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상사가 이상하다. 누군가는 이 말이 동의어 반복이라 할 수도 있다. 본디 직장상사는 이상한 존재인 것을 굳이 또 말 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럼에도 나는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요즘 내 직장상사는 정말 이상하다.
나는 중소 IT 기업에서 일하는 UX/UI 디자이너다. 이 회사로 이직한지는 일년 반 쯤 됐다. 이전에는 금융권에서 일하다가 보수적인 분위기에 공황장애가 생기기 직전, IT 기업으로 이직을 준비했다.
IT, 혁신, 개방! 평등한 문화와 자유분방한 토론, 능력에 따른 스톡옵션과 귀여운 대표 캐릭터! 이런 것들이 IT 기업을 대표하는 이미지였으니까. 특히 TV에서 흔히 나오는, 영어 닉네임을 쓰고, 회사에서 보드를 타고 다니던 그 모습에 꽂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TV에서 나온 그 회사들은 몰라도 여기는 아니었다. 나를 반긴 것은 평등한 야근과 자유분방한 업무체계, 능력에 따른 사내정치와 귀여운 월급 뿐이었으니까.
많고 많은 싫은 점들 중에서도 가장 나를 괴롭게 한 것은 바로, 나의 직장상사 한팀장이었다. 한팀장은 분명 디자인팀 팀장인데도, 디자인을 못 했다. 나는 이 회사에 오고 처음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여도 일러스트레이터는 고사하고 포토샵도 다루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차라리 장미가족의 태그교실 들락날락한 초등학교 때의 내가 더 포토샵을 잘 다룰 것 같았다.
그래도 팀장이니 관리만 잘하면 된다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한팀장은 그마저도 아니었다. 관리는 무슨, 온통 간섭 뿐이었으니까. 나 안보이니까 폰트 크기 좀 키워라, 어두운 색은 복 나가니까 밝은 색으로 바꿔라, 고객층이 여자니까 구석에 꽃 사진 좀 넣어라, 아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내 말대로 해라.
이 정도는 팀장이 내뱉는 어이 없는 간섭질의 백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도통 납득이 안돼서, 죄송하지만 말씀하신 수정 방향에 대한 근거를 말씀해주실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항상 ‘그냥’이었다. 어떠한 이론이나 테스트 따위도 없이, 그냥.
그렇게 몇 개월을 억울함에 눈물을 참으며 디자인을 구리게 만들어가기를 몇 개월, 나는 이 회사를 나보다 오래 다닌 후임에게 충격적인 조언을 듣게 된다.
“그거 안 고쳐가도 돼요. 어차피 한팀장 몰라요.”
그랬다. 한팀장의 지능은 닭 수준이이어서 자기가 어떤 부분을 고치라고 말했는지 기억도 하지 못했다. 몇 시간을 끙끙대는 척 하다 똑같은 디자인을 그대로 보여주어도,
“그래, 내가 진작 이렇게 고치라 했잖아!”
라며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은 자신의 미감에 감탄하곤 했다.
이 외에도 본인 업무 나에게 떠맡기기, 잘되면 공적 가로채기, 업무 시간에 일 안하고 안마의자에서 잠 퍼질러 자기 등 그의 행적은 이어졌고, 나는 스트레스에 머리털이 빠질 지경이 되었다.
그러다 보름 전, 탈모에 좋다는 샴푸를 수소문 할 때 쯤. 한팀장이 변했다. 마치 개과천선이라도 한 것처럼.
우선 짜증나는 지적질이 사라졌다. 한팀장은 더 이상 팀의 디자이너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종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팀원들의 디자인을 잘 수용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항상 멈추지 않고 떠들어대던 입도 잠잠해졌다. 원래 한팀장은 안마의자에서 낮잠 잘 때를 빼고는 항상 자기 자랑이나 훈계를 늘어놓았다.
그러나 변한 한팀장은 침묵하고, 대신 우리의 말을 들었다. 점심을 먹을 때, 일을 할 때, 회식을 할 때에도 묵묵히 팀원들의 대화를 듣고 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문제투성이 한팀장이 마음을 고쳐먹고 새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팀원들은 모두 이게 무슨 일이냐며, 한팀장이 달라졌다며 축제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홀로, 약간의 미심쩍음을 느꼈다.
