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맛 (제1회 ZA 문학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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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점은 용산 남일당 건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는 사실이다. 물론, 불에 탄 시체가 1년 가까이 시체 보관소에 있었던 것과 용산에서 좀비가 처음 출현한 점까지 거짓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시체 보관소에 있던 시체가 좀비가 됐다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 남일당 건물은 용산 4가에 해당되는데, 실제 좀비가 처음 출현한 지역은 용산 5가이기 때문이다.

서울 대다수 지역이 그렇듯, 재개발은 사람들을 미치게 했고, 세입자들은 예전과 다르게 동절기에도 쫓겨나야 했다. 용산 5가 신명빌딩에서 치킨집을 하던 고윤회 사장은 3개월치 영업 손실금만 받고 쫓겨나자 노상에 천막을 쳤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용역이 세 번째로 천막을 철거하자 고윤회는 회사 시절 늘 하던 쥐색 양복을 입고, 새벽에 재개발 건물 1층으로 들어갔다. 철거민 고윤회는 형광등 끝에 넥타이를 묶어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시체는 다음날 아침 순찰을 돌던 용역에게 발견됐다.

기겁을 한, 용역이 시체를 둘러업고 나오는 걸 다른 철거민이 발견했고, 잠시 동안 용역이 철거민을 살해했다는 오해에 충돌이 일었다. 용역은 시체의 팔과 머리를 잡았고, 철거민들은 다리를 잡은 채, 시체 줄다리기 한 판이 벌어졌다.

가을 운동회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가 아니었으니 ‘으쌰으쌰’ 같은 구호 대신 용역들은 ‘씨발씨발’로 힘을 냈고, 철거민들은 ‘살인용역’을 외치면서 양복바지가 찢어지도록 시체를 잡아당겼다. 팽팽한 힘의 구도를 깬 건 시체의 용트림이었다.

“끄―으―윽.”

고속도로에서 차가 지나간 후 남는 소리의 여운처럼 길고 긴 트림을 끝으로 시체가 벌떡 일어났다. 이윽고 초점 없는 눈으로 주위를 한번 둘러보더니 입에서 검은 피를 수돗물 튼 것 마냥 콸콸 쏟아냈다.

용역들은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 가까이 오지 못했고, 철거민들은 괜찮으냐는 말만 수십 번 반복하며, 마치 사랑보다 아름다운 말이 괜찮으냐는 물음인 것처럼 묻고 또 물었다.

헝클어진 쥐색 양복차림의 남자가 몸이 하얗게 질릴 때까지 검은 피를 쏟는 모습은 누가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 남자가 죽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나 어째서 계속 꿈틀거리며 피를 쏟는지 알지 못했다.

몇 분 전에는 철거민들에게 남자의 죽음이 끝이 보이지 않는 보상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가져다줄 카드처럼 보였으나,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까부터 용역이 자신들이 죽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비로소 그 말이 귀에 들어왔다.

남자는 걸쭉한 피를 전부 토해내고 나서야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져 죽었다. 남자가 쏟아낸 검은 피가 봉긋한 도로 위에서 흘러 하수구에 고인 무지갯빛 오물과 만나 뒤섞였다.

한참을 멍하게 있던 사람들은 뒤늦게 112와 119에 신고를 했고, 남자의 아들인 나는 구급차를 타고 재개발 지역을 떠났다. 구급차 문이 닫히기 전에 철거민 몇 명이 기침을 하는 모습을 봤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모습이 참 기이하게 여겨졌다.

아버지는 살면서 겪은 모든 원한을 한 번에 쏟고 가신 듯 편안해 보이셨다. 치킨집 인테리어 비용에 1억이 들어갔는데, 지금 나갈 수는 없다며 우시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늘 억울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셨는데, 그 입이 미소 짓고 있었다. 슬픈 감정보다 그래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방지 턱에 덜컹거리는 구급차 안에서 어처구니없게 졸음이 쏟아졌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오히려 졸음이 오는구나 했지만, 몸도 무척 피곤했다.

“웬 땀을 그렇게 흘려?”

구급요원이 물었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땀이 흥건했다. 땀이 난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았기에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구급대원에게 뭐라 대꾸하기 전에 마른기침이 새어 나왔다.

“콜록.”

나는 그제야 구급차 문을 닫기 전에 기침하던 사람들 모습이 떠올랐다. 머릿속에 전염병 세 글자가 떠나지 않았다. 나도 곧 아버지처럼 검은 피를 쏟아낼 듯 속이 메슥거렸다.

구급차 문이 열렸을 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구급대원이 날 불렀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병원에서 죽기 싫어서 그랬다. 어머니처럼 죽는 게 두려웠다.

어머니는 위암 말기로 뼈만 남은 육신을 매일같이 저주했다. 몇 시간 후면, 생이 끝나는 와중에도 어머니 얼굴엔 짜증이 가득했다. 아무리 진통제를 투여해도 어머니는 자신을 둘러싸고 울면서 자지러지는 친척들을 향한 혐오를 거두지 않으셨다.

