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걸음 만에 백만 원을 써버렸다.
[다른 사람을 지목하면 돼.]
“그걸 어떻게 정해요.”
나익이 툴툴거리는 동안에도 시간은 가고 있었다.
나익은 종로3가 1,3,5호선이 얽히는 환승 계단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고작 전화 한 통 때문이다.
평소 나익은 모르는 전화번호는 보지도 않고 거절한다. 070으로 시작하는 딱 봐도 스팸인 번호들. 하지만 010으로 시작하는 번호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특히 더 그랬다. 힘들게 오지 말고 돌아가라는 통보일 수 있었다.
[지금부터 한 걸음도 움직이지 마.]
전화 속 목소리는 대뜸 명령질을 했다. 나익은 대꾸도 않고 곧장 전화를 끊었다.
요즘 세상에 장난전화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나익은 고개를 저으며 발을 떼었다. 그리고 바닥에 붙인 순간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전화는 아니었다. 나익은 멈춰서 스마트폰 화면에 쌓인 스택을 펼쳤다. 출금 23만 원. 한 걸음 더 나아가자 스택이 하나 더 겹쳤다. 출금 26만 원. 나익은 스택을 날려버리고 카카오뱅크 앱을 눌렀다.
(ZXG)x01d4qg.
어디로 송금된 거지? 금융 사고… 사기? 해킹? 이런 일이 왜 나한테… 그것도 하필 오늘?
나익은 경찰에 신고해야 할지 은행에 신고해야 할지 허둥댔다. 전화 팝업이 궁둥이를 밀고 내려왔다. 아까 그 번호다.
[한 걸음 움직일 때마다 돈 나간다.]
“누구신데요? 대체 누구신….”
누군가 나익을 치고 지나갔다. 나익은 반걸음 밀려났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그는 귀에서 스마트폰을 떼고 화면을 보았다. 출금 17만 원.
“자, 잠깐만요. 이건 누가 밀었잖아요.”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예외는 없어.]
나익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환승 통로 계단 가운데 우뚝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성가신 장애물처럼 흘기며 지나갔다. 아! 누가 나익을 치고 지나갔고 또 반걸음 움직이고 말았다.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확인하지 않았지만 무슨 내용인지 알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나익을 친 누군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문이 닫히는 지하철 속으로 사라졌다.
“잠깐만요. 자리 옮길게요. 구석으로 갈 테니까 한 번만 봐줘요.”
[룰은 룰이야.]
누가 정한 룰인데! 나익은 따지고 싶었지만 목소리에게 나익의 상황 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것이다.
나익은 수화기에서 귀를 떼고 주위를 살폈다. 지하철이 막 출발한 직후라 계단을 오가는 발길이 뜸해졌다. 그는 한 걸음 크게 두 계단을 점프해 층계참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스마트폰이 짧은 진동을 뱉었다. 나익은 떨리는 손으로 스택을 눌렀다. 모두 더해 백만 원이 나갔다. 단 네 걸음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