팀 한구석에 있었는데 가까이 있기는 했지만 팀 직원들 모두 그것을 없는 취급했다. 그건 다른 팀 직원들도 마찬가지라 언제부터인지 간혹 안 쓰는 물건들을 어디 치우거나 보관해야 할 일이라도 생기면 그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 앞에 적당히 던져두는 일이 자연스럽게 반복됐다.

꼴에 문이라고 그 바로 앞쪽만큼은 물건을 쌓아두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창고의 문 앞으로 가는 길 양옆으로 폐품들이 길고 높게 쌓여 하나의 작은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 광경이 마치 홍해를 가른 모세의 기적을 연상하게 할 만큼 신비로운 구석이 있어, 그 통로를 지나 창고 안으로 들어가면 어딘가 다른 세계로 통할 것만 같은 묘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창고의 문은 바깥으로 자물쇠가 걸려 있었는데 짝인 열쇠는 원래 없었는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까 창고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서운할 만한 취급을 받는 셈이었다.

회사를 오래 다닌 직원들이 그 창고 안에 무엇이 있을 거라며 어쩌다 한 마디씩 던졌는데 그게 또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작가팀 맏언니인 주 작가는 창고 안에 노총각 박 부장의 숨겨둔 아들이 있을지 모른다며 정신 나간 소리를 했고, 개발팀장 구 프로는 그 안에 대머리 박 부장의 숨겨둔 가발이 있을 거라며 저 혼자 웃는 농담을 했다. 관리팀 노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안에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가 있을 거라며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렇듯 그 창고를 이야기 할 땐 다들 소설가가 되어서는 되는대로 나불거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창고에 전혀, 일절,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버거운 데 그깟 유령창고 있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썼다. 대머리노총각 박 부장이 내게 그 창고정리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입사 후 삼 년간은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대체 사람의 발길이 닿았던 적이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를 그 창고를 느닷없이 나보고 정리하라니. 그건 명백히 일주일 전 일어났던 사건의 보복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이유는 그것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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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부장은 사업팀 수장이다. 쉽게 말해 사업팀의 업무는 회사가 만든 게임을 외국에 내다 파는 것인데, 그 일은 우리 회사의 주된 수익원이다. 그중 일본 쪽 사업을 전담해 맡은 박 부장은 가히 회사를 먹여 살린다 말할 수 있을 만큼 굵직한 성과를 여러 번 냈다. 회사의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 업무에서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존경스러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창고에 관한 허무맹랑한 소문 대부분에 그가 등장하는 이유는 그의 뛰어난 업무성과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만큼이나 기묘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박 부장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두 가지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첫 번째는 회사의 부장 자리에 오른 것이고 두 번째는 완전한 대머리가 된 것이다. 그를 생각할 때면 어떨 땐 전자가 부럽다가도 후자를 떠올리고는 늘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그는 그 누구보다도 괴상망측했다. 외모도 그렇지만 하는 행동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짓궂은 장난을 일삼았고, 허풍도 밥 먹듯 쳤으며, 남들이 일생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기이한 행동도 날마다 선보였다. 내가 처음 이 회사에 입사해 인사하는 자리에서도 그는 태연히 지 콧속에서 나온 코딱지를 보란 듯 튕기며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그가 이른 나이에 머리털이 다 빠져서 성격이 괴상망측해졌는지, 괴상망측한 성격 때문에 머리털이 다 빠졌는지 그 앞뒤 관계는 잘 모르겠다. 관심도 없다. 아무튼 이놈의 인간은 미친놈이다. 그건 알고 있었다. 회사마다 또라이가 꼭 하나씩 있다던데 우리 회사의 또라이는 단연 박 부장이었다.

사업팀에는 그의 직속 부하라 할 만한 자리가 하나 있는데, 그 자리에 석 달 이상 버티는 인간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가까이서는 그 누구도 그의 그 압도적인 괴행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 삶의 비극은 꼭 그런 미친놈이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일어난다. 직함이야 사업팀 부장이지만 그것은 그저 명함일 뿐, 그는 이 회사의 실질적인 대장이었다. 우편물이나 찾으러 가끔 오나 싶은 사장도 그만 보면 굽실거리느라 바빴다. 회사는 그의 왕국이었고 모든 직원은 그의 노예였다. 물론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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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하게도 나는 작년부터 급격히 머리털이 빠지기 시작했는데 내 나이 고작 서른여덟이었다. 개가 똥을 참지 박 부장이 이 좋은 거리를 구경만 할 리 없었다. 전부터 그는 발모제 하나를 늘 분신처럼 가지고 다녔는데, 뚜껑에 달린 작은 붓을 병 속에 담근 후 안에 있는 용액을 묻혀 머리에 툭툭 두드려 바르는 약이었다. 일본 거래처에서 받은 귀한 물건이라며 한동안 자랑하며 다녔다.

