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 clea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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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밥은 물론이거니와 후식도 꿀맛이었다. 맑게 달인 대추차, 백년초와 치자로 색을 낸 유과, 생강 향이 은은한 개성주악까지. 단맛을 한껏 즐기고 있는 혀와는 달리 눈은 쿡쿡 쓰려온다. 시야가 흐려지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으며 이를 악물었다.

‘요즘 누가 널 며느릿감으로 여기는 모양인가 봐. 이것저것 묻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데 혼담이 들어오려나 보다.’
보름쯤 전에, 어머니가 하셨던 말이 귓전을 스친다.

지금 눈앞에서 미소 짓고 있는 이 미남자가 어머니가 말한 그 사람이라면 아쉽지만 그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남자가 들고 있는 건 청혼용 반지가 아니라 K5 권총이고, 여기는 분위기 좋은 한식당이 아니라, 창문도 없이 백열등만 외로이 오렌지 빛을 토하고 있는 창고 한구석이었다. 어제 저녁 퇴근길에 괴한들에게 납치된 정미는 열 시간 넘게 기절해 있었다가 막 눈을 뜬 참이었다.

납치범은 정미에게 환상적인 식사를 제공하고, 눈앞에서 빙글빙글 웃고 있다. 변태 자식.

“어때? 음식이 입에 맞아?”

마녀가 주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어야 했던 헨젤처럼 정미는 어색하게 웃었다. 바둑알처럼 작은 총구에는 검고 혼탁한 어둠이 동그랗게 고여 있었다.

오늘은 어린 악마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황금 같은 놀토. 틈만 나면 결혼하라고 성화인 어머니까지 친구 분들과 속리산으로 여행을 떠난 럭키 세븐의 주말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보드라운 햇살이 비치는 커피숍에 앉아 바닐라 카푸치노를 홀짝이며 조디 피콜트의 최신작을 야금야금 읽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난 당신을 K라고 부르면 되는 건가요? 내 소설 주인공 이름 그대로?”

떨리는 목소리로 정미가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상아를 깎아 놓은 것처럼 창백하고 건조한 피부에 매섭게 치켜 올라간 눈. 해골이 세공된 커프스 버튼이 달린 블랙 셔츠. 목에는 은빛의 차가운 크롬하츠 펜던트가 빛났다. 작품 속에 묘사된 K의 옷차림을 따라했을 뿐인데도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위화감이 없었다.

정미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도시의 청소부』라는 인터넷 소설을 쓸 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소설 속 주인공과 조우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정확히는 K가 아니라, K를 동경하는 살인범이지만.

“모두 당신이 저지른 일인 거죠? 그 살인들은?”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K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어떻게 알고 있지?”

“3개월 전쯤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었어요. 경찰이 내사하고 있었던 거 몰랐지요? 어찌나 꼬치꼬치 캐묻든지 덕분에 고생했어요.”

“……미안하지만 우린 네 소설을 그대로 실행했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실수가 있었다면 그건 너의 계획이 완벽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항변하기 전에 그의 말을 천천히 음미했다. ‘우리’라고 했다. 청소부들은 K말고도 몇 명이 더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까 짧은 기간 동안에 그토록 많은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거겠지.

“내 계획은 완벽했어요.”

“그렇다면 경찰이 왜 너를 조사했지? 응?”

K는 뒤에 있던 캐비닛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왔다. 지난 1년간 저지른 살인들이 번호까지 매겨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정미는 파일의 두께를 보고 흠칫 놀랐다. 한눈에 봐도 경찰이 추정한 것보다 배는 많았다.

머리를 아찔하게 하는 죄책감. 파일을 넘기는 손끝이 저릿저릿 떨려온다.

무려 1년 넘게 이렇게 많은 범죄자들을 죽였는데도 경찰은 제대로 된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내 살인 계획이 그만큼 완벽했다는 뜻인가…….’

