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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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음, 솔로처. 저쪽 찬장에 보면 썩은 꿀이 있을 거야. 그걸 좀 가져오게.”

“……사부님. 물론 질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좀 여쭤봐야겠습니다. 키메라를 제조하는 데 썩은 꿀이 꼭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물론이지! 꼭 필요한 거야. 이건 완벽한 키메라라고.”

핸드레이크는 이런 당연한 사실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그 눈빛은 내게 대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악담을 중얼거리며 그 꿀병을 가져왔다. 내 동작에서 뭔가 미심쩍은 모습을 발견한 핸드레이크는 터무니없이 과장되게 진지한 손짓을 하며 썩은 꿀을 솥 안에 부어 넣었고, 나는 그 모습에 가소로운 미소를 지었다.

썩은 꿀이지만 그래도 꿀이니만큼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야 정상이겠지만, 솥 안에 먼저 들어갔던 재료들 때문에 냄새는 여전히 고약했다. 그 먼저 들어간 재료에 대해서는 부디 묻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비위가 남달리 강한 사람이라도 안색이 창백해질 목록이다. 재료를 투입하는 과정에서 나는 두 번 졸도했다. 핸드레이크는 혼자서 실험할걸 어쩌고 하며 투덜거렸지만, 재료들 중엔 혼자서 도저히 집어넣을 수 없는 것도 있었기에 내 도움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예를 들어, 낡은 책장이라든가 식물이 말라죽은 커다란 화분 등.

역시 내 생각대로 이건 봄 대청소임이 틀림없다.

완벽한 키메라의 제조 어쩌고는 연구실의 봄 대청소에 제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마법사가 생각해 낸, 그리고 실로 대마법사나 생각해 낼 법한 구실인 것이다. 다시 한번 핸드레이크의 명령에 따라 낑낑거리며 깨진 모래시계를 솥 안으로 욱여넣은 다음(이 또한 대마법사가 생각해 낼 법한 쓰레기 처치법이다. 나의 사부가 솥 안의 용적을 얼마나 부풀려놓았는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혹 다른 차원과 연결해 버린 건 아닐까?) 나는 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 사부를 바라보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또 뭐 치울 것 없나 찾아보던 핸드레이크는 내 시선에 움찔하며 다시 메모를 참조하는 척했다.

“흠흠, 그러니까 다음으로 들어갈 재료는…….”

왜 바이서스의 위대한 궁정 마법사 핸드레이크가 마법 하인을 만들어내지 않고 이렇게 제자를 괴롭히고 있냐고? 글쎄. 관점의 문제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플라스크 한번 엎질러서 세상이 박살 나는 건 안타까운 노릇이지 않을까. 어쨌든 이곳은 핸드레이크의 연구실, 그러니까 대륙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장소다. 망가진 가구 따위야 누가 치워도 상관없겠지만 맨드라고라의 뿌리라든가 독두꺼비 뿔, 그쉬룹의 흡혈초 등을 안전하게 다룰 수 있는 건 마법사뿐이다. 아니면 심술궂은 사부 때문에 아직까지 마법사로 인정받지 못한 수제자뿐이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이 화창한 봄날에 대청소에나 매달려 있는 이유는, 게다가 내 사부의 가증스럽고 가소롭고 가식적인 연기까지 감수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흐음.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깨끗한 바닥이 꼭 필요하네. 빗자루와 쓰레받기, 그리고 먼지떨이와 걸레를 가져오게나.”

……어쩌면 감수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물론, 반드시, 결단코, 의심의 여지 없이, 그건 완벽한 키메라의 제작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겠지요?”

“당연하지. 그런데 왜 그렇게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말하는 건가? 이가 아픈가?”

나는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책장도 의자도 화분도 썩은 꿀도 필요한데 깨끗한 바닥쯤이야. 나는 군말 없이 청소 도구들을 찾아들었다. 물론 내 이성의 보다 비관적인 쪽, 그래서 더 현명한 쪽은 이 장대한 연극의 끝이, 청소가 끝난 연구실과 키메라의 제작이 지난한 일임을 인정하는 핸드레이크의 장탄식일 것임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청소를 마치자마자 솥 안에서 웬 머리가 불쑥 튀어나왔을 때 나의 경악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었다. 솥에서 머리를 내민 그것은 서로를 끌어안은 우리 둘을 발견하고는 품위 있게 말했다.

“나는 완벽한 키메라다!”

“서, 성공해 버렸다!”

핸드레이크의 이 외침은 내 추측을 뒷받침하는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했다. 그와 나는 깨끗이 청소된 바닥에 주저앉은 채 서로를 얼싸안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것은 솥 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철퍽거리고 삐걱거리고 꿈틀거리고 심지어 줄줄 흘러내리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솥 안에서 걸어 나와 우리들 앞에 섰다. 이상한 위치에 달려 있는 비정상적인 형태의 팔이 우리를 향해 뻗어왔다.

