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들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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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근위대장 펠릭스가 체포하러 왔을 때, 요세푸스는 책상에 엎드려 꿈에 빠져 있었다. 마사다 요새에 관한 꿈이었다. 덕분에 펠릭스가 입을 뻐끔거리며 하는 말이 청각에서 뇌로 이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요세푸스 플라비우스. 너를 황제 암살 모의죄와 반역죄로 체포한다.”

펠릭스가 말했다.

그는 얼굴을 근엄하게 찌푸리고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마침내 참고 참았던 후식을 먹게 된 어린아이 같은 즐거움이 묻어 있었다.

“꺼져.”

요세푸스가 말했다.

숙취와 끊어질 듯 이어진 꿈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왔다. 그는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두루마리들과 양피지 조각, 포도주가 든 가죽부대를 밀고 책상 위에 걸터앉았다.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수십 마리의 맹금들이 관자놀이를 쪼아대고 있는 것 같았다.

“떠버리. 넌 끝났어.”

펠릭스가 말했다.

그의 뒤로는 펠릭스를 틀에 구워낸 것 같은 축소판들 다섯이 방으로 들어오는 유일한 입구이자 퇴로를 살기등등하게 막고 있었다. 새들이 이제는 요세푸스의 눈알 뒤쪽의 신경을 부리로 파내고 찢고 쪼아대는 것 같았다.

“므라리―!”

요세푸스가 밖에 대고 외쳤다.

하지만 대답은 바로 앞에서 들려왔다. 펠릭스의 부하들 틈에서 므라리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평소에도 진흙으로 빚은 다음 손으로 쓸어내린 것처럼 이목구비가 아래로 쏠려 있어서 ‘광야의 사다새(펠리컨)’를 떠올리게 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 고약한 손님들은 걱정 말고 시원한 물이나 한 잔 떠와.”

“주, 주인님. 지금은 그러실 때가…….”

므라리가 한겨울 강에 빠진 사람처럼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다새 같은 턱이 아래위로 딱딱 맞부딪히고 있었다. 그 소리에 따라서 요세푸스를 쪼아내는 녀석들도 더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놈들은 그의 가슴 근육을 가르고 심장과 내장을 게걸스럽게 뜯어먹고 있었다.

요세푸스의 양팔을 작은 펠릭스 둘이 단단히 틀어쥐었다.

“이봐, 젊은 친구들. 용무가 있으면 내일 암피테이트룸 플라비움(플라비우스 원형극장, 콜로세움) 낙성식 때 찾아오라고. 황제 바로 옆 자리로 말이야.”

요세푸스는 그들을 뿌리치기 위해 몸을 뒤틀어 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펠릭스 녀석이 잽싸게 다가오더니 그의 얼굴은 강타했다. 턱이 돌아갈 정도로 강한 충격이 왔다. 하지만 오히려 그 충격으로 머리를 지속적으로 쪼아대던 녀석들이 다른 먹잇감을 찾아 날아간 것 같았다.

“한 대만 더 쳐 줘.”

요세푸스가 말했다.

다시 한번 옆구리에 강한 충격이 왔다. 간장이 있는 부분을 맞았는지 울컥하면서 쓴물이 올라왔다. 요세푸스는 펠릭스의 신발을 잘 조준해서 위에서 올라온 물을 뱉는 것으로 복수를 대신했다.

그 다음은 일방적으로 주먹이 날아왔다.

요타파타, 예루살렘, 마사다 전투까지 치열한 충성심과 남다른 무모함으로 차근차근 승진의 길을 밟아온 펠릭스는 어디를 때려야 인간에게 최대의 고통을 줄 수 있을지 잘 알고 있었고 평소에도 부하들에게 훈련의 명목으로 꾸준히 갈고 닦아왔다. 그리고 그 실력은 요세푸스에게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요세푸스는 그저 애처로운 비명으로 녀석에게 병적인 쾌감을 주지 않으려고 어금니를 무는 것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끌고 가.”

손을 멈춘 펠릭스가 말했다.

“잠깐, 잠깐. 도대체 무슨 일이야?”

입 안에 고인 피를 꿀꺽 삼키며 요세푸스가 말했다. 이번에는 녀석의 무릎 보호대를 조준할까 하다가 소중한 피를 낭비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참았다.

“황제 암살 기도가 있었다.”

“뭐?”

