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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이방인들

  • 장르: 호러 | 태그: #호러 #코즈믹호러 #남극 #칠레 #탐험
  • 평점×308 | 분량: 33회, 697매 | 성향:
  • 소개: 페드로는 반년 만에 배에 다시 오르게 됐다. 이 배는 남극으로 향할 것이다. 인류가 아직 모르는 미지의 땅, 낯선 대지로…… 더보기

완결 후기

3월 7일

이 소설을 끝까지 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영광 먼저 올려드립니다.

하하, 신의 사랑과 영광 따위 하나 없는 코즈믹호러에 다소 생소한 첫 문장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 힘과 능력으로만 썼다면 이 소설은 완결조차 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제 인연들에게도 감사 말씀 드립니다. 그리고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에게도요.

 

1. 최초의 무력감

중학교 3학년 때 일일 겁니다. 빨라도 중학교 2학년이었겠죠. 새벽에 아는 동생(한두 살 연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이 죽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단순한 투정이나 불만은 아니었죠. 그걸 직감한 저는 꼭두새벽에 밤새 핸드폰을 붙들며 그 친구를 안심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머리를 무진장 굴려야만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새벽 당시에 그 친구가 위험한 선택을 내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제 설득이 통했다거나 성공했다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그때 저는 처음으로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상대에게 닿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나는 그 친구에게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는 것. 물론 그때 저는 미숙했고, 그 친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어렸으며, 내뱉는 말들도 상투적이고 피상적이었었죠.

하지만 지금의 제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 무력감을 이겨내진 못했을 겁니다. 아니, 더 나빴겠죠. 저는 지금 그런 상투적이고 피상적이지만, 필사적이었던 그 말들조차 꺼내지 못할 테니까요. 그 친구와의 인연은 중학교 3학년 때 끝나버렸으니 어떻게 지내는지 모릅니다. 아마 어떻게든 살아 있으리라 생각해요. 헛된 기대일 수도 있고요.

무슨 짓을 해도 바뀌지 않는 결과에 대한 무력감. 아니, 무슨 짓을 해도 결과는 나와 무관하다는 감각에 가까울 겁니다. 인과관계는 없었죠. 저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 했는지 몰랐습니다. 사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네요.

 

2. 무력감의 재현

저의 코즈믹호러는 제가 느꼈던, 저의 가장 오래되고 강렬한 무력함의 감각을 되살리고 재현하는 데에 목적이 일부 있습니다. 음, 그러니까 제 기억을 다시 곱씹는 과정인 셈이죠. 무슨 짓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바꿀 수 없는 결과에 대해서.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건 단순히 그 결과가 예정되었거나 요지부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행해온 그 모든 것이 결과와 무관했기 때문이란 걸.

중간 지점과 32화를 제외한 페드로의 삶과 참 비슷하지 않나요?

그러면 왜 이게 코즈믹호러인가? 제가 단순히 메타픽션적 연출을 사용했기 때문에? 어떤 무시무시한 외신적 존재가 암시되어서? 이는 어느 정도의 답이 될 수 있겠네요. 아니면 더 단순하게 접근해서 “제가 코즈믹호러로 생각하고 썼기 때문에”라고 답해도 되겠죠. 어쩌면 이게 더 본질에 가까운 대답일 수 있겠고요.

하지만 실은 의외로 답이 간단하답니다. 그 이유는 첫줄에 암시가 되어있어요. 이 소설이 코즈믹호러인 이유는, 이 소설엔 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세계관에서 신을 빼버린 세계. 예정된 구원도, 성취도 없이 부패와 타락만이 남은 세계. 인간의 이성으로는 바벨탑 외에 쌓을 것이 없고, 그조차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져버릴 구제불능의 세계가 곧 저의 코즈믹호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해되지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고 해도 어쩔 수 없죠. 저는 크리스천이니까요.

즉, 코즈믹호러의 또다른 목적은 저의 무력감을 재현하는 걸 넘어서 신이 없는 세계, 더 구체적으로는 신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자기 힘과 능력과 이성과 지혜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 앞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을 표현해내는 것에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겨온 그 모든 것이 무지와 오만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얄팍하고 연약하기 짝이 없는 믿음만이 인간의 전부임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예, 결국 제 개인의 경험을 인간 전체, 더 나아가 우주 전체로 확장시켜 적용한 것이죠.

사실 이러한 시각은 크리스천답다고 할 순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종말론적 세계관을 차용했을 뿐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기독교의 종말론적 세계관만큼이나 또 하나의 베이스가 되는 건 바로 제 염세주의적 성향이니까요.

 

3. 신이 없는 세계

사실 이러한 세계를 담아낸 게 암흑색맹이 첫 작품은 아닙니다. 신이 없는 세계가 아닌, 신을 죽인 세계로선 데이먼이 있기도 하고요. 혹은 신을 부정하는 인물이 나오는 자취의 기록자들의 ‘솔매’ 같은 인물도 있습니다. 제 안의 염세주의적 파편들을 하나의 형태로 빚어낸 첫 작품이 암흑색맹인 것이죠.

암흑색맹에서 다뤄지는 건 오직 하나, 우주는 어둡다는 문장 하나입니다. ‘사실’이 아닌 ‘문장’이 이유는, 우주가 어둡단 사실을 체감하고 깨닫기엔 우린 너무나도 어리석고 연약하니까요. 그걸 다루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후 다뤄지는 암흑산장과 암흑열차는 어둠에 대한 고찰 시리즈로 2번에서 밝힌 제 코즈믹호러적 무력감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수단이 어둠일 뿐이죠.

