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이야기 – 1

  • 장르: SF, 추리/스릴러
  • 평점×34 | 분량: 95매
  • 소개: 진짜 블랙홀 탐사대 이야깁니다. 더보기

블랙홀 이야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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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은 나도 모르는 새에 감염된 기생충 같다. 자유의지라 믿지만 나를 조종하는건 그 중독이다. 파멸로 이르지 않는 중독이면 좋으련만 그 끝은 항상 파멸이다. 만족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겠다고 생각한 것은 동료들에 대한 의무감에서였다. 이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아 그들의 흔적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 어차피 모두가 사라진대도 나 아닌 그들은 이 세계 어딘가에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같은 것이었다.

*

– 편안한 동면이었습니까?

우주선의 캡슐에서 하나둘씩 깨어난 우리는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훈련 때부터 도약 지점까지 오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낸 동료들은 이제 가족이나 다름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다. 어떤 난관도 함께 헤쳐 나간다. 우리는 블랙홀을 직접 보기 위해 파견된 5인의 탐사대다. 그리고 블랙홀 근처에 도달해서 막 동면에서 깨어났다.

블랙홀을 보러 탐사선을 보낸 건 시공간워프 기술이 드디어 상용화되었기 때문이다. 방향과 거리를 안다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제약은 있다. 매우 정확해야 하는 거리와 방향. 그리고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사용이다.

블랙홀 자체는 당연하게도, 보이지 않는다. 블랙홀 주변의 특이 현상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 특이현상 자체가 블랙홀이다. 도달 가능한 거리에서 멀리서나마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우리의 할 일이다.

시공간워프는 아무 데서나 가능한 게 아니었다. 꽤나 먼 우주, 지구에서 태양빛이 아스라히 멀어 보일 때 행성의 뒤에서만 가능한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 흑체도료기술과 우주선 냉각, 그것이 핵심이었다. 흑체도료가 사용된 우주선이 빛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 그 어느 빛도 반사하지 못 하고 우주선 외부가 충분히 냉각되어 빛과 질량과 온도가 열적 평형을 이루는 순간이 있다. 그때 우주선은 바깥의 무엇과도 상호작용 하지 않는 하나의 작은 계가 되어 양자도약이 가능하게 된다. 고양이가 살아있거나 죽어있는 상황이 중첩되어 있다는 것은, 고양이가 아무것과도 상호작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곧 우리 우주선이 되는 것이었다. 도착하고 싶은 곳을 설정하여 우주선의 질량에 따른 변환되는 파장을 계산하고 파장에 따른 시간이 지나면 그 위치에 우주선이 존재할 확률이 높아진다. 문제는 우주선의 크기 대비 질량이 클수록 멀리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효율적인 비행을 위해서는 우주선의 질량을 줄여야 하지만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질량이 커야 한다. 그 이상적 질량 사이에서의 접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계산된 짦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주선의 흑체도료에 자동으로 균열이 생긴다. 그리고 우주선이 빛을 반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주선은 거기에 존재하는 물질이 된다. 계산이 무척 복잡하고 정교해야 하지만 방정식이 만들어진 이상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할 뿐, 기계가 수행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물론 확률에 따른 위험부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어느 교통 수단에도 있는 위험이니까. 감수한다.

이 흑체도료기술에 대해 더 설명하고 싶지만 지금 블랙홀을 눈 앞에 두고 있어서 그럴 여유가 없다.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고 사진으로 보았지만 실제 눈 앞에서 블랙홀을 본다는 것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동이다.

– 최대 도달 가능거리보다 10만 킬로미터 먼 곳에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벌써 조종석에서 화면을 보던 제이가 말했다. 제이는 우주선의 선장격이다. 우리의 리더다. 제이를 처음 항공우주센터에서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우리의 리더였다. 우리는 그런 그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언제나 확신에 차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무뚝뚝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그가 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해서 그를 관찰하다시피 했다. 알 수 없는 개인적 호기심과 관심이었다. 블랙홀 탐사는 지구 정상 복귀가 매우 불투명하다. 시간 지연 효과 때문이다.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의 1초는 지구의 1시간 정도와 맞먹는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간다고 해도 우리는 이번 탐사에 50년을 사용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긴 했지만 100년 중 50년을 사용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거기에 조금이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이 곳에서 시간을 지체하기라도 한다면, 지구 귀환 시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 중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 좋습니다. 확인했습니다.

천체물리학자 세진은 이미 넋이 나가 있다. 우주선 창문으로 보이는 블랙홀의 모습에 정말 영혼이라도 빼앗긴 모습이었다.

– 각자 건강 상태를 보고하십시오.

생화학자이자 의사인 유리가 말했다. 신체 모니터 외에 구두 보고는 의사소통을 유도하고 직관적이고 입체적인 상태를 판단하는 데에 유용하다. 작은 딜레이나 어투의 차이를 느끼는 것이다.

– 대원 3, 선우, 이상 없습니다.

나는 유리에게 간단한 보고를 했다. 이상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바이탈 사인도 모두 정상이고 머리도 점점 맑아지고 있다. 나는 창 밖의 블랙홀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왔구나. 그리고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다. 모든 것을 삼키고 있는 블랙홀을.

*

– 당장 입원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의사가 뭔가 착오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 다른 사람의 차트를 보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 이대로면 죽습니다. 1년 안에 사망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말은 누군들 못할까. 이 세상 사람 모두는 1년 안에 사망할 가능성이 있다. 예외는 없다.

나는 격리병동에서 집중 치료를 받다보면 이 사람들이 자신들의 착오를 눈치챌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잉진료를 인정하고 나를 곱게 집으로 보내줄 줄 알았다. 가타부타 따지기도 귀찮고 어디 한 번 하고싶은 대로 해 봐라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격리실에서 3일째가 되자 진정 내 몸이 원하는게 뭔지 알게되었다. 내 목을 타고 들어와서 내 안에 작은 파도를 만들고 놀이공원의 폭죽을 터뜨려 줄 그것. 허전하고 공허했다. 나는 기계인가. 한참을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그것이 없이는 나는 못 사는구나.

하지만 격리병동은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들의 손바닥 안이라는 식이었다. 나는 금주 10일을 달성했고 약물 치료를 받았으며 금주 30일을 달성하고 안정된 뇌파 테스트를 통과하고 술을 마시겠다는 생각이 아예 들지 않는다는 인터뷰 후에 병동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머릿속에 술을 마시겠다는 생각이 들지 말아야한다. 다양한 관심사, 건강한 인간관계… 그래. 뭐든 해야한다. 뭐든… 그러다가 우주항공국에서 블랙홀 탐사대를 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각 분야의 인재. 나이, 요건 등등이 공지되었다. 나에게는 공학분야 박사학위가 있다. 나이가 조금 많긴 하지만 지원 가능 범위 안이다. 수면냉동? 오히려 좋다. 나는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차라리 꽁꽁 언채로 잠들고 싶다. 그러다 눈을 뜨면 블랙홀이 보일 것이다. 블랙홀을 앞에 두고 술을 마시고 싶진 않겠지. 무엇보다 우주선에 술까지 실을 공간도 없다. 우주선은 작으니까. 내게는 완벽한 환경이다.

인생의 반을 잠든 채 보내야 하고 절정의 순간은 아주 짧으며 무사히 제 시간에 돌아올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 등등 때문에 이번 블랙홀 탐사대는 이런저런 자격미비자들도 대거 포함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나에게도 절호의 기회였다. 1년 간의 건강 회복과 체력 증진 기간 유예 후에 나는 첫번째 블랙홀 탐사대에 포함될 수 있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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