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탈의 시대

미리보기

‘좋아요’가 조금 늘었다. 댓글도 한두 개 더 달렸다.

연습 중간 쉬는 시간에 내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공연 홍보 글에 달린 댓글을 확인하며 하트를 누르는 것이었다. 밴드 공식 SNS 계정을 관리하는 건 내 몫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적어 금방 끝나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작년보다 팔로워 수가 늘었다. 몇 달 전에 했던 음악 스트리머와의 짤막한 인터뷰 덕이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자 어딘가에 전화를 걸며 나갔던 드러머 영환이 돌아왔다. 불만스러운 낯으로 핸드폰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며 “왜 전화를 안 받냐.” 하고 중얼거렸다. 영환은 연습 쉬는 시간마다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곤 했는데, 오늘은 어쩐 일로 연락이 되질 않는 모양이었다.

보컬인 시몬도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뒤를 이어 담배와 라이터를 들고 나갔던 기타리스트 미아도 돌아왔다. 미아는 합주실 문이 닫히자마자 라이터 쥔 손으로 바깥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야. 어디서 또 이벤트 하나 봐. 멀리서 계속 소리 지르고 사람들도 뛰어다니더라.”

“홍대가 매일 그렇지 뭐.”

그러자 영환이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뚱하게 대답했다.

“그건 그래.”

미아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기타를 집어 들었다. 공연이 일주일 남았는데 두 시간 빌린 합주실을 허투루 쓸 수는 없었다. 내가 베이스 기타를 만지작거리자 시몬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구석에 내려놓더니 너털웃음을 흘렸다.

“우리 공연도 저랬으면 좋겠다. 어떻게 잡은 단독 공연인데.”

“더 시끄러워야지. 어떻게 잡은 단독 공연인데.”

시몬의 말을 따라 하며 나도 동조했다. 그러자 멤버들의 시선이 저절로 공연 포스터가 담긴 상자에 가 닿았다.

각자 이 밴드 저 밴드 전전하다가 모여 한 밴드를 이룬 지 3년째. 메탈과 하드 록을 고집하다 보니 팬층이 두꺼워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꼭 한둘은 있었다.

그 덕에 드디어 첫 정규앨범을 내고 단독 공연도 잡았다. 어느 록 페스티벌이나 라이브 클럽 행사의 한 코너가 아닌, 우리만의 무대 말이다.

모아둔 레슨비와 아르바이트비에 아주 간신히 받은 청년 예술가 활동 지원금이니 하는 것을 합쳐 라이브 홀을 대관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바로 공연 날이다. 그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자 긴장감에 심박수가 올라갔지만 입꼬리도 올라갔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합주실 분위기가 살짝 들떴다.

영환이 말도 없이 드럼 스틱으로 하이햇 심벌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려 연주를 시작하자, 우리도 일제히 합주를 재개했다. 그토록 기대하던 단독 공연이 정말로 다음 주였다. 이제 메탈은 한물갔다고들 하지만, 그날만큼은 무대 전체가 우리 것이다.

미아의 기타 솔로 구간이 끝나자마자 내가 베이스 솔로 연주를 시작하며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어깨 근처까지 기른 머리칼이 정신없이 휘날렸다.

베이스의 넥을 쥔 채 위로 주욱 쓸어올리던 찰나, 합주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와 철퍼덕 쓰러졌다. 바닥에 넘어져서도 다급하게 문을 닫았다.

우리는 당황해서 우뚝, 동작을 멈췄다. 머리를 흔드느라 정신없던 내 시야에도 갑자기 쳐들어온 분홍색 머리칼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들 얼이 빠진 와중에 시몬이 마이크 스탠드에서 손을 떼고 인상을 썼다.

“너 뭐야? 갑자기 무슨 일이야?”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그제야 불청객이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시몬의 눈빛이 순식간에 난처함을 표했다. 불청객은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었다.

그런데 눈물범벅인 그 얼굴이 눈에 익었다. 종종 같은 무대에서 공연했던 다른 밴드의 보컬 달송이었다. 달송은 울먹이며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바, 밖에. 밖에 큰일이, 여기 위험, 위험해.”