뜨겁게 끓인 대추차에 쓴맛과 단맛이 공존하고 있었다. 혀를 태워버릴 만큼 아찔하게.

“……여기. 바로 여기가 문제였어요.”

파일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정미가 말했다.

소설로 치면 4장, 청소부 K가 미성년자들을 상습 성추행했던 범죄자들을 연쇄적으로 처단하는 내용이었다. 소설에서 K는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정보 열람시스템을 이용해 가해자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그들을 몇 년에 걸쳐서 자연사와 사고사를 가장해 주도면밀하게 처리해 나간다. 그러나 현실의 ‘청소부들’은 신상정보가 열람되는 성범죄자들, 현 리스트에는 겨우 22명밖에 올라 있지 않은 사람들을 몇 개월 사이에 거반 쓸어버렸다. 특별 관리하는 범죄자들이 갑자기 줄어버리니 아무리 사인이 제각각이라 한들 경찰이 주목하지 않을 리 없다. 인터넷에 비슷한 내용을 가진 소설이 올라왔다는 제보를 접한 경찰은 정미를 소환했다.

물증도 없었고, 알리바이도 탄탄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지만 워낙 소설 속 살인과 현실의 살인이 유사해서 여름 방학 내내 붙들려 있어야 했다.

취조를 받는 동안 30도가 넘는 살인적인 폭염이 계속되었다. 오로지 풀려나고 싶다는 열망에서 정미는 소설을 쓰면서 취재한 내용은 몽땅 불었고, 경찰관이었던 아버지가 근무 중 순직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들먹이며 구질구질하게 결백을 호소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여름방학이 끝나기 하루 전날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물론 딱 한 명, 여태까지도 정미를 주시하고 있는 형사가 하나 있기는 했다. 임꺽정처럼 거대한 체구에 피부가 붉고 머릿결이 곱슬곱슬한 노총각 경찰. 김 형사는 아직도 가끔 정미의 주변을 맴돌며 의혹을 풀지 않고 있었다. 새로운 희생자가 나올 때마다 ‘네 짓이지?’라는, 추측성 문자를 보내고 그녀가 소설을 연재하는 블로그에는 ‘소설은 소설일 뿐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도배성 댓글을 올리고 다녔다. 가끔은 그녀의 주변을 미행하기까지도 하고, 가끔은 술 냄새를 폴폴 풍기며 퇴근길에 불쑥 나타나서 일장 연설을 하고 사라졌다.

“소설을 모방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놈들보다 훨씬 더 나쁜 건 당신이야. 정말 범죄자들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처리해야 할 쓰레기처럼 생각되냐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서 사람들을 도발시키고는 재수 없게 빠져버리다니……. 내가 당신 아버지라면 무덤에서라도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렸을 거야. 딸을 잘못 키웠다고 원통해하면서. 아무리 아버지를 그렇게 잃었어도 그렇지.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아무렴.”

김 형사가 술 먹고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날이면 정미도 이성을 잃고 맞고함을 지르곤 했다.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요. 이렇게 일이 커질 줄 알았다면 내가 미쳤다고 그런 걸 썼겠어요? 진범도 못 잡는 주제에 찾아와서 선량한 시민을 괴롭히다니 정말 못난 경찰이네. 순직한 우리 아빠 들먹일 자격도 없어요. 이번에는 경찰만 노리는 살인범에 대한 소설을 쓸까보다. 당신 같은 무능한 경찰 좀 없어지게. 이 빚은 반드시 갚아줄 테니까, 두고 봐요. 진범이 잡히면 그날로 찾아가서……!”

만약 지금 정미가 청소부 K에게 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어떤 얼굴을 할까.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라고 손뼉을 치고 좋아할지도 모른다. 정미가 청소부들에 의해 ‘처리’되면, 억울한 죽음을 밝혀주기는커녕 범인이라 도주한 거려니, 착각할지도. 그럴 개연성이 농후한 인물이다.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직도 경찰이 우리 뒤를 쫓고 있는 건가?”

