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뭉치의 돈

소설 “한 뭉치의 돈”은 고단한 현실에 짓눌린 한 가족의 위태로운 저녁 풍경을 섬세하고 사실적인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며칠 밤을 지새운 듯 퀭한 아버지, 악취와 함께 어둠 속에서 돌아와 개선장군처럼 돈뭉치를 내미는 오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나’. 이들의 침묵 속 식탁에는 희망과 절망, 안도와 불안이 위태롭게 공존합니다.

오빠가 들고 온 한 뭉치의 돈은 찰나의 풍요와 덧없는 위안을 약속하는 듯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 돈이 결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순환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잔인한 진실을 말입니다. 오빠의 귀환은 안도보다는 불길한 예감을 드리우고, 그의 존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드리워진 짙은 그늘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작품은 잿빛 현실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가족 구성원들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듭니다. 소통 부재 속의 동상이몽,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 그리고 세상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빼앗아 갈 것이라는 서늘한 예감까지.
“한 뭉치의 돈”은 우리 시대 평범한 이웃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씁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삶의 단면을 묵직한 울림과 함께 펼쳐 보입니다. 독자들은 주인공 ‘나’의 시선을 따라 위태로운 가족의 초상과 마주하며, 삶과 관계의 무게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