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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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컴컴한 새벽 한적한 도로, 스키드마크를 남긴 채 갓길에 함부로 꺾여서 세워진 택시 한 대. 뒷좌석에는 온 몸에 멍이 든 채 목이 졸려 숨진 여자의 시체, 함부로 열린 운전석 밑에는 반쯤 삐져나온 방석, 그 아래 핏자국과 아무렇게나 벗겨진 남자 구두 한 짝. 10미터쯤 이어진 핏자국의 끝에는 등에 칼이 꽂힌 채 의식을 잃고 죽어가는 남자.

첫 번째 진술 : 뒷좌석의 휴대폰

내 이럴 줄 알았지, 어째 편한 시절이 오래간다 싶었어……. 아까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이리 될 줄 알았나?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니까. 아이구,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려서 정신을 못 차리겠네. 갑자기 기사가 소리를 지르고 택시가 급정거를 한다 싶더니만, 눈 깜짝할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어쩜 이 년은 지지리 복도 없는지, 이런 주인을 만나서, 이런 꼴까지 보냔 말이야…….

이놈의 직업이 1년 365일 24시간 풀타임인지라 주인이랑 계속 붙어 다니거든요.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그 사람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영감님도, 영감님이라고 불러도 되죠, 잘 아시겠지만, 인간들이란 숨기고 싶은 것도 많고 속이고 싶은 것도 많은 종자들 아닌가요? 그 행태들을 보고 있자면 구역질 날 때 많아요. 그럴 때면 아, 진짜 나 좀 잃어버려주라 싶다니까요. 네? 그래요, 주인이 깜박 잊고 두고 가는 날이 제 휴일인 셈이죠. 그때도 계속 대기 상태에 있어야 하긴 하지만…….

초면에 이런 말 좀 그런데, 사실 제가 중고거든요. 첫 번째 주인은 여중생이었는데, 온종일 손에서 놓지 않고 죽어라 만져대는 통에 내가 이렇게 폭삭 늙어버렸지 뭐예요. 아, 왜 그런 애들 있잖아요. ‘뭐해?’, ‘밥 먹어’, ‘머먹는데’, ‘떡보끼’, ‘영화보까’, ‘먼영화’, ‘딴거’, 이렇게 문자로 대화하는 애들.

이 정도 내공쯤 되면 휴대폰 자판을 보지 않고도 문자를 보낼 수 있거든요. 수업시간에도 서랍 밑에 넣어놓고 실시간으로 중계해요. ‘담탱시간’, ‘열라졸려’, ‘영어화장떳다’, ‘수학바지머묻었어’, ‘홀아비티내나’ 별의별 문자를 다 보내요. 심지어 패스트푸드점 같은 데에서 친구랑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말로 안 하고 문자를 보낸다니까요. ‘머먹을래’, ‘치즈라지’, 이렇게요. 그렇게 실생활을 모조리 중계하다 보니 많이 보낸 날은 문자를 300개 넘게 보낸 적도 있더라고요.

온종일 그렇게 혹사당하고 밤에는 또 남자친구랑 통화한다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요금 많이 나올까봐 걱정도 안 되나 했더니, 그 뭐냐 커플 요금제? 그래서 밤에는 공짜로 무제한 통화를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오래 통화하면 내가 뜨거워지잖아요? 나는 더워 죽겠는데 얘는 귀가 데일 것 같은데도 끊을 생각을 안 한 거라! 매일 그렇게 살았어요. 정말 죽을 맛이었죠.

우리 기계들에겐 인간들과 달리 세월이 제각각 흐르잖아요. 많이 치이고 혹사당한 아이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금세 늙어 죽을 나이가 되고, 관리 잘 받고 고이 모셔진 애들은 평생을 젊은 채로 오래오래 살고 말이죠. 아,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오래 못 가지 싶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6개월만인가 최신폰으로 갈아탄다고 중고로 팔아넘깁디다. 그렇게 분신처럼 들고 다니더니, 지가 함부로 다뤄서 그런 건 생각도 안 하고 날더러 구리다나? 아, 구리다는 말 아세요? 유행에 뒤떨어지고 촌스럽고 구질구질하다, 뭐 그냥 안 좋다 비슷한 뜻이에요. 하긴 그새 남자친구랑 헤어졌는데, 두 사람 이니셜이 덕지덕지 붙은 나를 계속 들고 다니기도 그랬겠죠.