K가 팔짱을 끼며 물었다.

“글이 연재되던 시기에 사이트에 접속했던 사람들의 로그인 정보를 조사하고는 있지만, 원체 많아서요. 당신들의 소재를 파악할 가능성은 희박해요. 걱정 마요.”

김 형사가 불쑥불쑥 나타나 억장을 뒤집어놓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단서가 아무것도 없으니까 답답해서. 희생자들에 대한 죄책감만 아니었다면 진즉에 민원을 넣어 징계감으로 만들었을 거다.

K가 침묵을 지키는 동안, 정미는 파일을 훑어보면서 청소부들이 자신을 납치한 이유를 추측해 보려 애썼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폴 셸던과 미저리 외에는 마땅한 모델이 떠오르지 않았다. 납치를 해놓고서도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을 보면 K는, 더 정확히는 K들은 정미를 포섭하려는 것 같다. 타자기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은 노트북 하나 던져주고는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창고 안에서 범죄 계획을 짜라고 채근하겠지. 조만간 어머니도 끌려올지 모른다. 정미를 고분고분하게 만들기 위한 인질로서.

K는 복면은커녕 선글라스조차 쓰지 않은 맨얼굴이었다. 어두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하지만.

죽을 때 죽더라도 궁금한 건 해결하고 싶다.

“당신, 범죄자들을 죽이는 이유가 뭐예요? 왜 내 소설을 따라하게 된 거죠?”

난데없는 질문에 K는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본다. 반구형 카메라가 붉은 불빛을 깜박이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다른 곳에서 이 방을 감시하고 있는 모양인데 K가 난처한 얼굴을 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결국 그는 마지못해 자기가 지나온 삶에 대해 털어놓았다. 흑인 래퍼가 관객 없는 무대에서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는 듯 우울한 목소리였다.

불운한 운명을 본적이 있나? 반짝 빛을 봐도 다시금 심연 속에 끌려들어가는. 언제나 좌절만이 예비된 숙명. hey yo.

아버지가 날 버린 건 두 살 때 얘기. 어머니가 날 버린 건 열 살 때 얘기. 숙모네 집 얹혀살며 눈칫밥 처지. 도망치자 생각했지. 살기 위해서. 10년간 어둠 속을 헤매 살았네. 독하게 날고뛰며 나만 알았네. 잔혹할수록 강해지는 건 세상의 이치. 밝은 내일을 기대하는 건 나에게 사치.

그러던 어느 날 비추인 햇살. 운명처럼 다가온 oh my girl! 아름답고, 순수하고,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던 여자. put ur hands up!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든 것을 다 바치고픈 상대를 만난 K는 정말로 그녀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마음, 시간, 선물, 돈, 신용카드까지.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는데도 더 주지 못하는 게 슬프기만 했다. 두 사람은 미래를 약속했고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더군. 솔직히 나 같은 놈에게 과분한 여자였지.”

무리하게 돈을 끌어다 쓰다가 자금운용에 실패해 K는 가게 문을 닫게 되었다. 동업하던 친구는 빚만 남기고 도망가 버렸다. 약혼자가 너무 예민해지자, 사랑하는 그녀는 잠시 거리를 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한 번도 충분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던 K는 그것을 이별의 겉치레라고 받아들였다. 배신감을 억누르지 못한 격정의 밤. 그는 연인을 살해했다.

1년 동안 전국을 방황했지만 어디를 가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경찰은 피할 수 있었을지언정 밤마다 찾아오는 가책으로부터는 도망칠 수는 없었다. 눈을 감으면 살려달라고 애걸하던 여자 친구가 떠올랐다.

