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한때는 세상의 표준이던 “따르르릉” 벨소리.
이제는 카페 장식이나 추억 취급 받는 구식 전화기가, 어느 날부터 내 방 한가운데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받으면 들리는 건 침묵, 그리고 사람 흉내 같은 지지직거림. 처음엔 장난전화라고 생각했다.
신고하겠다고 소리치자, 거짓말처럼 잡음이 사라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마다 그 노이즈는 다시 돌아왔다. 마치 내 대신 화내고, 내 대신 숨을 쉬어주는 것처럼.
실직 통보, 이별 통보. 모든 게 끊겨버린 밤, 술에 취해 수화기 너머에 대고 “누구든 말 좀 해달라”고 매달리던 그때 마침내 들려온 한마디. “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전파에 찢겨 나간다. 그래서 우리는 ‘말’ 대신 버튼음을 택한다. 0과 1로 인사를 만들고, 숫자에 의미를 붙여 단어를 만들고, 마침내 서로의 문장을 읽어내기 위해 둘만의 코드와 알파벳을 발명한다.
지구의 방구석과 지구 밖 어딘가가, 단 열 개의 숫자로 이어진다. 이건 거대한 우주 전쟁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무너진 밤을 붙잡아 준 건, 첨단 기술이 아니라 낡은 수화기와 서툰 숫자 세 개였다.
1-2-3. 말이 닿지 않아도, 마음은 기어코 도착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가장 촌스럽고 가장 낭만적인 SF 러브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