H&S love니 forever니 하는 영어 단어에 미키마우스 스티커까지 붙인 채로 휴대폰 대리점 매대에 누워 있자니 참, 시쳇말로 쪽팔리대요. 지난 6개월간 밤낮없이 고생했던 게 뭐였나 싶고, 무슨 팔자를 타고 나서 이런 낯선 곳에 던져져 있나 싶고. 아직 솜털 보송보송한 여중생한테 의리니 정이니 하는 것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던 걸까요?

네? 이 여자는 어떻게 만났냐고요? 성질도 급하시긴……. 시간이 좀먹나. 내가 오랜만에 말동무가 생겨서 좀 들떴나 봐요. 자꾸 내 얘기를 하고 싶어지네. 사고 때문에 놀래서 그런가 지난 삶이 새삼 서럽고 사무쳐오고……. 아이고, 알았어요, 알았어, 얘기 한다고요. 근데 초면에 반말하지 맙시다? 제가 동안이라 어려보이긴 해도 나이 먹을 만큼 먹었거든요?

그렇게 매대에서 꽤 오래 살았어요. 전 주인이 너무 함부로 굴린데다 시커먼 스티커 같은 게 요란하게 붙어 있으니까 사람들이 사려고 하질 않더라고요. 근데 새 휴대폰을 사러 대리점에 왔던 이 여자가 나를 골랐어요.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던 사람이 나를 보고 눈이 반짝, 하더라니까요.

휴대폰을 사주러 같이 왔던 나이 지긋한 남자분이, 부담 갖지 마시고 새 제품으로 하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는데 말을 안 듣더군요. 싫다 좋다 의사표시를 하는 건 아닌데, 나를 꼭 쥐고 놓지를 않았어요. 번호 개통하고 집에 갈 때까지 한마디도 없기에 벙어리인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고, 일시적인 실어증이라고 하더군요. 뭔가 크게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고, 시간이 지나고 상처가 극복되면 다시 말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이 여자랑 일하면서는 좀 무료하긴 했지만 편했죠. 전화는 하루에 한두 통, 문자도 두세 통이었어요. 항상 깨끗하게 닦아주고 소중하게 다뤄줬고, 일이 다 끝나고 방에 혼자 남게 되면 나를 가만히 쓰다듬곤 했지요. 처음엔 액정을 닦는가보다 했는데, 내 미키 마우스 그림을 만지는 거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이 여자가 나를 고집했던 이유가 내 온몸을 덮고 있는 미키마우스 스티커 때문이었다는 걸. 가끔 그걸 만지면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곤 했는데 그럴 때는 괜히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어요.

네? 연락할 사람이요? 제가 이래봬도 최신형 폰이거든요. 그 뭐냐 DMB로 텔레비전도 볼 수 있고 카메라도 120만 화소에다가 음질 짱짱하게 MP3로 노래도 들을 수 있고요. 전화번호도 300명까지 저장할 수 있는데, 지금 저장되어 있는 번호는 4개뿐이에요. 목사님, 사모님, 목사님 큰아들, 목사님 둘째딸. 근데 이 네 번호 중 누구에게도 전화를 할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녀가 원하지 않을 거예요.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 진술 : 그 택시의 미터기

암만해도 이짓 그만 하라는 계시인가 보오. 내가 이 생활 인간들 햇수로 8년째인데, 살인현장까지 목격했으니 볼장 다 본 거 아니겠소. 그동안 술 처먹고 토하는 놈, 애 나오기 직전에 양수 터진 아줌마, 여기가 여관인 줄 알고 물고 빨고 핥는 것들, 서로 머리채 잡고 경찰서 가자는 종자들까지 별의 별 꼴을 다 봤소만 칼부림은 처음이오. 저렇게 눈앞에서 사람 둘이 죽어나가는 걸 보니, 다리에 힘이 풀리는구려. 재수 옴 붙은 차라고 운전하겠다는 놈도 없을 것이고, 이제 정말 같이 폐차장 가는 일만 남았나 보오.

이 차와 함께 68만 킬로를 달렸구려. 24시간 내내 굴리는 이런 영업택시들은 보통 7년이면 폐차를 시키게 되어 있거든요. 지난번에 폐차되는 선배를 보니 70만 킬로를 찍었습디다. 쓸만한 미터기들은 떼어놨다가 다른 차에 넣기도 하지만, 보통은 같이 저승길 간다고 봐야지. 이 차도 내년에 폐차가 예정되어 있다오. 그래도 올해는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과한 욕심이었나 보오.