그제야 처음에 들었던 펠릭스의 말이 뇌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디서?”

“테르마이.”

황제가 평소에 자신이 건축한 목욕탕에 자주 다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티투스는 무사하신가?”

“암살은 실패했어.”

“어떻게?”

“마사지하던 녀석이 몸을 날려 황제를 구했다더군.”

“그런데 왜 나한테 온 거야?”

“잡힌 놈이 다 불었어. 네가 배후라고.”

날아갔던 녀석들이 떼를 지어 돌아와서, 그의 상처를 헤집고 쪼아대기 시작했다.

“모함이야. 내가 무엇 때문에 황제를 암살하겠어? 황제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는데.”

“유대인 떠버리 사기꾼에게는 과분한 은혜야.”

“황제는 내가 얼마 전 출간한 『유대전쟁사』에 추천사도 써 주셨다고.”

“조국을 배반한 변절자의 치졸한 자기변명뿐이더군.”

“읽었냐?”

요세푸스는 펠릭스가 글을 읽을 줄 알 뿐 아니라, 자신의 책을 읽었다는 사실이 암살 음모보다 더 놀랍게 느껴졌다.

“흥.”

펠릭스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어쨌든 이건 모함이라고. 예전에 요나단이라는 녀석이 나를 무고한 사건도 있었잖아.”

“그때는 운이 좋았지. 이번에는 아마 네 녀석의 운도 다한 모양이다.”

“증거가 있어?”

“있지.”

펠릭스가 주화 하나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주었다. 청동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앞면에는 암포라가 있고 히브리 글자로 ‘제14년’이라고 쓰여 있었다. 머리를 쪼아대던 녀석들이 불길한 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암살자 녀석이 가지고 있었어.”

“14년?”

“그래.”

“세겔 주화는 예루살렘 전쟁이 끝난 ‘5년’이 마지막이야.”

“하지만 일부 열심당에게는 아닌 모양이더군.”

요세푸스가 마지막으로 이 주화를 보았던 때도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침묵만이 감돌던 그곳에서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코가 간지러웠다. 시원하게 긁고 싶었지만 근위병들이 붙잡고 있어서 불가능했다.

“그런데?”

요세푸스가 물었다.

“이것이 시카리들 사이의 증표라더군.”

요세푸스는 펠릭스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졌다.

“불행하게도 너희 집 서재에서 이것을 찾았거든.”

펠릭스가 책상에서 낡은 가죽 부대를 들고 거꾸로 쏟았다.

“그건 내가 어제 마신…….”

피처럼 붉은 포도주가 대리석 바닥을 적셨다. 그리고 세겔 주화들이 짤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데굴거리며 구른 주화가 요세푸스의 발에 부딪혀 멈췄다. 포도 나뭇잎이 박혀 있었고 히브리어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시온의 자유를 위하여.”

2

서기 73년. 마사다.

“시온의 자유를 위하여!”

“시온의 자유를 위하여!”

요셉 벤 마티아스 아니,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경사로에 쪼그리고 앉아서 불길이 잦아들어가는 마사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밤에 로마군이 급조된 성벽에 횃불을 던질 때까지만 해도 적들은 신의 가호를 확신하며 승리의 함성을 질러댔다. 그들의 믿음은 보상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성벽은 횃불에 무섭게 타오르기 시작했지만, 곧 불어온 북풍에 의해 오히려 로마군의 공성 장비를 삼킬 듯 넘실거렸다.

동족들은 환호성을 발하며 ‘시온의 자유’를 연호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남풍으로 바뀌었고 성벽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동족들의 함성도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젖은 솜처럼 눅눅한 침묵만이 요새를 감쌌다.

플라비우스 실바는 단 한 명의 유대인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하라는 엄중한 경계령을 내렸고, 날이 밝고 불길이 사그라지면 마지막 총공세를 가할 것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요세푸스는 적들의 최후를 생각했다. 아마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방적인 살육이 이곳 마사다에서 재현될 것이다. 로마군은 혹시라도 귀금속을 옷 속에 감춘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임산부의 배를 갈랐고, 황금을 입혀 찬란하게 빛나는 성전 벽을 벗겨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불을 질렀다. 아버지 마티아스가 그토록 영광스럽게 생각하던 성전은 로마군을 막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마침내 날이 밝아왔다. 성벽을 모두 태워버린 불길은 더 이상 삼킬 것을 얻지 못하자 입맛을 다시는 듯 바작거리는 소리만을 남기며 수그러들었다.

