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을 잇는 서까래가 무너졌다. 조선왕조 그 어느 즈음에 지은 집이니 무너질 만도 했다. 어머니의 수선에 마루에 나와 보니 무너진 흙벽돌과 깨져버린 기와가 콘크리트 마당에 널브러졌다. 큰 구멍 너머로 작년 가을에 거둔 쌀가마니와 콩자루가 보였다. 여전히 흙먼지가 폴폴 날리는 광의 입구에서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때마침 지게를 지고 집 안으로 들어서던 아버지가 이를 보고 달려왔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옆에서 혀를 차며 지게를 내려놓고 더벅머리를 벅벅 긁으셨다. 이 상황이 무척 짜증스러워 보였다. 일손이 부족한 한여름에 광까지 무너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흙먼지 사이로 무언가를 봤을까. 아버지가 광 안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허물어진 구멍으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석이 아버지, 왜 그래요?”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광 안을 기웃대던 어머니가 묻자 아버지는 대답 대신 튼튼한 구릿빛 팔을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상체를 거의 구멍 안으로 넣은 아버지의 하체가 휘청거렸다. “으억!” 하고 신음을 흘리자 놀란 어머니가 아버지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아이고, 석이 아버지!”
“뒤로, 뒤로!!”
아버지의 허리를 부둥켜안은 채로 어머니가 밖으로 당겼다. 이어 들썩이는 아버지의 상체가 밖으로 나왔고 아버지의 머리가 그리고 팔이…
“에그머니나!!!”
아버지의 팔에 친친 감긴 거대한 뭔가를 본 어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것은 구렁이였다. 어림잡아 길이는 내 키 정도 됐고, 몸통은 내 팔뚝보다 더 굵었다. 구렁이가 아버지의 팔에 여러 번 그 몸을 감을 때마다 노을빛에 반사되는 진한 갈색의 매끄러운 표면이 꿈틀 거렸다. 구렁이의 대가리를 우악스레 틀어쥔 아버지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 뭐하고 있어? 가서 가마솥 뚜껑 가지고 와!”
벼락같은 아버지의 고성에 어머니는 헐레벌떡 부엌으로 가서 가마솥 뚜껑을 가지고 왔다. 아버지는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깊고 넓은 검은 통에 구렁이를 밀어 넣었다. 구렁이는 그곳에 빠지지 않겠다고 악착같이 아버지의 팔을 조였다. 하지만, 힘에선 아버지가 우위였다. 밑에서부터 하나하나 뜯어내다시피 꼰 몸을 떨어트리자 그 몸통이 휘어져 밖으로 삐져나왔다. 어머니가 가마솥 뚜껑으로 그 몸을 안으로 밀었다. 부모님의 신음과 비명이 마당에 울렸고 풀이 스치는 듯 날카로운 소리가 바람에 실렸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가마솥 뚜껑을 덮음으로 모든 소음이 끊겼다. 숨을 몰아쉬던 어머니가 가마솥 위에 큰 돌을 얹는 아버지를 노려봤다.
“저걸 어쩌려고요?”
“팔아야지. 뱀장수가 허발을 하고 사가겠구만!”
그리고 기둥 뒤에 숨은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너 이거 절대 열지 말어!”
그 밤 열어 놓은 창문 너머로 평소 들리던 풀벌레 우는 소리에 섞여 들리는 이질적인 소리. 퉁, 퉁, 퉁. 나의 두 눈이 감기려 할 때마다 어찌 알고 들리는 그 소리 퉁, 퉁, 퉁. 나는 그 소리를 눈앞에 그려보았다. 어둠에 잠긴 통 안에서 도망가기 위해 이리저리 꿈틀거리다가 고개를 들고 두꺼운 철판을 머리로 치는 구렁이를. 아니, 아니지. 나를 부르는 소리야. 사람이 노크를 세 번 하는 것처럼 구렁이도 나를 부르는 거지. 저기요. 저 좀 구해주세요. 퉁, 퉁, 퉁.
하지만, 아버지가 그러셨는걸. 너, 이거, 절대, 열지, 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