난 그저 달리는 게 좋았소. 인구 천만이 몰려 있는 공룡 같은 이 도시에도, 도처에 아름다운 곳들이 숨어 있다오. 비 오고 난 다음날 청명한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달리는 맛을 아시오? 한밤중에 끼고 달리는 한강의 야경이 얼마나 예쁜지 아시오? 한강을 휘감아 돌면서 성수대교에 들어갈 때는 그 왜 인간들이 꺅꺅거리면서 타곤 하는, 놀이공원 청룡열차를 탄 것 같지. 어쩌다 인천공항 손님을 싣고 가서 그 웅장한 공항건물을 볼 때면, 내가 떠날 것도 아니면서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오.

라디오에는 어찌나 재미있고 슬픈 사연들이 많이 나오는지, 그것들 들으면서 구석구석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지요. 이런 저런 인간 군상들 태워야 하는 처지라 힘들고 치사하고 더러운 일도 많았지만 나는 그것도 좋았어. 세상에 아픔 없는 사람 없고, 제 깐엔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것이 다들 예뻐 보입디다.

택시 기사도 사람인지라,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었지요. 이 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팔팔한 20대 아이와 총알택시를 했었어요. 혹시 아시오? 그 유명한 일산 ‘나라시’가 나였다오. 그땐 진짜 총알처럼 날아다녔지……. 한 번 시동을 걸고 나면 타이어가 도로에 붙어 있질 않았거든. 일단 손님을 태우고 나면 한 가지 목표만이 나를 사로잡았소. 스. 피. 드. 죽을 때까지 달리자, 오직 그 생각밖에 안 나는 거요. 안전이라든가 요금이라든가 신호 같은 건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달리는 거지.

그렇게 미친 듯이 달리다보면 운전하는 아이와 한 몸이 된 것 같은 순간이 와. 그때의 흥분은 정말이지 말로 할 수가 없다오. 벌이도 괜찮았고, 일하는 것도 즐겁고, 그때가 내 전성기였지 싶소. 그 아이도 나를 아껴주었고, 우린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였거든. 그 후로 나를 거쳐 간 기사가 수십 명이오만 그 아이만큼 나랑 잘 맞는 이는 없었던 것 같아.

젊은 혈기로 그 생활 1년 반을 하고 나니 몸이 완전히 망가지더구먼. 피곤이 쌓이다 보면 사람이나 기계나 어딘가 탈이 나기 마련이잖소. 나의 파트너도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리 될 운명이었는지, 유난히 스피드를 좋아하던 녀석은 쉬는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트럭에 받혀 죽었소.

일주일 내내 그렇게 무섭게 달려놓고 쉬는 날까지 달리고 싶었을까……. 하긴, 마감 끝내고 나면 돈을 세면서 외제 오토바이를 사겠노라 노래를 하곤 했지. 그걸 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는 게 꿈이라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가 죽었으니 원은 없었겠지요. 첫 번째 파트너와의 갑작스런 이별을 슬퍼할 새도 없이 지금 이 회사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로 쭈욱 지금까지 일해 온 거라오.

이 친구랑 일한 지는 2년쯤 되었소. 보통 두 사람이 교대로 운전을 하고, 기사들이 많이 바뀌는데 나는 이 친구랑 꽤 오래 하게 되었다오. 첫 번째 파트너 이후에 오랜만에 만난 잘 맞는 짝이었지. 매일 쳇바퀴 돌듯 달리다 보면 이유 없이 쓸쓸해질 때가 있거든? 이 친구도 그랬나보오. 어째 오늘 괜스레 허하다, 싶을 때면 그걸 알아챈 사람처럼 무작정 한강으로 가서 강바람을 쐬어줍디다. 그래놓고 ‘영감니이임(아 이 친구도 나를 영감님이라고 불렀다오.) 오늘은 이상하게 마음이 허하네요, 허허. 우리 얼른 마음 추스르고 신나게 일해 보지요― 한강이 참 이쁘잖아요오오.’ 했었지요. 뭐랄까, 나랑 감성적으로 주파수가 맞았다고 할까. 운전하는 내내 돈, 돈, 돈 앵앵거리는 다른 파트너보다 이 친구에게 더 정이 갔다오.

운전이라는 게 인간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요. 이놈이 어떤 놈인가 궁금하면 반나절만 같이 달려보면 알 수 있지. 근데 이 친구는 나이도 젊은데 참 진국이었소. 손님들에게 친절하고 선배들한테도 깍듯하고 운전도 꼭 그렇게 했지요. 지난 2년간 같이 일하면서 급정거를 했던 건 아까 그때가 처음이라면 믿겠소?

