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코트

  • 장르: 판타지, 로맨스 | 태그: #오버코트 #망각
  • 분량: 20매 | 성향:
  • 소개: 버려진 물건을 주워 오는 습벽은 없었지만 여자는 그 코트를 안고 귀가했다. 더보기

오버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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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곧잘 잊어버렸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입속말하며 구겨진 구두 앞코를 내려다보았다.
화분에 물을 줬는지 안 줬는지 헷갈리는 건 예사였다. 어느 날에는 외투를 여밀 새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버스 정류장에 다다라서야 누구와 어디에서 만나기로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쓰고 남은 건전지를 어느 서랍에 넣어 두었는지 떠올리지 못해 애를 먹었고, 계산대 앞에서 포인트 번호를 묻는 슈퍼마켓 직원에게 자기 전화번호의 뒤 네 자리를 단번에 대지 못하고 이런저런 숫자들을 혀 위에서 굴리며 민망해했다.
여자는 맨 처음 집에 들인 고양이의 이름을 외우지 못했다. 골목길에서 털빛이 검은 고양이와 마주칠 때마다 아련한 슬픔에 사로잡혔을 뿐이었다. 여자는 남편에게 맞았던 나날들을 하루하루 착실하게 지워 나갔고, 자신보다 먼저 죽은 아이를, 품 안에 뿌듯하게 들어차던 무게와 말랑한 살결에서 풍기던 냄새를, 비할 데 없던 환희를 잊었다. 기쁨을 헌납하는 대가로 고통을 함께 바치는 은총을 입었다.
여자는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사람이었고 새로운 즐거움보다 망각에서 훨씬 큰 위안을 얻었다. 그것이 어떤 여자들이 세상살이의 수난에 대처하는 방식이었다.
여자는 체념한 만큼 점점 더 빨리 나이를 먹었으며 그만큼 빨리 가난해졌다. 잊을 것이 없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잃었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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