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석고 교사 동한아가 그 괴담을 처음 접한 건 어제 아침이었다.
출근길에 학교 앞 편의점에서 커피를 고르다가 동네 중학생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찮게 들은 것이었다. 낙석고 체육복 차림의 귀신이 샛강 가에 앉아 있다가 해가 뜨면 학교에 간다는, 괴담 치고는 다소 싱거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동한아는 낙석고 체육복과 샛강이라는 화소에 주목했다.
본래 괴담이란 현실의 변형태인 경우가 잦았다. 하여 동한아는 샛강 괴담도 실제 낙석고 아이들에게서 유래한 소문일 거라고 결론지었다. 놀기 좋아하는 녀석들 몇이 강가에서 밤을 지새우고 곧장 학교로 온 게 틀림없었다. 패잔병 같은 몰골로 등교해서 1교시부터 내처 잠만 자는 녀석들 중에 괴담의 주인공이 있으리라.
커피를 사서 학교에 도착한 동한아는 샛강 괴담을 금세 잊고 말았다. 이번 학기 내내 아이들 등교 지도를 맡은 터여서, 얼추 9시까지는 다른 데 신경쓸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업무 자체는 단순했다. 1층 중앙현관에 설치된 얼굴 인식 열화상 카메라 옆에 서서 아이들이 제대로 체온을 재는지만 체크하면 되었다. 문제는 카메라만 보면 무작정 덤비고 보는, 그 5퍼센트의 산만한 녀석들이었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 보이는 애들은 차라리 귀여운 축이었다. 뒤에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거나 말거나 수십 가지 표정을 지어보이고서야 물러나는 녀석, 눈을 부라리며 카메라 속 자신과 셀프 대거리를 하는 녀석, 가뜩이나 지지대가 부실한 열화상 카메라를 붙잡고 흔들어대는 녀석, 그놈들로부터 중앙현관의 질서를 지켜내는 게 동한아의 아침 업무였다. 결국 중앙현관에서 등교 지도를 하라는 교장의 지시는 무려 180만 원에 구입했다는 열화상 카메라의 안위를 책임지라는 뜻이었다.
오늘도 동한아는 열화상 카메라를 수호하기 위해 새벽같이 눈을 떴다.
잠도 안 깬 얼굴에다 비비크림을 바르고 머리는 급한 대로 말아올려서 프렌치 집게 핀으로 고정했다. 어제와 다름없이 커피라도 사 마시려고 학교 앞 편의점으로 걸음을 재촉하는데 등산복 차림 주민 서너 명이 이야기를 흘리며 지나갔다.
“벌써 며칠째야? 걔네 부모는 애가 강가에서 밤을 샌다는 걸 알긴 할까?”
“부모를 뭐 하러 찾아? 밤새 그러고 있는 애가 부모랑 사이가 멀쩡할 리가 없잖아.”
“옷도 늘상 체육복이던데, 안 됐어.”
강가, 체육복…….
그건 어제 아침에 우연찮게 접한 괴담의 화소들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결은 아예 딴판이었다. 동한아는 등산복 차림 주민들을 좇아가서 이야기 속 아이가 지금도 강가에 있는지 물었다.
“그럴걸요. 여덟 시 반까지는 보통 그대로 있다더라고.”
동한아는 열화상 카메라와 샛강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다가 동네 뒷길로 이어지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약자 한정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교장이 길길이 날뛸 게 뻔했지만 상관없었다. 교장에게 가공할 분노 에너지가 있다면 동한아에겐 첫 발령을 받은 신규교사 특유의 열정과 호기심이 있었다.
그랬다. 동한아는 올초에 낙석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은 신출내기 교사였다.