택시기사가 참 박봉이에요. 내가 아무리 계산을 해도 답이 안 나와. 이런 회사택시는 사납금 때문에 더 그렇지. 요즘처럼 기름값 비싸고 손님들 없을 때는 그거 채우기도 벅찰 게요. 그래서 기사들이 미터기로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거든.

내 왼쪽에 보면 버튼이 여러 개 보이지요? 심야에 할증 누르면 요금이 20퍼센트가 더 붙고, 시 경계를 넘으면서 복합 누르면 20퍼센트가 더 붙어요. 근데 손님이 많이 취했거나 잠들었다 싶으면 시간이 안 됐어도 할증을 누르기도 하고 시외로 간다 싶으면 출발부터 복합을 누르기도 해. 그걸 우리말로 ‘따당’친다고 하거든. 기사들끼리 모이면 나 ‘따당’쳐서 어디서 어디 갔더니 얼마 더 나오더라, 너는 ‘따당’ 안 치냐 이야기하곤 하지. 누가 제일 많이 부풀렸나 내기하는 인간들도 있고.

인천공항은 더해. 미터 찍으면 나올 요금에 2∼3만 원을 얹어 부른다오. 미터에 20퍼센트 더 붙는다 하고 태우면서 할증에 복합을 슬쩍 누르는 거지. 그럴 땐 요금이 100원과 200원이 번갈아 올라가기도 하오. 40퍼센트 할증 붙는 걸 속이기 위해 미터기를 조작하거든. 그런 택시들은 할증과 복합 표시등이 켜지는 자리에 슬쩍 스티커를 붙여놔요, 손님들 못 보게. 불법이고 사기나 다름없지만 그렇게 안 하면 밥 먹고 살기 힘든데 어쩝니까. 나도 처음엔 이런 나쁜 놈들, 했는데 이 생활 오래 하다보니 이해가 갑디다.

근데 이 친구는 나랑 일하는 내내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소. 할증시간 되면 손님에게 말을 하고 버튼을 누르고, 시외로 나갈 때도 그 경계를 지날 때 “지금부터 시외로 나가기 때문에 요금이 20퍼센트 더 올라갑니다.” 안내방송을 했다니까. 그런 사람은 처음이었어요. 형편 어려운 거 뻔히 아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존경스럽기까지 합디다. 그렇게 살아온 친구에게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소…….

세 번째 진술 : 뒷좌석의 휴대폰

이 여자는 가족이 없어요.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목사님 댁에서 세 아이를 봐주면서 살고 있거든요. 내가 함께 한 2년 반 동안 한 번도 다른 사람들의 연락은 없었어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실어증에 걸려서 말을 못했고, 사정을 딱하게 여긴 목사님이 집으로 데려온 모양이었어요.

줄이 끊어진 인형 같은 여자였어요. 그 왜 있잖아요, 위에서 누군가가 손발에 이어진 줄로 조종해서 움직이는 인형이요. 인간들에게 그 줄은 가족이라든가 돈이라든가 사랑이라든가 꿈 같은 거 아닌가요? 이 여자에게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잠깐 잃어버린 게 아니라 아예 태어날 때부터 없었던 사람 같았죠. 살고 있는 게 아니라, 못쓰게 된 인형처럼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 같달까. 암튼 그랬어요.

목사님이랑 사모님이 노력을 참 많이 하셨어요. “우리는 한 가족이다.”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했거든요. 목사님 댁 세 아이들도 살갑게 굴었죠. 큰아들이 열세 살, 둘째 딸이 열한 살, 그리고 늦둥이 막내가 네 살이었는데 이모, 이모 하면서 여자를 잘 따랐어요. 여자도 아이들을 살뜰히 챙겨줬지요. 목사님과 사모님이 바깥일로 바쁘니까 집안일을 도맡아 했거든요. 학교 다녀오면 간식도 챙겨주고 먹고 싶다는 반찬이 있으면 만들어주고, 간단한 숙제도 봐주고 잠자리도 챙겨주고요.

2년 반을 그렇게 살다보니 여섯 명이 진짜 가족이 된 것 같았어요. 주일마다 함께 교회에 다녀와선 잔치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명절이면 편을 갈라 윷놀이를 하고 걸이네 윷이네 실랑이를 벌이고. 때마다 김밥 도시락을 싸서 동물원이나 놀이공원으로 소풍을 가기도 했지요. 목사님 내외는 여자도 언젠가 독립을 해야 한다면서 10만 원씩 저축도 해주고 새로운 사람 만나보라고 세탁소 남자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어요.

