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 사교육으로 얼룩진 KBO 리그의 끝은 정말이지 허무했다. 몇몇 투수들이 손끝에서 포수의 미트까지 순간이동하는 염동력 마구를 던진 게 초능력 경쟁의 시작이었다. 이에 질세라 타자들도 제3의 눈이라고 불리는 송과선을 단련해서 두 눈을 감은 채 심상의 스윙으로 마구를 받아쳤다. 야수들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야수들에게도 순간이동하는 타구를 받아 낼 제3의 눈과, 축지법을 쓰는 주자를 잡아낼 염동력 송구가 필수가 된 것이다. 신록의 다이아몬드를 무대로 순간이동하는 공과 선수들. 경기는 치열했다. 그런데 관중들이 감지할 수 있었던 장면은?
와인드업하는 투수와 그에 맞춰 자세를 낮추는 수비수들,
순간이동 감지 센서에 따라 바뀌는 볼 카운트,
드문드문 딱, 하고 울리는 타격음,
그리고 다시 자리를 잡는 수비수들.
정작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공과 선수들의 플레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관중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전광판 숫자들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초능력 연주를 겨루던 ‘슈퍼소닉”은 또 어떠했는가. 기타리스트 부문 3관왕 윙베이의 속주는 너무 빠른 나머지 1/64 배속으로 느리게 재생해야만 간신히 뭘 치는지 알아볼 수 있었고, 천상의 목소리네 어쩌네 갖은 호들갑을 떨며 홍보한 가수 돌핀의 고음은 경연을 거듭할수록 극한으로 치닫는가 싶더니, 급기야 결승전에서는 가청주파수를 넘어 사람 귀에는 들리지도 않는 이른바 ‘무음고음(無音高音)’을 선보이는(?)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던가.
그 밖에 똑같이 생긴 200쌍 분신들의 집단 난투극이 되고 만 ‘분신술 서바이벌’, 독심술사들의 가스라이팅 대환장파티로 막을 내린 ‘텔레파시 러브배틀’ 등등, 이제까지 수많은 초능력 경연 대회가 난립하고 명멸해왔다.
“문제는 난립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초능력이 평범한 이들의 인지능력을 훌쩍 넘어선다는 거예요. 초능력은 스포츠나 예술의 핵심인 ‘섬세한 플레이’를 아예 생략해 버립니다. 결국 무미건조한 승부와 숫자들만 남게 되는 거죠.”
전국초능력교육연합회 오소은 회장의 말이다. 복잡한 규칙이나 미감을 즐겨야 하는 분야는 초능력 경연에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인 것이다. 오소운 회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오히려 단순하고 원초적인 경연이 초능력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냅니다. 이야말로 구찌다스파이트가 롱런하는 이유죠.”
오소운 회장의 말대로다. 구찌다스파이트의 규칙은 실로 간단하다.
경기장은 여의도의 한 빌딩.
출발점은 1층 로비, 목적지는 55층 쇼룸.
쇼룸에 진열된 구찌다스를 신고 내려와서 1층의 출발선을 다시 통과하면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