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피를 마시면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대신 내가 사라진다고 했다.
이설은 편의점 컵라면을 먹었다. 맛은 없었다. 통증이 왔다. 그래도 끝까지 먹었다. 유리창 너머에서 그 장면을 본 남자가 있었다. 셰프 한강이었다.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 음식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먹는 사람의 표정이 아까워서.
이설은 변종 뱀파이어다. 피를 소화하지 못하는 몸. 오래 살아야 할 존재가 가장 먼저 죽어가고 있다. 남은 시간, 그는 버킷리스트를 적었다. 인간처럼 살다 가기로.
한강공원, 레스토랑, 비 오는 날의 골목 — 버킷리스트를 따라가다 보면 한강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이었다. 나중에는 아니었다. 이설은 한강 앞에서만 처음으로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말이 생겼다.
한강이 이설의 시한부를 알게 된 날, 그는 말했다.
‘나한테 마셔도 돼.’
이설은 거절했다.
‘나는 사람 안 먹어.’
이 소설은 ‘먹는다’는 행위가 생존과 사랑과 정체성을 동시에 뜻하는 이야기다. 피 대신 사랑을 먹고 떠나는 변종 뱀파이어의 마지막 인간 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