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이 넓은 중국 식칼이 티끌 한 점 없이 뽀얀 춘희의 사타구니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잠시 멈춰 섰다가 순식간에 척 하고 내리꽂혔다.
손목에 힘을 더 실어 사타구니 왼쪽에서 식칼을 뽑아냈다. 칼날이 빠진 자리에서 찢어진 살갗을 비집고 선홍색 액체가 흘러내렸다. 뽀얀 피부를 타고 흐르는 새빨간 피에 눈을 고정시킨 채 얼음을 자르는 톱으로 바꿔 쥐었다.
까끌까끌한 톱날 표면이 사타구니 왼쪽의 벌어진 틈 사이로 힘 있게 들어가 신명나게 좌우로 움직였다. 뼈를 깎는 소리는 얼음을 자를 때 나는 소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얼음을 자를 때 보다 시간이 더 걸렸고 손에 전해지는 느낌이 딱딱했으며, 얼음의 시원한 냉기 대신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아야 했다.
다리를 잘라내는 동안 춘희의 몸뚱어리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춤을 추듯 움직이다가, 왼쪽 허벅지가 몸에서 분리되자 겨우 멈췄다. 다시 식칼을 쥐고 내리 친 뒤에 톱으로 오른쪽을 마저 썰어냈다. 이번엔 좀 더 쉬웠다.
손에 낀 목장갑은 이미 붉은 피로 축축하게 젖어 손가락 마디마디에 불쾌하게 끈적이는 느낌을 전했다. 이마에는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땀이 흘렀다. 다행히 머리를 삭발한 탓에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거나, 땀에 젖어 이마를 간질이는 일은 없었다.
이제 스물을 갓 넘긴 싱싱한 육체의 냄새, 아주 미세하게 풍기는 병원 소독약 냄새가 나를 더 흥분시켰다. 내 모가지를 두르고 등을 쓰다듬으며 감미롭게 애무하던 가녀린 손가락들……
한여름에 냉수욕을 한 것 같은 오싹한 전율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친숙하면서도 오묘하고, 낯선 듯하면서 편안한 손놀림…… 아랫도리는 벌써부터 오입 태세에 돌입한 것 같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내 몸의 보잘것없는 근육들이 미미하게 실룩거렸다.
팔은 중국 식칼로 썰지 않고 바로 톱질을 했다. 가늘고 창백한 팔은 금세 잘려나갔다. 떨어져 나간 어깨 표면은 허연 뼈와 붉은 피가 뒤섞여 묘한 색채감을 연출했다. 게다가 진한 자주색에 가까운 피는 너무나 세련되고 우아하게 흘러내렸다.
능숙한 손놀림 속에서 쾌감을 동반한 자신감이 손에 가득 차올랐다. 남은 팔도 마저 잘라냈다. 천장을 보고 있는 손바닥에선 푸른빛 힘줄이 선명하게 돋아나 보였다.
이제 본격적인 피날레를 장식할 단계였다. 축축히 젖은 긴 머리카락들이 춘희의 눈과 코에 엉겨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춘희의 얼굴에서 떼어내 뒤로 쓸어 넘겼다. 곱게 다듬은 눈썹, 오뚝한 콧날, 연분홍 빛깔의 살짝 벌어진 도톰한 입술. 그리고…… 눈.
씹할. 눈을 볼 수 없었다. 두 눈을 굳게 닫은 채, 춘희는 내 시선을 마주보려 하지 않았다. 눈동자를 보고 싶었다. 내가 춘희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암갈색의 두 눈동자 때문이었다.
그녀의 눈웃음은 정말이지 내 몸과 마음을 세차게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미치도록 보고팠다. 아랫도리를 맴돌던 내 손은 더듬더듬 기어 작은 냉동고 옆에 놓인 간이 선반으로 옮아갔다.
‘풀잎다방’에서 몰래 가져왔던 육각형 모양의 성냥갑을 꺼냈다. 망간이나 규사 따위의 짙은 갈색 마찰제가 발린 곳은 반질반질 닳아 해져 있었지만, 육각형의 각 면에 부착된 여자 나체 사진은 여전히 선명했으며 언제 봐도 천박스러운 모습으로 꼬리를 치고 있었다.