원래 한팀장은 무능할지언정 회사 일에는 항상 지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렬이 안 맞고 한쪽 여백만 더 크고 휘황찬란한 배경화면 색상 때문에 글씨가 가려지는 개떡 같은 디자인을 보고도, 태양열 인형처럼 멍청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또한 한팀장의 침묵은 어쩌면 팀원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특히 사적인 이야기를. 우리가 지난 주말에 대해, 휴가 계획에 대해 대화하고 있으면 행동이 멈추고 슬쩍 이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내가 쳐다보면 황급히 고개를 돌리곤 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크게 문제 삼을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한팀장이 이전의 짜증나는 행동을 안한다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러다 일주일 쯤 지났을 때였을까, 한팀장과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일이 있었다. 타자마자 한팀장은 내게 말을 걸었고, 나는 최대한 친근한 척 하며 대답했다.
“김대리는 혼자 산댔나?”
“네! 원래는 혼자 살다 요즘엔 부모님과 살고 있습니다.”
“왜? 혼자 사는 게 더 좋지 않아?”
“그렇긴 한데, 갑자기 혼자 사는게 좀 무서워져서요.”
“허허, 김대리 은근 겁쟁이라니까.”
“하하하… 그런데 팀장님도 부모님 모시고 산다 하시지 않으셨어요?”
“아, 그렇지. 이 나이에 부모님이랑 사는 것도 쉬운 게 아닌 것 같아.”
“그쵸. 챙겨드릴 일도 많지 않아요?”
“그렇기도 하고. 이 나이에도 잔소리 듣는다니까~ 은근 피곤해.”
“어머니가요?”
“그렇지. 뭐, 장가 가라고 맨날 그러시지. 어제도 한소리 들었어.”
“아하하, 그러시구나.”
어색한 대화를 하다 보니 띵, 하고 엘레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곧 문이 열리고 한팀장이 먼저 내렸다. 나도 내리려 발을 내딛던 참,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올랐다.
한팀장 어머니, 돌아가시지 않았나?
분명 들었다. 이주임님이 장례식에도 참여하셨다고. 그런데, 어제, 어머니가 잔소리를?
당황하던 중,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말았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는 한팀장의 말을 되뇌여볼 뿐이었다.
이 일에 대한 의문이 차마 해결되지도 전, 나는 또 다른 사건을 목격하고 만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
과자를 몇 개 가져오려고 탕비실에 들어가려 했다. 예감이 좋지 않아 들여다보니 안에는 한팀장이 있었고, 나는 문발치에서 기다렸다. 탕비실 안을 훔쳐보며 한팀장이 언제 나갈지를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 탕비실 서랍 밑에서 작은 바퀴벌레가 사사삭, 하고 기어나왔다. 혐오스러움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문발치에 서있는 것을 한팀장에게 들키고 싶지도 않았고, 사실 한팀장의 반응이 조금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팀장은 벌레를 매우 싫어한다. 겁많은 나조차도 한팀장 때문에 억지로 벌레를 잡은 적이 있을 정도로.
바퀴벌레는 서랍을 기어 올라가 한팀장의 커피잔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 한팀장 뒤집어지겠네, 나는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상상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팀장은 벌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공포심에 얼어버렸나? 싶었지만 그런 표정으로 보기는 힘들었다.
갑자기 한팀장은 벌레 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벌레를 손 안에 가두었는지, 올려드는 것이 아닌가.
예상 밖의 전개에 넋을 잃고 쳐다보는 중,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팀장이 손을 입으로 가져가, ‘후룹’하고 들이마셔버린 것이다. 무엇을? 바퀴를.
확인사살이라도 하듯 그는 입을 움직였고, 번데기 씹히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토할 것 같아 입을 막았다. 그때, 한팀장이 고개를 이쪽으로 홱하니 돌렸다. 나는 황급히 문에서 멀어졌다. 서두른 걸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모니터 화면을 켜고 일하는 척을 했다.
곧 한팀장이 사무실에 돌아왔다. 그는 큰 목소리로 팀원들에게 물었다.
“혹시 방금 탕비실 온 사람 있나~?”
팀원들은 모두 자신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다행히도 내가 나갔다 온 것을 눈치챈 팀원은 없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고도, 나는 팀원들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적당히 이상한 행동이면 팀원들에게 얼마든지 말하며 뒷담화를 할텐데, 지금 이 상황은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마치 한팀장 본인이 아닌 것처럼.
