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조립한다. 합성 신체, 무기 신체, 의사 신체라고도 하지만 보통은 마지막 것을 줄여서 의체라고 부른다.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회사에서 개발 중인 제5세대 의체의 프로토 타입이다. 다음 주에 테스터를 불러 착용감이나 편의성을 시험할 예정이라 오늘 중으로 전부 조립해 두어야 했다.
기본 프레임은 업체에서 가조립 해오기 때문에 내가 할 일은 많지 않다. 우선 양전자 두뇌를 두개골 내에 고정하고 더미 기억 장치를 연결한 후 양쪽이 모두 정상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그 다음에는 전자파에 민감한 양전자 두뇌가 오작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차폐막을 설치하고 차폐 상태를 확인한다.
그러면 끝이다. 작업을 마친 의체를 해부대처럼 생긴 보관기에 고정한다. 팔, 다리, 몸통에 있는 배터리는 미리 제거해야 한다. 성인 남성, 성인 여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8~12세 유아용 모델을 안아서 올린다. 가벼웠다. 마그네슘 합금 프레임에 EAP를 짜맞춘 의체는 거의 또래 아이의 몸무게 정도로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 무게가 누군가를 생각나게 해서 눈가가 뜨거워졌다.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그 무표정한 얼굴에 귀여운 미소를 띠우면서 아빠라고 부를 것 같았다. 눈가를 훔치면서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했다. 작업실에 있는 게 나 혼자라서 다행이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는 8시에 가까웠다. 금요일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근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커피를 가지고 자리로 돌아와서 앉는다. 1년 전부터 습관이 되어 버린 대로 뉴스 사이트들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별 내용은 없었다. 오늘도 국회는 파행 운영되었고, 용산에서 불법으로 기억 복제를 하던 업자 몇 명이 체포되었고, 어디선가는 머리가 없는 변사체가 발견되었다.
이걸로 13건째다. 기자는 이번 연쇄살인범에게 ‘헤드 헌터’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항상 시체에서 머리를 잘라가기 때문이다. 보존 장치가 있는 부분을 섬세하게 절단해 가는 걸로 봐서 의체 관련 업종에서 근무하고 있을 거라는 빤한 추측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의자에 한껏 기대앉는다. 머리 사냥꾼이라. 옛날 생각이 났다. 나는 어릴 적에 혼자서 잠도 못 잘 정도로 머리 사냥꾼을 무서워 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느냐고 하면, 글쎄. 모르겠다. 내가 어릴 적에 알던 헤드 헌터는 미치광이 연쇄살인마가 아니라 괴담 속의 괴물이었으니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8살 때였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니 옆 자리가 비어 있었다. 아침 조회에서 선생님이 침통한 얼굴로 그 아이가 방학 중에 사고를 당했다고 말해 주었다. 이제 영영 못 나온다고 했다.
학교에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에선 그 애가 사실은 귀신에게 잡혀 간 거라는 소문이 났다. 사람의 머리를 잘라가는 귀신이 있는데, 어른들은 머리가 잘려가도 재생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머리가 잘리면 그대로 죽어버린다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는 센터에서 근무하는 형을 따라갔다가 실제로 머리가 잘린 시체를 봤다는 경험담을 과장 섞어 자랑하기도 했다. 그게 귀신에게 당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보존’과 ‘재생’, 그리고 죽음에 대한 개념이 없던 아이들이 만들어 낼 법한 이야기였지만 그 때 내게는 너무나 무섭게, 그리고 사실처럼 들렸다.
그 날은 겁에 질려 울면서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보고 깜짝 놀라셨지만 무슨 일인지 말하라며 참을성 있게 달래주셨고, 나는 학교에서 들은 무서운 이야기와 사라진 짝꿍에 대해 두서없이 털어 놓았다.
어머니는 웃음을 터뜨리는 대신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주려고 하셨다. 사람의 기억을 읽어서 저장해 놓고 죽을 경우에는 저장한 기억을 다른 무기물(無機物) 신체에 이식하여 되살려 낸다던가, 보존을 위해서는 뇌수술을 통해 탐침을 심어야 하는데 어린 아이는 뇌의 발달 정도가 부족해서 그런 수술을 하지 못한다던가.
어머니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지만 나는 그걸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게는 그냥 귀신 이야기가 더 이해하기 쉬웠던 것 같다.
한동안 밤에 혼자서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골목길에서 낯선 사람만 봐도 바지를 적시고 돌아오는 날들이 계속되자 어머니는 결국 내게 진실을 설명하는 걸 포기하고 타협을 선언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들려줄 이야기를 지어 냈다. 숨을 참고 있으면 머리 사냥꾼이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간다거나, 전자파를 싫어해서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면 안전하다거나.
