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 주머니 속 파란 종이

  • 장르: 일반 | 태그: #일상 #소소한
  • 평점×8명 | 분량: 29매 | 성향:
  • 소개: 매일 생기는 주머니 속 파란 종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더보기

바지 주머니 속 파란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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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안에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바지 한 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요즘 들어 매일 이 바지를 입고 하루를 생활한다. 큰 이유는 없다. 퇴근길에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꼭 천원 한 장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마다 천원을 챙겨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몰래 넣어주는 것 처럼 퇴근길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면 꼭 작은 행복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이상하지만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난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며칠 전, 퇴근길에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매우 사랑하는 슈크림 붕어빵을 파는 노점상이었다. 놓칠 수 없었다. 그 곳에 슈크림 붕어빵이 있는데  안먹고 지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고민하지 않고 슈크림 붕어빵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나는 간과한 것이 있었다. 현금을 들고다니지 않는 다는 사실을 말이다.

 

“할아버지, 혹시 카드도 되나요?”

 

“카드? 나는 그런거 받을 줄 몰라”

 

아차차, 나에게는 현금이 없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카드결제까지 되는 편한 세상에서 동전과 지폐를 수납하고, 공간만 차지하는 지갑을 들고 다닐리 없었다. 한 번도 불편함 없이 살아왔던 나였지만, 현금으로 천원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처음이다.  나는 처음으로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아니 내 주머니에 비상용으로 단 돈 천원조차 넣어두지 않은 나 자신을 책망하였다. 하필, 박부장한테 깨져서 스트레스 받은 날에 파란색 종이 한 장이 없어서 나를 이렇게 슬프게 만들 줄은 몰랐다.

 

“아 진짜 되는게 하나 없네. 힘든 하루를 보냈는데 내가 좋아하는 슈크림 붕어빵 하나 못먹게 하냐? 도대체 내가 할 수 있는게 뭐냐. 짜증난다 이놈아! 내가 진짜 천원이 없어서 이렇게 슬픈건 처음이다!”

 

다들 그런 날 하루 쯤 있지 않은가? 무엇을 해도 안풀리고, 내가 예상한 것과 다 반대로 되는 날이.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마저 배신당하는 날이. 나에게는 그런 날이었다. 정말 별 거 아닌 것에 화나는 날이었다. 내가 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 날만큼은 신을 원망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내일은 꼭 출근할 때 주머니에 천원을 넣고 나가리라고.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당연하지만 그 다짐은 출근하기 바쁜 아침에 기억이 날리가 없다. 어제 깨졌어도 출근은 해야하는 것이 직장인이다. 허겁지겁 출근을 하고 허둥지둥 오전시간이 지나고 제빠르게 점심을 먹고 나서 가지는 잠깐의 여유가 찾아와서야 나는 전날에 하였던 다짐이 기억났다.

 

“아… 주머니에 천원 넣고 왔어야하는데… 오늘도 슈크림 붕어빵을 그냥 놓치고 지나갈 수는 없는데… 집에 들려서 챙겨서 나와야하나…”

 

혹시나 해서 만져본 주머니는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고 나는 허망함만 가득 안고 오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기억력이 부족한 나를 책망하였고, 옆자리 최대리와 함께 박부장의 뒷담을 하였으며, 갑자기 주어진 업무를 급하게 처리하고 나니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어쨌든 퇴근은 좋은 것이며 정확한 시간을 지켜야하는 중요한 약속이기에 나는 퇴근하였다. 그리고 항상 타던 지하철을 타고 집 근처 역에서 내렸으며 어김없이 붕어빵을 파는 노점 앞을 지나면서 입맛을 다셨다. 바보같지만 한 번 더 온 몸을 뒤져 천원을 찾기로 하였다. 이틀 연속으로 슈크림 붕어빵을 놓치게 되면 아마 집에 가서도 계속 생각날거 같았다.

 

“어? 천원이 있네? 아까는 분명히 없었는데”

 

“오늘도 왔네. 젊은이 카드는 못받아줘, 미안해”

 

“아니에요. 어쩌다보니 오늘은 현금이 있네요. 천 원어치만 주세요”

 

붕어빵 3마리를 받고 나서 생각하였다.

 

“이상하다. 분명히 점심시간에 훑었을 때는 없었는데, 왜 지금은 있을까?”

 

어떻게 되었든 나는 슈크림 붕어빵을 먹으면서 행복한 퇴근길을 맞이하였다. 오랜만에 먹는 달콤한 크림에 따끈한 붕어빵이 차가운 한 겨울과 더불어 얼어가던 나의 마음을 녹이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얼마만에 느끼는 나만의 행복이었는지. 내가 한 일이라곤 출처불명한 천 원으로 붕어빵 3마리를 산 것이 전부였지만, 힘든 하루를 다독여주는데는 충분하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왜 돈이 있는 걸까? 내가 넣어두고 까먹을 정도로 기억력에 심각한 문제가 온 것을 아닐까? 그래도 이건 아닌거 같았다. 매일 비타민과 DHA도 챙겨먹고 있는데 그럴리가 없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기이한 일이 생기게 된 것일까. 나는 점점 미궁에 빠졌다.

 

“점심시간에 잘 때 누가 몰래? 아니야 그렇게 사치를 부릴 사람은 우리 회사에 없어. 그럼 뭐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나의 상상력으로는 해결 할 수 없는 문제였다. 찜찜하지만 출근을 위해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그날 이후 나에게는 매일 퇴근길이 더욱 설레였다. 바지주머니에는 항상 천 원이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이유인지, 누군가의 장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신이 나의 짜증에 미안했는지 작은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조금은 후회된다. 그 날 천 원이 아니라 만 원이라고 했었으면 내 삶이 융택해졌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항상 주머니에 돈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간 실험을 통해 알아낸 사실이 있다. 일단 쓰기 전까지는 돈이 새로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바지를 입고 나갔을 때도 돈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두가지 조건만 지킨다면 나는 매일 천 원을 낭비할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 중 하나인 돈낭비를 걱정 없이, 물론 작은 금액이지만,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코인노래방에 갈까 한다. 노래방하면 회식 때 억지로 끌려간 기억 밖에 없다. 회식 2차로 노래방을 가는거 만큼 고역이 따로 없다. 사람들은 어느정도 취해있고, 굳이 부르고 싶지 않은데도 억지로 부르게 되고… 심지어 나는 템포가 빠른 노래보다 잔잔하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인디 노래를 좋아하는데 회식자리에서는 그런 노래를 부를 수는 없어서 항상 불만이었다.

 

세상이 두 쪽 나도 지켜야하는 퇴근시간 … (계속 읽으시려면 로그인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