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다섯 살.
서안중학교 2학년.
170cm. 이제 키를 따라 잡힐 것 같다. 발은 나보다 크다.
하루 종일 기타를 끌어안고 산다.
좋아하는 것: 기타, 친구들이 들려 준 록 음악.
장래 희망: 배우, 가수, 댄서(하지만 춤에는 소질 없음).
<33페이지>
.
.
그 색깔이 눈에 띈 건 10월의 출근길 아침이었다.
그날은 팀장의 외근 때문에 급하게 나서야 했다. 촉박한 일정이 생겼다며, 오전 9시에 회의를 잡아 버린 것이다. 이러면 8시까지는 도착해 준비를 마쳐야 한다. 전날 밤 문자를 받고 미리 알람을 맞춰 두었던 나는 아내와 아이들을 깨우지 않으려 아침부터 조용히 부산을 떨었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는 40분가량 걸린다. 크게 붐비는 시간이 아니라 평소 출근길보다 사람이 적었다. 그래서 그 색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고등학생. 또래들보다 마르고 남자애처럼 짧은 머리에 예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었다. 푸른색의 춘추복 치마를 입고 자기 덩치만 한 첼로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일찍 가는 것도 힘들 텐데 악기를 들고 다녀야 하다니,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며 시선을 돌리려 할 때였다. 그 학생의 짧은 머리에 꽂혀 있는 머리핀이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새카만 머리에 일자로 꽂혀 있는 그 색이 지나치게 밝고 강해서, 나도 모르게 그 머리핀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러자 내 시선을 느꼈는지 학생이 수상쩍은 얼굴을 했다. 민망해진 나는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는 척했다.
형편없는 어른이군. 누가 봐도 이상한 아저씨로 보일 터였다. 하지만 왠지 신경이 쓰여, 지하철에서 내릴 때도 은근슬쩍 그 학생을 쳐다보았다. 짧은 머리 위의 머리핀은 여전히 불타는 듯 선명한 주황색이었다. 여자아이의 취향에 대해서는 몰라서 초등학생인 여덟 살 딸아이의 액세서리 하나도 사 준 적이 없었지만, 저렇게 선명한 색의 머리핀은 본 적이 없다. 어쩌면 머리핀을 만든 회사에서 눈에 띄는 안료를 섞어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을지 모른다. 나는 급한 일로 출근을 앞당겼다는 사실도 잊은 채 회사로 가는 내내 머리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은 회사에서도 계속되었다.
바로 아래 직급인 윤 대리에게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건네받을 때였다. 자료에는 중요한 내용이 색색의 형광펜으로 표시돼 있었다. 노란색, 연두색, 파란색, 그리고 주황색. 이상할 정도로 주황색 밑줄이 눈에 띄었다. 그 색이 너무 선명해 다른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윤 대리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형광펜 말이야. 너무 진한 것 같지 않아?”
내 말을 들은 윤 대리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이 형광펜은 세트로 구입한 것이고, 그동안 계속 써 온 물건인 모양이었다. 따로 복사물을 뽑아 다른 형광펜으로 발표 자료를 다시 정리하는 나를 동료들은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건 그날 저녁이었다.
둘째 아이인 주원이에게 밥을 먹일 때였다. 다섯 살배기 주원이는 채소를 먹기 싫어해서, 매 끼니마다 전쟁을 벌이곤 한다. 당근 볶음을 떠먹이려던 나는 젓가락을 멈췄다. 당근 색깔이 지나치게 진한 주황색이었다.
“당근이 왜 이래?”
“무슨 소리야?”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 아내는 내 얼굴을 빤히 보았다. 마트에서 항상 사 오던 당근이라고 했다. 퇴근할 때 내가 직접 장을 볼 때도 많아서, 어떤 코너에 어떤 채소가 있는지는 나도 알고 있다. 물론 그동안 당근의 색을 눈여겨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