요세푸스는 자신도 모르게 울대를 움직여 침을 삼켰다. 자신이 서 있는 사막처럼 바싹 마른 혀는 아무런 액체도 목으로 밀어 넣지 못했다. 그는 허리춤에 찬 가죽 물병을 입으로 가져가 물을 들이켰다. 미지근한 물은 협곡에서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을 연상케 했다.

주위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의 옆에서 백인대장 펠릭스가 조용하지만 기민한 동작으로 자신의 글라디우스를 점검하고 있었다. 예리하게 벼려놓은 칼날이 요사스러운 빛을 내뿜더니 검집으로 돌아갔다. 펠릭스의 흉갑에는 돋을새김을 한 원반 형태의 훈장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예루살렘 공격 당시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표시였다. 그는 당시의 공적으로 하사관에서 백인대장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요세푸스는 그가 훈장을 받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임산부의 배를 갈랐는지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펠릭스가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떠버리, 두렵나?”

펠릭스가 물었다.

“자네가 오늘 저녁을 먹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정도로 두렵군.”

“허세 떨고 있네.”

“아니면 자네가 벌을 무서워하는 정도는 되겠군.”

펠릭스가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성문을 부수는 공성 망치만 한 팔뚝에 곰처럼 두터운 가슴 근육을 가진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벌이었다. 요세푸스도 우연한 기회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협곡에서 메마른 바람이 불어왔다. 오늘 흘릴 피 냄새를 맡았는지 독수리 떼가 마사다 위에서 맴돌고 있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도 이렇지는 않았다. 광기에 휩싸인 자들의 울부짖음과 약해져 가는 용기를 북돋우려는 발작적인 고함, 얼마 남지 않은 생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한 울음 등이 가득했었다. 마사다는 모든 것이 진공 속으로 사라진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네가 앞서 가.”

펠릭스가 요세푸스에게 말했다.

“내가?”

“그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황제가 되실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신 분이 아니신가? 네 능력을 조금만 사용하면 적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내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

“시카리가 무서워 그러는 것은 아니고?”

“닥치고 앞에 가라면 가. 혹시 네 친척들이라도 만나면 가여운 목숨이라도 구걸해 볼 기회가 되지 않겠어?”

“아니면 내가 나서서 네 목숨을 좀 살려달라고 구걸해 볼 수도 있겠지.”

펠릭스는 대답 대신 자신의 검을 뻗어 목을 베는 동작을 해 보였다.

요세푸스는 입을 닫고 인공 경사로 위 망대에 서 있는 실바를 올려다보았다. 마침내 그의 손에서 진격을 명령하는 신호가 떨어졌다.

새벽녘의 적막이 찢어발겨졌다.

로마군이 창대로 방패를 두드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병사들의 고조된 살기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해 솟구쳤다.

요세푸스도 펠릭스의 백인대와 함께 불탄 성벽을 잔해를 넘어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보이는 건물을 박차고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었다. 두루마리로 된 율법서와 아이들이 썼음직한 서판만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마사다 어디에서도 생사를 가르는 단말마의 울부짖음도 칼과 칼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쇳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펠릭스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와 요세푸스 자신의 심장 소리만이 귓가를 두들기고 있었다.

펠릭스는 자신의 병사들에게 사방을 경계하도록 시켰다.

“그런데 진짜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황제가 될 줄 알고 있었나?”

거친 숨을 내뿜으며 펠릭스가 말했다.

“입이나 좀 헹궈.”

요세푸스가 코를 막으며 말했다.

그는 건물을 빠져나가 모퉁이에 등을 기대고 몸을 내밀었다. 최소한 등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재빨리 고개를 빼들고 앞을 살폈다. 헤롯이 지은 궁전의 입구가 보였다. 동족들이 모여 있다면 왕궁 안일 가능성이 높았다. 보초를 서는 자들도 없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다시 물통을 꺼내 물을 들이켜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열기에 달궈진 건물 벽이 등짝에 달라붙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굽히고 날아오는 창이나 화살을 경계하며 왕궁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짙은 어둠이 그를 맞았다. 아직 햇빛은 왕궁 안까지 침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세푸스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금방이라도 동족의 단검이 옆구리에 쑤셔 박힐 것 같았다. 열까지 세고 눈을 떴다. 기둥을 빠져나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왕궁의 입구에 펠릭스와 그의 군대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콰직.

