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비

소설 “11월의 비”는 폴란드 브로츠와프 외곽 산업단지의 한인 건설 노동자 식당을 배경으로, 전쟁 전 우크라이나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애틋하고 짧은 사랑을 그린 작품입니다.

화자인 ‘나’는 휴가 후 복귀한 식당의 주방 보조로 일하며, 낯선 땅에서 3개월짜리 비자에 의지해 살아가는 수많은 우크라이나 이주 노동자들의 덧없는 만남과 헤어짐을 무심하게 지켜봅니다. 그러던 중, 그는 혼란스러운 주방 안에서도 놀라운 침착함과 숙련됨, 그리고 따뜻한 이타심을 지닌 우크라이나 여성 ‘제니아’에게 자신도 모르게 깊이 매료됩니다.

제니아는 서른 후반의 나이, 발트해를 닮은 푸른 눈동자와 차분한 금발을 지녔으며,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아주 드물게 터뜨리는 미소는 햇살처럼 눈부십니다. ‘나’는 그녀의 외모뿐 아니라, 극한의 노동 환경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며 주변 사람들을 돕는 그녀의 존재 방식 그 자체에 깊은 존경과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서투른 고백 끝에, ‘나’는 제니아에게 우크라이나에 두고 온 스무 살 넘은 아들과 노모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누고, 소박한 행복을 꿈꿉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태로운 행복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파도 앞에 무참히 부서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