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메타모르포시스)

  • 장르: SF | 태그: #SF #미스터리 #근미래 #우주 #AI #인공지능 #분화
  • 평점×45 | 분량: 122매
  • 소개: 인류 기술보다 100년 앞선 미지의 인공 구조체가 발견되자, 주인공이 이것을 제작한 인공지능 로봇과 대면하여 그 목적을 파헤친다. 더보기
작가

탈피(메타모르포시스)

미리보기

1.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소행성대에서 식별 불능의 인공 구조체가 발견되자, 인류통합군에 비상이 걸렸다. 최초 발견자는 소행성 채굴회사 직원이었다. 아침부터 감독관의 눈을 피해 술에 취해 있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업 지역을 벗어났다가 직경 150km의 타원형 구조체와 조우했다. 구조체는 소행성 팔라스(Pallas) 뒷면에 숨어 있었다. 인류통합군의 레이더와 인류의 시선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발견된 구조체는 인류가 건조한 그 어떤 함선보다 10배 이상 거대했다.

“현 인류와 기술 격차가 100년 이상이라고 합니다. 검증팀이 예상한 최소치로 말입니다.”

“믿기 어렵네요.”

“실제로 보기 전까지 다른 분들도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이원에게 연락이 온 것은 이 구조체의 존재가 전 세계에 유출된 지 10시간이 지나서였다. 망막에 투영된 화상 너머로 군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말했다.

“해서, 통합우주군에서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자 이원 박사님을 소환하고자 합니다. 13차 중동 전쟁을 막아낸 영웅께서 합류하신다면, 저 개인적으로도 큰 영광입니다. 군 보안 절차에도 익숙하시니 엠바고 같은 건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른 분들은요?”

“먼저 도착한 분들도 있고 현재 소집 중인 분들도 있습니다. 군과 협력한 경력이 있는 분들 위주로 소집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이동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30분 이내 도착할 수 있도록 박사님 사택으로 차량을 보내겠습니다.”

이원은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자, 시야 가장자리에서 점멸하는 부재중 메시지에 시선이 갔다. 엄마에게 걸려 온 부재중 전화 13통. 이원은 치미는 짜증을 느끼며 옷장 손잡이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갈아입을 옷과 속옷 세트를 챙겨야 했다.

“이게 문제의 구조체입니다.”

“…….”

젊은 장교가 데이터 패드를 건넸다. 궤도 엘리베이터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5분. 차량이 이동하는 동안 주어진 자료를 읽어볼 시간은 충분했다. 이원은 데이터 패드를 받았다. 저장된 내용을 확인하는 그녀의 이마에 서서히 주름이 잡혔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정보는 이게 전부인가요?”

“그렇습니다. 온갖 해괴한 추측이 떠돌고 있지만, 실제로 확인된 것은 거의 없습니다.”

“검증팀이 있다면서요.”

이원의 추궁에 젊은 장교가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우선 주어진 자료부터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자료라고 해봐야 사진 몇 장이 전부네요. 그것도 대부분 흐릿하거나 불명확하고요. 설마, 군이 파악한 정보가 이게 전부라는 뜻은 아니겠죠?”

“현재로선……아무튼 지금은 그 정보가 전부입니다.”

이원이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젊은 장교는 비밀을 감추고 있었지만, 브레인 임플란트를 삽입한 그녀의 두뇌는 그의 눈가 주름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과 억지로 피하는 시선을 포착했다.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추. 남자는 거짓의 구덩이에 진실을 숨기려 애쓰고 있었다. 이원은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 구조체 사진에 집중했다.

‘통합우주군이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한 건가? 사태의 심각성을 생각하면 말이 안 돼.’

태양계에 숨어 있던 150km의 구조체. 이원의 사진 속 물체를 유심히 살폈다. 그것은 수많은 소행성을 한데 모아 압축한 구 형태의 덩어리였다. 쌀알을 꾹꾹 눌러 압축한 주먹밥 또는 수천, 수만 개의 벌레알이 하나로 덩어리진 흉측한 알집. 이원의 팔뚝에 돋아난 소름처럼 거대한 구조체의 표면은 울퉁불퉁하고 가느다란 균열로 뒤덮여 있었다. 그 불온한 형체는 성충이 되기 위해 완전변태에 들어간 곤충의 고치를 떠올리게 했다. 이원이 눈을 떼지 못하자, 장교가 옆에서 말했다.

“흉물스러운 외관 때문에 군에서는 구조체에 ‘코쿤’이란 코드네임을 붙였습니다.”

“번데기란 뜻이군요.”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이름 아닙니까?”

“그렇네요. 구조체를 대중에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어요. 저 모습을 공개하면 신앙심 깊은 종말론자들과 외계인 숭배자들이 신자들을 이끌고 옥상에서 뛰어내릴 테니까요.”

“신고가 들어왔을 때, 군 당국에서도 혼선이 있었습니다. 코쿤이 외우주에서 온 인공천체가 아니냐면서요. 최초로 함선을 발견한 채굴회사 직원이 외계인이 나타났다느니 뭐니 하면서 횡설수설한 탓에 꽤 어수선했습니다.”

장교의 말을 듣고 있던 이원이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툭 던지듯 말했다.

“저 코쿤, 지구의 기계들이 만든 거군요.”

“네?”

갑작스러운 이원의 말에 장교가 당황했다. 이원은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코쿤을 세심하게 살펴본 후 데이터 패드를 장교에게 건네며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저를 소환했다는 건 그런 이유가 아닌가요?”

“그게…….”

“인공지능 패턴 전문가를 불러서 태양계를 방문한 외계인에게 지구 요리를 선보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고, 군이 발견한 구조체에서 발견된 게 로봇이거나 인공지능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겠죠. 제 추측이 틀렸나요?”

“…….”

“물론, 이 데이터 패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지만요.”

“송구스럽지만, 해당 내용은 지구 권역을 벗어나기 전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전 이미 알아버렸는데요? 그래서? 도대체 거기서 뭘 발견한 거죠? 인류보다 100년이나 앞선 기술로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손을 흔들던가요?”

추궁하는 이원의 말에 장교는 곤란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여파가 지구인에게 얼마나 위협적인지 그녀에게 재차 강조한 다음,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대외비입니다만……군에선 통합우주군 정예를 투입해 코쿤에 침투시켰습니다. 내부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구조체 표면에서 한 대의 로봇이 발견되었습니다. 제작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소행성 채굴 로봇이었습니다.”

“채굴 로봇 한 대요?”

“그렇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보안등급이 낮아서 말입니다.”

“그렇군요.”

이원은 그의 얼굴을 보았다. 흔들리던 저울의 무게추가 진실로 기울어졌다. 이원은 더 이상 그에게 알아낼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기계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패턴 분석가의 눈빛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장교가 한숨을 길게 내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코쿤은 절대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는 겁니다. 저는 그 사실이 정말이지 소름끼치게 두렵습니다.”

“왜요?”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