요세푸스의 발밑에서 도기 조각이 부서졌다. 적들이 소리를 들었다면 그의 위치는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다. 쿵쾅거리는 숨을 참으며 도기 파편을 살펴보았다. 도기에는 ‘벤 야이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비슷한 조각들이 열개 남짓 깔려 있었다. 만약 이것이 적들이 다가 오는 소리를 알기 위해서 장치해 놓은 것이라면 너무 어설펐다. 물론 그 함정에 걸려든 멍청이도 있기는 하지만.

요세푸스는 허리춤에서 검을 빼어들고 왕궁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그리고 평생 그를 괴롭히게 될 광경이 파고들었다.

헤롯의 아름다운 겨울 궁전, 그곳에는 일렬로 나란히 누운 적들의 시체만이 쌓여 있었다.

3

요세푸스는 절뚝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요세푸스의 집을 나서서 셉티조나움 세베리 근처를 걷고 있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봐, 이거 힘없는 늙은이에게 너무 하는 것 아닌가?”

요세푸스가 그의 팔꿈치를 움켜쥐고 있는 근위병에게 말했다. 한눈에 최근에 근위대에 들어온 녀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바싹 군기가 들어 있었다.

“속지 마라. 보기보다 노회한 자니.”

펠릭스가 말했다.

“다 늙은 책상물림일 뿐이야.”

“흥. 쇠사슬로 묶기 전에 얌전히 따라오시지.”

요세푸스는 속으로 펠릭스를 욕하며 상황을 모면할 방법을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단단히 엮인 모양이었다.

“자네 아버님은 안녕하신가?”

오른쪽의 근위병에게 물었다. 녀석은 오른쪽에 검을 왼쪽에는 단도를 차고 있었는데 칼집에 달려 있는 고리를 벨트에 차고 있었다. 그는 결연한 태도로 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히려 팔꿈치를 잡은 손에 힘이 가해졌다.

“베수비오 때문에 피해는 없으셨나?”

근위병이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다행히 외유 중이시라. 아버지를 잘 아시오?”

“폼페이의 가이우스 플로루스가 아니신가?”

“아!”

근위병의 목소리에 급격한 호기심이 담겼다.

“오토, 그만. 죄인과의 대화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는 것을 모르나? 한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여름 특별 행군을 보내주지.”

여름 특별 행군은 5시간 안에 24로마 마일(35.5Km)을 주파해야 하는 혹독한 훈련이었다. 거기에 전투 장비 외에도 60로마 파운드(19.645kg)에 이르는 물 항아리, 곡괭이, 삽, 도끼, 갈고리, 3일분의 식량 등을 챙겨가야만 했다. 근위병의 태도가 급격하게 경직되었다.

요세푸스는 입맛을 다셨다.

“떠버리. 무슨 방법으로 저 순진한 녀석의 아버지를 알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작 부리지 말고 조용히 따라와.”
펠릭스가 으름장을 놓았다. 요세푸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늑대 앞의 양처럼 순한 표정을 지었다.

근위병의 아버지는 그저 찔러본 것에 불과했다. 녀석의 단도는 고가품이었다. 철이나 청동으로 만드는 칼날이야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지만, 손잡이와 끝의 장식 부분은 어떻게 만드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었다. 단도의 손잡이는 상아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젊은 녀석이 직접 벌었을 리는 없을 터이니 상당한 재력가의 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상아 손잡이에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만든 자의 서명이 있었다. 그것은 폼페이의 유명한 상아세공사 메텔루스의 서명이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폼페이에 들러서 사온 것이거나 폼페이에 사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에 녀석은 단도를 고리에 걸어 벨트에 차고 있었다. 그것은 군단 기수나 백부장 이상만 가능한 것이었다. 저 성질 고약한 펠릭스가 생 초보 녀석의 겉멋을 받아주고 있다면 아버지가 상당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폼페이에 살면서 재력과 권력을 소유한 인물이라면 몇 명 되지 않았다.

비아 트리움팔리스로 접어들자 새로 건축한 원형경기장의 웅장한 모습이 보였다. 타원형의 건물은 선황인 플라비우스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티투스 시대에 이르러 완공되었다. 내일, 티투스는 대대적인 개막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황제는 엄청난 물량 공세를 퍼부을 모양이었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요세푸스가 물었다.