솜사탕처럼 달콤한 목소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밀던 달송의 목소리는 잔뜩 잠기고 갈라졌다. 자세히 듣지 않아도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잠깐. 너 다쳤잖아.”

되묻던 미아가 깜짝 놀라 물통을 들고 달송의 옆에 앉았다. 인제 보니 달송의 다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나도 심각해져 수건을 꺼내 미아에게 내밀었다.

“옆방에서 싸움이라도 난 거야?”

내가 물었지만 달송은 훌쩍이기만 했다. 달송이 들어오면서 잠깐 열린 문틈으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은데, 여기는 원래 시끄러운 곳이다. 그렇다고 피를 볼 정도의 싸움이 일어날 장소도 아니었다.

미아는 수건에 물을 적셔 달송의 다리를 살살 닦아줬다. 상처에 물이 닿는 게 따가운지 달송이 자꾸 움칠거리더니 몸을 뒤틀었다.

“이럴, 이럴 때가 아니야. 나, 내가……!”

“야. 가만히 좀 있어 봐. 상처를 볼 수가 없잖아.”

미아가 짜증을 내자, 뭐라 말하던 달송은 숨쉬기가 힘들다는 듯 제 가슴을 퍽퍽 쳐댔다. 너무 세게 치는 것 같아 내가 달송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왜 그러는데? 목 막혀? 목에 뭐가 걸린 거야?”

달송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합주실 분위기가 더 가라앉았다. 나는 창백해져 가는 달송의 안색을 살펴보다가 이번에는 미아에게 물었다.

“물을 좀 먹여 볼까?”

“그게 좋겠어.”

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직접 달송의 입으로 물통을 기울여줬다. 그걸 본 영환이 드럼 스틱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내가 카운터에 한 번 가볼게. 다른 합주실에도 들르고.”

“알았어. 그럼 나는 구급차라도 불러야겠다.”

영환의 말에 시몬이 핸드폰을 꺼냈다.

“물은 좀 마셔?”

그러면서 나에게 물었지만, 달송은 물을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하고 전부 흘리기만 했다. 나는 시몬에게 얼른 구급차부터 불러보라며 손으로 전화 받는 시늉을 했다.

달송은 급기야 끅끅거리는 소리를 내다가 점점 허리를 접어 고개를 숙였다. 미아의 옷자락을 붙잡고 마구 잡아당기기까지 했다. 뭔지는 몰라도 괴로워서 어쩔 줄 몰라 보였다. 미아는 급한 대로 물통을 앰프 위에 올려놓고 달송의 등을 토닥였다.

“얘 상태가 왜 이래? 원래 지병 같은 게 있어?”

그러면서 달송이 들을까 봐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나도 잘 몰라. 얘랑 그렇게 친한 건 아니라……. 갑자기 왜 이러지?”

나도 당황해서 피가 나는 다리에 수건을 덮어주며 대꾸했다.

“아악!”

그때 갑자기 미아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달송이 느닷없이 미아의 팔을 깨문 것이다. 게다가 팔에서 입을 떼지 않으려 미아를 꽉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어?”

미아는 아파하면서도 달송을 떨쳐내려 발버둥 쳤다.

“야! 이게 미쳤나! 도와주는 사람한테 무슨 짓이야?”

“뭐야 너? 술 처먹었나? 정신 차려 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주춤했던 나도 달송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힘껏 당겼다. 달송은 미아의 팔을 뜯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우악스럽게 달라붙었다. 나는 미아의 머리칼을 잡아당기며 시몬을 돌아봤다.

“술 냄새는 안 나는데 진짜 미쳤나? 왜 이러는 거야? 시몬! 구급차는 언제 와?!”

“나도 몰라! 119통화가 안 돼. 미치겠네.”

시몬도 초조한지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핸드폰 화면을 계속 누르고 있었다.

“그럼 경찰이라도 부르던지! 영환이는 왜 안 돌아오는 거야?”

나는 덜 닫힌 합주실 문을 돌아봤다가, 미아를 봤다가, 시몬을 돌아보느라 목덜미가 뻐근해질 지경이었다. 문이 꽉 닫힌 게 아니니 카운터에서도 이 소란을 들었을 텐데 왜 확인하러 오질 않는 걸까. 야생동물에게 습격을 받은 것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파! 야! 이거 놓으라니까!”