문제는 그가 그것을 자신의 머리에 바를 때 짓는 표정이라든가 행동이 도저히 눈 뜨고 봐주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며 그 약을 바를 때마다 정말 머리가 나는 상상이라도 하는 건지 이상한 운율의 콧노래를 으흥으흥 흥얼거렸다. 남의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말이다.

내 모발 상태를 그 누구보다 빨리 알아챈 그는 그 후부턴 꼭 내 앞으로만 와서 그 짓을 했다. 나는 그런 그를 애써 외면했지만 어쩌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그는 꼭 내게 달라붙어 말했다.

“발라볼래? 발라봐!”

그럴 때마다 그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한 방 꽂아 넣고 싶었지만, 먹여 살릴 처자식도 있고, 딱히 어디 불러주는 데도 없어 나는 주먹 대신 비굴한 웃음으로 그 상황을 넘기곤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 바로 일주일 전 그 사건이었다.

점심시간이었다. 나와 박 부장을 비롯해 회사 직원 열 정도가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그날도 그 짧은 시간을 이용해 집요하게 작가팀 막내 작가를 귀찮게 했다.

경 작가. SNS 해? 팔로워 몇? 나랑 친구 할래?

아마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그때 SNS의 백해무익함을 깨달았을 거다. 박 부장의 수작에 당황한 그녀는 자신의 계정이 실은 해킹됐다고 말하며 박 차장의 마수를 피하려 했다. 사회초년생 아니랄까 봐 꺼져달란 말을 촌스럽게 돌려 말했다. 박 부장이 그녀의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표정이 굳은 그가 이전과 달리 차가운 어조로 이해하기 힘든 말을 늘어놨다.

해킹해서 뭐? 협박해 그놈이? 그 말이야 경 작가. 혹시 이상한 사진 있어? 떳떳이 살아 떳떳이. 그럼 협박을 하든 말든 뭐가 겁나. 그래 안 그래?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를 꺼낸 건 둘째 치고 지금 자신이 내뱉는 말이 성희롱인 건 알기나 할까? 나도 참. 평소처럼 그냥 또 개소리하는구나 하고 넘어가면 됐는데 그날따라 딸뻘인 작가에게 치근대는 그의 모습이 어지간히 추잡하게 보였는지 나도 모르게 용감해져 한 마디 내뱉고 말았다.

“박 부장님! 그게 아니고 경 작가 말은 개인정보 도용당할까 봐 무섭다. 뭐. 그런 말 같은데요….”

그 와중에 말하다가 자신감이 없어져 말끝을 흐렸다. 실은 입을 놀리기 시작하자마자 아차 싶었다. 이제 내가 그의 표적이 되겠구나.

아니나 다를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박 부장은 그녀에 대한 시선을 묵묵히 거두고 날 향해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 모습이 마치 미사일 발사기가 폭격할 목표물을 바꾸기 위해 윙하고 기동음을 내며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직원도 박 부장이 곧 내게 발사할 미사일이 어떤 것일지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동안 서늘한 눈으로 날 조준하던 박 부장이 곧 자신의 잠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그 발모제를 꺼냈다. 그리고는 또 코로 으흥으흥하며 그 짓을 시작했다. 친절한 권유도 빼먹지 않았다.

“발라볼래? 발라봐!”

직원들이야 늘 보던 광경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유독 나는 그날만큼은 참기 힘들었다. 당일 아침, 내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지는 참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한껏 우울해진 상태에 많은 직원이 주목하는 중 그런 모욕을 당하니 평소보다 배는 더 수치스럽고 화가 났다. 결국 나는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던져버렸다. 거칠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 부장을 향해 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안 발라! 안 바른다고! 안 발라! 너나 발라! 내가 대머리야? 니가 대머리지! 너도 바르지 마! 머리털 하나 안 나는데 왜 발라! 안 발라!”

나는 들고 있던 밥숟가락을 있는 힘껏 바닥에 내던지고는 그대로 식당을 뛰쳐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