“유피테르 신전으로 간다. 황제는 그곳에 계신다.”

펠릭스가 말했다.

“변호인에게 들렀다 가게 해 줘.”

“나중에 불러주지.”

암피테이트룸 플라비움이 가까워질수록 흉물스럽게 거대한 동상이 보였다. 원래는 네로 황제가 자신의 얼굴을 새긴 동상을 만들었는데, 베스파시아누스가 동상은 그대로 두고 얼굴만 태양신의 얼굴로 바꾼 것이었다.

거리에는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봄에 있었던 대화재 이후로 침울해 있던 로마인들의 얼굴에 모처럼 활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토가 프라이텍스타를 입은 소년들, 칼라미스트룸으로 몇 겹의 컬을 넣어 부드럽게 말아 올린 머리를 한 여자들,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한 남자들,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가는 조련사도 있었다. 아이들은 신기한 구경거리에 마냥 들뜬 모습이었다. 심지어는 펠릭스의 얼굴에도 미소가 그려졌다. 아마도 이것이 티투스가 자신의 재정을 축내면서까지 암피테이트룸 플라비움의 낙성식을 성대하게 치르고자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 암살자는 어떻게 됐지?”

요세푸스가 지나가듯 물었다.

“죽었어.”

펠릭스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요세푸스는 결단을 내렸다.

유피테르 신전은 화재로 전소되어 복원 중이니 황제가 법정이 아닌 그곳에서 그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요세푸스는 티투스 황제가 선황 밑에서 근위대장을 하던 시절 소리 없이 사라진 정적(政敵)들을 떠올렸다. 거기다 대질 심문할 증인도 죽어버렸다. 스스로 누명을 벗는 수밖에는 없었다.

다리가 아파 절뚝거리는 척 하면서 바닥으로 몸을 굴렸다. 엉겁결에 그를 붙들고 있던 오토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는 오토의 허리춤에서 단검을 잽싸게 낚아챈 다음 지나가던 코끼리를 향해 날렸다. 손잡이만큼 성능도 훌륭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단검은 화살처럼 날아가 코끼리의 다리에 박혔다. 거대한 몸집의 코끼리가 괴성을 지르며 앞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왜소한 몸의 조련사가 막대기를 흔들며 코끼리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한 번 날뛰기 시작한 녀석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녀석은 조련사를 흔들어 떨어뜨리더니 성난 몸짓으로 두 바퀴달린 플라우스트룸에 농산물을 싣고 길을 가던 농민을 들이 받았다. 호박이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났고, 배, 콩, 포도가 바닥에 짓이겨졌다. 야채상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요세푸스는 근위병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바닥에 쓰러진 오토의 얼굴을 이마로 들이받았다. 콰직하는 소리와 함께 코뼈가 박살이 났다. 녀석의 비명을 확인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켜 날아오는 근위병의 창을 가슴으로 미끄러뜨렸다. 그리고 흘러내린 녀석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앞으로 잡아당겼다. 창을 찔러오던 힘과 잡아당기는 힘에 의해 녀석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요세푸스는 주먹을 모로 세워 도끼로 장작을 패듯 있는 힘껏 녀석의 뒷머리를 내려쳤다. 녀석이 땅으로 처박혔다.

더 많은 칼과 창이 덮쳐왔다. 요세푸스는 바닥을 구르며 쓰러진 녀석에게서 빼앗은 창을 근위병들의 발목을 향해 휘둘렀다. 무릎 보호대가 있었지만 부드러운 샌들은 발목의 복숭아 뼈까지 보호해 줄 수는 없었다. 근위병들이 발목을 감싸며 쓰러졌다.

요세푸스는 몸을 날려 놈들의 포위를 벗어났다.

상황을 눈치 챈 펠릭스가 성난 황소처럼 고함을 지르더니 옆에 서 있던 근위병의 창을 빼앗아 요세푸스를 향해 날렸다. 요세푸스가 몸을 숙이자 창은 창대가 부르르 떨릴 정도로 벽에 박혔다.

상아를 이리저리 휘둘러 닥치는 대로 물건을 박살내며 날뛰던 코끼리가 얼굴을 움켜쥐고 있는 오토를 깔아뭉갤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었다. 펠릭스가 재빠르게 잡아당기지 않았더라면 코는커녕 얼굴 전체가 뭉개질 뻔했다.

“정신 차려!”