물론 청소년들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는 채 백 일도 걸리지 않았다. 놈들은 의리라곤 없었다. 아무리 애정을 쏟아부어도 헌신적인 교사보다는 속칭 ‘인싸력 높은’ 선생들을 더 좋아했다. 쉬는 시간에 급한 화장실 용무도 참고 복도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곤 하였는데, 그때도 녀석들은 눈은 지나가는 체육선생이나 사회선생을 좇곤 했다. 체육선생은 트레이닝복과 명품을 매칭하는 패션센스가 남달랐고, 사회선생은 희고 선이 가는 얼굴이 매력적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동한아는 두 사람의 독보적인 인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납득할 만한 답을 알려준 건 언젠가 진로상담을 해 주었던 여자아이였다. 녀석은 동한아가 사회과목 선생이라는 걸 감안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샘, 천부인권설만 아시고 천부인기설은 모르세요? 사람의 인기도 하늘이 내려주는 거예요.”
인기를 얻으려거든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날 이후로 동한아는 인기 교사가 되겠다는 꿈은 내려놓았다. 하지만 신규교사의 패기마저 꺾인 건 아니었다. 만에 하나 가정폭력으로 집밖에 내몰린 학생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어야 마땅했다.
낙석초등학교 뒷길을 따라가다 저류지를 지나자 샛강이 나왔다.
8시 20분.
그 아이는 맞은편 샛강 가의 등받이 없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체육복 줄무늬 색깔로 보아 1학년 아이였다. 다행히 동한아는 1학년 통합사회 과목을 맡고 있는 터라 잘하면 아는 얼굴일지도 몰랐다. 나무 계단을 따라 샛강 변으로 내려간 뒤 다시 징검다리를 건너 아이에게로 갔다. 동한아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붙였다.
“안녕. 여기서 뭐해?”
아이는 미동조차 없었다.
마스크에 가려진 작은 얼굴도 낯설었다. 어떻게든 학생들의 얼굴 정도는 기억해두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대면수업 자체가 적고, 가정학습으로 등교를 대체하는 아이들도 많다 보니 이렇게 얼굴을 모르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 알지? 통합사회 샘. 그런데 계속 여기 있을 거니?”
재차 말을 걸자 아이는 동한아를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햇볕을 더 쪼이다가 출발할 거예요.”
그러고는 두 손을 허공으로 돋우었다. 바싹 야윈 데다 여기저기 살갗이 벗겨지고 검붉은 얼룩이 있는 손이었다. 어쩌다 손을 다쳤느냐고 동한아가 물으려는 순간, 햇살 속에서 아이의 손이 조금씩 희어지고 손가락에도 차차 살이 올랐다. 동한아는 눈을 두어 번 끔뻑거리고는 아이의 손을 다시 보았다.
원래부터 작고 희고 통통했던 것처럼 멀쩡한 손이었다.
“먼저 가세요, 샘. 저는 더 있다가 갈래요.”
동한아는 아이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보다가 자리를 떴다.
동한아는 8시 35분쯤 학교에 도착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자율적으로 체온을 재고 있었다. 누군가 체온계를 제때 비치해 둔 것이었다. 문제는 그 누군가가 교장이라는 점이었다. 교장은 무책임한 교사가 학생들과 교육계에 끼치는 악영향과 코로나 시대에 어른들이 갖춰야 할 덕목들에 대해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한아는 샛강에서의 일을 곱씹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손은 뭐였을까. 헛것을 본 걸까. 만성 수면부족 상태니까 그럴 수도 있지.
어쨌거나 얼굴을 봐뒀으니 아이가 등교하면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아이는 9시가 다 되어서야 나타났다.
지각을 면하려고 뛰어 들어오는 녀석들과 달리 아이는 침착하고 느릿했다. 동한아는 아이가 체온을 재고 나면 눈인사라도 건넬 참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동한아 곁을 바특하게 지나쳐 갈 때까지 열화상 카메라가 반응하지 않았다. ‘정상 체온입니다’라는 그 지긋지긋한 안내음이 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저기, 얘!”
동한아가 아이를 부르는데 1학년 학생부장이 손사래를 치며 다가왔다.
“그냥 보내. 딱 봐도 멀쩡한데 뭘. 자가진단 다 하고 오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동 선생, 1교시 수업 있는 날이라며. 얼른 수업이나 들어가. 카메라는 내가 치울 테니까.”
아이는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