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르: 호러
  • 평점×67 | 분량: 70매 | 성향:
  • 소개: 창밖에 귀신이 서 있다. 더보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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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 남자가 서 있다. 모르는 남자다. 베란다가 아니라 복도 쪽 창문이지만, 귀신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내 눈에만 보이니까. 남편은 전혀 보지 못한다. 처음 남자를 보고 겁에 질린 내가 “누구세요? 누구세요?” 소리 지르자 나를 끌어안고 달랬던 것이다. 괜찮다고. 아무도 없다고.

아무도 없긴 하지, 사람은. 저건 귀신이고.

나는 남편에게 귀신이 보인다고 말했다. 남편은 나에게 신경쇠약이라고 말했다. 환각일 거라고. 환각이라기엔 너무나 선명했다. 그래서 남자의 외양을 묘사해 주었다. 보통 키에 보통 체격, 회색과 검은색이 섞인 체크무늬 남방과 청바지를 입었으며, 얼굴에 점이 많다고.

남편은 내 눈에 남자가 보인다는 말은 믿었지만 귀신은 믿지 않았다. 그래서 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싶었다.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영험한 신부를 데려와 기도를 받거나.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실천할 돈이 없었다.

나는 남편을 시켜 귀신에게 소금을 뿌려 보기도 하고, 십자가를 들이대 보기도 했다. 소용없었다. 내 등쌀에 떠밀린 남편이 면전에서 기도문을 읊고 염불을 외워도 귀신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저 남자는 누구일까. 왜 저러고 있는 걸까. 왜 하필 우리 집일까. 이 아파트 단지에는 아홉 개 동이 있고, 우리 동에는 25층까지 있고, 각 층마다 12호까지 있는데. 우리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이 집이 어떤 집인데. 우리를 수렁에서 끌어올려 준 집이었다. 임대면 어때서. 휴먼시아에 사는 거지 휴거, 엘에이치에 사는 엘사, 알게 모르게 조롱 받고 차별 당해도 6평짜리 원룸보다는 백배 나았다. 두 사람 누우면 끝나는 원룸에서 거실 따로 부엌 따로, 방까지 있는 1.5룸 아파트로 이사 온 우리는 마냥 행복했다. 엘사가 자기만의 얼음성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 집은 우리의 작은 성이었다.

그런데 채 1년도 안 지나 이 사달이 났다. 나는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애꿎은 직원을 닦달했다.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우리 집에서 누구 죽은 사람 있죠.”
-무슨 말씀이세요. 신축인데.
“그럼 공사 중에 누가 죽었나요?”
-그것까진 저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아파트 시공사에도 전화를 걸어 같은 질문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똑같았다. 나는 귀신에 대해 아무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창문 밖에 귀신이 나타난 뒤로 창가쪽 벽에 점점이 까만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이 집에 점이 생기는 것처럼 보였다. 왠지 몰라도 귀신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방 창문 밖에 귀신이 서 있어도 남편은 꼬박꼬박 환기를 했다. 베란다 창문만 열면 안 되냐 묻자 곰팡이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공기가 통해야 한다나. 1년 넘게 취직을 못한 남편의 자격지심은 집안일에 대한 성심으로 나타났다. 나는 환기를 마칠 때까지 거실에 숨어 있다가 남편이 창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린 다음에야 방으로 돌아오곤 했다. 안 돌아올 순 없었다. 내 방은 작업실이었고, 먹고 살려면 작업을 해야 했으니까.

남편의 성실한 환기에도 불구하고 곰팡이는 점점 번져만 갔다. 남편은 결국 관리사무소에 클레임을 걸었다. 연락을 받고 온 직원이 창문 주위를 시커멓게 뒤덮은 곰팡이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장마철도 아닌데 왜 이래?”

왜 이러긴.

나는 활짝 열린 창문 밖에서 직원과 마주 보고 서 있는 귀신을 곁눈질하며 신경질적으로 코웃음 쳤다. 옆에서 남편이 인상을 쓰며 조용히 하라고 눈짓했다.

직원은 곰팡이가 생긴 게 단열 문제가 아니라며 환기를 안 한 우리 책임이라고 했다. 곰팡이 제거 작업을 해 줄 순 있지만 수리비가 청구될 거라고도. 그리고 다른 집에서는 곰팡이 관련 클레임이 전혀 없다는 말을 구태여 덧붙였다.

남편이 억울해 하며 환기는 꼬박꼬박 한다고 항의하자 직원은 고집스러운 태도로 환기를 24시간 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그러면서 노골적으로 빈정거렸다.

“이딴 임대 아파트 살면서 뭘 바래요?”

임대가 어때서. 나는 발작하듯 받아쳤다.

“이딴 임대 아파트에서 일하면서 돈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할 소리예요?”

직원이 살벌한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곰팡이가 아니라 나를 제거하고 싶은 눈치였다.

결국 남편이 나서서 직원을 돌려보냈다. 남편은 수리비 아까웠는데 잘 됐다, 저런 놈한테 맡겨 봤자 제대로 하지도 않았을 거라며 나를 달래고 직접 곰팡이를 제거했다.

그러나 하루도 가지 않았다. 창밖에 귀신이 눈 번히 뜨고 서 있는 까닭이었다. 귀신 붙은 창문 주위로 자꾸만 곰팡이가 피어났고 곰팡이 제거는 남편의 일과가 되었다.

나는 오렌지향이 머리 아프게 진동하는 방에서 암막 블라인드를 치고 일했다. 그러나 블라인드 뒤에 서 있을 귀신의 존재가 끔찍이 신경 쓰여 작업에 몰두할 수 없었다. 덕분에, 아니, 때문에, 요 며칠간 나의 작업은 지지부진했다. 아무래도 컴퓨터를 거실로 옮겨야겠다. 거실의 가구 배치를 바꿀 생각을 하며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왔더니…….

귀신의 머리가 창문을 뚫고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