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사람이 없는 낡고 비루한 글이지만, 그렇다 하여 어떠한 이정표도 세우지 않는 것은 우연히 이곳에 걸음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이들에게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여 남깁니다. 삶의 탐색은 뜻밖의 일을 기대함으로써 꿈에 부풀게 됩니다. 목적도 연유도 없이 이 글을 찾았을 때, 그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덜 실망하도록 몇 자 적어두고자 합니다. “금방 잊게 될지도 모를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잠시 떠나셔도 좋습니다.” 라고 말하기 위해서.
현재 이 작품은 휴재중입니다. 다음에 올릴 분량이 없어서도 아니고, 작품을 연재할 의욕을 상실해서도 아니고, 단순히 인생의 다른 일들을 성취하기 위하여 집필과 퇴고가 지연되었기 때문입니다. 작가(혹은 이 미련한 습작생)의 불민한 고집 탓에 글은 도통 완성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독자·비평가께서는 끔찍할 정도로 느린 연재속도에 대해 온전히 작가 탓을 하시면 되겠습니다. 제 허물에 대해 참으로 유구무언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축복에 겨운 일입니다. 개인은 발화를 통하여 가벼운 욕구의 해소부터 실존적 구원에 이르기까지 여러 성취를 누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으로 약정된 형태로 나타났을 때 얼마나 진솔하고 또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평가받을 수 있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입니다. 결국 글쟁이는 글로 하여금 행복을 가볍게 거머쥡니다. 이 얼마나 짧고 간결한 길인지.
그럼에도 그 행복은, 마치 매슬로우의 주장처럼 하위의 조건을 충족하지 않고는 바로 설 수 없는 추상적인 만족이기도 합니다. 글쟁이의 실존적 간극은 항상 여기서 오게 됩니다. 저 또한 삶의 기반을 다지는 일들을 소홀히 할 수만은 없고, 따라서 이번에는 글에 앞서 다른 대소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원하는 작품이 점점 드물어져 스스로 만족하고자 글을 쓰게 된 것이 저의 집필 계기입니다. 현재 상황은 절필이나 불완전한 종결이 아님을, 그저 다음에도 글을 쓰기 위해 당면한 문제들에 우선하고 있음을 확실하게 밝히는 바입니다.
로기온의 2장은 아직 올리지 못한 많은 분량의 텍스트가 있고, 지금 그 형태가 확실하게 잡힌 것은 대략 4장까지입니다. 더불어 5장이 집필 전 단계에 있으며, 장래의 연재분을 미리 작성한 조각글을 포함하면 장기 연재를 어느정도 담보할 수 있습니다. 차후에 “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지루한 문장”에 흥미를 가지는 독자께서 나타나신다면, 그 마음을 너무 일찍 거두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적어도 고대인보다는 풍족한 환경에 사는 사람으로서, 베르길리우스보다 더 오래 세월에 저항하여 작품을 최대한 집필할 것을 미리 약속드립니다.
저는 퇴고에 많은 시간을 쏟는 섬세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집필을 일정량 이상 해내는 부지런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랬더라면 등단 작가가 되는 것도 한 번 고려해봤을 겁니다. 습작생으로서의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미련도 욕심도 과한 사람입니다. 그 문장이 맞는 위치에 들어가지 않으면, 여기서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면 한참을 기다리고 마는 것이 제 작문 방식입니다. 그럴싸한 원칙도 작법도 없지만, 스스로가 보기에 생각하는 재미가 없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문장은 좀처럼 뻔뻔스럽게 던져놓지 못합니다. 집필이 느린 원인은 오직 이 때문입니다. 개인의 안일한 만족을 위해 글을 쓰는 이의 한계가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하나 글을 쓰는 사람은 본래 욕심이 쉬이 꺼지지 않습니다. 문제의 가짓수가 조금 줄어들어 글을 쓸 여유가 생긴다면, 저는 반드시 집필을 우선 순위에 두고자 합니다. 그것은 다짐이라기 보다는, 기회가 되면 언제나 문예로 회귀하고 만 스스로의 성향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몹시 글을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렇기에 기회가 되면 느리게나마 연재분을 올릴 생각입니다.
어느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공상으로 가슴이 벅차오를 때, 옛날의 낡은 주화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속삭일 때, 글을 쓰지 않고는 가라앉힐 수 없는 열병에 시달릴 때, 그럴 때마다 표류하는 문장을 버리지 않고 구하여 쓰겠습니다. 그렇게 감히 세상에 난 글을 장래에 독자분들께 맡기는 소명 역시 잊지 않겠습니다. 이 글을 사랑하시든 경멸하시든 혹은 무심하시든 그것만은 약속드립니다.
건강이 최고의 가치가 된 이 시기에, 멋진 글을 찾아 순례를 아끼지 않으시는 여러분께서도 건강하시기를 빕니다.