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우를 다시 만난 날, 나는 여느 때처럼 지쳐 있었다.
때는 저녁 배식 시간. 그곳은 애증이 몇 겹으로 덧칠된, 소중하고도 빌어먹을 나의 직장, 임포경찰서 구내식당이었다. 경찰관들이 불만어린 얼굴로 식판을 내려다보고, 나는 맛있게 드시라는 의례적인 인사를 던지며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매너리즘을 한 꼬집 뿌려 밥을 떠주는 곳.
강력팀 형사들을 끝으로 기나긴 줄이 끊겼다. 나는 주걱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내일은 일요일. 몸에 밴 음식 냄새를 벗기러 목욕탕에 가는 날이다. 때를 밀다 지치면 바나나 우유를 마셔야지.
행복한 상상은 곧 무참히 부서졌다. 조리원들이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벗더니 맨손으로 반찬을 집어 먹는 것이었다.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더니, 손가락을 빨고 그 손으로 두건 밑을 긁기까지. 기함할 노릇이었다. 민원 들어오면 자기들이 처리할 것도 아니면서.
“여사님들! 장비 장착하시죠!”
조리법 때문에 몇 차례나 설전을 벌인 뒤였다. 내가 그들을 노려보는 것 만만치 않게 조리원들도 눈을 흘겼다.
강력팀 형사들이 욕설이 터뜨린 것은 그때였다. 수저를 탁탁 내려놓는 모습. 긴급 신고가 들어온 거다. 형사들은 식판을 그대로 둔 채 뛰쳐나갔다.
한숨이 나왔다. 누가 죽어서가 아니라, 저걸 치우는 게 내 몫이란 생각에. 뭐 하나 부탁할 때마다 반항적으로 나오는 여사님들을 부려먹느니 그러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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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식당 문이 닫히고 조리원들도 퇴근한 시각. 주방 뒤의 코딱지만 한 사무실은 불이 환했다. 사무실이 왜 이렇게 구석에 처박혀 있을까. 그러니 내가 이 안에서 뭘 하는지 아무도 모르지. ‘영양사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식단 대충 짜면 조리원들이 조리 다 해주고 밥이나 퍼 주면 되니 참 편하겠다.’ 그렇게 말하는 인간들 상판에 눈앞의 서류들을 집어던지면 속이 좀 시원해질까?
일은 끝이 없었다. 식재료 발주, 검수, 조리원 인사 관리, 위생 점검, 손익 계산. 치를 떨며 계산기를 두드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형사팀 이도원 형사였다.
“최명우가 또 왔습니다.”
짜증이 솟았다. 최명우 너 요즘 잠잠하다 싶더니. 그럼 그렇지 그 버릇 개 줄까. 하지만 강력팀 취조실로 오라는 걸 왜일까. 이번엔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취조실에서는 명우가 형사팀 이도원 형사와 강력팀 조수환 형사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이도원 형사는 단단히 얼이 빠진 얼굴이었다. 최명우 상대하느라 이골이 난 사람인데. 나는 그게 명우 때문임을 깨달았다. 내 서른 평생, 그가 웃는 걸 처음 본 것이다. 얼굴과 옷을 점점이 장식한, 피가 분명한 붉은 얼룩 사이로 피어오르는 해사한 웃음. 취조실에 한기가 어리는 기분이었다.
명우는 백팔십도로 달라져 있었다. 단정한 정장. 짧은 머리. 매끈한 턱. 그의 어릴 적 얼굴을 몰랐다면 누군지 못 알아봤을 것이다.
– 유경아, 오랜만이네.
– 명우……?
– 섭섭하게, 알면서 왜 물어.
빙그레 반문하는 목소리. 왜 이렇게 감미롭게 들릴까? ‘장유경! 장유경이 불러 오라고!’ 하며 오만상 찌푸리던 사람 맞나? 얼굴만 같고 인격은 정반대인 쌍둥이 같았다. 그곳에 앉은 게 그의 형이라면 수긍이 가겠지만, 둘은 판이하게 다른 외모였다.
나는 이도원 형사 옆의 빈 의자에 앉았다. 의자가 오늘따라 불편했다. 명우의 표정과 말투에 신경이 곤두선 탓이었다. 그냥 원래대로 눈알을 부라리고 악을 질러댔으면 싶었다.
곧 형사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날 왜 부른 건가 싶을 정도로 명우는 고분고분 답했다.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지만. 내가 형사들에게 밥을 퍼 주던 그 시각, 명우의 가족들이 살해당했다. 최명우, 맨날 사람을 두드려 패더니 기어이……. 그런데 반전이. 사건을 신고한 사람이 명우였다.
–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 증거로 거실과 다이닝 룸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 범인이 누군지 아신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퉁명스레 묻는 조수환 형사. 눈빛과 말투에서 짙은 조소와 불신이 배어나왔다.
– 범인은 마스랑 티프예요. 네 사람이 도발했죠.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가족들을 말렸다는 건지 개들을 말렸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말투. 가족들의 개죽음을 말하는 명우는 시종일관 담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