답답함에 혼자 속앓이만 했다. 그러다 술자리를 가지고 들어온 날, 나는 결심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써보자고.
자주 가는 커뮤니티가 있었다. 세상의 온갖 기구하고도 흥미로운 사연이 올라오는 곳. 나는 그곳에 들어가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카테고리] 직장하소연
[제목] 갑자기 착해진 또라이 직장상사.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 중소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팀장은 정말 멍청합니다. 별명이 새대가리일 정도로요.
그런데 팀장이…….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상사의 문제행동과 최근의 기행을 나열해 적었다. 이후 5분 정도 휴대폰을 더 잡고 있다, 밀려들어오는 술기운에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 날, 숙취가 심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음에도 하루종일 속이 안 좋고 머리가 아파 밤이 되어서야 침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저녁으로 죽을 먹고 있을 때 문득, 어제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단 사실이 떠올랐다. 까마득히 있고 있었다. 나는 바로 커뮤니티의 어플리케이션을 켰다.
들어가자마자 알림 이모티콘에 떠 있는 숫자가 내 눈을 의심하게 했다. 56개? 클릭해보니 내 글에 달린 댓글알림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내 글이 투데이 베스트 2위에 올라가있단 것이었다. 바로 댓글창을 클릭해 빠르게 읽어내렸다.
초반 댓글은 자신의 직장상사에 대한 욕과, ‘사람이 바퀴벌레를 먹을 수 있다’ vs ‘못 먹는다’에 대한 핀트 나간 논쟁이 주를 이뤘다. 뭐야, 글을 읽긴 읽은 거야? 나는 현 네티즌들의 독해 수준에 실망하며 댓글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중간쯤, 엄청나게 추천수가 높은 장문의 댓글이 하나 있었다.
[savesun9]
거두절미하고, 글쓴 분이 처하신 상황은 매우 위험해보입니다.
아주 걱정이 될 정도로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원래 모습과는 다른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가 지나칠 때가, 아주 가끔 존재합니다.
심지어는 기존에는 상상치도 못하는 일을 하기도 하죠.
이때 높은 확률로 그 사람은 다른 존재에 씌였을 수 있습니다.
다른 존재라 하면… 악귀 같은 거죠.
사람을 갉아먹는 귀신.
그 사람 몸에 침투에 몸을 빼앗은 겁니다.
이 상황에서는 어쩌면, 악귀에 씌인 본인보다도 주변 사람들이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자신이 움직이고 살아남기 위해선 당사자를 죽일 수 없어요.
숙주같은 거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얼마든지 죽일 수 있습니다.
악귀가 노리는 것은 생명을 최대한 많이 먹어치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상사가 이상하게 변한 후로 글쓴 분과 다른 직원들의 사생활을 물어보거나 친한 척 하지는 않습니까?
혼자 살지는 않는지, 퇴근 할 때 집에 혼자 가지는 않는지 묻는 등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장 도망치세요.
당신과 주변 동료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도망치세요. 부탁입니다.
(추천수) 216
팔뚝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한팀장이 팀원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진 것, 나에게 혼자 사는지 물은 것이. 글에는 이 내용을 쓰지 않았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안 거지? 악귀? 악귀라고? 한팀장이 악귀에 씌여?
이후의 댓글들은 모두 이 장문 댓글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무섭다’, ‘소름돋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걱정된다는 내용과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는 댓글까지.
아니, 미쳤나, 아무리 그래도 회사를 어떻게 그만둬? 하지만 한팀장이 악귀에 씌였다고? 말도 안된다. 모두 거짓말이다. 오컬트 문화에 심취한 네티즌 중 하나가 우연히 상황을 맞춘 것 뿐이다. 모두 우연이다. 말이 안되잖아, 귀신 같은 거.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예전이었다면 정말 그렇게 믿었겠지만,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악귀가 정말 존재한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사람 머리를 쉽게 터뜨리던 괴물같은 힘과,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몸을 얼게 했던 공포스러운 기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 속이 어지럽던 그때, 알림 하나가 온 것을 느꼈다. 쪽지였다.
[savesun9]
글을 읽고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쪽지를 드립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무당을 하나 알고 있는데 혹시 도움이 필요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