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으로 이 소설을 끝까지 쓰게 해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 영광 찬송을 올립니다.
시작은 소설과 완전히 무관했습니다. 다른 데서 밝힌 바가 있듯, 4월부터 6월까지는 공모전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는 기간이었고, 그건 다시 말해 제 심장이 쫄깃해지는 기간이라 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렇기에 ‘즉흥적으로 써도 되는 장편’으로서 제2차 시린골 미궁 구출 작전의 후속작을 꼽은 것이죠. 시린골부터가 큰 고민 없이 썼던 단편이었고, 그래서 큰 고민 없이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퀄리티 측면에서 전혀 높일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 ‘불안감을 마주하지 않게 몰입하는 것’만 추구하기 위한 장편 연재였던 겁니다.
여기서 제가 간과한 게 두 가지가 있죠. 하나는 저는 언제 어디서나 제 자신에게 충실하다는 점이고, 둘째는 불안을 회피할 정도로 몰입한다는 것 자체가 퀄리티를 신경 쓰지 않는 것과 모순되는 지점이라는 것이죠. 그렇게까지 몰입하게 되면 당연히 퀄리티까지 신경 쓰게 되니까요.
네, 결과적으로 가볍게 쓰던 저는 남극의 이방인들만큼은 아니어도 정말 쓰면서 머리가 아팠네요. 기획과 집필을 동시에 하는 작가가 있다?! 뿌슝빠슝삐슝
덕분에 제 강점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저는 즉흥으로 써놓고 다 계획이었던 척하는 데 매우 능한 사람이라는 걸요. 그러니까 제가 입만 좀 싹 닫고 젠체하며 안경을 쓱 하고 올려주면 ‘훗, 저는 기획 없이 써도 능수능란하게 모든 떡밥과 구조, 구성을 맞춰 쓸 수 있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밝히는 것 자체가 저는 뻔뻔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거죠. 물론 모든 게 다 제로베이스였던 건 아닙니다. 초반부에 커다란 얼개와 핵심 반전만큼은 맞춰두고, 거기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디테일을 채워나가고, 채워나간 디테일들로부터 발견한 가능성들을 놓치지 않고 채용해 적극적으로 활용했죠.
그리고 그렇게 채워나간 초반부가 다시 베이스가 되어서 중반부를 이루는 토대가 되고, 중반부까지 가니 대략 결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감이 잡히더군요. 소설에는 관성이란 게 있으니까요. 관성이 가리키는 방향을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됩니다. 특히 이번엔 즉흥으로 쓰는 만큼 그 관성에 적극적으로 몸을 맡겼습니다.
……아예 몸을 맡기진 않고, 어느 정도 고삐를 쥐긴 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써선 소설이 중구난방해질 테니까요. 일관성이 하나둘 잡혀가고, 진상이라는 게 무에서부터 유로, 흐릿한 유령에서 뚜렷한 실체로 굳어질수록 무엇을 쓸지 확실해지는 만큼, 즉흥이 아닌 계획과 계산으로 채워야 하는 영역들이 많아졌죠.
그래서 정말 서술상의 디테일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건 관성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된 후반부가 골치 아팠습니다. 제가 미처 놓친 관성이 있다면 문제가 되니까요. 즉, 후반부는 과거의 제가 난장판을 벌여놓은 상황을 ‘의도된 것입니다’라고 둘러댈 수 있을 만한 통일성과 일관성, 유기적 연결성을 확보해야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었고…… 결과물을 보아하니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합니다.
어느 정도의 성공이란 뜻은, 아직 퇴고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말입죠. 퇴고하면서 초중반의 부산스러운 부분들을 쳐내야겠죠. 남극의 이방인들도 퇴고 못했는데 이대로 가다간 남은 1년은 장편 퇴고만 하다가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군요……
그보다 이로써 상반기에 장편만 두 편을 썼는데, 이 속도면 정말로 1년에 장편 초고를 4개나 뽑는 것도 가능하겠어요. 정말로 그런다면 1년 사이 제 몸과 마음은 피폐해지겠지만요. 아무튼 하반기는 공모전 준비하면서 단편 위주로 작업할 듯합니다. 틈틈이 장편도 퇴고하고요.
미궁부 유니버스 작품도 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쓴다면 단편으로 쓰겠죠. 미궁부 유니버스는 기본 골자가 야이샤가 훔친 미궁석 7개의 행방을 추적하는 이야기지만, 거기에 엮인 외전격 에피소드들을 다룰 수도 있으니까요. 이게 전부 시린골이 작가 프로젝트에 선정됐기 때문입니다. 하하하.
