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윤심덕, <死(사)의 讚美(찬미)>
석남이 툇마루에서 뛰어내렸다. 기쁜 소식이라도 전해 들은 것처럼 두 손을 마주 쥐고는 꽃담 근처로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한바탕 설거지를 해치운 뒤인지 치마에는 군데군데 물방울이 튀어 있고 땋은 머리는 나슨하게 풀려 있었다.
때는 6월, 바느질감을 끌어안고 앉은 채로 든 낮잠 속으로 빗소리가 섞여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장마철이었다.
“분이오. 분 사시오. 어서 나와 구경들 해 보시오.”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석남이 세게 한번 발을 굴렀다. 방물장수의 외침이 골목 안쪽으로 멀어졌다.
“박가분이오, 박가분. 질 좋은 골무랑 성냥, 머릿기름도 있다오.”
석남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행랑채 앞으로 걸어가 툇마루에 냉큼 도로 걸터앉았다. 앞치마에 손바닥을 문대며 대문 쪽을 쏘아보았다. 그래서 대관절 언제 온다는 거야? 그놈의 도련님인지 뭔지 나타나기만 해 봐라.
늦은 오후, 그러나 저녁상을 차리기에는 다소 이른 무렵. 북촌 끄트머리 골목은 한가로웠다. 솔직히 말하면 호텔 다정多情은 그다지 인기 있는 숙소는 아니었다. 이름만 호텔이다뿐 손탁호텔이라든가 조선호텔이라든가 하는 곳들과는 달랐다. 지난 몇 년 동안 경성에는 신식 호텔은 물론이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여관이 우후죽순으로 늘었다.
기와집을 개조해 만든 이 호텔은 대청에 유리문을 다는가 하면 전기등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무척 예스러웠다. 구들장에 불을 땠고 식사 역시 소반에 차려 올렸다. 그래도 방들은 널찍널찍했으며 보슬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마루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제법 운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