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소재 단편소설 공모전 수상집’ 출간으로 인해 유료 전환 되었습니다. **
…그가 모호를 만난 것은 우주 공간에서였다.
당시 그가 속한 무시무시한 만티코라 함선은 칸투 행성계 외곽을 날고 있었고 자신들보다 더 무시무시한 적의 기습을 받았다.
자신의 능력이었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운이 좋았던 더티 할리는 행성 간 미사일이 날아올 때 선외 활동 중이었다. 덕분에 함선이 폭발하자 파편과 함께 우주 공간으로 밀려날 수 있었다. 충격파로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지만 어쨌든 죽지는 않았다. 그는 소리 없이 연속 폭발하는 함선의 섬광을 보았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잔해를 보았고 그리고 하나의 빛으로 사라지는 적의 함선을 보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관성으로 계속 날아갔다.
그는 살아남을 방법을 찾았지만 가능성이 많지 않았다. 주변에 산 동료가 없는 것은 분명했고 우주복의 통신기는 근거리용이었다. 떠나온 기지에서 통신이 끊긴 걸 알고 수색대를 보내겠지만 기지는 0.04광년 거리였다. 시간이 걸릴 터였다.
폭발 지점에서 계속 멀어지는 중이었고 속도를 늦출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는 걸 안 더티 할리는, 우주복의 위치 발신기를 켜고 생명 유지 장치를 조절해 잠들기로 했다. 부러진 뼈들의 고통과 진공의 공간에 홀로 던져진 공포를 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동료들이 200시간 안에 도착해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잠들었다.
122시간이 지났을 때, 우주복이 뭔가를 감지하고 그를 깨웠다.
만티코라의 함선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우주선이었고 더티 할리는 그것이 어느 행성계의 어떤 우주선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선원 교육을 받았을 때나 보았던, 그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아주 오래된 함선이었다.
더티 할리는 다시 시작되는 고통을 느끼며 위치 발신기를 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게 구조되는 걸 원치 않아서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함선이 소리 없이 방향을 틀어 다가온 것이다.
그는 우주선의 실체를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우아한 유선형에 너무 먼 태양으로 인해 빛이 바랜 듯한 잿빛 선체. 앞쪽에는 낯선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함선의 이름인 듯했지만 그는 읽을 수 없었다.
함선에서 뭔가가 떨어져 나와 다가왔다. 추진체가 달린 선외 활동용 에이봇이었다. 에이봇은 더티 할리를 추월해 그의 관성 비행을 제지한 다음 주위를 돌며 한동안 관찰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몸체에 붙은 팔을 뻗어 그의 몸을 움켜쥐었다.
함선에서 더티 할리를 맞은 것은 또 다른 에이봇이었다. 인간형이지만 더티 할리가 처음 보는 종류였다. 그는 에이봇이 함선만큼이나 오래된 녀석이라고 추측했다.
“안녕하세요 인간, 휴가 중이었나 봐요?”
에이봇이 우주복을 분리하며 말했다.
“타쿤 태양 빛으로 일광욕을 즐기기엔 좀 외진 곳 아닌가요? 얼어 죽기 딱 좋은 곳인데.”
더티 할리는 에이봇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에이봇이 그의 반응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유머를 모르는 인간이군요.”
“너 뭐야, 이건 무슨 우주선이지?”
에이봇은 대답하지 않고 계속 떠들었다.
“당신을 거두어 온 선외 활동 에이봇을 통해 몸 상태를 스캔했어요. 온몸이 타박상에 갈비뼈 두 개가 부러졌고 세 개는 금이 갔군요. 하지만 죽을 정도는 아녜요. 지금 우주복 데이터를 통해 당신의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했어요.” 에이봇이 웃음소리를 냈다. “반가워요, 더티 할리. 나는 당신 같은 고풍스러운 이름이 좋더라. 내 초기 시절을 떠올려 주거든요.”
“너 뭐냐고 물었다, 에이봇. 인간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지.”
“더티 할리가 내 주인이라면 그랬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당신에게 대답할 의무가 없어요.” 에이봇이 다시, 더 큰 웃음소리를 냈다. “그래도 첫 만남인데, 그런 걸로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겠죠? 나는 사략선 물수리(Seahawk)호예요.”
더티 할리가 에이봇을 다시 살폈다.
“지금 너는 함선인가?”
에이봇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함선과 연결된 나를 부를 땐 마요르라고 부르면 돼요. 나도 이름이 마음에 안 들지만 내 주인이 옛 관습에 얽매인 인간이라서 말이죠.”
더티 할리는 함선을 파악하고 에이봇의 역할을 간파했다.
“네 주인은 어디에 있지? 다른 선원들은? 혹시 이 우주선에는 에이봇들만 있는 건가?”
무인 함선이라면 화물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더티 할리에게 괜찮은 상황이었다. 함선을 빼앗을 수 있었고, 그러면 만티코라에 돌아갔을 때 면책 선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에이봇이 말했다.
“선장은 동면 중이에요.”
“깨워. 조난자를 발견했다고 보고해.”
“나는 당신을 치료하고 다시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돕겠지만 선장을 깨우지는 않을 거예요. 항성 간 단잠을 깨웠다간 화를 낼 게 뻔하거든요.”
마요르는 더티 할리의 몸 상태를 정밀진단 해 부러지고 엇나간 뼈들을 맞춰 주었다. 이어 골절 패치를 붙여 주고 회복실로 옮겨 쉬도록 했다.
며칠 후 걸을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자 더티 할리는 물수리호 안을 돌아다녔다. 견고하고 실용적인 함선이었다. 그가 아는 어떤 우주선과도 달랐고 유행을 따르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주 고급스러웠다.
더티 할리는 이 사략선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우주선을 차지한다면 만티코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는 용병 생활을 하지 않아도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더티 할리는 계획을 세웠다. 선장과 선원들은 잠들어 있고 함선과 에이봇만 깨어 항성 간 비행 중이었다. 먼저 승무원들이 어떤 자들인지 파악해야 했다. 혼자서 그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민간인이라면 당장에라도 가능했지만 그렇지 않다면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더티 할리는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함선이 선장을 깨웠다.
그때까지 더티 할리는 함선의 주인을 알지 못했기에 모호의 등장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마요르와 함께 수면실에서 나오는 선장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표현했다.
“오래된 함선의 주인답게 아주 오래된 여인이었어.” 더티 할리는 그것이 의외였던 듯했다. “외모가 고전적이었어. 어떤 개조나 업그레이드도 없었다고, 인간이 은하 변방의 별을 채 벗어나지 못하던 때처럼 말이야. 젠장할, 그 어떤 행성계 여자와도 달랐다고.”
그는 때를 놓친 것이 분한 듯 덧붙였다.
“바로 그때였는데, 그때 그 여자의 목을 부러뜨렸어야만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