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행성 충돌로 30일 후에 인류가 멸망합니다. 피할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그럼 남은 30일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극도의 혼란이 펼쳐지겠죠. 어쩌면 생각보다는 나을 지도 모릅니다. 도망갈 곳도 피할 방법도 없으니까요. 전쟁을 피해 도망갈 이유도 좀비 같은 괴물을 무서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남은 30일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문제만 남겠죠.
그래도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해 줄 사람들은 필요하겠죠. 난동을 진압하고 음식과 필수품을 확보해 배급하고.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기사단이라고 하죠.
종말이라는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신비한 현상에 기대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초자연적인 힘으로 종말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요. 그런 사람들을 이교도라고 하죠.
이런 종말의 상황에서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정된 종말을 받아들이고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차분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무리 작은 희망이라도 버리지 않고 종말을 극복해 보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시겠습니까.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 보죠. 종말을 벗어날 방법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규칙이 좀 잔인해요.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은 종말이 올 때까지 살아 남아야 하죠. 그럼 종말의 순간에 30일 전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기억을 온전히 유지한 채로요. 이걸 도약(leap)이라고 할까요.
종말이 다시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전의 종말에서 조건을 맞춘 사람은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죠. 실패한 사람은 기억을 잃고요. 기억을 잃고 종말을 다시 시작하는 나는 이전의 나와 같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이전의 나는 죽은 거나 다름 없고 기억을 잃은 나는 새로운 사람일까요. 어쨌거나 30일간의 기억을 송두리째 잃고 다시 시작한다는 건 소름끼치는 일일 거예요. 만일 내가 계속 도약에 성공해서 30일이 아니라 30년의 기억을 쌓아 왔다면? 그 기억을 모두 잃는 건 정말 죽음과 마찬가지겠죠.
모든 인류가 같이 도약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해요. 누군가를 죽여야 하니까요. 죽은 사람은 도약에 실패하겠죠. 최대한으로 잡아도 인류의 절반만이 도약할 수 있어요.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적겠죠.
그보다 생각해 보세요. 30일 동안 누군가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요.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세상. 그 세상은 어쩌면 종말보다 더한 지옥일 거예요. 도약은 종말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아니라 저주인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