어쩌다 그렇게 무서운 일을 저지른 건지. 세 번 정도 자살 시도를 했지만 그때마다 요행히 살아났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읽게 된 것이 정미가 쓴 소설, 『도시의 청소부』였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 K는 결혼식을 하루 앞둔 날, 사랑하던 약혼녀가 살해당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단서가 거의 없는 사건이라 경찰도 포기했지만 K만큼은 끝까지 추적을 계속해 결국 살인범을 찾아낸다. 범인은 수차례 감옥에 들락날락거린 누범자. 가책을 느끼지도 않는 인간 쓰레기였다. 분노한 K는 그를 살해한다.

“어떤 인간들은 빨리 죽어주는 게 사회에 득이 되지. 무고한 희생자가 생기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 손을 더럽혀주겠어.”

첫 살인 후.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K는 결심한다. 상습범죄자만을 노려 살육하는 ‘도시의 청소부’가 되기로. 이후, 수십 명의 범죄자들을 소탕하며 종횡무진 도시를 청소해 나간다. 환상적인 솜씨와 주도면밀한 범행. 경찰도 사설탐정도 청소부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었다. 그가 연인의 무덤 옆에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될 때까지 누구도.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K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바로 이거다! 이것이야말로 그녀에게 속죄하는 길이야!’

소설 속 K가 살인으로 정의를 구현하려 했다면 그도 같은 방법으로 죽은 여자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그녀가 나를 만나지 않았다면 억울한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나처럼 ‘불안정한 정신’, ‘충동적인 마음’을 가져 죄악을 일삼는 무리들이 분명 있다. 그런 무리들을 미리 청소한다면 그녀 같은 억울한 희생자들은 생기지 않으리라. 그리고 언젠가 연인의 무덤 옆에서 청산염을 삼키고 죽고 싶었다.

법의 심판을 부족하게 여기는 원통한 영혼들은 도시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한 달 동안은 K가 억울한 일을 당한 고객들을 직접 찾아갔지만 나중에는 고객들이 입소문만으로 찾아왔다. 보안을 위해 이전 고객이 신원을 보증한 사람만을 새 고객으로 받았다. 소설 속 K처럼 사고사와 자연사로 마감되는 살인만을 실행하다보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목표가 제거되면 의뢰인들은 K에게 거금을 내놓았고 상담만 받았던 사람들이라도 K가 두려워서 경찰에 신고하지는 못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의 일을 도와주었다. 대부분이 무책임한 범죄로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유가족들이었다. 처음에는 고객으로 찾아왔지만 몇 번 함께 일하다보니 뜻을 같이 하는 동료가 되었다. 대한민국 최초, 누범자들만을 타깃으로 하는 살인 청부업체는 그렇게 탄생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자기가 선을 행한다고 굳게 믿어야 한다.’라고 말한 건 솔제니친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K의 얼굴은 세계무역센터에 비행기를 박아 넣은 알카에다처럼 뻔뻔스러워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곧 정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K가 알카에다라면 자신은 오사마 빈라덴일 테니.

K5총구가 정미의 이마에 닿는다.

“나도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어.”

서늘한 감촉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차갑게 식은 눈동자, 푸른빛이 도는 입술, 뱀 같은 얼굴을 한 살인자가 정미에게 묻고 있었다.

“그 소설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더군. 이 소설을 쓴 사람은 나보다 더한 악질이다. 나는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지만, 이 작가는 마치 예술작품을 만들 듯 공들여 사람을 죽이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원한이나, 분노 같은 동기도 없이, 그저 ‘재미’를 위해서. 그럴듯한 살인 계획을 짜고 모니터 저쪽에 숨어 혼자 즐기고 있어. 솔직히 말해 봐. 너……, 살인을 동경하고 있지?”

벽에 걸린 시계가 째깍째깍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입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머리가 백지가 된 것처럼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정미는 눈을 감았다. 오랫동안.

“……지금 나한테 동기가 없다고 그랬어요?”

어린 시절부터 가슴을 억누르던 슬픔이 몸을 빠져나갔다가 허공을 일주하고 난 뒤 다시 심장으로 찾아왔다. 심근은 빠듯한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두근두근.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죠? 칼에 찔려 죽었어요. 나쁜 놈들 잡다가.”