작품 자체를 좀 얘기하자면, 저는 작품을 쓸 때마다 늘 ‘기존에 시도하지 않은 무언가’를 하고자 합니다. 그게 소재가 되었든, 구조가 되었든, 인물이 되었든, 사건이 되었든, 뭐든 간에요. 중요한 건 ‘익숙하게 뽑아내듯 쓰지 말자’가 골자입니다. 네, 미궁 사변은 그런 점에서 자기 자신에게 위배되는 장편…일 뻔했으나!
미궁 사변이 결과적으로 압도적인 관성으로 저를 짓누르게 된 원인은 단순히 ‘익숙하게 뽑아내듯’ 썼기 때문이 아니라, 미궁 사변에도 기존에 시도하지 않은 무언가가 시도됐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에피소드의 교차 진행입니다.
프롤로그로 나온 미궁 출현이 미궁 수색 진행 중에 끼어들어 진행되는 걸 시작으로, 미궁 출현-미궁 수색이 서로 교차 진행이 되고, 중반부부턴 미궁 답파까지 끼어들어 총 세 개의 에피소드가 서로 교차 편집하듯 진행됩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서로의 끝과 끝이 이어진, 그러니까 각각 다른 시계열을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들입니다. 시간 순서로 따지자면 미궁 출현-미궁 수색-미궁 답파라고 할 수 있겠죠. 에피소드 제목만 보더라도 시간 순서로 읽을 수 있게끔 유도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 작품의 독해는 두 가지 방향이 존재합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교차 전개한 회차 순서를 따라가거나, 제 의도를 무시하고 시간 순서대로 에피소드를 따라가거나. 이렇게 말이죠.
전자는 제가 의도한 교차 진행의 연출들을 온전히 누릴 수 있고, 클라이막스가 끊기지 않고 쭉 이어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단점은 좀 정신이 없을 수 있다는 점? 시계열 파악이 힘드신 분들은 교차 진행이 짧은 호흡으로 진행되는 클라이막스 구간이 힘들게 다가올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후자는 반대로 시간 순서대로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기 쉽습니다. 그냥 쭉 따라 읽으면 출현-수색-답파로 끝나니까요. 그렇기에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쉽고, 직관적이죠. 하지만 연출상 교차 전개가 전제됐기 때문에 클라이막스가 상당히 끊겨서 진행되고, 각 에피소드의 클라이막스가 너무 빠르게 소모됩니다. 그러니까 뽕맛이 조금 덜할 수 있겠네요.
그 외에도 33화의 영 화 적 연 출이라거나 27화의 심문 장면 등, 각 장면 단위에서 쓰고 싶었던 연출들을 써먹은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서요. 여러모로 즉흥으로 쓴 만큼 비어있는 영역을 하고 싶은 시도로 채워넣었던 즐거운 글쓰기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즐거운 만큼이나 한계도 많이 느꼈고요. 여러가지로 제 문제점을 느낄 수 있었고, 한계 역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통스러웠지만, 만족스럽습니다. 제가 더 나아갈 지점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한계를 시험한다는 건 늘 기분이 좋은 일입니다. 두드리는 것에 그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저는 성장할 테니까요.
주제의식과 관련해서는 이것도 조금 즉흥적으로 구성되었기에 조금 번잡스러운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파고들 구석이 많은 소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투고할 땐 일일이 다 풀어서 설명해야겠지만, 독자님들에겐 즐거운 고민거리로 남겨두겠습니다. 음, 그럴 만한 가치와 재미,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발견하지 못한다고 해서 좌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숨겨놓는 건 어디까지나 ‘발견의 즐거움’을 위한 숨김이지, 모사꾼처럼 독자를 기만하고 우롱하기 위한 숨김은 아니니까요. 각자의 시선에서 발견할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소설이었으면 합니다.
쓰면서 인물들에게 정이 든 게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시린골 때 잡아둔 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파고들면서, 제 생각보다 많이 달라진 것 같거든요. 어디까지나 시린골이 오리지널이고 원본인데 말이죠. 이 역시 고민할 지점일 듯합니다. 어쩌면 이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고요.
제 신조가 인생사 새옹지마고, 필생사 새옹지마인데, 이 소설도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다행히 다시 나빠지기 전에 끝을 냈네요. 하하.
작품 얘기 안 하면 길게 안 쓸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근데 작품 얘기 했으면 아예 작품 해설을 따로 올렸어야 했을 거예요. 그러니 이게 맞습니다. 미궁 사변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펼쳐질 샤를이 아니고, 학살자도 아니고, 영웅도 아닌 지혜자의 길을 걷는 야이샤와 그의 친절한 마물 동료 영수림, 그리고 이젠 뭐라고 부를지도 모를 고약한 수수께끼의 이야기들도 기대해주시고 사랑해주세요.
언젠가 미궁부 유니버스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빠르게 다른 작품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럼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