펠릭스의 고함소리에 근위병들이 전열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요세푸스는 혼란을 틈타 있는 힘껏 도약해서 벽에 박힌 창두를 밟았다. 창대가 휘청하며 뚝 부러졌다. 하지만 그 탄력으로 아트리움을 감싸고 있는 담의 꼭대기를 움켜잡았다. 신음 소리와 함께 담 위로 몸을 넘겼다.

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이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몸을 일으킬 때마다 뼈와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누구세요?”

두려움과 호기심이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자 목욕탕에서나 입는 파스키아 펙토랄리스와 수브리가르를 입은 여자가 가벼운 아령을 들고 있었다. 커튼이 쳐진 청동제 침대에서는 배에 털이 덥수룩하게 덮인 배불뚝이 남자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그는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허리띠만 차고 있었다. 침대 옆 협탁에는 먹다 남은 과일이 담긴 접시, 포도주가 반쯤 남은 술잔, 물병, 나이프 등이 놓여 있었다.

여자는 요세푸스의 갑작스런 등장에도 놀라는 기색 없이 나른한 동작으로 물을 따라 마셨다. 여자가 움직이자 파스키아 펙토랄리스의 얇은 천이 풍만한 가슴을 잡아두기 위해 애처롭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유두가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여자의 몸은 송골송골 맺힌 땀으로 빛나고 있었다.

요세푸스는 입 꼬리를 올리며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미소를 흘렸다.

“로마 전체가 난리죠?”

“그건 바깥 소리만 들어도 알겠는데, 당신은 누구에요?”

벽 너머로 코끼리의 울부짖음, 사람들의 고함과 비명, 무엇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장사꾼일 뿐입니다.”

요세푸스는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면서 말했다.

“장사꾼? 요즘 장사꾼은 남의 집 담을 넘어 다니나 보죠?”

“실례했습니다. 아가씨의 혜안에는 당할 수가 없군요. 사실 저는 내일 낙성식에서 공연을 하게 될 곡예사랍니다.”

“곡예사? 훗. 곡예사치고는 담에서 내려오는 모습이 서투시군요.”

여자의 얼굴은 화가 난 것처럼 굳어 있었지만 목소리에는 흥겨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아직은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군. 요세푸스는 생각했다.

“이것 참. 도저히 숨길 수 없군요. 사실 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역사가랍니다.”

“글쎄요. 그 직업이야말로 댁과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데요. 칼을 들고 군인에게 쫓기는 역사가라…….”

여자가 턱으로 담장을 가리켰다. 오토가 담장 위로 팔을 얹고 몸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실례.”

요세푸스는 탁자 위의 청동 접시를 집어 들어 오토를 향해 날렸다. 쇳소리를 내며 날아간 접시는 오토의 이마를 직격했다. 오토가 비명을 지르며 담장에서 사라졌다.

“남편 분께 접시 값은 나중에 물어드린다고 얘기해 줘요.”

요세푸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왜 남편이 있다고 생각하죠? 나도 그 정도 능력은 돼요.”

여자가 샐쭉하게 말했다.

남자의 코고는 소리가 숨넘어갈 것처럼 들려왔다.

“당신 이름은?”

“포르투나타.”

“행운?”

“그래요.”

“그럼 내일 낙성식에 가시거든 ‘Ⅳ’이라고 쓰인 동그란 물건을 잡아요.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거요.”

“당신은 누구죠?”

“나는 환시가요. 황제를 예언한 사람이죠.”

4

요세푸스는 여자의 집에서 나오면서 슬쩍한 남자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치수가 커서 흘러내리는 단점이 있었지만 얼굴을 가리는 데는 유리했다. 집 앞에는 공무여행에 주로 사용되는 사륜마차인 쿠르수스 푸블리쿠스 벨록스가 세워져 있었다. 남자는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싫었는지 직접 마차를 몰고 온 모양이었다.

요세푸스는 마차를 몰고 혼잡한 도로로 스며들었다.