여자가 가장 흥미를 보인 것은 영아원 봉사활동이었어요. 목사님 사모님이, 아기를 잃었으니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상처가 아물 거라고 추천했거든요. 토요일마다 근처 버려진 아기들을 수용하는 곳에 가서 우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놀아주곤 했는데 그때의 여자는 참 평온해 보였어요.

그렇게 아주 조금씩, 여자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매일 자기 전 내 바탕화면에 있는 세 아이들 사진을 보면서 간절히 무언가를 기원하곤 했지요.

언젠가 수요 예배 때 집사님들이 얘기하는 걸 들으니, 주정뱅이 남편한테 오래 맞고 살았던 모양이에요. 그런 남편이라도 사랑했던 건지, 달리 갈 곳이 없었던 건지, 계속 살다가 아이까지 낳았나 봐요. 그렇게 몇 년을 참고 살았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남편이 모진 세상 살아서 뭐하냐고 그 어린 것을 패대기쳤다지요. 그래놓고는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여자를 못 가게 잡고 두들겨 팼대요.

제 힘으로는 남편이 감당이 안 되니까 반항하다 집에 불을 질렀다던가……. 다행히 불은 꺼졌지만 숨이 끊어진 어린 것을 안고 며칠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있었다고 하더군요. 남편은 종적을 찾을 수 없어, 교회 사람들이 아이 장례를 치러주고 여자를 데려왔대요. 그러니 목사님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냐고, 집사님들이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걸 들었어요.

미키마우스는 그 아이가 좋아했었나 봐요. 나를 만지면서 웅얼거리던 뜻 모를 소리가 아이 이름이었겠죠.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철렁했어요. 이 여자를 어쩌면 좋나, 어떻게 하면 웃게 할 수 있나, 다시 세상과 이야기하게 만들 수 없나, 고민했죠. 그래서 오늘 그녀가 2년 반 만에 처음 입을 뗐을 때, 그 말을 하고 웃었을 때, 정말 뛸 듯이 기뻤는데…….

여자와 저는 운명이었을까요? 끔찍한 사고로 아이를 잃고 세상과 담을 쌓은 여자와 온몸에 우스꽝스러운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채 버려진 휴대폰과의 만남.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말을 했던 오늘, 그녀 곁에 있던 건 저뿐이었어요. 이제 그녀가 죽었으니 오직 저만이 그 모습을 목격한 셈이잖아요? 그녀는 2년 반 만에, 오늘 두 번 웃었는데, 첫 번째 웃음은 저만 보았고 두 번째 웃음은 저 택시기사가 본 거예요. 그렇다면 저 남자랑 여자도 운명이었던 건지…….

네 번째 진술 : 그 택시의 미터기

이 청년에게는 어머니가 한 분 계시다오. 고혈압과 당뇨가 같이 와서, 합병증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요. 병원도 자주 가야 하고 약값도 만만치 않고. 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 여읜 모양인데 여자 홀몸으로 자식 키우는 게 보통 일이오? 남들 다 하는 대학공부도 못 시켜줬는데 아프기까지 해서 아들에게 짐이 된다고 늘 죄스러워 한답디다.

이 친구도 어머니에게 어찌나 끔찍한지 운전하는 내내 어머니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오. 시간마다 전화해서 안부 묻고 설렁탕 먹었네 제육볶음 먹었네 일일이 보고하고 장거리 손님 태우고 어디 간다고 얘기하고, 이제 회사에서 정리하고 들어간다고 전화하고 그러는 거요. 요즘 애들 같지 않게 효심이 지극했지요.

택시기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자주 쓰러지는 어머니 때문이었다고 하더군요. 쓰러진 어머니를 업고 병원에 가려고 나왔는데, 택시가 안 잡혀 죽을 고생을 했던 모양이오. 차 살 돈은 없고 제가 택시를 몰고 있으면 어디서든 어머니에게 가기가 더 편하다고 생각했던 게지. 무엇보다 다른 사람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제일 먼저 병원으로 모셔다 드릴 거라고, 자기 같은 일 겪지 않게 할 거라고 하는데 괜히 뭉클 합디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오늘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웃었다고 했지요? 나는 이 친구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진 걸 오늘 2년 만에 처음 보았소. 이 사람 별명이 바람 빠진 김 기사였거든요. 매일 실실거리고 다닌다고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었냐고 사람들이 붙여준 별명이오. 운전에 지장 있다고 술은 입에도 안 대고 돈 아낀다고 담배도 끊고, 사는 재미라고는 없었을 사람인데 늘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오. 그게 참 신기했소. 하루 이틀도 아니고 2년 내내 웃는 얼굴이라니,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지 않나요?