성냥개비 두 개를 꺼냈다. 춘희의 눈알을 덮은 위아래 눈꺼풀을 벌리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커다란 마름모꼴이 되어 버린 두 눈이 좀 요사스러워 보이긴 했지만 그런대로 볼 만했다.
톱질은 춘희의 가녀린 목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목뼈를 지지하는 힘줄과 인대가 톱날에 퉁겨져 ‘우두둑’ 하고 끊기는 소리를 냈다. 곧이어 춘희의 머리가 목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 바람에 오른쪽 눈꺼풀을 지탱하고 있던 성냥개비가 비스듬히 누웠다.
나는 다시 성냥개비를 눈꺼풀에 세심하게 고정시키고 모로 기울어진 머리를 반듯하게 세우려고 했으나, 춘희의 머리는 또 한 번 힘없이 쓰러졌다.
목에 두르고 있던 핑크색 수건을 풀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그러고 나서 수건을 동그랗게 말아 똬리를 만들었다. 춘희의 배꼽에 수건을 올렸다. 그 위로 춘희의 머리를 올려 놓았다.
핑크색 수건은 금세 붉게 물들었고 쓰러질 듯 위태롭게 세워져 있는 춘희의 머리 옆엔 붉은 실고추처럼 말라버린 검붉은 음모들이 뭉개져 있었다. 흐르다가 말라붙고 또 굳어가는 붉은 액체를 보니 이상야릇한 광기에 몸이 뜨거워졌다.
단단해진 아랫도리를 오른손으로 쓰다듬으며 왼손의 검지와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춘희의 분홍빛 젖꼭지를 잡고 비틀었다. 뒤이어 젖가슴을 손톱자국이 선명하게 남을 만큼 강하게 움켜잡았다. 내 손끝의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고 춘희 역시 내 손놀림을 행복한 듯 받아들이고 있었다.
헉…… 헉…….
입김은 뜨거워지고 팔뚝의 근육은 삽시간에 부풀었다. 춘희의 뽀얀 가슴팍이 아지랑이처럼 좌우로 출렁거렸다. 젖가슴을 더 거칠게 움켜쥐자 춘희의 살점이 손톱을 파고들었다. 온몸이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한 바늘 세례가 퍼부어졌다.
“내가, 조, 좋다고 말해!…… 좋지? 내가……, 조, 오, 치! ……대답해!”
신음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이윽고 대폭발을 기다리는 아슬아슬함에 눈앞이 아뜩아뜩해졌다. 열정의 불길은 삽시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나의 왼손이 배꼽 위에 놓인 춘희의 머리통을 재빠르게 낚아챘다.
묵직한 덩어리가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좌우로 흔들렸다. 아랫도리에서 뿜어 나오는 성스러운 씨앗들을 내 손에 매달린 춘희의 얼굴에 쏟아냈다. 우윳빛 씨앗들은 춘희의 콧등에서부터 입술을 타고 도축장 바닥으로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100미터 뜀박질에 전력을 다한 사람처럼 숨을 할딱대며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허벅지가 강하게 땅기며 욱신거렸다. 긴장되어 있던 근육이 풀리자 온몸이 뻐근해 왔다.
한숨 돌리기도 잠시, 언제부턴가 마당에서 개새끼들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섯 마리나 되는 똥개 새끼들이 한꺼번에 지랄을 떨며 울어 젖힐 때는 도끼로 내리쳐 죽여 버리고 싶지만, 난 왠지 모르게 항상 그들의 눈빛에 제압당하고 뒤돌아서곤 했다.
춘희를 내버려둔 채 도축장을 나와 짖어대는 들개 새끼들 앞에 섰다. 오늘따라 들개들의 환호성이 그리 달갑지 않다.
수십 년간, 정확히 말하면 28년간 가축 도살을 업(業)으로 삼고 살아온 아버지는 8년 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거라곤 외딴 산골마을 속 도축장이 딸린 쓰러져 가는 집 한 채가 전부였다.