해가 지나면서 이야기는 점점 살이 붙었다. 어머니의 그 날 기분에 따라서 매번 내용이 바뀌었지만 결말만은 언제나 같았다. 사악한 헤드 헌터는 자신이 잡고 있는 여동생을 미끼로 그 오빠를 불러낸다. 머리 사냥꾼의 은신처에 간 오빠는 꾀를 부려 머리 사냥꾼을 옷장 안에 가두고 귀신이 잡아 갔던 애들을 구해낸다.
해가 지나면서 이따금 찾아오는 악몽만 남기고 그 이야기도, 괴물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정말로 헤드 헌팅을 당해서 우리 부서로 온 동료 직원을 만났을 때 그 이야기로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한참을 웃던 그녀는 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첫사랑을 닮았던 그녀와 오랜 기간 연애한 끝에 결혼식을 올렸다. 아내를 닮은 딸이 태어났을 때는 고민 끝에 민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아이가 5살이 되었을 때 전부터 소문이 무성하던, 두개골 성장이 끝나지 않은 14세 전의 아이에게도 삽입 가능한 신형 보존 장치가 임상실험을 마치고 시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내를 설득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겁먹은 딸을 달래는 게 더 큰일이었다. 전부터 졸라대던 고양이를 사주기로 약속하고 간신히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었다.
그 날 이후는 다시 악몽조차 꾸는 일도 없었다. 나도, 아내도, 내 딸도 내가 어릴 적의 그 아이처럼 내 앞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딱 1년 전, 집에서 머리가 사라진 딸의 시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니도, 나도 틀렸다. 헤드 헌터는 정말 있었다. 그리고 내 곁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
눈을 떴다. 의자에 앉아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깨운 물건을 찾아 두리번거린다. 책상 위에서 휴대폰이 울리고 있다. 해외사업부의 선미 씨였다. 새벽 3시에 무슨 일일까. 눈을 비비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음성 모드로 연결 되며 전혀 뜻밖에도 남자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동준 씨 되시죠?”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아, 다행입니다. 이 여자분이 길에 쓰러져 있어서 말이죠. 제가 이 분 휴대폰으로 연락을 해봤습니다. 술을 너무 드신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 아닌가 하고 깜짝 놀랐던 가슴을 쓸어내린다. 의자에서 일어나며 코트를 집었다. 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연락을 받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요? 제가 가겠습니다. 어디시죠?”
“여기 합정입니다. ……그나저나 지금 회사에 계십니까?”
“네?”
뜻밖의 질문에 반문한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지만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회사신가 보네요. 집에는 일찍 일찍 들어가셔야죠.”
“무슨 상관입니까? 지금 장난하시는 건가요?”
아는 번호로 걸려온 게 아니었다면 당장에 전화를 끊어버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일찍 퇴근하셔야 따님이 헤드 헌터한테 안 잡혀가죠. 안 그렇습니까?”
커다란 돌을 삼킨 듯한 기분이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아, 실례했습니다. 이미 잡혀갔던가요? 이름이 민경이었죠? 제가 요즘 기억이 좀 가물가물 해서.”
“너 뭐야? 뭐 하는 놈이야? 이 따위 장난질을 할……”
“장난질이라…… 그렇게 생각하시면 내일 아침 뉴스에서 봅시다. 저는 지금부터 이 아가씨랑 재미있게 놀아 볼 테니까요. 아, 민경이처럼 다리에 데인 흉터가 있나 한번 확인해 볼까요? 궁금하시죠? 이따가 다시 전화 드리죠.”
“그만해!”
소리를 지르고 만다. 듣고 싶지 않다. 그 놈이었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이제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말투마저 깔보는 투로 바뀌어 있었다. 다시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선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상대할 필요가 없다. 자신에게 세뇌하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화를 낼 필요도 없다. 저 놈이 원하는 대로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필요는 없다.
모니터로 눈을 옮긴다. 이 시간에도 메신저에 접속 중인 사람이 몇 명 있었다. 어떻게든 저 놈이 눈치 채지 못하게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다면, 경찰에 알릴 수 있다면……
제발 대답하기를 바라며 한 명에게 말을 걸려고 했다. 그 자식의 다음 말을 듣지만 않았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말이 없네. 신고할 생각이면 관둬. 그러면 딸자식은 영영 다시 못 보게 될 거야.”
“뭐?”
“당신 딸의 보존 장치. 지금 내가 가지고 있어. 머리에서 정성 들여서 예쁘게 파냈다고. 가지고 싶지 않아?”
손이 멈췄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오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지나간다. 기억, 보존, 재생, 딸……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원하는 게…… 원하는 게 뭐야?”
수화기 너머로 다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득의양양한 웃음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