사람이 없이 살면 팍팍해지기도 하련만 이 친구는 그런 적이 없었어요. 장거리 승객이 돈을 안 내고 냅다 튀었을 때에도(요금이 27,000원이나 나왔지, 허허.) 그냥 웃고 말았고, 만취한 손님이 차에 오바이트를 했을 때도, 곯아떨어져 집을 못 찾고 헤맬 때에도, 손님 걱정부터 했다니까.

한 번은 잘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타더니 이 친구를 위아래로 쭈욱 훑는 거요. 그리고 한다는 말이 ‘자기 하루에 얼마나 벌어?’ 이래요. 얘가 허허허 웃기만 하니까 이 여자가 또 그러는 거요. ‘나랑 같이 미사리 안 갈래? 하루 일당에 10만 원 얹어줄게, 나랑 놀자. 그쪽이 맘에 들어서 그래.’ 목동까지 가는 20분 동안 끈질기게 매달리더군. 그래도 꿈쩍을 안 하니까 운짱 주제에 튕기기는…… 하면서 돈을 던지고 내리더라고. 그쯤 되면 짜증낼 법도 하건만 ‘영감님, 저 헌팅 당했어요, 허허.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네요, 재밌네요.’ 이러고 말더군.

작년 겨울에 오래 사귀던 아가씨랑 헤어졌을 때도 그랬소. 여자 쪽 부모가 심하게 반대를 했나 보더라고. 여자가 부모 대신 용서를 빌겠다고 울며불며 매달리는데도 가만히 손을 놓더니 웃는 얼굴로 차에 타. 내 걱정돼서 유심히 봤소만 분노도 냉소도 아닌 그냥 편안한 웃음이었소. 그날 하루 종일 이 친구 정말 괜찮은가 눈치를 봤지. 평소와 다름없이 허허실실 웃으면서 손님들 친절히 맞고 조심스럽게 운전을 합디다.

그날 새벽 영업이 끝나갈 때쯤 한강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더군. 보닛에 걸터앉아서 한참을 말없이 강물만 바라봅디다. 입가엔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였소.

“휴우우우우우,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 한두 개비 몰래 숨겨두는 건데 그랬네요. 영감님, 저 오늘 수진이랑 헤어졌어요. 저 같은 놈한테는 딸 못 주신다네요. 하긴 저라도 그럴 거 같아요. 배운 것도 없고 돈도 없고 비전도 없는데 뭘 믿고 딸을 맡기시겠어요. 다른 좋은 사람 만나는 게 수진이한테도 좋은 일이겠죠? 이렇게 사는 거 한 번도 후회하거나 원망해 본 적 없는데 오늘은 마음이 참 그러네요.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어머니 걱정하실 테니까, 얼른 마음 추스르고 괜찮아져야죠. 괜찮은 척 해도 어머니는 귀신같이 아시거든요. 진짜 괜찮아져서 들어가야 해요. 그러니까 저 괜찮아질 때까지 영감님이 제 얘기 전부 다 들어주시는 거예요.”

5시까지는 차고지에 가야 했지만 우리는 오래 함께 있었소. 아무 말 없었는데도 그 마음이 구구절절 느껴졌지요. 그날 저 사람이 우는 듯 웃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소.

이 청년이 그렇게 끔찍하게 아끼던 어머니가 지금 병원에 있소. 아까 여자가 나왔던 그 병원 말이오. 오늘은 저녁 타임이라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올 때만 해도 멀쩡하더니 아들 나가자마자 쓰러졌다고 연락이 왔어.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왔는데, 임종도 지키지 못했소. 장례를 치러야 할 텐데 아 글쎄, 이놈의 병원에서 치료비를 정산하지 않으면 고인을 내줄 수 없다는 거요. 인간이란 것들은 참 이상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숨이 아니요? 그런데 너무 자주, 돈이 목숨보다 중요한 것처럼 군단 말이지.

접수처 직원과 한참 싸우고 나온 모양인지 씩씩거리며 어쩔 줄을 모르더라고. 그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 봤소. 단돈 얼마라도 손에 쥐어야 시신을 찾겠다 싶어 황망하게 운전대를 잡은 건데, 그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여자를 태운 것이오. 경황이 없어 휴대폰도 병원에 두고 온 모양이던데……. 지금 저 녀석은 아마, 제 목숨이 끊어지는 것보다도 병원에 버려져 있을 어머니 생각에 더 애가 탈 것이오.