커다란 쇠망치에 정수리를 맞고 쓰러지는 집채만 한 황소,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꼴을 당한 황소만 한 잡종 똥개들을 나는 밥 먹듯 보며 자랐다.
무식한 데다 배짱도 두둑한 아버지는 10살이나 어린 동네 처녀를 보쌈하듯 집으로 데리고 와 일을 치르고 나를 낳으셨다. 그런 아버지의 도살하는 일을 죽기보다 싫어한 어머니는 나를 낳고 반년도 되지 않아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웃 동네 사내와 야반도주했다. 나는 동냥젖을 먹으며 자랐고,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는 늘 웅크린 채 어깨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나를 볼 때마다 숨이 콱 막힐 정도로 등짝을 후려치거나, 멍청한 어미에 멍청한 새끼라며 갖은 구박을 다 했다. 결국 아버지는 날 강한 남자로 만들 작정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고작 열두 살이 되던 해에 키우던 똥개를 칼로 찔러 죽이라고 강요했다.
그 똥개 이름은…… ‘똥개’였다. 집에서 1년 정도 키운 똥개는 내게는 곰살궂게 착 달라붙다가도 아버지만 보면 꼬랑지를 똥구멍 밑으로 말아 숨기고 달아났다. 아버지가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 똥개와 나는 헛간 여물통 옆에 함께 숨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뒷산에서 고래고래 소리치며 나를 불렀다. 내가 헐레벌떡 뛰어갔을 때, 굵은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똥개는 쉴 새 없이 좌우로 뒤틀며 몸부림치고 있었다. 끝이 뾰족하고 폭이 좁은 과도를 내게 건네며 아버지는 목에서 그렁그렁 끓던 누런 가래침을 퉤 하고 뱉었다.
“찔러 봐! 어서! 남자답게 푹 찔러 넣어!”
철삿줄에 매달려 버둥대는 ‘똥개’를 보자 난 그만 오줌을 지렸고 아버지는 그런 내 얼굴을 까칠한 돌덩이 같은 손바닥으로 후려갈겼다. 두어 차례 맞고 난 후에 나는 눈물을 터트렸고, 아버지는 장승처럼 우뚝 서서 나를 노려보면서 내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아버지에게 몇 대나 맞았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똥개가 철삿줄에 매달린 채 죽은 뒤에야 난 똥개의 배때기에다 칼을 쑤셔 넣을 수 있었다. 축 늘어진 똥개 아래엔 새까만 똥 덩어리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더운 여름날에나 봄 직한 똥개의 긴 혓바닥이 꼬리 길이만큼이나 길게 축 늘어져 있었다.
똥개는 그날 아버지와 내 저녁 밥상에 걸쭉한 국으로 재탄생 했고 난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그릇을 비워 냈다. 아무튼 아버지는 그 짓만 하다 죽었고, 나도 아버지가 죽고 난 후에 그 짓을 도맡아 해 왔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지만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고 추억으로 삼을 만한 적당한 이야기도 없다. 결핵과 중풍, 게다가 치매까지, 아버지는 더럽고 손 많이 가는 병만 얼싸안고 3년 동안 날 괴롭히다 죽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나는 오후가 되면 습관처럼 서너 시간 마을을 맴돌다 노을이 불그스름하게 산자락을 덮을 즈음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도 집 싸리문을 열고 들어와 변소를 가려고 뒷마당으로 들어서는데, 거기 웬 여자가 큰 대자로 뻗어 있었다.
검은색 치마저고리에 늘 손목에 차고 다니던 장난감 시계를 보니 동네 미친년임이 분명했다. 나는 자리에 우뚝 서서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죽은 년 옆에 덩치가 나만 한 개새끼 몇 마리가 피 칠갑을 한 주둥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대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마을에선 주민들이 투견으로 쓰기 위해 이리나 승냥이, 늑대 따위와 개를 교배시킨 일이 있어 말이 많았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고장은 투견으로 유명했고 단속이 생긴 후에도 비밀리에 투견 경기가 성행하는 곳이었다. 그 투견에 미쳐 절대 빠지지 않던 꾼들 중 한 명이 ‘소대가리 치는 사람’인 우리 아버지였다.
