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내리는 빗물

이 작품은 독일의 한 도시, ‘지그문트 거리’의 카페에 앉아 과거와 현재를 회고하는 한 중년 남성의 깊은 내면을 다룬 소설입니다. 주인공은 운전기사이자 통역 가이드로 일하며 극도로 절제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외로움과 상실감 속에서 켜켜이 쌓인 기억들을 더듬어갑니다.

이야기는 그의 복잡한 인생 여정을 시간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들며 보여줍니다. 한국에서의 불우했던 유년 시절(할머니, 이모, 강아지 ‘복실이’, 그리고 부재했던 어머니의 기억), 독일에서의 첫 직장 생활에서 만난 ‘안나’와의 순수하고 행복했던 교감, 파국으로 치달았던 결혼 생활과 아내와의 이별, 그리고 새로운 직업인 운전기사로서 경험하는 유럽 곳곳의 풍경과 감정의 변화들이 교차합니다.

특히, 그는 재즈 뮤지션 고객들을 안내하던 중 우연히 방문한 한 유흥업소에서 ‘카타리나’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와의 기묘하고도 반복적인 만남을 이어갑니다. 소설의 핵심적인 반전은 그녀의 죽음 이후, 유언 집행 변호사를 통해 카타리나의 진짜 이름이 ‘박순임’이며, 그녀에게 ‘코제트’라는 딸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러납니다. 이는 주인공의 오랜 외로움과 상실감의 근원이자, 자신이 평생 찾아 헤매던 ‘그리움의 종착역’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하는 비극적인 진실로 이어집니다.

각 장마다 등장하는 음악들은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와 서사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비, 안개, 어둠, 빛과 같은 자연적 요소들은 그의 내면 풍경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