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비

폴란드 브로츠와프 외곽, 한인 건설 노동자들을 위한 밥집이라는 이국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소설 “11월의 비”는 낯선 땅에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삶과 그 속에서 피어난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그립니다.
화자인 ‘나’는 2년간 주방 보조로 일하며 수많은 이들의 등장과 퇴장에 무감각해졌지만, 우크라이나 출신 노동자 ‘제니아’에게서 특별한 끌림을 느낍니다. 그녀는 혼란스럽고 고된 주방 일 속에서도 놀라운 침착함과 이타심을 잃지 않는 인물입니다. 화자는 화려한 외모가 아닌,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을 지키며 묵묵히 살아가는 제니아의 삶의 태도와 내면의 강인함에 깊이 매료됩니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 그리고 고국에 가족을 둔 제니아의 현실적인 무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고 조심스럽게 관계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던 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비극이 닥쳐옵니다.
“11월의 비”는 이주 노동자들의 고단한 현실과 짧은 비자처럼 유한한 관계의 덧없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경과 현실의 벽을 넘어선 인간적인 교감과 사랑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또한, 전쟁이라는 거대한 비극이 평범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고 예기치 못한 이별을 가져오는지 가슴 아프게 보여줍니다.
차가운 11월의 비처럼 스며드는 슬픔과 애잔함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