그리고 이러한 저의 코즈믹호러적 세계관을 보다 그럴싸한 형태로 정립시킨 작품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부터 이미 메타픽션적인 성격이 조금 나오죠? 여기선 무력함이 직접적으로 다뤄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무력함을 느낄 수 있게끔 썼다고 생각합니다.(단순히 재미있게만 읽어도 장땡이긴 합니다)

코즈믹호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암흑색맹부터 남극의 이방인들까지. 저의 코즈믹호러적 세계관은 신은 없지만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무언가의 존재는 끊임없이 드러납니다. 기독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인간을 끊임없이 타락시키고 절망하게 하는 마귀 사탄이 되는 거겠고, 코즈믹호러의 시선에선 사악하고 무시무시한 외신이 되겠고, 조금 일반적이고 사회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면 이 무언가는 ‘타인’이 될 수도 있고, ‘사회’가 될 수도 있고, ‘국가’나 ‘세계’나, 기타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와 인지의 한계를 벗어난 모든 것이 될 수 있겠죠.

그리고 그것은 의지를 가지고 당연하다는 듯 당신의 이성과 합리를 파괴하고, 짓밟고, 올라설 겁니다. 어떤 지혜자도 그 앞에서 어리석어질 수밖에 없고, 어떤 철인도 그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죠. 일종의 이카루스의 날개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으면 믿을수록, 더욱 처절하게 몰락하고야 마는 것이죠.

메타픽션적인 연출은 Gryvaisht 때부터 쓰였고, 아마 앞으로 코즈믹호러를 쓸 때도 종종 쓰일 것입니다.(덧붙여 암흑시리즈, Gryvaisht과 남극의 이방인들은 모두 같은 외신적 존재를 근거로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메타픽션적 연출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이러한 연출은 결국 앞서 언급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무언가의 존재를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페드로는 그 연출을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끝을 정하려고 했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았죠.

정말이지 끝까지 무력하고 무능한 존재였던 겁니다. 그렇게 균형을 맞추며 살아왔을 텐데 말이죠.

 

4. 메시지?

이 소설은 어떠한 교훈도 없습니다. 적어도 세상은 염세주의적 시각을 교훈이라고 부르진 않으니까요. 이 소설을 쓰는 것 역시 어딘가에 투고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쓰는 동안 어디 투고할 생각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 첫째는 저의 가장 마지막 장편을 4년 전에 쓴 데이먼에서 새롭게 갱신하는 것이고(중간에 쓴 초자연현상처리반은 취미 창작이므로 제외), 둘째는 새로운 장편을 씀으로써 저의 역량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이며, 셋째는 일전에 브릿G 단편에서 장편으로 프로젝트에서 암흑색맹의 장편화 계획을 올렸다가 ‘개연성’과 ‘상업성’ 문제로 반려가 되었었는데, ‘장편 코즈믹호러’에 대한 오기가 생겨서 그것을 다루고자 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철저하게 제 내적 기준치만을 따졌고, 그렇게 따지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제 능력을 벗어난 소설이기도 해서, 제 내적 기준치조차 제대로 가늠하는 게 힘들더군요. 특히 페드로가 ‘당신’을 바라보는 건 기획 때부터 존재한 작품의 하이라이트였으면서도, 가장 큰 불안 요소였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어떻게든 늘어지기 전에 압축해야 한다’가 핵심 과제였다면, 이 연출 이후는 ‘어떻게든 허무하게 끝나기 전에 연출을 전달해야 한다’가 핵심 과제였습니다.

결국 목표로 했던 36화까지는 못 끌고 32화에서 끝내게 됐네요. 하지만 30화는 넘겼으니 적어도 제가 이 연출을 아예 감당하지도 못할 수준은 아니었던 걸로 생각합니다.

어쨌든 소설을 연재도 하고 세상에 드러낸 만큼 독자에게 가닿을 상(狀) 정도는 생각해야 했는데, 코즈믹호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부디 저의 코즈믹호러가 그들의 코즈믹호러에게도 부합하길 바라고, 코즈믹호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당황하고 찝찝해하길 바랍니다. 어딘가 으스스함(uncanny)을 느낀다면 더없이 좋고요.

염세주의자들의 진지한 주장들이 세상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한다면, 이정도의 반응만 해도 저는 충분히 성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5. 그 외

퇴고는 조만간 하겠지만, 퇴고 반영은 조금 늦을 수 있습니다. 단편이면 일주일 퇴고하고 딸깍 복붙하면 끝나지만, 장편은…… 퇴고 자체도 엄청난 일인데 그걸 쪼개진 회차에 일일이 반영하는 건 더 힘든 일이니까요……

덧붙여 중간 지점은 아예 단행본 규격을 생각하고 만든 연출입니다. 브릿G가 다행히 회차 변경 기능이 있어서 회차 중간에 삽입했지만, 실제로는 책 페이지 수의 정확히 중간에 나온다고 생각해주세요. 네, 그러니까 잘 읽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중간지점 페이지가 삽입되었다가 다시 원래 페이지 전개로 넘어가는 식입니다.

중간 지점이야말로 사실상 이 소설의 최대 복선이자 예고편인 셈이죠. 메타픽션에 대한 연출 복선으로서 잘 기능하기 위해선 좀 더 손 볼 필요가 있을 듯하지만요.

부족한 지점을 굉장히 많이 느꼈습니다.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정진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진심을 담아 감사 말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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