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고 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이 세상의 중심에 거대한 회전석이 있어 스물네 시간에 한 번씩 온 세상을 걸어 돌리고 있다고 했다. 북쪽으로 가고 또 가면 차가운 얼음 바다 한 가운데 붉은 탑이 우뚝 서 있고 남쪽으로 가고 또 가면 험준한 얼음 고원 위로 한없이 솟아오른 눈 덮인 산 속에 푸른 기둥이 묻혀 있다 하니 둥근 껍질 위에 굽이굽이 밀려 올라간 주름진 산맥도 움푹 팬 대양에 담겨진 한없는 바닷물도 모두 그 축을 중심으로 하루에 한 바퀴씩 영원히 돌고 있다 했다. 온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모두 회전석에서 나오니 언젠가 세상이 그 기력을 다하는 날 거대한 회전석도 멈추면 세상은 영원한 낮으로 불타오르고 끝나지 않는 밤으로 얼어붙는다 했다.
“그런 건 다 옛 사람들이 지어낸 말인 줄 알았죠. 세상에 정말 이렇게 저절로 돌아가는 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창히는 손바닥만한 원반 위에 가느다란 바늘 세 개가 달린 장치를 들고 잰 걸음으로 모연을 쫒아가며 떠들었다. 모연은 일부러 보폭을 좀 넓혔다. 창히는 결국 요상한 장치의 뚜껑을 닫고 헐떡거리며 스승을 쫒아 뛰어야 했다. 약이 오른 창히가 주먹을 꼭 쥐고 발을 차 보았지만 모연과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창히는 숨을 헐떡거리며 터벅터벅 걸었다. 모연이 걷는 품은 그대로였지만 창히가 쫒아 뛰나 걸으나 모연과의 거리는 변함이 없었다.
“제가 회전석에 관심을 갖는 게 싫으시죠?”
“누가 싫다더냐. 재밌구나. 계속 말해 보거라.”
“스승님이 제대로 무공을 가르쳐 주시면 저도 이런 사술에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내 무공보다 그 사술이 더 낫구나. 그걸 배우거라.”
“전 스승님의 무공이 더 좋습니다.”
“그럼 왜 그런 요상한 물건을 들고 다니느냐.”
“무공이 더 좋다고 했지 이런 게 싫다고는 안 했습니다.”
“역시 어려서 그런지 생각도 유연하구나. 네가 나보다 낫다. 그러니 날 쫒아 다니지 말고 스스로 배우거라.”
“자꾸 왜 그러십니까. 제가 더 나으면 스승님이 제게 배우시죠!”
“네가 더 낫다고 했지 네게 배우겠다고는 안 했다.”
“아니 그러니까… 스승님! 스승님!”
창히는 어느새 또 다시 멀어진 모연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입을 다물고 전력을 다해 뛰어야 했다.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 모연이 속도를 줄이고 나서야 창히는 겨우 거친 숨을 내뱉으며 투덜거릴 수 있었다.
“내 참. 대놓고 뭐라고는 안 하시지만 제가 신경을 거스를 때 마다 속도를 내는 거 아십니까. 그거 꽤나 유치하십니다.”
“난 그저 걸었을 뿐이다. 내가 빨라진 것인지 네 녀석이 느려진 것인지 구별할 방도가 있느냐.”
모연의 말에 창히는 바짝 따라 붙으며 요상한 장치의 뚜껑을 열어 보였다. 모연은 그제야 힐끔 장치에 시선을 스쳤다. 세 개의 바늘이 제각각의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장치의 아래쪽에 달린 금속 상자 안에서 흰 줄무늬가 가득한 검은 돌 하나가 묘한 빛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게 세간에 떠들썩한 회전석인 모양이었다.
“있지요! 이게 바로 그 시계라는 겁니다. 이걸 보면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잴 수 있으니 스승님이 빨리 걸으신 건지 제가 느리게 걸은 건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 시계라는 물건 또한 느려진 게 아니라고 어찌 장담하겠느냐.”
“아예 스승님 빼고 온 세상이 전부 느려진 거라고 하시지요.”
“네 녀석이 이제야 깨달음을 하나 얻었구나.”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세상이 느려지고 세상이 가벼워지고 세상이 부서지는 것이라 했다. 내가 아니라.”
창히는 모연의 말을 곱씹는지 잠시 걸음이 느려졌다가 이내 다시 뛰어 스승을 따라잡았다.
“스승님을 느리게 해 보려 했는데 안 됩니다.”
모연의 발걸음이 멎었다. 그리고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연의 웃음이 골짜기에 메아리쳐 다시 돌아왔다. 땅이 흔들리고 나뭇잎이 떨리는 게 창히의 눈에 보였다. 아니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창히는 자기도 모르게 스승을 따라 웃다가 어느새 모연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진 걸 눈치 채고는 얼른 표정을 거두어 들였다.
“진심으로 그리 하였느냐.”
“그리 하였습니다.”
“거미줄처럼 달라붙은 세상을 걷어내려 평생을 몸부림쳤다. 세상의 법도와 세상의 속도를 털어내고 홀로 날아다니려 했단 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어느새 세상은 저만치 앞으로 달려가는데 나 홀로 뒤떨어져 있더구나. 이제와 다시 세상에 올라타려 해봐야 되지 않을 일이지. 그러니 어찌 네 녀석이 나를 움직이겠는가.”
모연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등성이 하나를 더 넘어 둘은 하륜산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길을 탔다. 길이랄 것도 없이 그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이어진 틈새를 비집고 발길을 옮겼다. 이런 길 아닌 길을 반나절은 짚어 들어가야 하는 곳에서 방족은 사람들을 피해 모여 살고 있었다. 창히 또한 방족이었다. 모연은 갑자기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