최근의 정국으로 미루어 볼 때 대대적이고 공식적인 수색은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티투스가 황제가 된 후 잇달아 발생한 사건들로 인해서 민심이 흉흉한 상태였다. 작년에는 폼페이의 화산이 폭발하더니, 봄에는 화재가 일어나서 유피테르 옵피테르 막시무스 신전을 비롯해서 많은 가택이 피해를 입었다. 황제는 민심을 다스리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서까지 화려한 볼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황제 암살이 있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광고하는 것은 그의 입지를 좁아들게 하고, 호시탐탐 황제 자리를 노리는 동생 도미티아누스에게 빌미를 제공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거리는 어디를 가나 사람들로 넘쳐났다.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로마는 수도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증축을 거듭하다보니 거대한 미로가 되었다. 거기에 내일 있을 개막식을 보려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도시는 군인들, 노예들, 자유인들, 행상인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인술라이를 지나자 악취와 소음이 몰려왔다. 임대용 공동 주택에는 지하뿐 아니라 다락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고, 그들이 배출하는 쓰레기와 배설물을 처리하는 문제도 로마가 갖고 있는 어려움 중 하나였다.

타베르나 거리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군인들을 상대로 양털로 만든 담요를 판매하는 행상인, 부엌 용품을 파는 가게, 책방, 젊은 여자들에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장신구점 주인, 은행, 선술집, 세탁소 등이 어우러져 한편의 소극(笑劇)을 연출하고 있었다. 요세푸스는 혼잡한 입구에 마차를 세워놓고 사람들 틈에 섞였다.

요세푸스는 양 떼와 소 떼를 비켜 타베르나 거리의 첫 번째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망치는커녕 물 잔이나 들어 올릴 힘은 있을까 싶은 비쩍 마른 노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것 좀 더 만들어 주시오.”

요세푸스가 세겔 주화를 노인의 손에 건넸다.

“이게 뭐요?”

노인이 눈을 찌푸리며 주화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집을 잘못 찾았나 보오. 내가 만든 것이 아니오.”

“마지막으로 작업한 것이 언제요?”

대장간 안은 한 겨울의 매장지처럼 냉기가 감돌았다.

“작년인가? 그나마 아들 녀석이 일을 도울 때는 물건을 좀 만들었는데 전쟁에 나갔다가 죽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만들지도 못하오. 저거나 다 팔면 그만 둘 거라오.”

노인이 가리킨 벽에는 녹이 슨 칼 몇 자루가 걸려 있었다.

“그럼 집에서 쉬지 뭐 하러 나와 계시오?”

“이렇게라도 해서 마누라랑 떨어져 있으려고 그러오.”

요세푸스는 건물을 나와 타베르나 거리의 다른 대장간을 찾아 주화를 보여주며 노인에게 한 것과 똑같이 묻고 다녔다.

네 번째 찾아 간 대장간에서 수확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숨 막히는 열기가 훅 끼쳐왔다. 풀무는 거친 숨을 뿜어내며 불길을 키워내고 있었고, 벽에는 초승달 모양으로 휘어진 칼에서부터 장검, 단검, 창두 등이 걸려 있었다. 상체를 벗어던진 남자가 붉게 달아오른 쇠를 두드려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 남자의 등은 낙타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다. 요세푸스가 헛기침을 하자 남자가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오?”

곱사등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땀으로 번들거리는 상체는 곰처럼 잘 발달되어 있었고 곱슬거리는 털로 뒤덮여 있었다. 미간에서 붙어버린 눈썹마저도 곱슬거리는 것 같았다. 한 쪽 귀가 화상을 입었는지 문드러져 있었다.

“열 개만 더 만들어 주시오.”

요세푸스가 주화를 던지며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오? 한 번으로 끝내기로 하지 않았소?”

곱사등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지난 번 납품 양으로는 모자라게 되었소. 그저 틀에 찍어내기만 하면 되는데 뭘 그러시오.”

요세푸스는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미쳤소? 틀을 아직도 갖고 있게? 벌써 녹여버렸단 말이오. 잠깐, 그 사람이 아닌데? 당신은 누구요?”

“그는 간밤에 담요를 제대로 덮지 않고 자서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내가 대신 왔소.”

“개소리.”

곱사등이가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휘둘렀다. 대장장이가 몸을 일으키자 요세푸스보다 주먹 하나는 더 컸다. 곱사등이만 아니라면 대단한 거구의 사나이였다. 요세푸스는 몸을 젖히며 칼을 들어 쇳덩이를 막았다. 엄청난 열기가 얼굴 앞에서 퍼지며 불똥이 튀었다. 요세푸스는 칼을 비껴 곱사등이의 쇳덩이를 미끄러트렸다. 무거운 쇳덩이를 휘두르는 힘도 힘이지만, 열기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좁은 대장간 안에서 이리저리 몸을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요세푸스는 되도록이면 직접적으로 칼을 부딪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곱사등이의 쇳덩이가 탁자를 내리치자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덜컥.