장례식이 끝나고 아버지의 후배가 네모난 상자를 전해주었다. 그 안에는 아버지가 경찰서에서 쓰던 소지품들이 들어 있었다. 만년필과 루페, 업무일지들 그리고 새하얀 운동화 한 켤레. 정미가 마지막 생신에 사드린 것이었는데 한 번도 신지를 않고 책상 서랍에 넣고 보고 또 보고 했단다.

왜 착한 사람은 죽고, 나쁜 사람은 감옥에서 행복하게 살지?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삼시 세끼 잘 먹고 잘 자면서.

운동화를 껴안고 울면서 어린 정미는 생각했다.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분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커져갔다. 사춘기 때에는 온갖 추리소설을 탐독하며 벌레처럼 불쾌한 인간들,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쓰레기들을 처리하는 상상하며 쾌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작년 여름.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수의 소식을 들었다. 출소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잘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작은 유흥업소들을 관리하던 그는 이제 고리대금업까지 손을 뻗혀 약자들의 피고름을 짜먹으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만삭의 태아처럼 비대해진 살의가 밤마다 몸을 뒤틀며 그녀를 키보드 앞으로 이끌었다. 정미는 식음을 잊은 채로 세상의 악을 청소하는 청소부 K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진짜 영웅의 이야기를.

2

식사가 끝날 때쯤 본론이 나왔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K는 무엇이 그토록 마음에 들었는지 손까지 덥석 잡으며 속삭였다.

동료가 되어 함께 일하자. 네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지원해 주겠다. 네가 설계하는 계획대로 우리는 움직일 것이다. 너는 머리고 우리는 충실한 수족이 될 것이다. 이 세상의 오물들을 청소해 나가자.

정미는 조소했다.

“당신들에게 충성을 다한다면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죠? 이렇게 갇힌 채로 살다가 변심한 당신들 손에 처리되는 거?”

“이곳에 갇혀 사는 것은 당분간일 뿐이야. 신뢰관계만 성립되면 금방 풀어주겠어. 너는 가끔 원고를 전송하듯 살인계획서를 보내주면 돼. 확실하고 완성도 높은 기획으로 말이야. 공짜로 해달라는 거 아니야. 대가로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익의 10퍼센트를 주겠어.”

청소부들은 현실을 잘 간파하고 있었다. 정미의 협조가 자발적이지 않다면 청소부들은 뇌관이 불안한 폭탄을 껴안고 있는 꼴이 된다. 전적인 협조를 이끌어내도 위험천만한 사업이었다. 달콤한 제안들이 더 쏟아졌다. 당신이 조직원이 되면 우리와 얼굴을 마주할 필요도 없다. 이메일을 통해 연락하면 된다. 혹시 일이 잘못되어 우리가 잡히게 되도 결코 너를 거론하지 않겠다. 내가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는 우리와 모르는 사이다. 꿈쩍 않고 있자, 10퍼센트, 15퍼센트, 20퍼센트……. 몸값은 겅중겅중 뛰었다.

“나는 돈 같은 건 필요 없어요. 모르겠어요?”

정미는 테이블을 탕 하고 쳤다.

“그럼 뭘 어쩌라는 말이야? 뭘 어떻게 해야 우리와 뜻을 같이 하겠어?”

두 시선이 오래도록 공중에서 얽혔다. 수많은 상념들이 담배 연기처럼 모였다 스러졌다.

“사람 하나만 죽여줘요.”

애써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K가 눈을 가늘게 뜬다.

“만약 그 사람만 처리해 준다면 당신들에게 봉사하겠어요. 얼마든지.”

“누구를 죽여 달라는 거야? 설마…….”

“그래요. 우리 아버지를 죽게 만든 고리대금업자. 김정태. 나이 33살. 동대문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