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인 학생은 세상일에 초연해지려고 별의 별 방법을 다 동원했다.
고막이 얼얼해질 정도로 이어폰 볼륨을 높이고, 마스크와 야구모자로 최대한 시야도 좁혀 보았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 계정을 파서 시답잖은 사진들을 올리고, 오가며 마주치는 계정들마다 친구신청을 하고 하트도 누르고 다녔다. 요 며칠은 남들처럼 한류스타 아이돌에 정신을 팔아보려고도 했고 휴대폰 게임도 몇 개 다운받아서 해 보았다.
하지만 다 허사였고, 한세인 학생은 여타한 세상사에 두루 연루되며 낙석동 골목을 땀나게 뛰어다녀야 했다. 마지막으로 한세인 학생은 인류의 집단지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단골 PC방.
한세인 학생은 컴퓨터 구글창에 간절한 염원을 담아 초성과 중성과 종성을 하나하나 조합했다.
한눈파는 법. 세상과 담쌓고 지내는 법. 딴 생각 오지게 하는 법.
하지만 집단지성이 물어다 주는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유머 게시판의 글이나 일면식도 없는 유튜버들의 저급한 영상들만 나열되어 있었던 것이다.
“에이씨, 인류 망해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옆옆 자리에 앉은 대머리 중년남자가 뜨악한 얼굴로 한세인 학생을 올려다보았다.
“왜요? 제가 뭐 진짜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온 외계 종족이라도 될까 봐서요?”
“그럴…… 리가요.”
남자는 이내 자기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고 한세인 학생은 PC방을 빠져나왔다.
평일 점심시간에 학교 생활복 차림으로 PC방을 출입하고 동네 육개장 집에서 점심을 때운다고 해서 한세인 학생이 학교생활에 뜻이 없다고 넘겨짚어서는 안 된다. 사실 한세인 학생은 누구보다도 학교에 가고 싶은 사람이었다.
이 사태를 초래한 원인은 한세인 학생도 알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에 한세인 어린이가 첫단추를 옴팡 잘못 끼운 탓이었다.
당시 한세인 어린이는 낙석초등학교의 신입생 중 하나였다. 초1의 나날은 하루하루 얼마나 스펙터클했던가! 아이들이 서로의 머리에 급식우유를 들이붓고 싸우는 것도 흥미진진했고, 수업시간에 앞니가 쑥 빠져서 죽을병에 걸린 것처럼 울어대는 친구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해 늦은 봄날, 교문 주변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는 학원 관계자들이 유독 많았던 어느 날, 한세인 어린이는 수학학원에서 나눠준 포스트잇과 논술학원에서 나눠준 볼펜을 들고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따라 엄마는 차가 밀린다며 늦어지고 있었고, 한세인 어린이는 무료한 나머지 교문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1학년 A군이 신발주머니로 동급생 B군을 툭툭 치는 장면을 목격하고야 말았다.
근거리에 서있는 어른들만도 좋이 수십 명은 될 텐데, 누구하나 A군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네들 눈에는 그만그만하고 귀여운 초1들끼리 장난쯤으로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B군의 주눅든 얼굴은 하늘이 두 쪽 나도 그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A군의 신발주머니는 욕설이나 주먹질, 침덩어리로 대체되어도 무방한 성질의 것이었다. 한세인 어린이는 A군을 찬찬히 뜯어보며, 초1 특유의 상상력으로 A군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신발주머니로 친구를 때리던 초1 A군은 자습서 모서리로 친구를 폭행하는 중1이 되었다가,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피떡이 질 때까지 패는 아저씨가 되었다가 마침내 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마가 되어, 단두대에서 뎅캉! 목이 잘려나갈 터였다.
“윽! 징그러!”
