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의 방향은 다양하다. 그 마음은 밖으로 뻗어나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혹은 안으로 파고들어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다. 샛별 아파트 102동 510호에 2년째 거주 중인 주민 김희영. 김희영의 경우는 명백히 후자였다.
샛별 아파트는 소위 ‘요즘 사람’이라 불리는 이들은 눈길도 주고 싶지 않을 법한 낡은 아파트다. 한 층에 10가구씩, 총 5층밖에 되지 않는 이곳에도 한때는 재건축이니 뭐니 하는 바람이 불었는데, 위치가 워낙 좋지 않은 데다가 그저 하루하루를 밥 벌어 먹고살기 바쁜 이들 또는 하루하루를 조용히 흘려보내기 바쁜 노인들이 많아 결국 지금의 상황으로 남고 말았다. 흐려진 102동 마크와 거무튀튀한 자국들로 얼룩진 긴 복도, 먼지가 수북이 쌓인 철제 우편함 위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조잡한 스티커, 좁은 경비실 안에서 털털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따위가 샛별 아파트를 나타내는 모든 것이다.
김희영은 102동에서도 510호, 맨 위층 맨 끝자락에 살았다. 깨어있는 시간에는 만화를 그렸다.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택배를 시켰다. 택배를 시키지 않으면 잠을 잤다. 그렇게 2년을 살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던 것들은 살다 보니 그래도 되는 것들이었다. 2년 동안 김희영은 모든 것을 배달로 해결했고 쓰레기가 너무 쌓인다 싶으면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밖으로 나갔다. 그마저도 요즘은 조금 귀찮아져서, 좁은 베란다에는 김희영이 주문한 택배 박스들이 차곡차곡 포개져 어느새 산을 이루던 참이었다.
김희영이 그리고 있는 만화의 제목은 ‘탐정 김영희.’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은 김영희다. 김영희는 탐정이다. 고전 미스터리의 황금기 시대에 안락의자에만 앉아 사건을 해결하던 탐정들과 가는 곳마다 사람이 죽어 사신이라 불리는 유명한 탐정들을 반반 섞어 놓은 캐릭터다. 흔한 이름을 붙이고 싶어 이름은 영희가 되었고, 그에 맞는 흔한 성을 붙이고 싶어 성은 김, 김영희가 되었다. 영희란 이름이 희영을 거꾸로 한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만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한참 후였다. 김희영은 언젠가 만화를 세상에 발표하게 된다면, 작가의 이름을 절대 실명으로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어디까지나,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면 말이다.
어쨌거나 김희영의 삶은 그런대로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510호에는 사람이 사는 건지 마는 건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고 누군가가 떠들어대도 그 수군거림조차 듣지 못하는 그런 삶.
물론, 순탄한 삶에는 언젠가 균열이 나기 마련이었다.
탐정 김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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