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연애편지 사건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미리보기

1.

<여름이에게.

안녕! 이렇게 편지를 쓰게 돼서 조금 민망하네.
사실 편지는 어버이날 때 말고는 쓴 적이 없어서 이렇게 적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어.
너는 내가 누군지 모를 테니까 마음놓고 하고 싶은 말 하면 될 텐데도 막상 쓰려고 보니까 지금 벌써 30분째 책상에 앉아만 있네.

그냥 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사실은 옛날부터 너한테 자꾸 시선이 갔었어.
밥 먹을 때나 수업 받을 때나 너가 친구들이랑 놀 때나.
그리고 너 혼자 조용히 책 읽을 때도 왠지 멋있게 느껴지구, 다른 사람 이야기 진지하게 들어줄 때는 꼭 그래주는 것도 참 좋게 보였어.

(중략)

사실은 이게 무슨 감정인지 나도 그동안 애매했거든.
그래서 뭐라고 표현을 못했는데 요즘에는 좀 알 것 같아.
단순히 친구로 호감 가지는 거 말고, 정말로 누굴 좋아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을 해.

대놓고 고백은 용기가 없어서 못하겠지만, 그래도 너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있다는 걸 너한테 말하고 싶었어.
편지 받으면 좀 놀라려나?
어쨌든 그래. 내가 누군지 모르겠지? 알려줄 생각은 없어. 맞추고 싶으면 한 번 맞춰봐. 아마 못 맞출걸?

그래도 항상 응원하고 지켜보고 있어! 여름아, 오늘 하루도 재밌게 보내고 밥 맛있게 먹어. 공부 열심히 하구.
그럼 안녕!>

“이건 또 뭐냐…….”

사물함을 열어 보니 못 보던 종이가 놓여져 있었다. A4 용지를 출력해 손바닥만한 크기로 자른 편지였다.
총 세 장이었는데 내용도 낯뜨거웠다.
나도 몰랐던 내 장점들이나 바로 그저께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한 감상이 한 가득 적혀 있어서, 편지만 보면 이 ‘여름이’와 내가 동일인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이쯤 되면 부정할 수 없다. 이건 연애편지였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 꺄르륵 까륵.’ 하는 그거.
머리에 꽃 꽂은 것처럼 실실대며 다니는 애들이 지들끼리만 통하는 웃음 지으면서 주고받곤 하는 그 물건이 내 사물함에 들어 있었다.
게다가 익명으로 썼다. 건방진 자식이 자기가 누군지는 알려주기 싫다 이 말이지.

주위를 둘러봤다. 시계는 오전 7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교실에는 아무도 없다. 내가 제일 일찍 오니까.
편지를 곱게 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한 번 더 읽어보고 생각은 그 다음에 해야겠다.

근데 재주도 좋네. 이걸 언제…… 어? 가만 있어봐.

“이거 언제 넣은 거야.”

어제 교실 문은 내가 잠갔다. 열쇠를 교무실에 반납하고, 선생님들한테 인사하고 집에 왔다.
교실에서 나오기 직전에 사물함에서 책을 하나 꺼내긴 했지만 그때는 편지는커녕 종이쪼가리 하나 없었는데.
내가 알기로는 학교 안에 학생들이 남아 있던 것도 아니었다. 완전 조용했지.

다시 몸을 굽혀 사물함을 열었다. 제일 아래에 있는 사물함은 이래서 불편하다. 얼굴 들이대고 보는 게 아니면 제대로 확인도 안 돼.

안을 들여다 보니 익숙한 광경이었다. 교과서가 몇 개 꽂혀 있고 그 옆의 빈 공간에 체육복이 쑤셔 들어가 있다.
앞쪽에는 배달음식 책자, 필기구 같은 것들이 놓여 있다. 그 외에도 거스름돈을 넣어둔 건지 동전 몇 개가 구석에 굴러다니고 있었고, 못 보던 것 같은데 미니 클립도 두 개 보였다.
평범한 사물함이다. 어디서 편지가 나온 거야. 도라에몽이냐.

너 뭐냐, 하고 사물함을 두들겨 봤다.
통, 통. 깡통처럼 낡은 사물함은 손으로 치면 맑은 소리가 난다. 얇은 철판이라 그런가.
여기에 숨겨진 기능 같은 게 있을 리도 없다.

처음으로 받은 연애편지의 여운은 개뿔, 에어컨도 안 켰는데 몸이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