한세인 어린이는 제 발치에 A군의 잘린 목이 굴러다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소스라치다가 문득, 삶의 단순한 원리에 도달하게 되었다.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는 것보다야 신발주머니 단계에서 저 못된 짓을 못하게 만드는 게 낫지 않겠는가. 누군가 강의 발원지에 방대한 양의 독을 풀었다면 강폭이 좁은 상류에서 틀어막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마침 한세인 어린이의 손에는 포스트잇과 볼펜이 있었다.
이윽고 맥락 없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포스트잇에다 A군의 폭력을 저지할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훗날 단두대나 교수대 혹은 전기의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중년의 A씨도 사라질 것이다!
불가항력적이고도 신성한 힘이 한세인 어린이의 손을 포스트잇으로 밀어붙였다. 빨리 그리라고! 그림이라면 자신 있잖니, 아가, 어서!
하지만 한세인 어린이는 저항했다.
B가 문제였다.
B로 말할 것 같으면 평소 한세인 어린이의 머리를 잡아당기고, 사물함에 반쯤 먹다 남은 우유 곽을 넣어놓고, 공책에 낙서를 갈기는 등 어른들 눈에는 ‘어린애들이 할 법한 자잘한 장난’으로 분류되지만 동갑내기 어린이들에게는 ‘인생과 인류를 송두리째 저주하게 만들 만큼 심각한 짓’을 일삼는 아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한세인 어린이를 고통스럽게 했던 건 일명 ‘떡볶이 욕’이었다.
“야, 너네 엄마 아빠 이스트돔에서 떡볶이 판다며? 그래서 너는 만날 손님들이 남긴 떡볶이만 먹고 산다며? 침 뱉은 것도 먹어 봤냐?”
상황이 다를 뿐 B군에게도 죄가 있었던 것이다.
볼펜심은 진즉 포스트잇 위에 놓였으나 볼펜을 쥔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힘은 그림을 그리라고 부추겼고, 한세인 어린이는 B를 구하는 게 무슨 의미냐고 버텼다.
그러는 사이에 A의 폭력은 강도가 높아졌다. 이제는 신발주머니가 아니라 풋살화를 신은 발끝으로 B의 발등과 정강이를 찍고 있었다. 둘은 같은 축구교실 멤버로 학원차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영특한 한세인 어린이는 지금 A를 저지하지 않으면 폭력이 축구교실에서도 이어지리라는 걸 알아차렸다.
왜 하필 B야. 짜증나게!
한세인이 어린이는 한숨을 폭 내뱉고는 포스트잍에다 그림을 그렸다.
A의 머리에 쇠공이 달린 머리띠를 씌운 것이었다. A가 다른 사람을 고의로 한 대씩 칠 때마다 쇠공이 A의 머리를 두드리게 돼 있는 장치였다. 그림이 완성되자, A는 B를 툭 차고 제 뒤통수를 만지작거리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발차기와 머리 통증의 리듬을 이해하고는 슬쩍 B와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세인 학생은 그때 B를 도운 일을 두고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첫 단추’는 따로 있었다.
그날, A와 B가 축구교실 학원차를 타고 떠난 뒤, 한세인 어린이는 제 그림을 내려다보며 자기가 해낸 일을 정의하려 했다. 적확한 표현을 찾아 머릿속을 뒤적이던 한세인 어린이는 평소 엄마가 막내 외삼촌에게 성질을 낼 때마다 사용하던 단어를 찾아내었고, 마침내 그 복합명사를 빌어 힘과 그림과 B를 아우르는 개념정의에 도달하였는데…….
“쳇! 이건 진짜 인생낭비지 뭐야.”
그랬다.
한세인 학생을 불가항력적인 수면상태로 몰아간 ‘첫 단추’는 바로 그 개념정의였다.
한세인 어린이는 자신을 찾아온 힘과 자신의 재능이 해낸 일을 ‘인생낭비’라 판단했고, 힘은 한세인 어린이의 개념정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날 한세인 어린이는 집에 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잠은 한세인 어린이가 인생을 낭비했다는 증표였다.
그날 이후로도 그림으로 누군가를 위기에서 구해준 뒤에는 개념정의에 걸맞은 잠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