이 친구가 정신이 나가 있었던 것은 이해가 가오만 그 여자는 대체 왜 그랬던 거요? 처음에 청년이 화가 났을 때 미안하다고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저 여자도 넋이 나가 있는 것 같던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다섯 번째 진술 : 뒷좌석의 휴대폰

지금 새벽 3시가 넘었으니까, 어제 점심때였나 봐요. 어린이집에 다녀온 막내랑 점심을 먹고 설거지까지 끝낸 참이었어요. 유부초밥을 맛있게 먹은 막내가 졸리다고 투정을 부렸지요. 아이를 허벅지에 눕히고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토닥토닥 하다가 여자도 살포시 졸고 있었어요.

신경질적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잠에서 덜 깬 여자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웬 초췌한 남자가 서 있는 게 보였어요. 여자가 허둥지둥 뒷걸음질을 치다 자고 있던 아이에 걸려 넘어지고, 잠에서 깬 아이가 울기 시작했지요. 남자는 신발도 벗지 않고 거실로 들어와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어요.

“야 이년아! 여기 숨어 있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냐? 멀쩡한 집에 불 질러서 사람 오갈 데 없게 해놓고, 서방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관심도 없지? 어? 예나 지금이나 이년은 제 서방을 발바닥의 때만큼도 여기질 않는다니까?”

그러더니 다짜고짜 두들겨 패기 시작했어요. 여자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벌벌 떨면서 그냥 맞고 있었죠. 제 분에 못 이겨서 한참을 발광하던 남자가 소리를 질렀어요.

“서방이 길거리에서 먹고 자고 그 고생을 했는데 네년은 이렇게 좋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었다 이거지? 이 애새끼는 뭐야? 그새 새 서방이라도 만난 거냐? 어? 그런 거야? 이년아, 서방님이 물어보시면 대답을 해, 대답을!”

“아저씨 나빠! 왜 우리 이모 때려? 나가! 여기 우리 집이야! 하나님의 집이란 말이야. 아저씨 사탄이야? 당장 나가!”

“뭐? 사탄? 이 어린놈의 새끼가 뭐라는 거야? 너 이 새끼 혼 좀 나봐라!”

남자가 아이를 향해 발길질을 하려고 하는 걸 여자가 몸으로 막았어요. 황급히 남자를 끌고 제 방으로 들어가더니, 허겁지겁 통장을 찾아 쥐여주며 가라고 애원하더군요. 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잔액을 가리키면서 빌었어요.

“뭐야 너? 왜 말을 못해?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300? 이까짓 푼돈으로 네 년의 죄가 씻어질 줄 알아? 그렇게 얻어터지고도 아직도 나를 몰라?”

한참동안 발길질이 이어졌어요. 발길질에 가끔씩 몸을 뒤틀 뿐 자포자기한 듯 늘어져 있던 여자가 혼절했지요. 그제야 분이 풀리는지 남자가 냉장고에 가서 물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어요.

남자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막내가 나를 잡고 목사님께 전화를 걸었어요. 제 언니랑 오빠가 1번 누르면 아빠랑 전화하는 거라고 매일 교육을 시켰거든요. 아이가 전화를 들고 있는 걸 본 남자 눈이 휘뜩 뒤집혔지요.

“너 이 새끼! 지금 뭐하는 거야? 죽여버린다아아아아!”

아이가 밀쳐지면서 나도 베란다 창문까지 튕겨져 나갔어요. 바닥에 머리를 찧은 아이는 정신을 잃었고요. 그때 기절해 있는 줄 알았던 여자가 남자에게 달려들었어요. 자기를 쓰러뜨리고 아이에게로 달려가려는 여자를 남자가 잡아끌었어요.

“이 새끼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은행 가서 돈 찾아와! 딴 데로 새거나 늦게 오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쏜살같이 뛰쳐나갔어요. 그때 나한테는 목사님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죠.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가 나를 집어 들어 배터리를 빼버렸어요. 나도 그렇게 정신을 잃었어요.

