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항의가 접수되었다는 기별이 왔을 때 최석주 작가는 거의 네 시간 만에 작업실 책상을 벗어난 터였다. 슬리퍼도 신고 있었고 작업이라 해 봤자 노트북으로 중편소설의 결말을 다듬는 게 전부였다.
최석주가 여짓여짓하며 항변할 말을 찾고 있는데 관리사무소 직원은 그럼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인터폰을 끊어 버렸다. 최석주의 굼뜬 언어 습관도 문제였으나 일이 답답하게 매조지어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정신과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최석주는 근거리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원인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자학적 망상장애를 앓고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었다.
나는 러그를 깐 서재에서 노트북으로 조용히 타이핑을 했을 뿐이지만 아래층 사람에겐 그 소리가 얼마든지 증폭되어 들렸을 수도 있다. 왜냐면 나는…… 이형의 세계를 열어젖히는 능력을 타고 났으니까. 그 세계에서 기어 나온 무언가가 일을 꾸몄을 수도 있다!
이태 전에 예술인 심리상담 프로그램에서 만난 정신과 의사는 이형의 세계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작가들 사이에 흔히 나타나는 망상장애일 뿐이며, 그게 실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고 했다. 그날 최석주는 의사 놈의 주둥이에 주먹을 꽂아 버리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망상이라니! 실재가 아니라니! 당연히 상담은 2회 만에 종료되었고 최석주는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 때문에 도시 하나가 초토화 되는 재난소설을 쓰며 분을 풀었다.
층간소음 항의는 또 다시 이형의 세계가 열렸다는 징후였다.
최석주는 노트북 밑에다 담요와 테이블 매트를 이중으로 깔았다. 남한테 해를 끼치느니 목에 칼을 꽂고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는 게 최석주 작가의 평소 신념이었다. 아래층에 누가 사는지는 몰라도 소음으로 고통받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점심 저녁을 내리 굶은 터라 허기가 졌으나 가스 불을 켜거나 렌지를 돌리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보다 큰 소음을 내는 동작들은 금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최석주 작가는 식탁 가장자리에 두세 달째 방치되어 있던 두유를 집어 들었다. 지난여름 언젠가 중앙공원에 앉아 있다가 웬 어린아이한테 받은 것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에 우산도 없이 앉아 있는 꼴이 노숙자 같았는지 아이가 학원 가방에서 두유를 꺼내어 쥐어 주었더랬다.
두유팩에 붙어 있는 빨대를 조심스레 뜯어낸 다음 비닐포장을 벗겨내고 은박의 빨대구멍에 꽂았다.
톡!
소리가 유난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1분도 못 되어 인터폰이 울렸다.
“방망이 같은 걸 바닥에 내리꽂는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빨대 꽂는 소리가 어쩌다가 방망이 소리로 둔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시시비비를 따질 마음은 없었다.
“아, 네. 조심하겠습니다.”
최석주 작가는 두유를 들고 침대 위로 올라가서 이불을 뒤집어썼다. 비리고 들큼한 두유를 조심스레 입으로 빨아들인 다음 최대한 소리를 죽여 가며 삼켰다. 주린 뱃속을 달래기에는 아쉬운 메뉴와 양이었지만 느낌상 오늘의 마지막 식사인 듯하여 아껴 먹었다. 하지만 두유가 밑바닥에 깔린 줄 모르고 빨아들인 마지막 모금에서 사달이 났다. 후루룩 하는 빨대소리가 천둥처럼 이불 속에 울려 퍼졌고 관리사무소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혹시 청소기 돌리셨습니까? 모터 소리가 난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밤 9시 이후로는 자제 부탁드립니다.”
이번에는 최석주 작가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숨은 쉬고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저도 인터폰 울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