“네가 나를 만들었는가?”

“그, 그렇다. 나는 핸드레이크. 내가 너를,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너를 만들었다. 핸드레이크와 그의 제자 솔로처가 너를 만들었다.”

공정함이라든가 정의라는 말을 뉘 집 강아지 이름쯤으로 알고 우습게 여기는 핸드레이크지만 마법에 대해서만은 사실을 중요시한다. 아니면 내 짐작대로 그는 이 괴상한 물체를 이미 실패작으로 판단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마도 모든 사태가 종료된 뒤 나의 사부는 내가 끼어들어서 실패했다고 우길 것이다.

그것은 우리 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물론 깨진 약사발과 도롱뇽 박제가 우리 쪽을 향해 있는 것이 ‘바라본다’는 말에 해당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잠시 후 그는 무엇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갑자기 말했다.

“나는 완벽한 키메라다.”

“흐음. 이건 재미있군.”

핸드레이크와 나는 서로 떨어져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약간 떨어진 거리까지 물러나는 동안 그 ‘완벽한 키메라’는 우리를 바라볼 뿐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우리는 충분하다고 생각되는 거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핸드레이크의 경우엔 턱수염을 약간 잡아당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게 꿈이 아닌가 확인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핸드레이크는 나를 휙 돌아보았다.

“솔로처, 재료 투입 순서를 다 기억하나?”

아아, 순진한 나의 사부여. 나는 내 사부에게 악의 넘치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사부님의 메모에 있지 않습니까?”

“음? 아, 물론 그렇지! 자네에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는지 알기 위해서 물어본 거야. 자네가 다 기억하고 있다면 내가 따로 가르쳐줄 필요는 없겠지? 어, 어때?”

“따로 가르쳐주셔야겠습니다.”

그러자 핸드레이크는 벌컥 화를 내었다.

“이 얼간이 같으니! 내가 관찰력도 없는 제자에게 귀중한 지혜를 전수해 줄 만큼 관대하다고 생각하나! 도대체 제 손으로 집어넣고도 뭘 어떻게 집어넣었는지를 기억 못 한다고? 좀 제대로 기억해 보란 말이다!”

난 죄송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어 보임으로써 핸드레이크를 좌절시켰다. 핸드레이크는 이제 자신이 창조해 낸 키메라를 어떻게 창조했는지 모른다는 사실에 격분해야 할 것이다. 공부하느라 바쁜 제자를 가소롭기 짝이 없는 구실을 들어 대청소에 동원한 벌이라면 이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나는 지극히 애정 어린 눈으로 그 키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때 키메라가 우렁차게 외쳤다.

“창조자들이여!”

“음? 왜 그러나?”

“나는 완벽한 키메라다.”

잠시 기다리던 우리는 그 키메라가 더 이상 말하지 않을 작정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맥이 풀리고 말았다. 핸드레이크는 짜증스러워하며 말했다.

“지능이 높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것 같죠?”

“그래. 한 연구실 안에 바보는 하나면 충분한데 말이야. 둘은 좀 많지.”

“사부님!”

핸드레이크는 히죽 웃더니 팔짱을 끼며 그 키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래, 완벽한 키메라여. 너는 무엇을 할 수 있지? 어, 혹시 네 탄생 과정을 기억하나?”

속 보이는 질문이었지만 나 또한 그것이 궁금했던지라 기대감 속에 키메라를 바라보았다. 키메라는 화분을 갸웃하여 흙과 자갈이 얼마쯤 쏟아지게 만들었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나의 발생 이전을 기억하는 나라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어라? 의외로 근사한 말을 하는데.”

핸드레이크는 감탄했다. 결국 이 친구를 통해서도 이 친구의 제작 과정을 알 수는 없게 되었지만 우리는 이 미증유의 지성을 관찰하는 것에 이미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핸드레이크는 시원스럽게 말했다.

“좋아. 완벽한 키메라여, 내 두 번째 질문은 잘못됐다. 인정하겠어. 그럼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이지? 너는 무엇을 할 수 있나?”

“나는 원할 수 있다.”

그렇다. 인정한다. 우리는 마법사와 제자이다. 그래서 나와 핸드레이크는 이런 대답이 보통 사람들에게 야기할 만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우와앗! 들으셨습니까? 욕망할 수 있답니다, 사부님!”

“엄청나군! 욕망이란 세계 인식과 자기 인식이 모두 갖춰졌을 때, 또한 거기에 미래라는 개념이 덧붙여졌을 때만 가능한 고등한 정신 활동이지. 이거 장난이 아닌데? 좋았어. 완벽한 키메라, 너는 무엇을 원하지?”

“나는 창조자들에게 원한다. 완벽한 짝을 만들어다오.”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