여섯 번째 진술 : 그 택시의 미터기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구먼. 여자가 택시에 탈 때만 해도 너무 도도하네 싶을 만큼 차분해서 그런 줄은 몰랐지. 하긴 이 친구 신경 쓰느라 손님 볼 정신이 없기도 했소. 어디 가냐고 물으니까 ‘인천공항’이라고 쓰기에 말을 못하는 사람인가보다 했을 뿐. 평소 같았으면 저 청년, 말 못하는 이 손님한테 극진히 했을 것이오. 가는 길 설명도 해주고 요금도 얼마 나올지 알려주고, 사근사근 웃으면서 말도 붙였을 게요. 그런데 오늘은 경황이 없었지. 인천공항으로 간다니 단돈 몇 만 원이라도 쥐겠구나 싶었을 테고. 빨리 갔다 올 생각 때문인지 정신없이 밟아대서 나도 차도 좀 당황했소. 칼에 찔린 저 친구가 다시 시동을 켜려고 했을 때, 차가 비실거리다 결국 퍼져버린 게 그것 때문인 것 같구려.

택시라는 공간이 그렇소. 이리 좁고 밀폐된 곳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경우가 없어. 인간들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럴 때면 기사와 손님 사이에 오가는 적대적인 에너지가 팽팽히 맞서게 돼. 서로 의심하고 무서워하는 거지. 목적지에 도착해서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건넬 때에야 그 긴장감이 사라져요. 이렇게 깊은 밤이거나, 여자와 남자 단 둘이 있을 때는 그게 더 심해지고.

근데 이 둘은 전혀 그런 기미가 없었단 말이지. 이 친구는 여자를 의식하지 못할 만큼 어머니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고, 여자도 자기 안으로 늪처럼 가라앉고 있었어.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아, 생각해 보니 둘 다 정상적인 회로체계가 아니긴 했소. 고장 난 라디오나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처럼, 잠시 정상적인 뇌기능이 정지되어 있었어. 그랬으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했겠지.

“너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야…….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러면 안 되지…….”

왈칵, 피를 토하듯 청년이 내뱉었을 때, 나는 여자에게 바로 사과할 줄 알았어.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니라고, 안 좋은 일이 있어 그런다고, 미안하다고.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여자는 가만히 있더군. 이 녀석은 씩씩거리면서 계속 거칠게 운전을 하고 있었고. 덜컥 겁이 납디다. 시한폭탄 같은 거야, 제정신이 아닌 거야. 인천공항까지 한참 남았는데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됐소.

자네도 봤다시피 그 후로 한참 침묵이 이어졌잖소? 나한테는 그 시간이 영원 같았소. 몇 개의 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던 택시가 횡단보도 앞에 겨우 정지했을 때, 할 수만 있다면 여자를 내리게 하고 싶었지.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또 그의 혼잣말이 튀어나왔어.

“우리는 세상에 단 둘뿐이었어……. 너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야.”

여전히 여자는 가만히 있더군. 벙어리에 귀머거리인가, 차라리 다행이다 했소. 차는 계속 무섭게 달리고 있었고 공항고속도로 타면 금방이니까 조금만, 조금만, 기도하는 심정이었지. 어찌된 인생이 단돈 몇 십만 원 융통할 곳이 없어 이 정신에 운전대를 잡았누, 침통하고 서글펐소. 나에게 손이나 팔이 있었다면, 가만히 안아주었을 것을…….

“돈이 아무리 좋아도, 돈이 아무리 좋아도오오오오, 네 가족이었어도 그랬겠어?”

‘아이고 이 친구야, 진정해. 그러다 사고나! 자네 황천길가면 어머니 장례는 누가 치러주나. 이 손님 얼른 내려드리고 회사 들어가서 김 기사랑 박 기사한테 사정 얘기를 해보세. 다들 어렵지만 조금씩 갹출하면 얼마라도 모이지 않겠어. 그렇게 해서 어머님 좋은 데 보내드리자고.’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혼자서 간절하게 주억거리고 있었다오.

그런데 그때, 돌부처처럼 앉아 있던 여자가 이렇게 대꾸하는 거요.

“가족? 한 가족? 하! 웃기시네!”

내가 기계가 아니었다면, 난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거요. 아이고, 수류탄 안전핀이 뽑혔구나, 터지는 건 시간문제구나, 이 여자가 미쳤나? 다 듣고 있었던 거야? 말도 할 줄 알고?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갔소. 다행히 청년은 제 생각에 정신이 팔려 그 말을 못 들은 듯했소. 아이고 얼른 가자. 제발 무사히 얼른 가자, 하는데 여자가 한 번 더 기름을 부었지.

“우리는 가족이다? 좋을 때나 힘들 때나 함께? 하! 말이야 좋지!”

끼이이이이이익. 핸들을 어찌나 거칠게 꺾었는지 청년의 몸이 오른쪽으로 완전히 틀어졌지. 나는 그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었어.

“뭐? 다시 한번 말해 봐! 뭐가 어쩌고 어째?”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