벽에 기대놓은 곡괭이인지 삽이 넘어지면서 요세푸스도 중심을 잃고 함께 쓰러졌다. 날카로운 쇠가 등을 찔렀다.
곱사등이의 쇳덩이가 머리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빗겨 맞아도 실명이다.

요세푸스는 손에 잡히는 암포라를 녀석의 얼굴을 향해 뿌렸다.

치지직.

차가운 물이 쇳덩이에 뿌려지면서 하얀 수증기가 피워 올랐다.

요세푸스는 곱사등이가 움찔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목을 후려갈겼다. 쇳덩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손목을 잡아당기면서 팔뚝으로 곱사등이의 목을 감싸며 뒤로 돌아갔다. 녀석이 용을 썼다. 요세푸스는 허리를 뒤로 젖히며 녀석의 오금을 힘차게 눌렀다. 곱사등이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녀석의 튀어나온 등이 배를 압박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 따끔거렸다. 목을 감싼 팔에 힘을 주었다. 곱사등이의 몸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입으로는 부글거리는 거품이 넘어왔다. 동공이 풀리고 흰자위가 치켜 올라간 다음에야 팔에 힘을 풀었다. 숨이 차올랐다.

요세푸스는 의자를 가져와 녀석의 몸을 고정시키고 손을 등받이 뒤로 돌려 단단히 묶었다. 차가운 물을 퍼서 얼굴에 뿌렸다. 정신을 차린 녀석은 몸을 격렬하게 흔들더니 곧 체념한 표정이 되었다.

“자네는 좋은 대장장이야?”

요세푸스는 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수작이요?”

“자네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 말이야. 요즘에는 뭐든지 대충대충 하는 인간들이 많거든.”

“당신이 뭘 알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시간 낭비하지 마시오.”

요세푸스는 벽에 걸린 초승달처럼 끝이 휘어진 칼 하나를 손에 들었다.

“자네가 양심적인 대장장이라 날을 제대로 벼려 놨으면 좋겠군. 그래야 손가락을 자를 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거든.”
그는 벽에 걸린 겉옷을 말아 녀석의 입에 쑤셔 넣었다. 녀석이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엔 엄지손가락이야. 참 자넨 엄지가 없으면 물건을 집기가 힘들다는 것을 아나? 아마 앞으로는 망치를 잡을 때도 고생 좀 하겠는걸.”

요세푸스는 엄지 없는 시늉을 하며 네 손가락으로 칼을 잡는 모습을 보여주곤 대장장이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칼등으로 녀석의 엄지손가락 첫 번째 마디를 비볐다.

“날이 무딘걸. 잘 안 썰어지네.”

녀석이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였다. 입 밖으로 침이 줄줄 새어 나왔다. 겉옷을 빼내자 녀석의 입에서 말이 줄줄 새어나왔다.

“며칠 전 밤 어떤 녀석이 주화 모양이 그려진 파피루스와 필요한 양의 청동을 가져와서 제작을 의뢰했소. 주화 제조는 나라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거절했지만 놈은 막무가내였소.”

“귀?”

요세푸스가 아직도 고름이 흐르는 왼쪽 귀를 가리켰다. 대장장이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소. 그가 한 거요.”

“저런. 나도 처음부터 귀를 공략할 것을 그랬군.”

곱사등이가 원독에 찬 눈으로 요세푸스를 노려보았다.

“그는 한 번만 작업하면 두 번 다시 귀찮게 하지 않을 터이니 일을 어렵게 만들지 말자고 하더군. 내가 사는 곳, 부인, 아이들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서. 그래서 물건을 넘겨주고 틀은 재빨리 없애버린 거요.”

“그래서 얼마를 받았나?”

대장장이는 부인하려다 요세푸스의 싱글거리는 얼굴을 보더니 체념한 듯 말했다.

“1000데나리우스요.”

요세푸스는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보통 군인이 1년에 받는 연봉이 225데나리우스였다. 4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그놈의 특징은?”

“망토 같은 것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제대로 보지 못했소. 그런데 외국 사람인 듯 억양이 조금 특이한 것 같았소.”

“그 외에는?”

“한쪽 손가락이 여섯이었소.”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