투견장이 열리는 날은 황소만 한 개들이 대꼬챙이처럼 큰 이빨을 드러내고 철창 안에 갇혀 순서를 기다렸고, 대회에서 지거나 모양새가 좋지 않은 개새끼들은 바로 고깃감이 되어 마을에선 잔치가 벌어졌다.
지금 눈앞에 있는 놈들도 보아하니 어정쩡한 모양새 하며 꼬리 끝이 누런 것이 늑대개의 이종사촌뻘은 될 듯싶었다. 나무에 목매달기 전에 도망쳤거나 어미가 산에 버리고 간 후 야생으로 살아남은 놈들일 것이다.
으르렁대는 소리에 제법 무서울 법도 했으나 나는 그것들에게 알 수 없는 동정심과 친숙함을 느꼈다. 나자빠진 미친년을 마구 찢어먹는 저 피 묻은 주둥아리가 남성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수캐가 미친년의 다리를 흔들어대며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년의 팔과 목, 다리부분의 뼈가 완전히 드러났다.
난 이틀 동안 미친년의 죽은 몸뚱이를 뒷마당에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괜찮은 듯 싶던 미친년의 썩은 몸뚱이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구더기들이 진을 치고 꿈틀대더니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결국 치우긴 치워야겠는데 정말이지 어떻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난 그년의 몸뚱이를 커다란 간장독에 쑤셔 넣어 버렸다.
들개들을 다시 본 건 2주가 지나서였다. 녀석들은 뒷마당 떡갈나무 아래에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고, 한동안 내 집 뒷마당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녀석들은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 경계의 눈빛을 한결 누그러뜨렸다.
들개들과 한 집에 살게 된 지 2년이 가까워 오던 지난 여름이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끈끈하게 땀이 차올라 온 몸이 가려운 그런 날이었다.
나는 저수지에 가기 위해 낡은 수건 한 장을 목에 두르고 집을 나섰다. 목욕이나 할 요량이었다. 고갯마루 너머 저수지에는 아이들 너덧 명이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아마도 이웃마을에서 온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햇빛에 그을려 다들 피부가 까무잡잡했다. 아직 학교도 안 다닐 법한 아이가 셋, 제법 큰 아이가 둘이었다. 아이들이 첨벙대며 내는 물소리와 재잘대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이들은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낄낄대며 물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속옷이 통통한 뱃살과 궁둥이에 착 달라붙어 움직일 때마다 반짝이는 물빛에 눈이 부셨다. 나는 버드나무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 물장구치는 아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머리 위에서는 귀가 따갑게 매미가 울어댔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물놀이에 지쳤는지 열두어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동생인 듯한 사내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둘은 옷을 챙겨 입은 후 터벅거리며 내 쪽으로 걸어왔다. 졸음이 오는지 연신 눈을 비비던 사내아이가 업어 달라고 누나를 보챘다.
여자 아이는 칭얼대는 동생을 달래며 내가 있는 그늘진 숲으로 들어섰다. 나는 얼른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이들이 바로 앞에 왔을 때 불쑥 튀어 나갔다. 길을 막아선 나를 본 여자 아이는 흠칫 놀랐지만 사내아이는 오히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나 전에 아저씨 봤어요! 장에 갈 때마다 닭 들고 서 있던데! 맞죠?”
일이 잘 풀리려고 그랬는지 사내아이가 나를 알은체하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숲길을 같이 걸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별 재미없는 이야기에도 웃음을 터뜨리거나 흥미를 보였다.
어쩌면 더듬거리는 내 말투가 재미있어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아이들을 내 집으로 데려왔다. 나는 경계하는 여자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엌에서 라면 끓이는 시늉을 했다.
“호…… 혼자 바, 밥 먹으면 마, 맛이 어, 없어……. 라면 머, 먹고 가, 가라…… 으,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