달송은 결국 미아가 배를 발로 차듯이 밀어낸 후에야 떨어져 나갔다. 나는 달송과 함께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가 후다닥 일어섰다. 달송이 이번엔 나한테 팔을 뻗었기 때문이다. 어디가 아픈 건 확실한데, 그게 다리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르르륵.”

달송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비틀비틀 일어섰고, 나와 시몬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달송의 모습이 이상했다. 피부는 기이할 정도로 창백했고, 그와 대비되는 검은 핏줄들이 눈을 향해 몰려가고 있었다. 눈두덩이와 입술이 멍든 것처럼 시커멓게 변해 괴물 같아 보였다.

꼭 영화에서나 보던 좀비 같다고 생각할 때쯤, 살짝 열린 문틈으로 온갖 비명과 괴성이 쏟아져 들어왔다. 우리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러자마자, 달송이 기괴한 함성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벽에 등이 닿을 정도로 뒷걸음질을 쳤고, 시몬은 달송을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새 달송처럼 이상해진 미아가 시몬의 다리를 향해 몸을 던졌다.

“으아악!”

시몬이 기겁하며 우당탕 넘어졌다. 이번에는 미아가 시몬의 종아리를 꽉 깨물었다.

“시몬!”

나는 시몬에게 손을 뻗으려다 다시 뒷걸음질 쳤다. 달송이 여전히 나를 노리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손에 잡히는 물건을 되는대로 집어 들었다. 우리 밴드의 단독 공연 포스터였다. 내게 계속 다가오려 하는 달송에게 그것을 뭉텅이로 던져댔다. 그러면서 미아와 시몬의 상태를 확인하려 했다.

“미아, 너까지 왜 이래? 시몬! 괜찮아? 잠깐, 야 달송 이러지 마. 오지 마!”

시몬이 미아와 실랑이를 하는 동안 달송이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점점 다가왔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진짜 큰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며 포스터를 마구잡이로 집어 던졌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달송에게 팔을 붙잡히기 직전,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면서 달송의 얼굴에 퍽 소리가 나도록 세게 부딪쳤다. 그 고통이 내게 전해지는 것 같은 기분에 콧등을 잠깐 찌푸렸다. 합주실 문을 열어젖힌 것은 영환이었다.

아니, 어쩌면 창백한 괴물이었다.

“영환아. 아니지? 너까지 저렇게 된 거 아니지?”

나는 포스터를 돌돌 말아 쥐고 다른 손에는 드럼 스틱을 들었다. 허구한 날 부러지는 드럼 스틱이 포스터 뭉치보다 잘 견뎌줄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창백하고 검은 영환의 입이 열리자 그워억,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망했다. 망했다는 생각만 들었다. 영환이 나를 향해 눈을 치켜뜨며 달려들었고, 뒤를 이어 다른 합주실을 쓰고 있던 사람들까지 몰려들었다. 죄다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창백했으며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데 손이 차가워져 가는 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무대에 오르던 날처럼 말도 안 되게 큰 불안과 긴장에 휩싸였다.

“제발 다들 정신 좀 차려! 우리 다음 주가 공연이라고! 단독 공연이란 말이야아!”

벽에 손을 짚은 채 뒷걸음질을 쳐봤지만 더는 도망칠 곳이 없었다. 영환과 괴물들이 나를 붙잡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우적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발로 밀어내고 포스터 뭉치와 드럼 스틱을 휘둘러도 괴물들은 멀어지질 않았다.

결국 괴물들에게 떠밀려 앰프 위로 쓰러지듯 넘어지는데, 내 팔꿈치에 뭔가가 툭 치였다. 공포 영화 같은 그 순간에도 물통이 앰프와 연결된 콘센트로 추락하는 게 슬로모션으로 보였다.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저거야말로 올해의 가장 무서운 공포 영화였을 텐데.

‘미아 이 새끼, 또 앰프 위에 물 올려놨네……!’

그런 생각을 하는 동시에 파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곱아드는 감각이 온몸을 들이박았다. 옆구리에 서늘하고 얼얼한 감각도 함께 지나갔다. 과열된 전구가 깨지는 것처럼 내 시야도 순식간에 쨍그랑, 암전됐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