육체적 고통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상황이 싫으셨고, 병원 벽에 스며든 약냄새와 꺼끌꺼끌한 환자복, 반복적인 천장 무늬와 간호사가 자신을 곧 죽을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것이 어머니를 지치게 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사랑한다거나 남편에게 수고했다거나 친척에게 따로 부탁의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마지막 말을 하셨다.

“짜증나.”

세상만사가 짜증났던 어머니와 억울했던 아버지는 희한하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이셨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물도 못 삼키시던 분이 너무나 또렷이 발음한 그 말이 나에겐 세상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다.

절대로 병실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처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위장된 슬픔 안에 그래서 언제 죽는 건지가 궁금한 친척들의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궁금하겠지만, 몸이 아프면 느낄 수 있는 법이다.

고통은 사람을 극단적으로 예민하게 하여 둔감한 오감을 깨운다. 한 번 오감이 깨어나면 그때는 통제 불가능이다. 만물이 보내는 아주 작은 신호도 놓치지 않게 된다. 겉으로 울고 있는 사람 어깨의 떨림과 목소리, 눈빛만으로도 그 사람의 진실함을 알 수 있다.

간혹, 고통에서 벗어나게 돼 그때 내가 봤던 표정은 아파서 괜한 오해를 한 거라고 착각하지만. 그건 착각이 아니다. 고통이 예민한 오감을 깨워서 진실을 본 것인데 아쉽게도 고통이 사라지면 둔감한 육체는 오히려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머니는 그때 친척들이 뱉어내는 안타까운 말들과 눈물 사이로 진실을 본 것이다. 친척을 향한 혐오의 눈길을 나는 이해했다. 그리고 나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을 향해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 할 수 있는 말은 짜증난다는 말 외엔 없다는 걸 안다.

물론, 아버지의 시체를 두고 도망 간일은 죄책감이 들기에 충분하다. 본의 아니게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억울한 일만 겪게 됐으니까.

나는 지금은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는 건물에 들어갔다. 아마 3층 화장실로 기억한다. 기억이 희미한 이유는 내가 인간에서 좀비로 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쩐지 겪기는 했지만 반신반의한 부분도 있고, 확실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술 취한 다음날에 전날 상황이 어땠는지 확실히 기억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에서 좀비로 변하는 일이 뭔가 대단한 것처럼 들리겠지만, 술 취한 상황 말고는 달리 비유할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흐려지는 일이다.

정신없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문을 걸어 잠그고 거울을 봤다. 내가 가만히 있는데도 세상이 옆으로 기울고 있었다. 물을 틀고 얼굴을 씻는데 얼굴에 감각이 없었다. 마취를 해서 누가 칼로 내 살을 헤집고는 있는데, 얼핏 만지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얼굴을 찔러도 아프지가 않았다.

“뭐지?”

혼잣말했으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신경이 하나씩 끊어지는 경험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으나 실제 거울 속의 나는 발기했다. 곧이어 눈도 멀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실제로는 바닥에 쓰러져서 버둥댔던 것 같다. 나중에 시력이 돌아오고 감각들이 제자리를 찾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서 거울을 봤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핏기가 없었다. 얼굴을 씻으려고 오른손을 수도꼭지로 가져가는 순간에 손목을 보니 살이 움푹 패 있었다. 놀라서 소매를 팔꿈치까지 잡아당겼더니 팔목 전체가 썩어서 군데군데 뼈도 드러났다. 뼈 주위 피부가 괴사한 듯 검고 딱딱하게 변했고, 시큼한 냄새도 났다.

웃옷을 벗자 더욱 처참했다. 팔목은 그나마 괜찮은 수준이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려 장기가 보였다. 검게 변색된 심장 일부가 뛰지 않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손끝으로 만져보니 돌보다 더 단단했다. 배에는 작은 구멍 수십 개가 뚫려 있어서 자세히 보면 꿀렁거리는 대장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처럼 온몸이 썩고 왜곡됐다. 심장은 뛰지 않지만, 의식은 그대로이다. 생각과 기억은 여전히 과거의 나와 동일했다. 차라리 인육을 탐하는 영화 속 좀비처럼 다른 존재가 됐다면 좋았을 일이다. 오히려 예전과는 다르게 온몸에 오감이 살아나 모든 것이 생생했다.

내 오감이 화장실 문밖의 메마른 공기 냄새가 흐트러지며 땀 냄새가 섞이고, 무거운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나는 재빨리 옷을 추스르며, 문을 열었다.

풍채 좋은 할아버지가 내가 갑자기 문을 여니 멈칫 놀라셨다. 나는 할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 혹시나 뛰지 못하고 비척대며 걷지 않을까 두려워 잠시 뛰어봤으나 예전과 다르지 않았다. 얼굴이 썩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속보입니다. 용산에서 시작된 전염병이…….”

편의점 TV에서 나오는 아나운서의 말이 유리창을 넘어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고개를 돌려 TV를 보니 난리가 났다. 속칭 좀비병이라는 전염병이 빠르게 확산돼 정부에서 긴급대처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나는 괜히 움츠러들었다. 죄진 사람처럼 고개를 떨어뜨리고 걸어야 했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