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택신도(家宅神道)

  • 장르: 호러
  • 평점×71 | 분량: 67매 | 성향:
  • 소개: 친구가 일본에 갔다온 뒤 이상해졌다. 더보기

가택신도(家宅神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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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가 축축했다.

농도 조절에 실패한 묽은 먹물을 종이에 마구 흩뿌려놓은 것처럼 하늘이 엷은 회색으로 꿀렁거렸다. 비가 올 것 같진 않았지만, 습도가 높아서 햇빛이 없는데도 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그렇게 흐른 땀도 좀처럼 증발하지도 않아서, 피부가 물로 코팅된 것처럼 번들거렸다. (습도 높은 날씨의 가장 싫은 점이랄까) 심히 불쾌한 감각이었다. 나는 지금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유혁이네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저희 오빠 좀 한 번 만나봐주세요. 저는 무서워서 못 가겠어요.”

어제 오후, 유혁이의 여동생, 유정이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다. 유혁이와 유정이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유혁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대학에 가지 않고 취직하고, 나는 대학에 진학해 과제와 팀플에 치여 살고, 유정이는 재수를 결심하고 기숙학원에 들어가는 바람에, 그간 왕래도 없이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당시만 해도 서로 평생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이가 소원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모래로 쌓은 성이 ‘내가 좀 바빠서’라는 이름의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할까.

그렇게 대학 졸업을 앞둔 4학년, 군대를 갔다온 것과 휴학까지 합치면 대학 입학 후 거의 6년이나 지나서, 갑자기 유정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이다.

“오빠가 일본 여행을 갔다 온 뒤로 이상해요.”

아, 그래, 얘 일본 갔다 왔었지. 연락은 거의 안 했지만, 페이스북으로 친구 추가는 되어 있어서, 자기 전에 별 생각 없이 들어가보는 페이스북에서 유혁이의 근황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가장 최근에 올렸던 사진은 확실히 일본 여행 사진이었다. 조금 특이한 게 있다면, 일본음식이나 전국시대의 성(城) 같은 걸 촬영한 사진이 아니라, 줄기차게 신사(神社)만 촬영해 올렸다는 거? 특히 그… 신사나 절 앞에 세워두는 开 모양의 붉은 색 문을 찍은 사진이 많았다. (그게 ‘토리이(鳥居)’라고 불린다는 건 다음날 인터넷을 찾아보고서야 알았다)

“어떻게 이상한데?”

“그게…”

유정이는 말하기 곤란하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직접 봐야 해요.”

이 말을 듣고 수상하게 여겼다면 내가 너무 인정머리 없는 것일까? 아무리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던 사이라고 해도, 6년만에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밑도 끝도 없이 오빠가 이상해졌는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으니 꼭 와달라고 하다니… 갔더니 갑자기 옛정을 봐서라도 보증을 서달라거나 그러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다단계? 한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두고 이런 의심을 하는 내가 나쁜 걸까? 게다가 하필이면 왜 나한테 연락한 걸까?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다른 사람한테 연락해봐. 내가 요즘 이런 저런 일로 정신이 없어서…”

“제발요, 오빠, 물리학과잖아요, 제발… 우리 오빠 좀 설득해주세요.”

물리학과… 그게 중요한 거였나? 근데 그것만으로는 정보가 부족했다. 심리상담사도 아니고, 물리학과가 반드시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뭘까?

‘아, 유사과학인가?’

다소 황당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말이 되는 얘기였다. 지구 평평론을 믿는 것 가지고 이렇게 절박하게 도움을 청하지는 않을 테고, 가족이 고통을 호소할 만한 유사과학이 뭐가 있을까? 자화수? 육각수? 그거라면 너도 마셔보라며 강매할 수도 있으려나?

“오빠가 이상한 거에 빠져있어요.”

유정이가 뒤이어 덧붙인 말을 듣자 적어도 유사과학이거나… 아니면 이상한 종교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유혁이가 황당무계한 걸 믿고 있고, 그걸 나한테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서 논파해 정신 차리게 해달라는 것 같은데…

“사이비 종교야, 유사과학이야?”

내가 묻자 유정이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신앙이요.”

나름대로 단어를 골라서 대답한 것이겠지만, 그건 오히려 나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 사이비 종교면 사이비 종교지, 신앙이라고 굳이 말할 건 뭐람? 어색한 침묵. 나는 귓가에 댄 핸드폰을 땀에 찬 손가락으로 몇 번 만지작거린 후 대답했다.

“알았어, 내일 한 번 가볼게. 지금 걔, 그러니까 너네 오빠 어디 살아?”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